솔로몬의 기도

2005.07.31 20:59

윤봉원 조회 수:1197 추천:132

열상 3:4-152005072402

날자: 2005년 7월 24 주일 오후

 

제목: 솔로몬의 기도

 

본문: 열왕기상 3:4-15

 

1. 지혜로운 솔로몬

 

오늘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그는 잠언 3,000을 말했고 노래 1,005곡을 지었습니다. 정치, 사회, 동식물학 법률학에까지 통달했다고 합니다. 또한 병거 1,400대를 친히 제작했고 마병을 12,000명을 거느린, 군사 전략에서도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부인은 몇 명이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후비만 700, 빈 장은 300명이었다고 합니다(왕상 11:3) 이것만 봐도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한 명 거느리기도 힘든데 천 명을 어떻게 거느렸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는 기도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했길래 그런 지혜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와 그 지혜를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바로 그 기도에서 나온 것인데도 말입니다. 지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도 주님을 섬기는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자격으로 두 가지가 강조되었습니다. 바로 성령과 지혜였습니다.

 

도대체 솔로몬은 어떤 기도를 했길래 그런 놀랍고도 탁월한 지혜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본문은 그의 기도의 특성을 세 가지로 보여 줍니다.

 

2. 솔로몬의 기도

 

1) 지속적인 기도

 

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솔로몬은 결정적인 필요의 순간 혹은 위기의 순간에만 기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솔로몬은 자기가 왕이 되어 이 왕이라는 막중한 국가 최고 수반의 책임을 수행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생각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는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도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라 고 했습니다.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고원 지대 언덕입니다. 현대 지명으로는 ‘엘집’ (EIjib)인데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에서 장막이라든지 놋제단을 발굴했습니다. 그것들은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여기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 했다는 흔적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여기서 1,000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제사를 1,000번 드렸다는 말이 아니라 1,000마리의 제물을 주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제물들이 주 앞에 바쳐졌습니다. 이 정도의 제물을 소화해 내는 제사를 드리려면 상당히 여러 날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은 여러 날 계속적으로 예배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강조하려는 더 중요한 것은 3절에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솔로몬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정확히 옮기면 ‘계속해서 분향한다’, ‘계속해서 예배한다’, ‘계속해서 기도한다’는 뜻인데 솔로몬이 이렇게 기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3절에서 첫째로 강조된 것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 보았습니까? 자꾸 만나고 싶지요? 사랑에 빠지면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하는 대상을 자꾸 만나고 싶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목마르게 합니다.

 

② 다윗의 법도를 행함으로

 

솔로몬은 계속 기도했을 뿐 아니라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했습니다(3)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아들에게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무엇입니까? 시편에서 다윗이 쓴 시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들은 기도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 시들은 찬양입니다. 다윗은 찬양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기도와 찬양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 아들 솔로몬도 기도와 찬양을 즐겨했던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부전자전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강조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나 솔로몬의 예배가 딱 한 번씩만 행해진 일회용이 아니었다는 것 입니다. 새해 벽두에 사람들은 소원 성취를 위해 한두 번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비전과 꿈을 갖고 1년 내내 기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지혜가 필요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솔로몬의 엄청나고 탁월한 삶 그 시대가 흠모했고 그 시대의 모든 열방 지도자들이 흠모했던 놀라운 지혜, 그것은 그의 기도 생활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구하십니까? 지속적으로 기도하기 바랍니다.

 

2) 겸손한 기도

 

① 종으로

 

솔로몬의 기도 생활은 겸허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가 부족할까요? 겸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겸허한 사람들의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 자기 한계와 연약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라며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연약과 자기 무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겸허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7).

 

솔로몬은 왕이 되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자기 자신을 종으로 자처합니다. 교회의 일꾼들도 다 종입니다. 섬기는 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섬기는 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 없이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솔로몬은 지혜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절감했습니다.

 

② 작은 아이

 

그는 자신을 종으로 말할 뿐 아니라 “아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작은 아이라.

 

도대체 솔로몬이 몇 살이나 됐길래 스스로를 작은 아이라고 했을까요? 랍비 문학서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됐을 때 열두 살이라는 기록도 있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는 열네 살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구약학자 델리취라는 학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아마도 왕이 됐을 때 솔로몬은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20대 초반이면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자신을 작은 아이에 불과하다고 고백합니다.

 

③ 어떻게 처신 할 줄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나는 작은 아이이고 출입할 줄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자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로서 이런 고백을 했다면 이것은 젊은이답지 않은 성숙한 고백이 아닐까요? 솔로몬은 자기가 올바로 처신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기 무지를 아는 사람, 자기 한계와 자기 연약을 아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엎드려 기도하게 되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너무 교만한 것 같습니다. 왜 오늘날 현대인들이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기 부족을 몰라서입니다. 자기 연약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무지를 모르기 때문 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들어야 할 복음이 있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시대의 대표적 지성인들인 이른바 소피스트 들은 마치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런 오만한 지식인들을 보면서 소크라테스는 마음속에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자신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내가 저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은 안다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국어 선생 같으면 “네 주제를 알라”, 수학 선생 같으면 “네 분수를 알라”, 지리 선생 같으면 “네 자리를 알라”, 미술 선생 같으면 “네 꼬라지를 알라”고 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무지, 자기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잠언 15 33절에서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 했고, 베드로전서 5 5절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삶의 장에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원합니까? 자신을 낮추십시오. 자기부족, 자기 연약을 아십시오. 자기 무지를 직시하십시오. 엎드려 기도하며 주 앞에 도움을 구하기 바랍니다. 겸손한 기도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솔로몬의 탁월한 지혜가 부럽습니까? 그의 기도 생활을 연구하십시오.

 

3) 이타적인 기도

 

솔로몬의 기도는 이타적이었습니다. 그 반대는 이기적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솔로몬의 기도의 핵심 부분이 있다면 5절입니다. 거기에는 이런 결정적 장면이 나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을까요? 사실 솔로몬이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았습니다. 자기의 필요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종교, 여호와의 종교인 기독교와 다른 모든 이방 종교의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이방 종교에도 기도가 있지만 그 기도는 기복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 욕망이나 소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종교인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침 받는다는 것 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소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생활조차도 ‘자기’라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방 종교처럼 기복적 종교로 변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해도 그 기도의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솔로몬은 지금 자기에게 필요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

 

솔로몬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을 잘 섬기기 위한 지혜를 구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 사건에서 그는 탁월한 지혜를 발휘했습니다(왕상 3: 1~28).

 

3. 하나님의 응답

 

솔로몬의 기도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부와 영광까지도 주셨습니다.

 

또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14)고 하셨습니다. 장수와 건강도 주신 것입니다. 구하지 않은 삶의 일상적 필요도 아시고 다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할 것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응답받은 사건을 보면서 생각나는 유명한 신약성경의 구절이 없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너희 에게 더하시리라”( 6:33).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신앙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의 괴리를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일반적로 한국 교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수직적 충성심은 상당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충성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향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부족한 취약점이 있다면 수평적 차원입니다. 이웃들을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합니다. 이웃들을 섬기고 돌아보고 인간 관계를 잘하는 것은 수직적 차원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무관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시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주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3:16).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나도 사랑하고,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신 사람들에게 나도 관심을 갖고,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세워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합니까? 하나님이 맡겨주신 주변 사람들을 잘 섬기기 원합니까? 그러나 나는 내 연약성을 압니다. 내 한계를 압니다. 내 부족함을 압니다. 그렇다면 내 부족함과 연약성과 한계를 가지고 엎드려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주님 주신 지혜로 멋지게 이웃들을 섬겨 가며 더 불어 함께 아름다운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의 기도’에서}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7-3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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