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수 목사] 주님의 척량 대상

2005.05.19 07:49

윤봉원 조회 수:933 추천:69

날자: 2005년 5월 4

 

강사: 정경수 목사님

 

제목: 주님의 척량 대상

 

본문: 요한계시록 11 1- 2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1. 말씀의 권위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이요 교훈이요 또 어떤 자에게는 위로의 말씀이요 권면의 말씀이요 계약의 말씀이요 권능이요, 심판도 정죄도 생명도 사망도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역사하는데 우리 믿는 성도는 이 사실을 삼가 조심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 1~6)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가 전하든지 모세 자리에 있으나 그 사람은 본 받지 말고 그 말씀은 들으라, 어린 아이가 전하든지 장성한 사람이 전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고, 지능, 생명을 받은 것이고 모든 것을 통치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이 자기 속에서 역사하신 역사를 표현할 수 있고, 순종했더니 이렇게 역사를 하시더라 하는 것을 하나님이 역사하신 경험과 체험이 있습니다.

 

2. 지팡이 같은 갈대

 

본문에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본문 주해를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은 상징적으로 기록 할 때도 있고, 모형적으로 기록할 때도 있고, 비유로 기록 할 때도 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상징적으로 해석한 것은 깨달으면 알기 쉽고 행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소경에게는 지팡이가 안내하는 것이 지팡이고 힘을 의지하는 것이 지팡이 입니다.

 

목자에게 지팡이는 양떼를 양은 일미터 앞을 잘 못 본다고 합니다. 목자에게 지팡이와 막대기는 양들을 인도하는 인도의 지팡이요, 양을 헤치는 이리나 사자나 악한 짐승을 막아내는 보호하는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갈대와 같은 지팡이를 주며, 하나님이 성령의 계시록 주신 말씀입니다. 진리와 영감의 말씀을 지팡이 같은 갈대로 상징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나타나면 마귀가 이용을 하고 권세자들이 이용을 해서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방해 하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해서 이용 할 수 없도록 지혜 있는 자 겸손한 자 하나님 앞에 진실한자에게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가 있습니다

 

왜 지팡이 같은 갈대로 상징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인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인간은 자기를 가까이 하면 자기에게 붙이고 멀리하면 대적으로 여기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사망의 구렁텅이로 인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 없는 정확 무오한 말씀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는 사람이 복이 있고, 원수의 관계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달 했으면 그 면에 대해서는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원수가 아니라 천하를 살리는 분이로구나. 나를 바로 인도한 분이라 평생 잊지 않고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 보기에는 지팡이 같은 갈대, 갈대는 연약한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인간 지식으로 볼 때 주관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목사님이나 그렇게 살까 그 말씀대로 산다고 그게 밥이 나오나 죽이 나오나 명예가 나오나 갈대와 같이 무시하고 연약하기에 지팡이 같은 갈대라말씀한 것입니다.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으리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 척량은 뭐할 때 척량 합니까? 경계를 구별 할 때 합니다. 척량을 안하면 시비가 있습니다. 척량함으로 경계가 구별 됩니다. 내 것이다. 내 밖의 것이다. 자기 것은 자기가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서 사도 요한에게 척량권을 주신 것이요, 오늘 우리에게도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척량 할 수 있는데, 하늘 나라에 가서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성을 표시하지 안했습니다. 금이라고 한 것은 영원성을 말씀한 것인데 여기는 영원성을 말씀하지 안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세상에 있는 동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세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천대하고 갈대와 같이 여길지라도 이 말씀은 분명히 나를 보호하는 말씀이 됩니다. 천하가 해쳐도 하나님은 보호를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원한 힘이요 능력이요 지팡입니다.

 

이 말씀만 버리지 않으면 천국으로 인도할때까지 복락으로 인도할 줄 믿기를 바랍니다.

 

심사를 해라, 그 말이라고 다 받아 들이지 말고 심사를 해라, 인본인지 신본인지 심사를 해라, 하나님의 소유권 밖에 있는 것이냐 안에 것이냐 소유권과 경계를 정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 안 진다. 그러면 마귀가 책임을 집니다. 먼지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여론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공간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 모든 가치와 평가는 성경에,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의 경계를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내 개인에게도 성전, 성전의 요소가 있고, 제단의 요소가 있고, 경배하는 요소가 있고 어떨 때는 바같 마당의 요소가 많을 때도 있습니다.

 

성도가 목회자나 넓게 말하면 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일꾼들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의 직책을 받은 그리스도의 직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땅 위에 있는 교회들을 척량을 하고 경계를 정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3. 무엇을 척량 할 것인까?

 

무엇을 척량 할 것인까?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그 외에는 밖마당은 이방에게 내어 주어서 마흔 두달 동안 짓밟히리라.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그 선까지만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딱 경계를 정해 놓았습니다. 성전 된 사람, 인격, 행위, 성전이 된 언행 심사, 성전이 된 생활까지만 하나님의 것이라 정해 놓았습니다. 그 외에는 밖 마당과 같습니다.

 

밖 마당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밖마당을 통해서 성전에 들어 오기 때문에 보호가 될 때가 있고, 울타리 역할을 할 때도 있고, 밖마당이 있으니 어떤 자에게는 미혹시키고 속화심키고 타락 시킬 때도 있다.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호할 때도 있고, 경계를 정하면 관계를 정하면 보호가 되나 경계가 없어지면 나를 타락시키고 속화 시키고 물들게 만들고 나를 끌고 가는 미혹의 요소가 되는 것이 성전 밖마당입니다.

 

이것을 구별을 못하면 성전에서 할일을 밖마당에서 하고, 경배하는 일을 성전 밖마당에서 하니까 아주 혼돈이 되는 구별이 없는 그런 오늘의 세대에 오늘 이 시대에 이 시대가 성전 하는 일을 집에 가서 하고, 구별이 없이, 교회 생활을 안 믿는 남편에게 말하고, 그로 인하여 핍박을 당하고, 누가 십일조를 얼마를 하더라.

 

이렇게 경계선은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와 성전 밖마당 사이가 경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논평을 하되 성전이냐 제단이냐 주체자가 누구냐 요것을 구별을 못하면 네 말도 맞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 남편은 하나 입니다. 진리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진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계시록은 주후 95년경 사도 요한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셔서 지팡이 같은 갈대, 진리와영감의 말씀을 주시면서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만 척량하고 그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 이방인의 마당, 여인의 마당, 밖 마당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속화시키기 쉬운 이방화 시키기 쉬운 해를 끼치기 쉬운 것이 되고 경계만 잘 정해 놓으면 마치 물에 배가 뜨 있지만 물이 배 속에 들어 오지 않으면 오히려 그 물이 배를 보호해 주고 목적지를 잘 가도록 보호해 주는 것처럼 외식 신자가 참된 성도에게 이용물이 되어지고, 이것이 아니면 너나 나나 같이 크고 동기고 안 했난 구별 없으면 물들고 병들고 죽게 되는 줄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요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오늘에 이런 세대를 만났다.

 

4. 척량 대상

 

1) 성전

 

그러면 성전은 거룩한 성, 집 전자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에게만 줍니다. 다른 것에게는 거룩을 붙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그 사람 마음 속에 어떤 사람은 돈이 주장을 합니다. 밤낮 돈, , 어떻게하면 돈을 생각해 돈이 주인이라. 어떤 사람은 항상 그 속에 명예 입니다. 목적이 그게 있으니까 기회가 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고 책임을 져 주십니다. 소유권자에 따라서 관리자가 달라 집니다. 언제나 다윗은 하나님 중심, 중심은 하나님의 계약과 하나님, 언제나 쫓겨 다녀도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십니다.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는 하나님의 것, 내 인격이 하나님을 최후의주인으로 모실 때는 인격 성전, 내 행동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피동 받기를 원할 때만 행위 성전, 생활 성전, 가정 성전, 교회는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 모신 곳이면 어데든지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고 하나님이나를 다스리고 하나님에게 나는 완전히 지배를 당하는 그 때만 성전입니다. 그 때는 사망의 음침한…하심이라. 그때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성전 되기를 축원 합니다. 성전 되기를 소원 합시다. 참 성전이 됩시다. 성전이 안 되었기 때문에 성전 되기를 소원 해서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제단

 

두번째는 하나님의것이 제단 입니다. 신약에 깨달음이 없으면 구약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유치할 때 하나님이 가르쳐 준 간단 명료한 구약 성막으로 돌아가면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막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했습니다.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은 전부가 제단 생활 입니다. 신령한 제단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신령한 인격 교제와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이 있고, 성전에 뜰이 있습니다. 제일 뜰에 번제단이 있습니다. 성전 밖에 있습니다. 그 제단이 왜 필요하냐 제단은 제물이 없으면 제단의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단 생활은 신약의 예배 생활입니다. 피흘리는 제물이 없으면 손죄가 없습니다. 짐승이 대신 죽어야 죽이는 것이 제단입니다. 짐승이 대신 죽고 죄 사함 받는 것이 구약의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서 성전을 향하여 들어 가려고 물두멍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손 발만 씻어도 깨끗하다. 인간은 백프로가 아닙니다. 아무리 제사장이라 해도 제단을 수종 들다 보면 부정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물두멍에서 씻고 들어갑니다. 씻지 않으면 즉사를 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로 깨끗함을 받았지만 흠이 있으면 회개하고 씻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물두멍에서 성막을 열고 들어가면 떡상이 있습니다. 12개의 떡이 있습니다. 그 떡을 갈아서 그 떡은 제사장의 양식이 됩니다.

 

왼편에는 가면 일곱 등대가 있습니다. 성막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일곱 촛대의 불은 일년 내내 끄주면 안 됩니다. 다른 빛은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심지를 타고 나면 제를 끌어 내고 기름을 갈아 주고 다른 빛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창문이 없습니다. 진리와 영감 외에 대속 외에 다른 것이 들어 오면 안 됩니다. 일곱 촛대가 비추는 것만 비춰야 합니다.

 

일곱 촛대를지나고 나면 지성소 앞에 금 향단이 있습니다. 향은 성도의 기도라. 성도의 기도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성도의 기도를 천사가 땅에 쏱으매 뇌성과 음성과 지진이 나더라.

 

뇌성은 두려움의 역사, 성도의 옳은 기도로 인하여 복음을 방해하는 역사는 한 길로 들어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 갑니다. 성도의 옳은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큰 것입니다. 천사가 성도의 기도를 받아서 보좌에 올라가 응답을 하니 뇌성, 두려움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음성은 사랑의 역사, 속삭입니다. 남 들을까봐, 사랑의 역사 복음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 했더니 삼년 만에 12년 만에 아브라함의 기도는 죽고 나서 이뤄 졌습니다.

 

무디의 식물에 대한 바닷물 비유

 

번개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빨리 움직입니다. 신령한 면으로 성령의 역사가 빠릅니다. 성령은 내가 여기서 기도를 하면 백리 밖의 미국의 사람이 감동을 시켜 회개를 시켜서 편지가 날아 옵니다. 시간, 공간, 사건을 초월 합니다. 성령을 속일 수 없습니다. 성령의 귀를 설득 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인격자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눈이 없고 귀가 없는 감각이 없는 무인격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을 지으신 원형이십니다.

 

기도 안 하는 사람 치고 마귀 노릇 안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것은 성전 밖 마당이라.

 

성도의 기도는 성령이 도와 주시고 역사를 합니다. 옳은 기도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를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한국 강산에 피흘려 전한 기도의 산물입니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 운동이 나더라. 지진 운동은 땅의 역사입니다. 변동 역사를 일으킵니다. 옳은 기도는 무섭습니다. 살리기도 하고 변동 시킵니다. 파괴도 시키고 건설도 시킵니다. 옳은 운동을 방해하면 하나님이 지진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제단 운동입니다. 이 사람만 척량하라.

 

순전히 인간의 판단으로 눈으로 가견적인 눈으로 평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간 곡식 농사는 일 년, 자식 농사는 40,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보여 줬지만 믿지 않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네 사상이 중심이 모세를 통한 그 교훈과 사상이 전후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 일장에 거듭 거듭 강조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네가 어기지만 아니하면 모세와 함께 한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겠다.

 

분명히 보고도 알 수 있지만 희망이 없다.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을 정복 할 수 없다.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어디 있느냐 금송아지 만들자. 여호수아와 갈렙은 내 마음과 같다. 계대한 여허수아와 갈렙 그 교훈을 환영하고 계대하고 그러니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리계와 공간계와 역사를 움직여서 하신 것입니다. 악령이 하나님의 역사를 꺾으려고 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제가 얼마전에 조경을 하는데 조경사를 통해서 돌을 쌓은데 4일 동안에 조경을 했습니다. 조경을 하는데 비가 많이 오지는 안했는데 무너 져 버렸습니다. 250만원 기가 차지요, 돌을 쌓는 것 보니까 돌이 크니까? 보기는 참 잘 쌓아요, 걱정 없습니다. 걱정 없습니다. 보기는 좋습니까? 비가 조금 왔는데 무너 져 버렸습니다. 세석을 넣어야 합니다. 그것이 큰 돌을 견더 냅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나 단체나 꼭 같은 것입니다. 돌담도 중간 돌도 필요 있고, 작은 돌이 있는데 그 힘으로 중간돌을 밑에 넣고 세우니 비가 오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큰 교회는 적은 교회가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성막을 보면 기둥이 있습니다. 기둥이 있는데 기둥 마다 말둑이 여게 있고 저게 있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기 때문에 성막이 넘어지지 않도록 말둑 때문에 그 기둥이 안 넘어 갑니다.

 

이런데 사람은 항문 없으면 저는 죽습니다. 적은 고기로 인하여 큰 고기가 살고 큰 고기로 인하여 사람이 살고, 상호 협조하고 연결하여 온전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연결 고리가 있어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사랑으로 감싸 주는 것, 이것이 없으면 전부 다 뿔뿔이 다 흩어 집니다. 이 교회와 저 교회 서로 머리 노릇 하려고 하니 못하도록, 그러니까 총공회 교회는 한 교회도 쓸모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이사람도 귀하게 여기고 저 사람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성전입니다. 이런 중심이 없는 사람은 바같에 내 버려 둬라. 마흔 두달 동안, 삼 년 반 동안 항상 외식 신자, 바람 막이 생활만 하도록 내어 줬다.

 

많아도 밖 마당, 적어도 밖 마당, 못 나도 밖 마당, 잘 나도 밖 마당 이것은 하나님께서 간섭을 안 하겠다. 손을 떼겠다.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그대로 두겠다.

 

그래서 이 향단을 지나서 휘장,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만민 제사장,

 

지성소에 들어가면 법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 주겠다.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입니다. 영원 무궁한 계약의 말씀이요 언약의 말씀이요 불변의 말씀입니다.

 

그 언약 위에 속쇠소가 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화합을 상징 합니다. 그 뒤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오늘에는 보이는 제도는 피해 져도 신령한 것은 더욱 더 확실하고 신령한 순서를 통해서 자존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게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자.

 

3) 경배하는 자

 

이런 여덟가지 순서를 통과해서 하나님을 만나는데 번제단에서 몇 가지 제사를 들였느냐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 요제 전제 요제 소제 전제는 부속 제사이지만 피 제사 후에는 반드시 따라 들어 갑니다.

 

요제는 앞으로 밀었다가 뱄다가 내가 하나님께 드렸다가 받았다가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드리고 받고, 그게 원리 입니다. 위로 올립니다. 위로부터 받았다가 드립니다. 그런 성질의 것으로 기도 생활 한 사람만 하나님이 책이 집니다.

 

소제는 감사 제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제 곡식 가루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년 내 가도 감사 헌금 안 합니다. 구속의 은혜, 안 보의 은혜, 건강 주시니 감사합니다. 물질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래서 한 주일도 감사 헌금이 빠지는 날이 없습니다. 감사 헌금

 

감사 생활 없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 내것이라 척량하라]

 

속죄제, 하나님께 범죄한 속죄제,

 

우리가 물질아 실수한 속건제, 하나님과 사건으로 오고간 가운데 불목의 죄 이것은 다 번제단에서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 전부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런 성질 이런 사상으로 사는 사람만 성소고 제단 생활이요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책임 지겠다. 내가 관리 하겠다 내가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명령인 줄 알고 성전 되기를 소원 합시다. 여덟 가지 제단 생활을 보이는 물질적 제단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완성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성전 생활이 되어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5-19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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