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심정을 가지라

2006.08.14 22:46

윤봉원 조회 수:1279 추천:124

눅 15:1-72006081301

날자: 2006년 8월 13일 주일 오전
제목: 주님의 심정을 가지라
본문: 누가복음 15장 1절∼7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
I. 나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가?
요즘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심을 가지는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지 한 번 돌아 봅시다. 휴가, 공부, 인터넷, 오락, 주식, 정치, 사회, 문화, 자식 뒷바라지 등과 같이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기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셔서 피흘려 구원해 주신 것은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을 닮은 자로 자라가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셔서 구원하여 주셨고 지금까지 보존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산 자들에게는 영원한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영원한 부끄러움과 수치가 뒤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
II. 절대주권과 예정성취
바리새인들은 아주 신앙에 독실한 사람들이요 또 서기관은 성경을 잘 알고 성경 가르치는 선생님들입니다. 이들은 믿는 사람들 중에 특별히 잘 믿는 사람으로 자타가 인정을 하고 또 이 서기관은 자기들이 성경을 잘 아는 아주 성경에 능한 성경 선생님들인 줄로 그렇게 자타들이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이 하나님 말씀 들으러 오는 것을 영접하고 같이 하나님의 도리를 전하고 그 진진하게 서로 신앙 교제와 전도하는 것을 보고 조롱을 했습니다. 어떻게 저 거룩하다고 하는 선생님이 저 죄인들하고 세리하고 저렇게 마구잡이 교제를 하고 또 먹고 마시는 저런 일을 하느냐 그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한 심정이며 또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것을 본문에서 비유로 나타냈습니다.
여기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온 것이나 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거기에 대해서 논평한 것이나 이런 것이 우연히 이렇게 만나져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그때에 된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실 때에 이 예정 순서에 들어간 것이 때가 되매 예정하신 그대로 이런 사람들이 있게 됐고 그런 분위기가 생겨지게 됐고 이렇게 그런 형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이루어진 것을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에서 시작되고 또 예정에서 시작된 것이 하나님이 창조로 이런 역사가 존재하게 됐고 또 하나님의 섭리로 이런 모든 운동들과 순서들이 이루어지게 된 것인 것을 우리는 성경으로 알고 믿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죽도록 충성하라 하는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냐? 그것은 하나님의 궁극이 아니냐?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냐? 이 모든 것이 합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그 구원을 완성시키는 그 과정들이요 모든 조건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이래 하니 이 학자는 이 구석에 파묻혀 가지고 죽고 저 학자는 저 구석에 파묻혀 죽고 이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하는데 그런 것을 총괄해서 발 아래 밟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전부를 다 파악해 가지고 모든 지식을, 전체의 지식을 알아야 되지 전체 지식을 모르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좀 배울 기회는 가졌는데 정신 안 차리면 안 됩니다.
본문에서 이것도 중요한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거게서 나타나서 세리와 죄인들을 훼방하고 ‘주님이 저와같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영접한다’ 이런 분위기 조성된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또 그때에 회집을 했고 또 그때에 죄인들과 세리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게 하셨고 또 그것 보고서 바리새 교인들과 서기관들은 조롱을 하고 훼방을 했고 이게 전부 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그것 알고,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작정하신 대로 요런 분위기를 조성하시고 그 분위기에 또 당신이 요렇게 잃은 양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잃은 양 비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은 그때에 그 형편 사정을 보고 거기에 따라서 적당한 적응으로 잃은 양 비유를 하셨는가? 이것도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딱 예정하신 거게서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예수님은 또 요렇게 말씀하셔서 잃은 양 비유를 하시도록 이렇게 딱 돼 가지고 있어 그 순서대로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알면 죽도록 충성하라는 그것도, 죽도록 충성하라, ‘하나님이 중생된 사람이면 다 구원 얻기로 다 완전주의, 궁극적 구원이요 완전구원으로 돼 가지고 있는 건데 뭐 죽도록 충성하라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 사람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그것도 하나님의 완전 구원 속에 들어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 요소에서 빠져나가 버리면 완전 구원이 안 된다 그것입니다.
III. 주님의 심정
ㄱ. 관심은 잃어버린 양에게 집중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백 마리 양이 있는데 한 마리를 잊어버리니까 한 마리 그거 찾도록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서 한 마리 찾도록 찾기까지 노력했다, 열심히 노력했다 하는 이것이 여기에서 예수님의 그 심정과 당신의 활동을 본문에 보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심정은 아흔아홉 마리 있고 한 마리 하는 그까짓 거야 뭐 아흔아홉 마리 있으니까 한 마리 그거야 있으나 없으나 이렇게 여기지 안하고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관심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아흔아홉 마리에 대한 관심보다도 관심이 더 뜨겁고 크다 하는 요것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면 잃은 양은 어떤 사람이 잃은 양이냐 하면은 예수 믿다가 낙심한 사람이 잃은 양이 아니고 잃은 양은, 이것도 낙심한 사람만 잃은 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잃은 그것만이 아니고 잃은 양은 예수님의 양이 됐는데 예수님의 양이 그만 딴 데로 가서 없어진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택한 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다 값 주고 사서 완전히 주님의 것이 돼서 주님의 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잃은 양은 택함을 받은 자로서 아직까지 중생되지 못한 그 모든 사람이 다 잃은 양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잃은 양입니다. 믿다가 낙심해서 돌아간 사람들은 그 다음에 잃어버린 드라크마로 거기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가지고 계시느냐? 의인 아흔아홉 사람보다 아직까지 구출하지 못한, 아직까지 이 복음을 그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주님을 믿지 못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그 한 사람에게 대한 관심이 아흔아홉 사람에게 대한 관심보다 더 크다, 관심이 더 크고 더 뜨겁다 하는 요것을 여기에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믿는 사람만이 상대하고 안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은 그 잃어 버린 양인데, 왜 잃어버린 양인가? 주님이 피로 값주고 샀는데 그게 있기는 지금 마귀에게 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양이오. 믿다가 낙심한 자를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한 게 아니고 그것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라, 드라크마고 본문에는 예수님의 택한 백성이 아직까지 주님을 찾지 못하고 악령의 사망의 감옥 속에 들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주님을 자기의 구주로 알아서 영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그 모든 사람을 가리켜서 잃어버린 양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주님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제 이러니까, 물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요하지만 믿는 모든 사람 그보다도 택한 자로서 아직까지 주님을 찾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대한 관심이 이미 믿는 사람의 모든 전부에 대한 관심보다 그 한 사람의 관심이 크다 하는 요것을 여기에서 아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첫째 진리입니다.
ㄴ. 전도하기 위해 다 투자
우리가 밤낮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 믿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저 사람을 어쩌든지 전도해서 회개시켜 예수 믿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그 심정을 가진 그 사람, 그 심정을 가진 그것이 자기의 심정입니까? 그 사람의 심정이요? 그 사람의 심정 아닙니다. 요 분명히 지금 양을 찾는 이는 목자인데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목자는 예수님이시요. 그러면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그 관심이 바로 예수님의 관심이오. 바로 예수님의 관심. 자기 속에 예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서 역사하시는 것이라.
‘찾으면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 이것은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것은 찾은 양을 귀중히 여겨서 찾은 양을 위해서 자기의 노력이나 희생이나 그런 게 생각되지 안하고서 찾은 양, 한 사람이 예수 믿게 될 때에 그 믿는 그 사람을 위해서 자존심도 아끼지 안하고 교만도 아끼지 안하고 무슨 자기의 이해 문제 그런 것도 생각지 안하고 자기가 평소에 생각지 못할 만큼 그 사람이 얻은 양 하나를 위해서 자기의 마음이나 몸이나 정신이나 자기의 물질이나 아낌없이 기울여지고 투자되는 그것을 볼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바로 그것이 주님과 동행이오. 껍데기는 내지만 내 속에 주님이 내주하셔 가지고서 내 안에 내주하셔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그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주님과 동행입니다. 이 심정을 가진 것이 주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자기 심정이 아니라 주님의 심정이오. 자기 마음 안에 주님이 계셔서 주님과 자기와의 마음으로 동행합니다. 또 그럴 때에 자기의 모든 것이 아껴지지 안하고 투자하고 싶고 그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고 뭐 수고도 쩔뚝쩔뚝하면 그것도 생각지 안하고 그를 위해서 있는 전부를 기울여서 분발돼지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것이 네가 아니다. 껍데기는 네지만, 껍데기는 네지만 껍데기는 네나 네가 아니고 그 속에 일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 사람이 주님하고 동행하는 사람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지체요 그것이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과 동행인 것입니다.
 ㄷ. 미친듯이 기뻐함
어깨에 메고 와서 모든 이웃 사람과 벗들을 불러 가지고서, ‘야, 오너라. 내가 잃은 양을 찾았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하면서 부른다 하는 이것은 자기가 잃은 양을 찾아서 구원했을 때에 그때에 자기에게 솟아오르는 그 기쁨은 다른 사람이 좋아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면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기뻐하는 그 기쁨이, 이 기쁨은 다른 사람도 기뻐할 것이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이 내게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라 하는 것이 믿어진다 그 말입니다. 
한 양을 찾아 가지고 자기의 아낌없이 어깨에 메고 온다. 자기 것을 투자해, 자기 것을 다 투자하고 희생하면서 그저 아까운 줄도 모르고 어찌 됐든간에 그것만 구원하기 위해서 뭐 앞뒤도 모르고 전후도 모르고 뒤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만 구원하기 위해서 내 전력이 기울여지는 그것이 네가 아니라 네 속에 주님이 계셔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주님이 하시는 것이요, 그게 주님과 동행이오.
그라면서, 누가 다른 사람 기뻐할지 모르는데 기쁘고 좋아서 벙긋벙긋하며 그 기뻐하는 것 보면 다른 사람이 보고 저거 미쳤나? 뭐이 저거 나한테 뭐 내가 기뻐할 게 뭐 있다고 나를 보고 뭐 기쁘고 즐거워 벙긋거려 쌓고 저래 쌓는가? 다른 사람이 미쳤다고 할 만큼 기쁘나 제 속에는 기쁨이 충만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하리라 하는 것이 믿어지고 제 기쁨이 모든 사람의 기쁨이 되리라 하는 그 기쁨을 점령하게 됩니다.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기쁨 가지는 그것도 제 기쁨이 아니오. 주님이 자기 속에 와 가지고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이 자기 속에 와서 역사했기 때문에 독사와 시랑이 같은, 다른 사람 망하는 거나 좋아하고 복받으면 배가 아픈 그런 흉측한 살인자가 어찌 그리 다른 사람이 구원얻는데 기쁘고 즐거운가? 저만 기쁠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품습니다. 뭐 기뻐해 쌓으니까 ‘이 사람 자네 왜 그래 웃어 쌓고 기뻐 쌓노? 이 미쳤나, 이거? 요새 정신병이 걸렸나 미쳤는가보다.’ 미쳤는갑다 할 만큼 그 기쁘고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 토하게 됩니다. 품어 내게 됩니다. 그것도 주님이 그 속에 내주하셔서 주님의 기쁨에 자기가 그게 나타내고 있고 같이 동행하는 것입니다.
IV. 전도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후대하심
우리가 항상 주님과 동행할라면 그 심정이 계속되는 게 주님과 동행이요, 그 아낌 없는 희생의 투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어린 것을 위해서 희생하고 난 다음에 아이구 희생했다, 따지자. 계산 따지자. 계산 따집니까? 희생을 할수록이 못 한 것 같고 할수록이 또 뭐 미진한 게 없는가, 또 미진한가 자꾸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주님이 우리들과 동행하는 그 동행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요거 아마 반사들은 많이 느꼈을 것이고, 그 주님이시요. 주님을 놓치 말고 동행해야 됩니다. 그거 주님이,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자기 안에 계셔 가지고서 그 주님이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데 그러면 그것이 놓치지 안하고 계속될 때는 주님이 자기 안에 내치 내주하셔 가지고서 동행하고 있는 거라, 동행하는 것.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주님이 승천하셨습니다. 요 말씀이 사람으로 말하면 유언입니다. 주님이 지상에 계실 때에 최종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되어다오, 이 복음을 전해다고 하는 그것이 주님의 최종 유언의 소원의 말씀입니다.
또 마태복음 10장 42절에는 “누구든지 내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제자 이름이 뭐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전도하는 사람이라고, 제자 중 소자 하나, 전도한다 해도 그까짓 것 뭐 전도도 뭐 옳게 하지 안한 것 그거 가리켜서 소자라 말한 것입니다. 좀 더 좀 뚜렷이 유력히 전도하면 하지만 예수를 전한다 하지만 예수 전하는 중에, 예수를 전하는 중에 제일 못 전하고 제일 둔하게 전하고 아무것도 아니게 전하고 해도 저 사람이 주님의 복음을 전한다 하는 그 뜻에서 그 사람 대접한 것은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단코 내가 상을 잃지 않겠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전하는 자 중에 소자지만 예수를 전하기 때문에, 예수를 전하는 그것 때문에 자기가 대접한 것이라면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 그러면 전도하는 것을 당신이 얼마나 기뻐하시며 얼마나 후대하고 계십니까?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한 것은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는 주님의 그 심정을, 주님이 지금 이런 심정인데 이다음에 우리가 하늘나라 가면은 뭐 별나라요? 내나 그분이 왕이시고 그분이 정치할 것이고 그분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선포한 그 심정 가지고서 그 나라에서 통치합니다. 그럴 터이니까 그때 갈 때에 좋은 꼴이 있을란가 부끄러운 꼴이 있을란가 미안한 꼴이 있을란가 뭐 평안한 꼴이 있을란가 불안할 것인가? 우리 자신을 돌아 봅시다!!
V. 나에게 적용
i.  신구약 성경의 핵심은 형제 구원위해 전부 투자하라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예수님이 재림해서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와 우리 전도가 다 관련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우리 전도와 관련이 있고 그의 심판과 우리의 전도와 관련이 있고 또 그분이 나타나셔서 영원히 같이 사는 거기에 우리 전도가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는 말하기를 18절로 20절에는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너희들은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들이게 분부한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해라. 세상 끝날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러니까 이 복음 전도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동행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에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가지고,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가지고 복음 전하는 자에게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하겠다 했습니다.
모든 계명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함같이 이웃 사랑하라. 주님이 우리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투자한 그와같이 우리들이 형제 구원을 위해서 전부 투자하는 요것이 전 신구약 성경이요 계명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어떻게 한 것같이 너희들이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이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 보이는 자는 그런 자는 저주를 받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보여서 거게서 이렇게 저렇게 이간이나 붙이고 한 그런 거는 나중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자는 줄 알아요? 비참해져요. 나중에 비참해지고 난 다음에, 그거 그러니까 그런 징계가 오기 전에 어서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됩니다.
ii.  세 사람 이상 작정하고 전도하자
이러니까 이제 우리가 착수해 가지고 기도하고 우리 교회에서는 “세 명 전도 내가 한다”를 실천하도록 합시다. “네가 남의 것에 충성치 않으면 누가 너의 것을 너에게 주겠느냐” 말씀 했습니다. 남의 자식 아끼지 안하면 누가 제 자식을 아껴 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식을 아끼지 안하면은 하나님이 우리 자식을 아끼지 안해요.
우리도 이제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잃어 버린 양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전도하기 위하여 우리의 전 진액을 다 투자하기를 미친듯이 기뻐하는 자가되어 전도의 열매를 맺어서 주님이 누리신 그 기쁨을 우리도 누리고, 약속의 상을 다 받는 주인공이 되도록 합시다. 승리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8-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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