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2006.06.14 21:19

윤봉원 조회 수:1164 추천:125

시 1:1-32006061101

날자: 2006년 6월 11일 주일오전
제목: 복 있는 사람
본문:시편 1편 1절∼3절
복 있은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 아담 하와의 유산을 기억하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 하실 때 다른 것을 창조하시고는 기뻐하셨지만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기뻐하신 최고의 걸잘품인 최초의 인간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너무너무 평화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유하며 살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 버리고, 뱀을 입고 온 사단을 영접한 후 선악과를 따 먹는 범죄 이후로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준 유산을 생각 해 봅시다. 어떤 것들을 남겨 주었습니까?
죽음, 질병, 일하는 수고, 미움, 시기, 질투, 조상 사람 탓, 고통, 원망, 짜증, 늙음, 해산의 수고, 부끄러움, 동식물들과도 원수가 되어지는 모든 불행의 씨앗 원죄를 남겨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 하와는 복 있는 사람입니까? 복 없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그런 유산을 물려 받은 우리들이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없을까요? 그 길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셨고, 열어 놓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아담 하와와는 정 반대로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한 번 살펴 봅시다.
2. 복 있는 사람의 삶
가. 믿음으로 하면 다 형통이다
3절 끝에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는 형통에 대해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본문에서 형통하다는 것은 어떤 자의 그 사욕적인, 사욕적인 그 걸음, 또 인본적인 그 걸음, 그런 걸음이 형통하다는 말 아닙니다. 형통타 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는 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는 데에, 그 사람이 참 복 있고 가치 있는 그 걸음을 걸어가는 데에,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걸어가는 이 걸음에 있어서 다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구원이 되고, 복이 되고, 승리가 되고, 성공이 되고, 모든 이웃에게 감사를 받을 수 있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친 은혜와 봉사를 베푼 일이 될 수 있는 그 길, 하나님이 만족히 여기시고 칭찬하실 수 있는 그 길, 다시 말하면 신앙 양심대로 걸어가는 그 길, 영감대로 걸어가는 그 길, 자기 진리의 길, 자기가 걸어가야 할 자기 길 그 길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의 하는 일은, 참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하는 일은 다 형통해지는 것입니다. 형통해진다는 것은 하나도 지장을 받지 아니하고 모든 것이 다 성공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잘못 형통의 표준을 정한 그것 때문에 믿는 사람의 하는 일이 형통치 아니한 것이 있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지 믿음의 사람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형통합니다. 하나도 막히지 아니하고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그대로 달통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의 하는 일에 대해서 사울 왕이 방해를 심히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방해가 다윗 왕의 그 가는 길을 막지를 못했습니다. 또 요셉이가 가는 길을 형제들도 방해했고, 보디발도 종으로 사 가지고 가서 방해했고, 그 집에 방해했고, 감옥에 방해하고 온갖 애로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해서 애굽 나라 총리대신이 되는 그 자리까지 요셉이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는 그 길을 아무도 방해 못 했습니다. 그대로 형통했습니다. 또 다니엘을 통해서 파사 나라에 하나님이 영광이 충만케 하려 하시는 다니엘의 그 맡은 사명의 그 길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전국이 달라들었지만 방해를 못 했고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었지만 그 길은 방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이 길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다니엘을 기도하지 말라고 다리오 왕이 말할 때에 기도하면 사자굴에다가 넣어서 죽이겠다는 전국 결의, 이 결의가 있을 때에 만일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기도를 하겠다고 함으로 사자구덩이에 던지워진 것, 또 사자구덩이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출해 내신 것, 그러므로 파사 나라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온 전국에 가득히 차게 된 일, 이런 것이 다 형통입니다.
이는 참 영원히 가도 후회 없고 부끄럽지 않고 잘못됨이 없는, 그 사람으로서는 가장 옳은 길, 옳은 생활, 가치 있는 생활, 복 있은 생활, 영광 있는 생활 이 생활이 거침없이 형통하게 되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복 있은 사람은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는 그 길, 그 일, 인간에게 부끄러울 일, 자타에게 손해가 될 일 그 일은 딱 막혀서 갈 수 없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길입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복 있은 사람은 신앙 양심대로의 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영감대로 사는 이것이 형통해지고 아무것에게도 제재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니엘만 갈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이 앞길이 형통해서 온 세계가 세상이 다 막아도 하나도 막히지 안하고 꿰뚫고 형통하게 이렇게 갈 수 있는 이런 생애를 가질 수 있는 우리들이며 또 우리의 소속과 구속의 배경이 되어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나. 항상 청청하고 새롭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이것 비유입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이 말씀은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청청하고, 언제든지 생생하고, 언제든지 기쁘고, 언제든지 희망이 넘치고, 언제든지 담대하고, 언제든지 평안하고, 언제든지 즐겁고, 언제든지 힘있고, 신앙의 그 마음 작용인 마음 안에서 되는 신앙의 사상이나, 신앙의 용기나, 이 신앙의 욕망이나, 이 신앙의 열심이나, 이 신앙의 능력이 조금도 약해지지 안하고, 시들지 아니하고, 약해지지 안하고 이렇게 잎사귀가 청청한 것처럼 언제나 소망으로 충만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이 성령의 소욕으로, 돈 욕심 내는 사람이 돈 욕심 내듯이 성령의 소욕으로 충만하고 든든한 배경을 가져서 온유하고 담대하고 또 진실하고 겸손하고 화평하고 인자하고 한 이 모든 신앙 행위가 시들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좀 더 새로와지고, 어제보다 오늘 더 새로와지고, 오늘보다 내일 더 새로와지고, 좀 더 새로와지고 새로와지고 청청하게 죽는 날까지 점점 새로와지는 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줍니다. 이 생활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믿는 사람들이 성경이 주신 이 표준은 이런 사람들인데 우리는 조그만한 어려움만 닥쳐도 형통치 못해서 거기에 딱 걸려버리지, 좀 좋은 일만 닥쳐도 거기에 걸리지, 거지로 살다가 돈이나 몇 억 가지면 그만 거기에 떡 걸려 가지고서 시들어 죽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것이 좀 지위나 권세나 하나 얻어놓으면, 얻어놓으면 그만 딱 거기에 딱 걸려버리지, 있으니까 걸리지, 있던 자가 훅 달아나 버리면 또 가난이 오니까 또 걸리지 이것은 초보를 옮기지 못하는 그런 것이 오늘 믿는 신자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신앙 생활이 금방 청청한 것 같지만 마치 꺾어다 심은 화초 모양으로 좀 있으면 시들시들하게 그만 곯아버리고 맙니다. 왜? 그것이 모두 다 죽음에서 나온 것이요, 저주에서 나온 것이요, 다 썩은 데서 나온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열심도 시들어지고, 기쁨도 시들어지고, 감사도 시들어지고 이것이 도무지 일관하지 못하는 그게 뭣이냐 하면 뿌럭지를 보면 내가 그게 세상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된 것은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청청하다” 또 새 움 나고 또 자라고 한 것처럼 그의 모든 전생애가 마음의 움직임이나, 몸의 움직임이나, 정신의 움직임이나, 지식의 움직임이나 그 모든 것이 한번도 말라 비틀어지지 안하고 쇠해지지 안하고 항상 청청하고 항상 새로와집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인데 우리가 잘못되어서 우리 모든 신앙 행위가 시들어지고 낡아지고 곯아 말라지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생애에 이렇게 힘이라고 하는 것, 뭣이 기쁨이나 평안이나 담대나 즐거움이나 힘이나 욕망이나 이런 것이 참 시들지 아니할 그 성질에 속한 것들인지 금방 사람 하나만 변동돼도, 사람 하나만 변동돼도 변동될 것, 시세만 변동돼도 변동될 것, 정권만 변동돼도 변동될 것, 전쟁만 나도 변동될 것, 흉년만 들어도 변동될 것, 싸움만 한번 일어도 변동될 것, 어떤 사람이 한번 웃어만 안 줘도 변동될 것, 아, 더러워요. 어떤 것인지, 나는 과연 내 생애라 하는 생애가 어떤 것이 오고, 어느 시대, 어느 환경, 어느 사회, 어느 형편, 어느 처지가 와도 시들지 아니하고 곯지 안할 수 있는 이런 청청함에 속한 것인가 이것을 살펴서 자기를 확정지워야 할 것입니다. 참 성도의 생활은 환경이나 주위를 따라서 그 생애가 시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변동되지 않습니다.
다. 모든 현실에서 구원의 수입을 본다
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 같다” 그러면 시절 좇아서 과실 맺는다 말은 이런 현실을 만나든지 저런 현실을 만나든지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그 현실마다 결과를 수입을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서 자기의 구원을 이룬다 그 말입니다. 어떤 현실에서든지 그 현실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주님 대접할 것을 마련한다 그 말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뭐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이 형통해질 때 그때 구원 이루고 그 생활이 사람 보기에 비참하다고 할 그때는 구원을 못 이루는 줄 압니까? 형통할 때도 구원 이루고, 비참할 때도 구원 이루고, 이러기에 신앙의 사람은 이 세상 자기 현실이 천태만상으로 이렇게 변해져도 그 변해지는 천태만상의 변화되는 현실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그 현실이 이용가치도 꼭 같고, 그 현실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수입도 꼭 같고, 그 현실을 귀중히 여기는 것도 꼭 같고, 그 현실에 대해서 보배로 여겨서 노력하는 것도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렇게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자, 어떤 현실에서라도 꼭 같은 수입을 본다. 어떻게 자기 현실이 변해 나가도 그의 신앙 생애는 항상 청청하고 새로와지지 조금도 시들어지지 않는다. 그의 가는 길은 죽음도 사자도 나라도 공산주의도 아무도 막지 못하고 그대로 일관돼 나간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질 수 있는, 누구든지 택한 자면 이 세 가지를 가질 수 있는 그 방편을 그 위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 세 가지를 소유할 수 있는 그 소유권자가 될 수 있는 방편을 그 위에 말해 놨습니다. 택함 입고 중생된 자라면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무식하든지 유식하든지, 병신이든지 건강하든지간에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이면 이 세 가지를 다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형통하니까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청청하니까 세상을 양식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세상을 우리의 밥이라 했습니다. 세상을 우리의 밥이라 했습니다. 어떤 것이 와도 이 사람이 먹고 사는 밥입니다. 이러니까 이 현실을 먹고 청청하게 자라고 저 현실을 먹고 청청하게 자라고, 이러니까 세상은 그의 식물이 되고, 그는 형통하니까 세상을 이겼어. 그는 시절을 좇아서 열매 맺었으니까 세상을 이용했습니다. 세상을 이용하는 자, 세상을 양식으로 먹는 자, 세상을 이기는 자 이것이 믿는 사람의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9)
3.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
가. 사람을 삼가라
택한 자면 성령과 진리와 피공로가 보증이 돼 있기 때문에 그 돕는 힘을 입어 가지고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사람을 삼가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람을 삼가는 것. 사람을 조심하는 것! 사람에게 대해서 조심할 줄 모르면 헛일입니다. 등을 톡톡 두드리면서 간을 내 먹는다 말 있습니다. 등치고 간 내 먹는다 그 말입니다. 아무리 내게 달콤한 사람이나 내게 있는 간보다도 더 보배로운 것을 삼키는 것이 인간일 수도 있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수가 내 집안 식구리라”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아무나따나, 우선 제 비위에 맞다고, 제 기분에 맞다고, 제 심령 풀이에 맞다고, 일시 제 사욕에 맞다고, 제 입장과 맞다고, 저를 동정한다고, 저를 위한다고 크게 주의 없이 사람을 접촉하면 멸망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그 말이 사람 삼가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삼갈 것! 내 물욕에 맞다고, 내 정욕에 맞다고, 내 사업욕에 맞다고, 지방 정실의 사람이라고, 혈육 정실의 사람이라고, 동류 정실의 사람이라고, 자기 보고 웃어준다고, 자기를 귀하게 봐 준다고 정신 없이 사람 접촉하는 자는 이 세 가지 큰 길을 걸어가지 못합니다. 세상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양식으로 먹지 못합니다.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양식으로 먹어 자라고 세상을 이용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이 사람은 두 가지 중에 첫째가 사람을 삼갈 것. 사람을 삼갈 것.
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라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삼가고 말씀은 떠나지 말 것.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소개받는 것입니다. 나는 모르는데 ‘야, 아무것이가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단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그 사람을 소개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대충 그런 사람인가보다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소개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사람도 방해하고, 물건도 방해하고, 일도 방해하고,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부패성도 방해하고, 내 속에 있는 부패성도 방해하고, 악령도 방해하고 방해물이 많습니다. 이러기에 성경을 내가 읽으려고 할 때에 내가 미리 약속해 놓은 그 일을 내가 착각해 가지고 거기 대해서 대비가 없이 성경을 볼 때에 그 일이 닥치면 저는 성경 볼 자격이 없기 때문에 성경 덮어두고 그 일 봐야 됩니다.
악령은 기이한 장난을 합니다. 성경을 읽으려 하면,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저거 군병이오. 세상이 자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성경 보지 못하게 하려고 의외의 일을 덜퍽덜퍽 갖다 붙입니다. 의외의 것이 왔으면 그것은 늘여 붙여도 됩니다. 늘여 붙여 둬야 됩니다. 두고 성경 읽어야 합니다. 읽을 만큼 읽고 그 다음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자타의 부패성을 이것을 배격해 가면서라야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모든 사람과 이 사물의 방해를 배격해 가면서라야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자기를 길들일 수 있는 제어할 수 있는 이 힘이라야 성경을 읽지 그리 안 하면 성경 못 읽습니다. 성경 읽는 것이 그렇게 저절로 되는 것이나 쉬운 것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할 때에 이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고 필요하고 요긴한 하나님을 소개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 구원 도리인데 구원 도리를 소개받는 일인데 이 일이 적극적으로는 첫째되는 이 중요한 일인데 이것이 그렇게 쉽게 되리라 생각합니까?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려 할 때에 의외에 덜퍽덜퍽 닥치거든 그것이 악령이 역사하는 것이요 세상이 역사하는 것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성경을 읽고 그 다음에 성경을 연구합니다. 성경을 연구한다 말은 성경을 한테 합했다가 나눴다가, 이 성경과 저 성경을 연합시켜 보고, 또 성경에 이런 인물을 저런 인물을,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역사하는 뜻을, 저 사람에게 역사하는 뜻을, 이 시대에 저 시대에, 모든 것을 종합도 해 보고, 연결도 해 보고, 나눠도 보고, 비교도 해 보고 이렇게 성경을 연구하는 이것이 이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훌륭한 목사, 교사가 되기 위해서 능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알맹이는 빼놓고 껍데기만 가지고 날뛰는 자요. 하나님을 찾노라고 하나님의 뜻을 찾노라고 성경을 가지고 이리 저리 자꾸 연구합니다. 성경을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게 성경 연구입니다. 찾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만나게 되면 그때에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묵상이 나옵니다. 묵상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묵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 기도(묵상)하라
그러고 나면 만난 하나님으로 더불어 성경으로 교제하는 것이 이것이 기도입니다. 명상에서 묵상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의 뜻을 만났습니다. 그럴 때에 ‘주여!’ 그럴 때에 자기의 주관의 힘이 아닌 힘도 나오고, 깨달음도 나오고, 각오도, 잘못도, 모든 것이 산, 회개도 산 회개, 간구도 산 간구, 감사도 산 감사, 이것이 기도 가운데 나오는 것이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제 사귀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그 사귐에서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시행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4. 말씀 순종을 계속하라
성경 말씀대로 시행하는 것을 하나님 섬기는 일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도 하나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것이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시행하는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끊쳐질 만한 그런 어려움이 있어도 끊쳐지지 안하고 계속 인내합니다. 계속 합니다. 계속 인내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면 하나님 섬기던 일을 그만 중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배반하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내 그것이 성경 말씀대로 사는 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어떤 일이 와도 중단 당하지 안하고 계속하는 그것이 내가 섬기는 내 하나님을 내 주님을 섬기던 그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주님과 진리 때문에 내 소유나 몸이나 내게 대한 무슨 건강이나 생명이나 빼앗기게 되면, 손해가게 되면,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것, 하나님과 진리에게 쓰여지는 것,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것이나 하나님과 진리에게 쓰여지는 것이나 이것이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내게 이것이,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 되어 있는 내게 있는 이것이 주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주의 것이 됩니다. 주의 것이 내게 있는 것이 내 것이 주의 것 된 것만큼 주의 것은 내 것 됩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 주님과 진리 때문에 자기 생명이 끝나버렸으면, 순교를 해서 끝나버렸으면 자기에게 있는 전부는 다 주의 것이 완전히 돼 버렸습니다. 이미 법적으로 주의 것 되어 있는 것이 완전히 주의 것 됐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의 것이 됐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모든 것은 내 것 됐습니다. 사망의 것이 주의 것이 됐기 때문에 생명의 것이 됐기 때문에 전능자의 것이 됐기 때문에 완전자의 것이 됐기 때문에 거게는 사망이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으로 하나님 소개받고, 성경으로 하나님 찾고, 성경으로 하나님 만나고, 성경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경으로 하나님 섬기고, 성경으로 계속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으로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 되고, 성경으로 내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전부는 내 것 되어 나는 주 안에 주님은 내 안에 있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이것으로 세상을 이용해서 때를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세상을 양식으로 먹어 청청하고, 세상을 이겨 어데든지 관통합니다. 형통합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다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우리는 달려야 합니다. 자기가 어데까지 떨어졌든지 일어서야 합니다. 어데까지 달렸을지라도 그대로 달려야 합니다. 마지막에 내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 완전히 주의 것된,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인데 주의 것이 주의 노릇으로 완전히 되어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완성이요 이럴 때에 주님은 나의 주님이 되고 그 모든 것은 내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 가지 가치 있는 일, 권위 있는 일, 참 일, 이 세 가지, 세상을 이용하는 것, 공산주의도 이용하고, 사회주의도 이용하고, 가난도 이용하고, 질병도 이용하고, 매장도 이용하고, 감옥도 이용하고, 무엇이든지 어떤 세상이 오너라. 그 세상을 이용해서 열매 맺고 그 세상을 먹고 배가 불러서 더 신앙이 튼튼해지고 그 세상을 이김으로 하나도 제재 받지 안하고 관통하고 하는 이것이 사람 삼가는 것과 성경으로 말미암은 이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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