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신분을 덧입으라

2008.10.21 21:02

이정민 조회 수:1472 추천:36

의인의 신분을 덧입으라

부족함을 느끼면 죄의식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사로잡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목회자인 나 역시 내 죄성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끝이 없다. 단지 한심한 9천조의 죄성을 성령의 능력으로 누르면서 버틸 뿐이다. 온갖 탐심과 졸렬함. 치사하고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런데도 사탄은 우리를 자꾸 고소한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네 모습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맞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는 의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내가 하는 행동은 괴수 같지만 나는 분명한 의인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 이단인 구원파 에서는 이런 취약점을 노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소위 정통 종파의 신자들을 많이 끌고 갔다. 깨어 있지 않고 그냥 교회만 출석하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교인들이 없다면 통일교나 구원파는 장사가 안 되어서 진작 문을 닫았을 것이다. 최근에도 이단으로 넘어간 사람의 소식을 들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지 모를 때 자주 발생한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공로로 의인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전히 한심한 모습이 있더라도 이제 찬양하면서 승리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에게 “네가 그런 모습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고 물어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그래, 나도 나의 한심한 모습 다 알아. 그런데 뭐가 문제이지? 나는 원래 한심한 존재야.” 자신의 부족함을 괴로워하고 자학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제부터는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남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어린 신자들을 양육하는 삶을 살다보면 자기 문제로 고민 할 시간이 없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대부분이  남을 돌보는 것과 거리가 먼 삶을 산다. 늘 자신의 한심함에 대해 말한다면 이는 이미 결정된 사실에 대해 계속 언급하는 격이다. “우리 아빠는 남자다”라고 매일 말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다 아는 이 명제를 만날 때마다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그 주제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겠다고 결심하라. 자신의 한심함은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빨리 ‘끝’을 선언하고 더 이상 이러니저러니 따지지 말라. 이제 나는 주를 위한 ‘세상의 빛이요 소금’(마5:13,14)이다. ‘잘 하면 세상의 빛, 소금이 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이미 빛이요 소금이다. 바꿀 수 없다. “저는 빛이 아닌데요.” 막 우기려 해도 소용이 없다. 이미 빛이기 때문에 빛처럼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대학시절 캠퍼스 정문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이 학교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 학교는 나 때문에 움직인다. 나는 영적인 총학생회장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교수님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너는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을 들여다 볼 때, ‘내가 무슨 빛인가?’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난 하나님께서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한심하고 졸렬하며 치사한 우리지만, 하나님께서 덮으셨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옛 성품을 덮고 새 성품을 지닌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의 ‘신의 성품’(벧후1:4)에 참여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도 이 나그네 길을 가면서 ‘거룩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심한 자이지만 못난 죄성을 성령의 능력으로 누름으로 성자가 될 수 있다. 바울도, 다른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교회에서는 임원이지만 집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ㅁ도 있을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뺀질이’라고 찍힌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다 성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뺀질이’라고 해서 계속 ‘뺀질이’일 것이라고 확신하지 말라. 우리는 변화되어 성자로 살아갈 수 있다.

책 “ 구원 받은 이 후에”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지은이 : 박영덕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감사함에도 완전히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어  옮겼습니다.

2008년 10월 21일     이 정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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