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0년 8월 30일 주일오전
제목: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 하신다!!
본문: 이사야 37:21-38
1.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고 무시를 당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왔는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뉴스를 보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고 무시를 당하는

이런 참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왔나요?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답도 잘 안 보이는

답답한 현실을 만났습니다. 이 상황에서 좌절, 낙망, 원망, 불평만 하고 살아갈 수도 없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가야 할까?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하심의 역사를 통해서 그 기를 찾아보라.
2. 하나님은?
  2.1. 하나님의 사람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면 자신을 멸시하고 조롱한 것으로 여기시고 그를 대적하신다.
36-37장은 히스기야의 반응에 초점을 맞춰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위협을 말씀하셨다. 협상단의 보고를 받은 히스기야는

신하들을 예언자 이사야에게 보내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자신은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갔다(37:-14). 산헤립의 위협적 편지를 받았을 때도 그 편지를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 그것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산헤립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다’고 고발하면서(37:4, 17)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예를 위해 산헤립의 교만을 징계해주시기를 간구하였다. 또 응답으로 주어진 구원의 말씀(37:5-7, 21-35)도 예루살렘의 해방을 이전 약속의 이행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37:21은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해 응답하셨음을 분명히 한다. 좀 더 자세히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편지를 받아 보고 기도한 히스기야에게 여호와께서 다시금 이사야를 통해 구원 신탁(믿고 맡겨서

일을 하는 것)을 주신다. 전체적 내용은 첫 번째 답변(6-7절)과 유사하지만, 매우 구체적이다. 예루살렘의 구원과 앗수르 군대의 궤멸적 철군을 통해 앗수르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서

땅의 역사를 주권하시는 분임을 보여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셨다.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겠지만, 앗수르는 제 힘을 과신하며 오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한 벌을 받을 것이다. 때로는 고난

받는 이가 하나님의 구원에 더 가까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들이 기도하기를 간절히 기다리셨다가, 기도하는

즉시 응답하신다. 반대로 지금 평안을 누리는 자들은 고난받는 자를 조롱하고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 오만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산헤립을 호되게 책망하신다. 이 산 저 산 높은 꼭대기에 오르고, 레바논의 깊은 숲과 애굽의

하수까지 정복한 산헤립은 하나님도 안중에 두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높아졌었다. 산헤립은 그것이 제 힘이고

제 의지인 줄 착각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막대기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가 앉고 일어서는 행동과

그가 마음에 품은 분노와 오만을 모두 아시며, 그를 심판하실 계획까지 세워두셨다. 세상 권력이

들레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그들은 한 뼘도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고만장하였던 앗수르는 자신 앞에서 숨을 세력이 없고, 물이 없는 곳도 문제가 안 된다고 떠들었다. 심지어 나일강의

하천까지 말려서 애굽을 무용미물의 땅으로 만들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한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분이심을 몰랐던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당신의 심판을 행해오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의 오만한 소리를 들으셨으니 올 때는 편히 왔겠지만 갈 때는 포로의 신세로 돌아갈 것이다.

듣고 보아야 할 것이 천지에 늘려 있는 세상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능욕한 앗수르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멸시와 조소를 당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들은 감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 소리를 높이고 눈을 높이 들었다. 감히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훼방하고 능욕하였다. 그러니 큰일 날 것이다. 머리를 흔들며 분노하고 기여워하는 게 당연하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그분의 진상을 낱낱이 알고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이상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듣고 자신의 역사에 참여시키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선악의 기준이시며 선을 이루고 악을 벌하시지만,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신다. 이 사실과 진리가 오늘 우리 기독교와 교회, 더 나아가 우리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 앞에서 우리가 낙망하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울러 우리의 행실과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주는지 철저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산헤립과 같은 무지한 행동, 교만한 삶을 절대로 살지 말아야 한다. 만약 산헤립처럼 산다면 누구냐와 상관없이

앗수르와 같은 비참한 결말을 초래하게 된다.
2.2.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 산헤립을 자신의 아들의 칼에 죽게 하셨다!!
반면에 하나님은 열심(언약적 사랑)을 품고 유다를 회복하신다. 그 회복은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3년 후에야 온전히

회복될 것이다. 첫 두 해에는 들에서 난 것을 먹고 생명을 보전하게 될 것인데, 유다는 그것을 온전한 회복의 징표로

삼고 어떤 위협과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에 답하는 그들의 언약적 모습이다.

나를 향한 계획도 똑같은 열정으로 이루실 것이니 끝까지 하나님만 붙들어야 함을 교훈해 주신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당신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겼다. 바로 이 점에서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의 정치에서

배제시켜버린(7:11-12) 아버지 아하스와 대조된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남은 자를 두시고, 피하는 자가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의 열정으로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산헤립의 퇴각과 죽음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죽였다. 화살 하나 쏘지 않고도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의 십팔만 오천 명을 치게 하셨다. 산헤립 왕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가 숭배하는 신 앞에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식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다. 그가 숭배하는 우상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하나님의 열정과 열심이 이룬 쾌거다.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는가? 자신이 목숨바쳐 양육한 아들에게, 그것도 자기가 가장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던

신전에서 자기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멸시한 자의 결말이 어떠할

것임을 분명히 보여 준 사건이다. 인생이 아무리 지혜롭고 강해도 하나님이 눈을 가리시면 한치 앞도 보장할 수 없다.

위대한 제국의 왕도 한 줌뿐인 인생이며, 한낱 사람일 뿐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세상 질서를 어떻게 운영하실지를 분명히 보여 주시는 교훈적 사건이다. 할렐루야!!
3. 개독교라고 무시를 당해도, 교회가 코로나19 전파의 주범이라고 욕을 얻어먹으면 먹을수록,

온갖 난제를 만나면 만날수록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이 세상질서를 정리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산헤립은 군사력만을 믿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대적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유다 왕 히스기야는 두 번이나

선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호소하고 간구의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의 최후는 죽음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교만과 불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어떤 경우도 산헤립처럼 교만한 자가 되지 말라. 히스기야처럼 어떤 어려움과 두려운 문제를 만나도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도응답의 역사하심의

복을 온전히 누림으로 모든 불의와 악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믿음의 사람들을

돌보심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데 앞장서는 사람으로 살아가라.
지금의 난제와 난국이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하심의 합작으로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일이 계속 되도록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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