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종양 제거수술… 병상서 되찾은 신앙  

집으로 돌아와 교수가 얘기해준 대로 자가진단을 해보았다. 아주 꼼꼼하게 살펴보았는데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의 딱딱한 부위가 만져졌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5% 정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6개월간 지켜봅시다"고 말했다. 6개월간 불편한 맘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의사에게 지금 확인해달라고 말했더니 확실한 것을 알려면 오픈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오픈하세요"라고 말했다.

1986년 9월2일. 진단을 받은 이틀 후 수술실에 들어갔다. '별거 아니겠지'하면서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수술 후 종양이 초기이긴 하나 악성임을 알았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워낙 초기였고 건강한 체력이기에 종양만 제거한 후 항암치료는 받지 않았다.

병상에서의 시간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매일 짤막한 병상일기를 써가며 삶과 신앙을 성찰했다. 10대에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20대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30대엔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서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쉬지 않고 계속 뛰었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마음이 병들면 몸이 병들고,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드는 것이다. 내 영혼이 방향을 상실하고 생명의 샘물을 놓쳐버리고 갈급해 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이, 길을 잃은 양과 같이 영혼의 갈급함과 방황이 있었다. 몸에 생수와 영양분을 공급하듯 영혼에도 생수와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피가 순환되면 몸의 에너지가 통하듯 신앙의 생기가 삶에 흘러야 한다.

어느 날 새벽, 병실에서 누군가 기도하라고 흔드는 것 같아 꿈에서 깨어났다. 또 어느 날은 새벽에 누군가 가슴을 치는 느낌이 있었다. '숙제하는 아이처럼 얻어맞아야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느냐?' 나는 깨어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다. 몸을 흔드는 느낌, 가슴을 치는 느낌,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병상의 경험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이 아니라 새 세계가 열리는 밝은 느낌이었다.

소중한 것은 역시 신앙이었다. 정직해지는 생의 순간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신앙뿐이었다. 바로소 육체의 건강이 악화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기쁨을 잃었던 것이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린 시절의 순수한 신앙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흐느끼면서 기도를 했다. 가장 낮은 몸짓으로 간절하고도 깊은 마음으로 신앙고백을 했다. "… 사랑의 주님, 내 삶은 47세로 끝났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받는 생명은 또 하나의 삶을 위한 새로운 생명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다시 주신 생명에 감사하고 헛되이 살지 않고, 덧없이 살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병은 내 몸에 상처를 남겼지만 아픔이 아닌 은혜의 징표이다. 버려두지 않는다는 은혜의 징표 말이다. 육체의 걸림돌이 신앙의 디딤돌이 되는 순간이었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오니 친정어머니가 "상이, 어디 갔다 오냐?"고 하셨다. 어머니는 딸이 병원에 갔다는 사실도 모르셨다.

"병원에 갔다 왔어요."

"젊은 사람이 무슨 병원에 가넨?"

어머니는 그때 이미 조금씩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결국 내가 회복기를 보낼 무렵 어머니는 자리에 누우시고 말았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출처: 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adversity&arcid=0921320928&code=23111215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6-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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