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5:1-22009091153날자: 2009년 9월 11일 금밤
제목: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본문: 예레미야 5장 1절 -2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1. 예레미야서를 묵상하기는 너무 무서워!!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십니까? 아니면 전혀 무섭지 않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분이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둘 다이지만 이렇게 이해하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가 현재 당한 상황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을 자기식대로 이해하는 것이 대부분 아닐까요? 그러면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나요?
우리는 9월 들어서 예레미야서를 계속 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혹시 하나님은 너무 무서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
1장에서는 살구나무 가지(1:11-12), 끊은 가마 환상(1:13-16)에 이른 구원의 메시지(1:19)를 볼 수 있습니다.
2장에서 4:13절까지의 긴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서 4:14절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 4:14)
예레미야는 4:15절 이하에서 유다의 파멸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이 심히 슬프고 아픈 이유를 31절까지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5:1절과 10절에서 다시 구원의 메시지를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예레미야서 묵상을 통하여 절실히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징계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본심(本心)은 악한 행위에 대한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마다, 단락마다 심판의 메시지를 말씀하셨지만 아울러 구원에 대한 메시지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무시무시한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말씀하심의 목적은 “말씀을 거울삼아 심판받을 길을 걷지 말고 구원의 길을 걸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든 식구는 구원의 길만 걷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2.1. 공의를 행하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할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성경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그의 자비하심을 보여주시면서 악한 자라도 회개만 하면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로 약속하셨기에 우리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왜 그렇게도 혹독한 심판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너무나 불의하고, 강팍하여 하나님께 “내가 그들을 고치려고 해도 할 수 없다.”(참조. 2:30)고 고백하기까지 막다른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루살렘 거리에 가서 샅샅이 뒤져서라도 의인 공의를 행하는 한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에 대한 죄악을 사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예전에 거룩한 성이었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얼마나 더러워지고 황폐해졌는가 하는 것을 짐작케 하는 말씀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보면 “그 성에 의로운 사람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그 성읍이 멸망 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즉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시행하는 것 외에 그 타락하고 교정할 수 없는 자들에게 무엇이 행해질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제안을 통하여 유대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들의 중상모략을 드러내어 그들이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사죄(赦罪)를 베풀어 주시려고 할지라도 용서의 여지가 없으며, 예루살렘에는 옳은 것을 따르는 자가 한 사람도 없어서 자기들의 고질적인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에서 제외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짓맹세를 반복하고, 징계를 해도 수치와 고통을 모른 재 돌같이 굳은 얼굴로 회개하기를 거절(拒絶)했습니다(3).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 사랑으로도 꺾을 수 없을 만큼 완고했고, 회개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심판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고 할 때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의인 50, 의인 45인, 의인 30, 의인 20만 있어도 그 의인으로 말미암아 소돔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소돔에서 의인 10명만 찾아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참조. 창 18:22-3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용서하고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결국 찾을 수 없어서 멸할 때에도 가지만 꺾으라고 하심으로써 구원에 대한 희망의 끈을 이어가십니다(5:10). 할렐루야!
그러면 하나님께서 찾으신 ‘공의를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우리 말에 ‘공의’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심판, 재판(judgment), 공정, 공의(justice), 법령(ordinance), 관습(custom), 방식(manner)’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의미 중에서 본문에서 ‘미쉬파트’는 인간 사욕이나 탐욕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공정하게, 옳게, 바르게 살려고 힘쓰는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보입니다.
2.2. 진리를 구하는 사람
우리 말에 ‘진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무나’는 ‘견고함, 확고부동, 신실함, 충실, 성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중에서 본문에서의 ‘에무나’는 성실(誠實)과 정직(正直)하게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구하는’으로 번역된 ‘바카쉬’는 ‘찾다, 요구하다, 원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구하는 자’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용서의 조건인 찾으신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인간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신 정의와 진리라는 신적 원리를 따라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실천(實踐)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이요, 민망한 일인지요?
그러니까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거짓과 사기와 계교(計巧)에 사로잡혔음을 가리킵니다. 이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성에 은혜를 베푸실 수가 없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왕의 방백 중에서나 선지자나 제사장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의롭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발견되었다면 그 성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텐데 그들 모두가 서로 결탁하여 모든 의롭고 올바른 것을 대적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3. 한 사람의 의인이 많은 사람을 구원한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다름과 같은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숨은 의인들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넓은 거리에는 단 한 사람의 의인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의인이 많은 사람에게 내릴 재앙과 징계를 피해가게 한다는 사실!
한 명의 기도의 사람은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를 얻게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열성적인 그리스도인은 수많은 사람을 파멸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을 통하여 택한 백성 전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한 사람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대하신다는 사실!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오늘 작정합시다. 단행을 합시다.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이 세상과 타협하며 거짓과 사기, 온갖 계교에 넘어가서 산다 할지라도 나는,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옳게, 바르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겠다! 아멘!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내 주변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의 주인공이 되겠다! 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겠다! 이런 은혜를 온전하고도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시다. 이렇게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고 구합시다.
구원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참조. Calvin,「예레미아 Ⅰ」, p. 267, 269.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9-11 20:26)
공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옳게 바르게 사는 요셉과 같은 사람이고, 진리를 구하는 자는 인간적인 보편적 기준이 아니고 모르드개와 같이 성경대로 성실하며, 정직한 사람이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실과 정직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죄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자주 말하는 남편은 그래도 예수 안에서 성실, 정직한 사람으로 떠올랐습니다.
비록 알코올 중독으로 간경화를 앓는 환자였지만 성실, 정직한 사람으로 살려고 애쓰고, 교만한 마음이 가장 큰 죄라는 것을 깨닫고 통회 자복하여 하나님께 용서 받아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특히 배우자로부터 성실, 근면 정직하다는 인정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그나마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 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래! 나도 가족들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님으로부터 성실, 근면, 정직하다는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자고 다시금 각오를 하였습니다.
남편의 간병과 임종, 장례를 통해 나는 부활신앙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고 진광교회 지체들의 사랑과 목사님, 사모님의 사랑의 수고에 너무 감사하여 앞으로는 순종만 하기를 기도하며 지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대로 감사하며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천하는 능력주시기를 기도 해 주세요.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과 같은 나와 남편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 합니다.
할렐루야! 성경 묵상 간증 문 제 1번. 이 정 민. 2009.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