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는 겸손하게 대일관계는 형편껏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 다윗은 참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받아 누리며 살았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을까?
성경의 많은 곳에 다윗의 삶과 그가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살았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31편에서도 이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이 고백
속에서 다윗의 대인관계의 기본이 겸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대인관계의
기본을 겸손으로 했습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
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도 배우려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도 가르치려고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스스로 선생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생으로
세운 자리에서만 우리는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다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용납하고 그것을 도와줍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다윗은 대인관계의 기본을 겸손으로
정하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산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였다”는 다윗의 고백
속에는 다윗의 대일관계의 기본이 무리하지 않고 형편껏 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일관계란 일본과의 관계가 아니라 일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한문과 한글을
섞어서 만들어 봤습니다.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벌이는 것은 무리하는 것입니다.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은 무리하지 않고 형편껏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무리하지 않고 형편껏 했습니다.
우리는 꿈과 비전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일은 형편껏 해야 합니다. 5만 명 이상
먹여 살리는 꿈과 비전이 있어도 그 꿈과 비전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지금은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 월급을 타다 다 남을 주고 가족들을 굶겨선 안됩니다. 그렇게
하고서 난 꿈이 있는 사람이고, 비저너리이기 때문에 꿈을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장래에 대한 꿈과 비전은 크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삶은 지금의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재벌이 되는 꿈이 있다고 해서 회사원으로 사는 지금 재벌처럼 살아선
안됩니다. 대통령의 꿈이 있다고 해서 지금 대통령처럼 살아선 안됩니다. 지금은 지금의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이 삶을 산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왕으로
재위하는 동안에도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에 무리하게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의 아들 솔로몬은 왕이 되어 무리하게 일을 많이 벌였습니다. 솔로몬이 죽었을 때
백성들이 그의 아들에게 와서 한 말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무리를 많이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잘 배웠어야 하는데 중요한 걸 놓쳤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정치를 잘 하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놓친 것입니다. 다윗은 대인관계의
기본은 겸손으로, 대일관계의 기본은 무리하지 않고 형편껏 하는 것으로 하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를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여기서 젖 뗀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배부르게 먹고 나서 물고 있던 젖을 놓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입니다. 다윗은 대인관계의 기본은 겸손으로, 대일관계의 기본은
무리하지 않고 형편껏 하는 것으로 하고 살았더니 그 결과가 바로 이런 고요와 평안의
삶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조현삼 목사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1-16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