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찬양

2012.01.22 21:31

윤봉원 조회 수:572 추천:51

눅 1:46-562012012201날자: 2012년 1월 22일 주일오전
제목: 마리아의 찬양
본문: 누가복음 1장 46절 - 56절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1. 두 종류의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인생
성경에는 2천 6백여 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있다. 그런데 이 인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에 있어서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가라는 기준으로 따져 본다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종류는 예수님처럼, 그의 제자들과 바울처럼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유익을 끼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가룟 유다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처럼 다른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끼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것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말해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경외하는가? 무시하는가? 하는 기준으로도 말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성경 시대 이후로부터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이 기준으로 따지고 보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점검해 봐야 한다. 오늘 본문은 이런 두 부류 중에 전자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도 어떻게 하면 이런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의 답을 찾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은
2.1. 비천한 계집종을 돌아보시고 그를 사용하셨다(46-48)
마리아는 자신의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했다. ‘찬양하며’(46) 이 말의 의미는 “확대 한다” 또는 “찬미한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이나 능력에 실제로 그 어떠한 것도 더할 수 없다. 그러나 “찬양 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과 감정 내에 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는 것을 기술할 때 사용하기에 적합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선포하기에 적합한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했다. 한편으로 보면 처녀가 잉태를 했으니 자신의 인생을 망친 하나님을 상대로 찬양하고 기뻐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했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48-50)
마리아는 계집종인 자신, 그리고 그의 비천함을 돌아보았기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돌아보셨음이라’ ‘바라보셨으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돌아보신다는 바라보신다. 또는 자비를 베푸신다는 말과 동일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사실이다(마 17:15; 눅 9:38). 하나님은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아보시고 그녀에게 ‘큰 일’(메시아를 잉태함)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이방의 압제 아래 있는 그 종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권고하시어 ‘큰 일’ “메시아의 구속”을 시작하셨다.
‘비천함’은 요셉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마리아가 속해 있었던 다윗 가문은 당시 신분이 낮았고 궁핍하였다. 그러나 마리아가 여기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외적인 면에 대한 강조보다는 그녀의 겸손한 심성으로 그녀는 왜 그녀가 하나님의 긍휼과 겸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그 어떤 이유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큰 은혜를 받을 가치가 자신에게는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럼에도 자신을 하나님이 돌아봐 주셨으니 이에 감사 찬송을 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과 역사하심은 우리의 생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무한히 인자하시다. 죄로 가득 찬 우리는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있어서 가혹하고 무자비하지 않은가?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이제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어리로다.’(48b) 마리아의 통찰력은 정확하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오래 지속되는 명예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만 유래된다. 그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신분이 높고 부와  학식과 재산과 재능에서 뛰어난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찬사를 보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인류 전체의 본능은 거룩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명예의 장부에서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권리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의 이름을 선망하는 것이 참된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인간을 그의 이웃과 구분해 주는 보다 높은 위엄은 그 어떤 다른 속성보다 거룩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아들 안에서’ 그들을 찾아오신다. 오직 자신의 백성을 향한 언약적인 긍휼 때문이다. 우리는 이 복음 안에 담긴 이 은혜의 신비를 날마다 묵상하며 신실한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야 한다.
아울러 비천한자를 돌아보셔서 복을 주신 하나님. 사회적인 신분과 처지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비천함 즉 절망적인 영적 상태를 돌아보신다. 하나님은 이토록 비천한 나까지도 구원하셔서 은혜를 입혀 주셨다. 할렐루야!! 마리아처럼 가장 자신을 낮추는 자는 모든 세대에 복 있는 사람으로 세워 주신다.
마리아가 천한 신분을 살피사 새로운 지위를 주실 것을 찬양한 것을 우리도 본받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로 바뀐 나의 새로운 지위를 생각하며 마리아처럼 온전히 감사 찬양만 하며 살아야 한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살아가는 나 자신이 만세(萬歲) “만”(pa'"(파스) 모든 all, 온갖, 각각의 모든 every. “세”(geneav(게네아) 가문, 족속, 인종, 세대, 시대.)에 복 있는 자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하며 살아가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돌아보신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있기까지 비천한 나를 돌아보신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돌아봐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라. 아멘!!
2.2. 능하신 능력의 손으로 겸손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교만한 자에게 심판으로 보응하시는 하나님(49-53)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49-53)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거룩하시며 자비로우시다. 아들을 주심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시며,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 내 인생에서는 무슨 일을 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긍휼하심 속에 포함되어 있다.
‘두려워하는 자’(50)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에 걸쳐 진정한 신앙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에 의해서 우리는 노예적인 두려움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깡패조직의 보스를 그 부하들이 두려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두려움이다.
학생 때 검도를 했던 어느 전도사님은 학교를 졸업한지 십여년이 더 지났음에도 과거 선배들에게 워낙 많이 맞아서 그 선배를 지금도 멀리서만 봐도 동작이 얼어버린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문에서 마리아가 두려워하는 자라고 한 것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당연히 드리는 존경심으로, 종이 주인에게 당연히 드리는 종경심으로, 신하가 왕에게 당연히 드리는 존경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천한 자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참으로 존경과 경외로 두려하는 것이요, 이와 같은 성격의 두려움을 가지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러한 존경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한다. 이러한 ‘두려움’과 대조가 되는 인간의 마음의 태도와 상태는 위선(僞善)이다. 다시 말해서 외적으로만 존경하고 섬기는 체하는 것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우리 하나님은 마리아처럼 겸손한 자에게는 그의 전능의 능력으로 무한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에게는 어떻게 하시는가 마리아의 고백을 통해서 알아보자.
하나님은 마음과 생각이 높은 지들을 쳐서 흩으신다(51). 권세 있는 자를 낮추시며 오히려 비천한 자들을 높이신다(52). 하나님은 굶주린 자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아는 자들 참으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풍족하게 채워 주신다. 반면에 부자들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신다(53).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희생의 대가를 치러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모든 현실을 조성해 주셨다. 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기의 현실에서 “하나님 이게 뭡니까? 나는 하나님께 복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췄는데 왜 안 주십니까? 아직도 때가 멀었습니까?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라고 핏대를 세우며 하나님께 대 드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다. 즉 감사와 찬송이 없는 사람. 혹시 여기 있는 우리도 이런 종류의 사람이 아닙니까?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베푸실 구원은 권세가들과 부자들이 환영받는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역전시키실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 교회는 가난한 자, 무식한 자, 장애자들을 어떻게 대우합니까? 우리보다 학력 부족, 열등한 직업, 못한 신분에 대한 우월감은 없습니까? 돌아보고 회개할 것은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어디까지 남들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은 고라 일당을 지진을 일으켜 매몰시키셨다. 노아 홍수 때는 여덟식구 외에는 다 홍수로 매몰시키셨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자꾸 원망 불평하고 우상 숭배하니 염병과 재앙으로 광야에서 다 죽이셨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흩으시고 내리치신 사건들(사례들)을 모아서 글을 쓰면 베스트셀러 책이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교회 집사님의 100억의 재산을 불과 일년 사이에 다 날리셨다. 아울러 그의 딸이 수능 다섯 개밖에 안 틀렸는데 대학에 원서 낸 곳마다 다 떨어졌다고 한다. 누가 이렇게 하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라!!
반면(反面)에 하나님의 능하신 팔은 비천한 자를 높이시기에도 능하시다. 요셉을 얼마나 높이셨는가? 미국의 무디 목사님을 얼마나 높이셨는가? 지금 굶주리고 있습니까? 주님이 채워 주실 것을 기대하라. 재산 증식, 물욕에 사로잡혀 있다면 즉시 빨리 포기하라. 그 역전의 날에 내 모습이 어떨지 곰곰이 묵상해 보며 올바른 삶의 방향을 잡아가라. 아멘.
하나님은 비천하고 가난하더라도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고, 힘 있고 부유하지만, 그를 부정하는 교만한 자에게는 심판으로 보응하신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갖지 못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아멘!! 하나님 없는 헛된 ‘가인의 길’(창 4:16)을 더는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아멘!!
따라서 우리는 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 말고 긍휼의 대상이 되도록 겸손히 그의 뜻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고 충성하는 주인공이 되라.
2.3. 언약은 100%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54-55)(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그대로 성취하신 분)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신실(信實)하게 이행하셨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겨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창 15:4)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갈 3:15-19)
우리는 이미 그분의 긍휼함을 입고 있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의 미래도 안전하다는 사실이다. 할렐루야!! 약속을 기억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오늘 내게도 도움을 주실 것을 기대하라.
따라서 우리도 이제부터는 어떤 성경의 약속 말씀이라도 100% 성취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져라. 이 믿음을 가질 때 담대와 소망과 굳건한 믿음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3. 약속 이행에 신신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함으로 그의 말씀을 신실히 준행하라!!
우리 인생을 두 종류의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지 중간은 없다. 따라서 마리아처럼 겸손한 자들이 되어 계속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복 있는 사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또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에 마리아처럼 온몸으로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려라. 어떤 경우에도 교만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심판하시는 심판과 징계의 대상이 되는 복 없는 자가 되면 안 된다. 항상 그를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며 그의 말씀인 성경과 영감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디까지 순종하였더라도 무익한 종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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