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해야 하는 이유

2014.09.08 21:01

윤봉원 조회 수:332 추천:24



요일 4:1-1214-09-07 주전날자: 2014년 9월 7일 주일오전
제목: 사랑만 해야 하는 이유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 – 12절
1. 사랑만 하며 살아가면 손해일까?
성경대로의 사랑은 진리와 영감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이 삶은 반드시 자타의 구원의 유익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영화롭게 하는 삶이다. 이런 좋은 수입과 결과가 따르는 길이지만 실제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게는 십자가의 길이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희생해야 하고, 자신을 덜 누려야 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끝까지, 계속 희생해하는 하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을 많은 사람들은 걸어가지 않고, 걸어가다가도 포기하고 만다.
제가 보니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차상위 계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가정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살아간다. 공부도 어느 누구보다 많이 하였고, 똑똑하기도 일반인들에 비하여 뒤떨어지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일반 사회에 취직을 했더라면 지금 받는 사례에 3-5배 정도를 받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목회를 하며 경제적으로는 평생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가 잘못 선택한 길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사랑만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왜 사랑만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보고, 성경대로 사랑만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합시다.
2. 하나님은?
2.1. 거짓된 영, 사람, 말, 사상, 주장, 유혹을 구별하며 살기를 기대하심
요한일서에 나오는 잘못된 사상과 교리들은 요한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유혹하며 괴롭혔던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기독론, 잘못된 윤리론, 잘못된 교회론에 대한 가르침들이 지속적으로 요한의 공동체를 위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극단적인 이단들이 본문에 강조된다. 이것은 이러한 왜곡된 교리를 퍼뜨리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 사상, 주장, 유혹 구별하라고 수신자들을 일깨우며 격려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으로 인정하는 영만이 하나님의 영이다(1-3). 이것을 하지 않는 모두는 거짓 영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생명(영생, 구원)이 있기에 거짓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사도 요한의 시대에 영지주의를 이용했다면, 오늘날 사탄은 합리주의, 과학주의, 종교다원주의, 자칭 재림 예수라는 이단들을 동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시금석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를 입고 사셨다가 죽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는지 여부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역사할 때만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거짓된 것을 잘 분별하여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우리는 소홀히 하였던 말씀 연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통치가 우리 가정과 교회 안의 실재가 될 수 있도록 순종하기를 힘써야 한다. 복음의 진리가 빛을 발하고, 말씀의 권세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뜻과 의지를 가지고 말씀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세상은 거짓 영에 귀 기울이고,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4-6).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인기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짓 영의 지시를 따르는 세상 풍조가 교회에 들어와 진리의 말씀 대신 제 입맛에 맞는 거짓 말씀을 요구한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일깨워 준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신천지, JMS,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만민중앙교회 등 각종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에게 넘어가서 개인의 인생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탄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켜 주는 거짓 가르침에 속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사랑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의의 말씀을 듣기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우리는 반드시 후자에 속한 자들이 되어 거짓된 가르침, 사람, 유혹, 미혹에 한 사람도 넘어가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복 있는 사람, 깨어 있는 사람, 정상적인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2.2. 독생자를 희생하심으로 사랑의 본을 보여 주시고 사랑만 하며 살기를 기대하심(7-12)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책임과 의무는 사랑하는 것이다(7,8,11,12).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처럼(요 1:14, 18), 우리 또한, 서로 사랑하여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확인하고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을 위한 형제 사랑이다(11-12). 아담 하화의 범죄로 온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형벌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속죄제물로 보내어 우리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사(赦)해 주셨다. 우리를 영원토록 의인으로 삼아 주셨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를 영원토록 화목의 영생을 주셨다. 더 나아가서는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산 소망을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 5:6, 8, 10절).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 사활대속의 처음 사랑을 아는 자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를 구속해 주신 이 독생자를 몰랐다면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으니,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처럼’(11)은 9,10절을 받고, 나아가 요 3:16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형제 사랑이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보여준다(11, 19).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기에 마땅히 우리도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의 하나님이 내주해주시니 우리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0-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는 요 1:18과 동일한 내용으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일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만큼이나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임을 암시한다. 할렐루야!! 더 나아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당시 거짓선생들의 주장의 허구를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알 수 있다. 보잘것없게 시작한 그 사랑도 점점 온전해져 간다. 사랑해야 하기에 순종하기 시작했지만, 나 자신이 점점 사랑의 사람이 되어 가고, 하나님을 본 적이 없는 세상도 나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놀라운 수입인가?
신앙의 연수가 쌓이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 삶에서는 풍성한 사랑이 드러나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 속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희생적, 무조건적, 변하지 않는 사랑의 모습이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사랑에 대한 고민, 사랑의 흔적이 극히 희미해졌다면 우리 신앙의 초점(焦點)을 다시 한 번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맞추어야 한다.
3. 사랑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만 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
사랑은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그분이 찾아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주셨다. 그 사랑의 방법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우리 위하여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3:16; 4:11).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빛 된 삶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만 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없고, 사랑의 능력 이상 다른 능력이 없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 이상 다른 지혜가 없다.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아들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구체화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이자 능력이다.
따라서 자타의 구원의 수입을 올리는 최고의 길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는 길이다. 이런 사랑만 하며 살아가는 주인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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