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주와 함께

2013.08.04 17:13

윤봉원 조회 수:475 추천:66



시 63:1-813-08-04 주전날자: 2013년 8월 4일 주전
제목: 일평생 주와 함께
본문: 시편 63편 1절 - 8절
1. 나의 보물 일호는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보물들이 있다. “나는 이것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다. 다른 것은 다 없어져도 이것만은 꼭 있어야 한다.”하는 것들이 있다. 이 보물로는 자식, 돈, 남편, 아내, 공부, 건담, 사진, 각종 취미 등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귀중한 보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가치로 여기라는 것일까요? 아닐까요? 과연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보물로 여기는 것을 가장 귀중하게 판단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점검해 보고, 그 교훈을 우리 삶에 바로 적용하도록 하자.
2. 다윗의 하나님관
2.1. 간절한 앙모의 대상으로 삼음(1-3)
다윗은 주전 1000년 전의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14대 손이다. 열 두 지파 중 유다 지파의 후손이다. 이 다윗의 아버지는 이새다. 이새의 8명 중 8 번째, 직업은 양치는 목동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훗날 천하의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거목이 된다. 이 다윗이  무엇을 발판으로 해서 천하를 호령하는 위대한 거목이 되었을까?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평생을 산 사나이가 다윗이다.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위대해 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한 평생. 이 다윗은 만능의 사람이다. 이 세상은 정말 그 분야에 잘하는 것 한 가지만 있어도 잘 산다. 김연아가 돈 번 것이 300억을 더 벌었다고 한다. 박찬호는 야구 하나 잘해서 몇 백 억을 벌었다. 최경주도 매년 몇 십억씩의 돈을 번다.
다윗의 손에 홀, 임금님들이 손에 잡고 지시하는 홀을 잡아서 왕복을 입혀서 왕좌에 앉히면 모든 사람이 굴복하는 탁월한 정치인이다.
그 손에 칼을 잡혀 주면 천하무적의 용사가 된다. 전쟁에 당할 자가 없다. 다윗이 전쟁에 진적이 있는가? 용장 중에 용장이라.
그 손에 붓을 들려 주면 1000개의 시가 나온다.
악기(비파)를 들려주면 뛰어난 연주가가 된다. 귀신이 비파 소리를 듣고 도망을 간다.
세상에 다윗은 만능의 사람이다.
다윗이 만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동기는 그가 정치, 신학, 무술을 배운 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악기를 배운 적이 있나요? 하나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는 양을 칠 때부터 하나님과 같이 양 쳤다. 골리앗과 싸움 할 때도 하나님과 함께 한 것이다.
이 다윗이 시편 63편을 기록한 때와 장소는 주경 학자들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쫓겨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 광야로 들어가면서 이 시를 기록했다고 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식에게 쫓기면서 본시를 쓸 때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부모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윗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압살롬을 충분히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이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이 왜 이런 수모를 압살롬에게 왜 당합니까?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지혜롭게 아무도 모르게 챙기고, 그 충신 우리아를 격렬한 전장 맨 선봉에 세워서 전사자로 만든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아시는 분이 있다. 하나님은 아신다. 아시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죄를 지적하고, 다윗은 운다. 그리고 네 위가 떨어지지 않으리라. 칼이 그 집에서 안 떠날 것을 말씀하셨다.
다윗은 생사화복, 존비귀천, 흥망성쇠의 주권자 하나님을 광야에서도, 성소에서도, 일평생에 주를 앙모하며 살았다.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1절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진짜 입니까? 남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라. 구경 예수쟁이.
예수님이 길가시면 인산인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앞에 가면 예수 보고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뒤통수 보고 따라간다. 구경 예수, 남의 예수라. 그런데 삭개오는 “나는 구경 예수 가지고 안 되겠다. 내 예수 만나야겠다.” 뽕나무에 오르시니 예수님이 그에게 가셨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너의 예수가 되겠다.” 삭개오가 자기 예수로 모시니 삭개오가 변한다. 내 소유의 절반을 잘라서 사람들에게 주겠나이다. 사람들에게 부정한 돈을 받은 적이 있다면 4 배로 갚겠나이다.
그리고 혹 내가 모은 재물 중에 부정한 것이 있을 터인데 절반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겠다. 누구 만나서 그래요. “자기 예수” 로 온전히 모신 삭개오.
다윗은 하나님으로 자기 하나님을 삼았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일평생을 걸었던 인물이 이 부분에 다 드러난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으라 하니 여러분은 어때요?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과 같이 가면 불편해요 편해요. 사실은 편해요. 나보다 모르는 사람과 같이 가면 편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가면 다 아셔요. 다 아시는 분이라. 확실히 인생의 바닥부터 꼭지까지 다 아시는 분이라. 이 분과 함께 해도 하나님은 두려움이 없어요.
하나님만큼 좋은 분이 없다. 하나님만큼 좋은 분이 없다. 하나님만큼 좋은 분이 있다?
하나님만큼 나에게 애정을 기울여 주고 잘 해 주는 분이 없다. 이런 하나님을 알아가는 아는 지식이 성경에 보니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
세상에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기술을 내가 가지고 있다. 그런 어떤 지식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커요 작아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아요 몰라요.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지. 하나님을 진짜 알아요? 몰라요?
내가 뒷집 아저씨를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 외에 바꿀 것이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이 없다.
내 평생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평생에 누구와 함께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도 이제 남은 생애만큼이라도 우리 하나님과 한 평생. 남은 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일생동안 찬양의 대상으로 삼음(3-7)
3절에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주의 인자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주의 인자하심은 위기 가운데 있는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으로 확실히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하는 최상의 선은 주의 인자하심이었다.
4절에서 다윗은 주님이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다면 평생동안 주님을 향해 손을 들고 찬양하겠다고 서원한다. 그가 손을 들은 것은 평생동안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며,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찬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5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애타게 찾고 구하던 하나님을 만나면 ‘골수와 기름’으로 배부르게 먹어 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을 확신한다. ‘골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최고의 음식을 상징한다(창 45:15). ‘기름’은 기름이 잘 섞인 고기로 특별히 맛있는 부위를 상징한다(시 36:8). 실제로 고기의 맛있는 부이는 어떤 부위인가? 순 살로만 되어 있는 분위보다 살 사이에 하얀 기름이 섞인 고기들이 최상품 고기다. 따라서 그가 이렇게 고백하고 다짐하는 것은 1절의 하나님에 대해 목마르고, 육체가 쇠약해 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난 것을 최고의 음식을 배불리 먹고 만족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그는 환호하는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고백한다(5b).
또 다윗은 6절과 7절에서 밤에 침상에서 주님을 기억(“회상”)하게 된다면 밤새도록 하나님을 묵상할 것이다. 밤새도록 하나님에 대해 깊이 묵상하겠다는 말이다. 그 묵상의 결과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낼 편히 쉬면서 환호하겠다고 다짐한다. 할렐루야!! 밤새 하나님께 대한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새롭게 깨닫고 자신의 고단한 삶에 변화를 가져 오는 새로운 힘을 주시는 분으로 확신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도 지금까지는 하나님은 제쳐 두고 다른 것에서 우리의 생명과 쉼, 안식, 평안, 소망을 바랐다면 이것은 아직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증거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생명보다 나은 주로, 우리에게 가장 기름진 것을 공급하여 주시는 원천으로, 우리의 모든 상황에 도움을 주시고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알고, 믿고, 소망함으로 두 손을 높이 들고 일생찬양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3. 일생 믿고 따름의 대상으로 봄(8)
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좀 더 깊이 고백한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주님을 ‘가까이 따르겠다’라고 고백한다. 우리 성경 ‘따르니’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크”이다. 이 말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도록 연합하는 것을 말하며(창 2:25), 또 이 표현은 신명기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며 계명을 지키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4:4; 10:20; 11:22; 13:5; 30:20).
 다른 각도로 보면 “가까이 따르게 해 주십시오”라고 볼 수도 있다. 이 표현은 주께 매 달린다는 뜻이다(렘 42:16). 마치 룻이 나오미에게 매랄려 따라 가는 것 같다(룻 2:8; 시 101:3). 즉 애를 써서 따라 가는 모습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착 달라붙어 신실하게 따른 결과는 하나님이 당신의 오른손으로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실 것을 확고히 믿었다. 마치 부모와 자식, 연인들이 손을 잡고 함께 가는 모습과도 비교 된다. 다윗은 하나님과 연대성을 깊이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힘찬 오른 손으로 자신을 붙들고, 인도해 주시며, 지켜 주신다(사 42:6; 45:1; 시 18:35; 17:7 등).
따라서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일평생 달려가는 복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옆 사람의 손을 꼭 잡아 보라.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잡아 보라. 우리는 이보다 더 강한 힘과 절박감으로 하나님을 잡고 가까이하며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다가 죽을 고비를 맞이하면 119 전화하듯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말세가 되면 될수록 이런 믿음을 가지고 따라가는 사람이 너무너무 희귀하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서 눈 닦고 찾아봐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을 지금도 만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만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한 사람만이라도 이 길을 가야 한다. 말없이 가야한다. 주님 불러 가는 그 순간까지 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그의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심의 복은 풍성히 누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3. 일평생 주님을 앙모하고, 찬양하고, 매달려 따라가라!!
우리는 지금까지 나그네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얼마나 많이 의지하며, 목숨 걸고 따랐던가?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만족이 없었지 않았던가? 실패와 좌절과 낙망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던가? 천하의 용장이요 다양한 분야의 대가였던 다윗도 다른 것을 보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유일한 보물로 여겨서 앙모하고, 찬양하고, 따랐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앙모하고 찬양하고 따랐던 것을 다 포기하도록 하라. 방향을 완전히 U턴하여 이제 하나님만 밤새도록 일생 앙모하고, 찬양하고, 매달려 따라가도록 하라. 그러면 우리의 인생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며 누리며 찬양과 흠모의 대상이 될 것이다.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의 주관자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삶을 살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이제부처 일평생 이런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다짐만 해도 기뻐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삶을 살기 시작하면 기뻐 춤을 추시면서 그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온갖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면 우리가 달라질 것이다. 가정이 되면 가정이 달라질 것이다. 교회가 되면 우리 교회는 세계에서 견학 오는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반드시 이런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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