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편단심(一片丹心)

2013.06.02 21:14

윤봉원 조회 수:696 추천:76



날자:2013년 6월 2일 주일오후
제목: 하나님의 일편단심(一片丹心)
본문: 이사야 43장 1절 – 13절
1. 어떻게 해서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계속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그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착한 행실의 많은 분량 때문인가? 우리가 성경대로 잘 살아서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릴 만큼 많은 행위의 공로가 있어서인가? 우리 자신의 삶을 성경으로 점검 해 볼 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영원토록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 우리 스스로 그런 실력을 마련한 자들인가? 라고 질문을 해 본다면 우리는 100% “No”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복을 누리고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 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평생 적용하도록 하자.
2. 우리를 구속(救贖)하신 하나님은?
2.1.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역사를 주관하셨다!!(1-6)
본문 1-13절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1-7절은 흩어진 자들의 귀환을 선포하고, 8-13절은 여호와의 구원 능력에 회의적인 자들에게 주는 구원 약속이다. 흩어진 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바벨론에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의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당신 백성을 포로로 잡아갈 때 침묵하셨던 여호와께 그런 능력이 있겠는가?”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와 근거는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역사를 주관해오셨기에 흩어진 자들의 구원에 관한 그분의 약속은 당연히 성취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못했지만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사랑하셔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회복하신다. 친히 지명하여 부르시고 내 것이라 선언하신 백성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단언하신다(1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먼 이스라엘,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이스라엘(8절)이 구원의 기쁜 소식에 응답하지 못하지만, 야곱을 창조하신 여호와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일편단심의 하나님이시다(창 35:11). 그분은 여전히 깨달음 없는 이스라엘을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으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두려운 일이 일어나게 하신다. 그런 일을 통하여 그 백성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게 되기를 기대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회개가 없어도 자신의 소유요 백성이기 때문에 구원 역사를 베푸시겠다는 것이 본문의 선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택하심으로 구원하셨고, 사활대속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피를 우리를 위해 지불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결코 나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1).
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2). 2절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와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결코 막을 수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사랑스러워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해내겠다고 선언하신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소유된 백성을 회복하실 것이다. 애굽이든 구스든 사방에 있는 어떤 힘 있는 제국이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막아설 수 없다.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를 이같이 보호하신다. 음부의 권세조차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마 16:18). 이처럼 크고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를 참으로 존귀하게 여기신다. 비록 우리의 삶이 악함과 연약, 실패로 가득차고 참으로 매력이 없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우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외면할지언정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따라서 우리는 요동치는 세상 풍파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의 동행과 보호를 통해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음에  할렐루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삶을 살아서 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우리들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무한히 빚진 자답게 무익한 종으로 죽도록 충성하며 그를 기쁘시게 존귀케 영화롭게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1-33)
우리도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영화롭게만 하며 살아갑시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인 다른 성도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4절). 하나님이 귀하게 아름답게 보시는 지체들을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는 악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너도 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할렐루야!!
2.2. 그의 권능과 역사를 증거 하기를 기대하신다(7-13)!!
‘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7)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7절).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흩어진 자식들을 한데 모으실 것이다. 이제 수치의 날은 끝났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구원하여 부르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그들을 이제는 그 영광이 드러나도록 새롭게 창조하실 것이다. 다시는 자기 맘대로 살고 자기만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피조세계를 사랑하는 자로 창조하여 부르실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게 돌아올 기쁨과 영광만을 생각지 않는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은 쏙 빼 먹고 우리 자신 자랑만 하는 자들은 아닌지?
하나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소경, 귀가 있더오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같은 백성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열방에게 증언하게 하신다(8-9). 이스라엘은 놀라운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지 못하는 자들처럼 신뢰를 저버렸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랑받을 만한 것이 도무지 없는 이스라엘을 큰 사랑으로 다시 품으시고 구원하신다. 그리고 열방과 민족을 모으셔서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세우신다. 그 증언을 듣는 이들이 말하기를 ‘옳다’ ‘옳다’라고 수긍하도록 하시겠다고 하신다(9). 이를 통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 그 증언을 듣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과 비교할 신은 아무도 없음을 고백하게 하신다(10-11절).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느부갓네살 왕이 증언하는 증언을 들어 보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단 3:28-30)
이런 역사가 우리의 증언을 통해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버러지 같은 이스라엘, 죄인 중에 괴수 같은 바울,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하루도 못가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좌절 낙망하고,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하나님을 호통을 치는 배은망덕한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의 역사하심을 증언하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과연 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사랑을 충실하게 잘 증언하고 있는가?
요셉도 감옥에서 꿈을 해석했을 때 그 꿈의 해석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임을 증언하였다. 또 총리가 된 이후에 형들이 찾아와서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떨 때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창 50:19-21)
이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각양의 구원 역사와 은혜를 베푸신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함으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기를 기대하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광 도적질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이제부터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고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이 아름답게, 귀하게, 크게 사용하신다 할지라도 무익한 종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조의 능력과 역사를 주권하시는 주권으로 우리를 보호 해 주시고, 양육해 주시고, 인도 해 주실 때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과 역사를 찬양해야 한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만 돌아가도록.
3. 우리를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사랑과 긍휼에 무한히 빚진 자답게 그의 이름을 찬송하고 증거하며 살아가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 전능한 사랑을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셨다. 그의 백성이 그의 뜻을 어기는 악한 길을 걸었을 때 그들에게 포로생활이라는 엄한 징계를 내리셨지만 그들을 다시 구원하여 회복시키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구원하셨음을 체험하도록 하여 하나님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세우시겠단다. 이는 그들의 회개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일편단심(一片丹心)의 구원의 메시지이다.
이와 같은 구원의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임을 분명히 하셨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주일 오후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우리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일편단심의 사랑, 무능력한 사랑이 아니라 창조의 전능한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아울러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날 사랑해 주실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이 생긴다. 이 은혜에 대하여 무한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어떤 역사를 하시더라도 우리는 히스기야와 같은 미친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과 긍휼에 무한히 빚진 자답게 그의 이름을 찬송하고 증거 함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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