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

2010.10.27 22:50

윤봉원 조회 수:2351 추천:85

시 75:1-102010102733날자: 2010년 10월 27일 수밤
제목: 낮추시고 높이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75편 1절 - 10절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1. 사람의 생사화복, 존비귀천은 무엇에 의하여 결정되는가?
우리는 흔히 사람의 높고 낮음과 성공과 실패, 출세와 좌절이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있는가?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시 27:1)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기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여기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더 알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분명하게 적용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은?
2.1.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
 이 시는 인간 세상의 권력 질서와 윤리 질서를 관장하실 뿐만 아니라 심판의 권세를 행사하실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찬양시이다. 인간을 높이고 낮추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정해 놓은 때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 시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기적(기사)를 감사하고 찬송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배려가 항상 자기 가까이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다윗은 아마도 사울 왕의 갖은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셨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사울 왕을 심판하시고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와 자기에 대한 연면한 배려를 염두에 두고 감사의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님의 섭리를 자기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느낀다는 것은 큰 은혜이며 축복이다. 그렇게 될 때 감사는 우리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함은'(‘찬송합니다. 찬송합니다’: 새번역)이라고 감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심령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곧 성령의 지배에 의해서 사는 삶이다(참조, 갈 5:16; 롬 14:17).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은 임마누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육신의 차원을 벗어난 새로운 질서의 삶이다.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1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하신 기적적인 일을 찬양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충만되어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전적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로 지금 이 순간도 살아 있다. 저는 아래 저녁에 뭘 잘 못먹고 천국문턱까지 갔다 왔다. 심장 마비가 이렇게 해서 오는구나 하는 것을 직접 경험을 했다. 그래서 지금 설교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기적인지 모른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에 접하면 온 세상을 기적으로 보는 눈이 열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할레루야!!
2.2. 심판자 하나님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셀라)(2-3)
인간의 시간은 직선으로 표현되며 하나님의 시간은 원으로 표현된다. 직선적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지만 원으로서의 시간은 영원으로 귀일한다. 인간의 시간은 현재로 단절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승화된다. 그러므로 단절된 시간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시간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활동, 그것은 영원한 시간에서의 활동이므로 인간에게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본문은 하나님의 의로 심판하시는 날을 홀로 정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개인을 심판하시고, 역사를 심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하나님만 아시는 절대적인 시간 속에 정해져 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시간은 가장 합당한 시간이며,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며, 또한 가장 효과적인 시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결정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행사되는 시간 앞에서 아무도 이 정의의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참조, 롬 13:11). 깨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접촉하는 때를 알게 된다.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3절). 이 세상과 인간들은 시간을 따라 소멸하고 심판을 따라 소멸하되 하나님 창조의 의지는 변함이 없음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의도는 변하지 않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인간의 시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영존한다(참조, 히 1:10-21).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던 원수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멸망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2.3.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4-7)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의 운명을 조종하신다는 것과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오만한 자와 행악자는 그들의 교만을 꺾으시고 진멸(殄滅)하시며 의인을 축복하시고 높이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은(7절) 그의 주권 행사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다.
‘오만한 자들, 악인들’(4절), ‘교만한 목으로 말하는 자들’(5절). 4절, 5절, 10절에서 말씀하는 ‘뿔’은 '힘', '능력', '오만함' 등을 뜻한다. 인간의 “오만”은 자기가 자기 생명의 주인이라고 믿고 자기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연유한다. 이와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만은 권력을 믿는 데서, 부를 믿는 데서, 지위를 믿는 데서, 호화를 누리는 데서, 지식을 자랑하는 데서 대부분 비롯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만히 행치 말라'(4절) 하시고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5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은 원천적으로 교만할 수가 없다.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것은 연약하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대개의 경우 이러한 증상은 부패와 타락의 징후로써 나타난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참조, 잠 16:18)인 것은 사울, 아합과 아세벨(왕상 19-20), 하만, 느부갓네살 등의 경우에서 그 실례를 찾을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이 교만에 대해서 단호하시다. 천사장 루시퍼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 사탄으로 전락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사 14:12~15)
아담과 하와가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창 3:5)라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죽이셨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만큼은 결코 용서 하시지 않는다. 다음의 말씀에서 분명히 선포하셨다.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 8:13).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가차없이 낮추시지만 겸손한 자는 반드시 높이십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여기서 우리 잠깐 생각을 해 보자.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단호하게 심판하신다고 하셨을까? 그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저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고 본다.
우리는 구원 받은 것이 사활대속의 전적인 은혜로 선물로 받았다.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기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받은 은혜를 어떤 상황에서도 배은망덕(背恩忘德)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나서 뭐가 된 것처럼 날뛴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자식이 부모에게 기분 나쁘다고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어요?”라고 대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차마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망치로 한 방 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교만한 자, 오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 마귀는 교만의 화신이지만 주님은 겸손의 화신이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뚸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빌 2:6-11)하셨다라고 말씀하셨다. 겸손한 자야말로 주님의 심장을 가진 주님의 분신이고, 교만한 자야말로 사탄을 가장 많이 닮은 마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한 주님을 높이신 것처럼 겸손한 자들을 지금까지도 다 높이셨고,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높이실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 또한 교만하여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4. “의”의 기준으로 인간의 운명을 조종하시는 하나님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6-7)
‘또 악인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시 75:10)
인간을 높이거나 낮추시는 분은 인간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악인이 자랑하는 모든 것, 즉 “뿔”은 낫으로 풀을 베듯이 다 베어 버리시겠다고 단호하게 선포하신다. 그리고 의인의 “뿔”은 높이 높이 세워주신다는 선포이다. 의인의 '영광'은 높이 드러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높이는 일은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6절)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이러한 의인에 대한 약속은 환란과 시험에서 건지시며(참조, 시 34:15, 19 ; 벧후 2:9),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시고(참조, 요 14:20), 영생을 얻고(참조, 마 25:46), 하늘의 상급을 받는다(참조, 마 5:12 ; 약 1:12) 선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판장'으로서의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기준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을까? 그것의 기준은 '의'이다. 그 근거(根據)는 10절에서 찾을 수 있다. “악인”과 “의인”이라는 하나님의 정의에서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악인”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지 않고 자기중심 위주, 피조물 중심 위주로 살아가는 자를 말한다. “의인”은 자기중심 위주, 피조물 중심 위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자를 일컫는다. 즉 자기가 만난 현실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진리와 영감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를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권면했고,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준을 따라서 악인은 낮추시고, 의인은 높이시는 것이다. 그 사례를 8절에서 들고 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는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로다’(8절).
'하나님의 손'에는 '잔'이 들려 있다. 이 잔은 의인에게는 축복과 은혜의 잔이지만(참조, 시 2:5) 악인에게 있어서는 황와 저주의 잔이다(참조, 계 16:19). 행악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혹독할 것이며, 아무도 하나님의 그 진노에서 피할 자는 없다. 그들은 진노의 고통을 '찌꺼기까지'다 먹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문은 이미 닫혀 있다. 오만한 자와 행악자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운명의 원인은 인간에게 있고 그 운명의 결정은 하나님의 내리신다. 하나님의 잔은 운명의 잔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직도 죄의 길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그런 면이 있다면 즉시 돌이켜야 한다. 계속되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약속과 선포를 확고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찬양하고 있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시 75:9)
성경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일컬을 때는 약속을 하시고 그대로 가감 없이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일컬을 때 많이 사용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신약과 구약의 성경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행하실 것을 우리도 확고하게 믿고 나아가야 하겠다.
3.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며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라.
본 시(詩)를 묵상해 보면 저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만하고 교만한 자들 사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와 의의 기준으로 심판하실 하나님, 약속을 선포하시고 그대로 이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함으로써 희망을 잃지 않고 승리하며 나아가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또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찬양함으로, 의의 기준으로 의인은 높이시고 악인은 낮추시는 심판자 하나님과 심판의 날을 기다리며 현재의 고난을 넉넉히 이기도록 하자. 고난 없는 면류관은 면류관이 아니다. 아울러 주님오실 때까지 주님 불러 가는 그 순간까지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며 인내로 나아가자. 주인공 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10-2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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