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의 기적

2010.01.12 13:31

윤봉원 조회 수:2437 추천:59

막 1:40-452010011002

제목: 2010년 1월 10일 주일오후
제목: 나병병자의 기적
본문: 마가복음 1장 40절 -45절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1. 나병환자의 불행
마가복음은 제자도에 관한 말씀으로 진정한 제자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도에 관한 말씀의 시작(1:40-45)과 마지막(14:3-9)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장면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관심을 둬야만 합니다.
본문의 문둥병은 피부에 문제가 생긴 병입니다. 그래서 심한 경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부가 훼손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렇게 되어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민 12:9-10)
그러니 유대인들이 어찌 문둥병에 걸린 사람과 함께 살려 하겠습니까? 당연히 그들은 격리되어 살아야 했고, 만약 그곳을 벗어나 인근 마을에 들어가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2. 나병환자의 기도
2.1. 비장한 각오의 기도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거처(居處)를 이탈하면 언제든지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 온 것은 이미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죽을 각오를 한 동물의 왕국을 보면 천적에게도 이기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사도행전 21장에는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행 21:11)는 예언과 함께,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동역자들이 말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예언대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죽기를 자처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가야 할 이유를 밝혔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바울은 주 예수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었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간구도 이러한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소원을 전달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한다는 비장한 간구여야 합니다.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7:6)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간 것은 구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만나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병환자는 비장한 각오로 기도를 했기 때문에 치료함을 받은 후에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마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얼마나 기뻤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우리 자신 또한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합니다. 나는 죽어도 이 문제의 기도 응답받기를 소원합니다.” 하는 비장한 각오로 기도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사람의 말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안테나를 세움
나병환자는 자신 병의 위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병의 위중함보다 그를 더 비참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고침을 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한 장소에 있던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모두 유대인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한 명은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원수 사이였는데 어째서 한 장소에 사는 것입니까? 나병환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에 더는 유대인이냐 사마리아인이냐가 무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는 하나님조차 포기했다고 여겨졌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간구(懇求)는 말 그대로 전심전력(全心全力)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사방에 안테나를 세워놓고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62:1절에서 다윗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는 고백 가운데 ‘잠잠히’라는 말은 ‘온전히 기대하라(quiet expectation)’라는 의미가 훨씬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간구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기대하는 기도입니다.
2.3. 간구의 한계를 정하지 않음
나병환자는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그에게 맛있는 것을 제공하거나 심지어 악수조차 청한 자가 없었던 것은 그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죄인 가운데 죄인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41절). 물론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막2:11-12)”
예수님께서 그의 몸에 직접 손을 대신 것은 유대인들의 시선으로 그를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에 간구를 맞추면 안 됩니다.
홍일권 목사님의 “기도로 꿈을 이루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생명의 말씀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기도로 꿈을 이루기 전에 읽어야 할 내용을 담은 것이 특징인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라”입니다. 자신의 위치가 자랑할만한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들릴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3. 비장한 각오로 기적을 소망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라!!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나병환자는 도저히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만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장한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소리보다 예수님의 소리에 안테나를 세웠습니다. 그는 그가 간구하는 간구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왔와서 간구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예수님은 그에게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는 놀라운 기적인생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이제부터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붙들고 기적을 소망하며 비장한 각오로 기도합시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간구의 한계를 정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역사의 주관자, 주권자, 주재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풍성하게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참조: 21C목회연구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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