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두둔의 법칙

2010.12.03 18:24

윤봉원 조회 수:1906 추천:74

시 77:1-202010120353날자: 2010년 12월 3일 금밤
제목: 여두둔의 법칙
본문: 시편 77편 1절 -20절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 (셀라)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무리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1. 환난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힘쓰고 있나?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시련과 어려움을 만난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종류는 참으로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돌아보도록 하자. 혹시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힘쓰고 있지는 않나?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어려운 현실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기를 원하는지를 찾아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여두둔의 법칙
2.1. 하나님께 부르짖으라!(1-4)
여두둔은 아삽과 마찬가지로 성전 찬양대의 지휘를 맡은 사람이었다.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에게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대상 16:42).
그렇다면 이 77편의 표제어가 말씀하는 “여두둔의 법칙”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1절).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시편 77편을 기록한 아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까 두려워하며 기도한다. 아삽은 매우 극심한 환난이 닥쳤음을 알 수 있다. 아삽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내가 다하도록 응답해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삽은 위로받지 못한 절망 가운데 막막해졌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시 77:3-4)
얼마나 자신이 당한 환난을 이길 힘을 하나님께 바랐으면 불안하고 근심하고 심령이 상하기까지 했겠는가? 아울러 그 환난으로 말미암아 괴로워서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을까? 상상해 보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아삽은 환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그 방법을 첫 번째로 제시한다. 다른 사람의 음성으로가 아닌 자신의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각자가 직접 하나님을 찾고, 손을 들고 자기의 육성으로 기도하는 일이야말로 환난 극복의 첩경이라는 것이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2절).
부모의 기도도 소중하고, 목회자나 성도들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내가 내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이다. 남의 기도만 믿고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내만 믿고 본인은 기도하지 않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만 믿고 기도하지 않는 자식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환난을 이기고자 하신다면 본인이 직접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자녀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 우리를 구원하시고 위로하실 분이시다. 시인은 고통 가운데서 자신을 위로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믿고 간구한다.
우리 또한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환난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확정(確定)하라. 그리고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위로가 되신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위로를 스스로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실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확고히 믿어라!! 아멘!!
2.2.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라!(5-12)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5절)
하나님은 고통 중에서 행하셨던 위로들을 기억하게 하신다. 시인은 과거에 자신이 받았던 은혜와 위로들을 기억하며 주의 기이한 행사를 진술한다.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시 77:11-12)
아삽은 자신이 만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그가 한 말을 생각해 보라. 그의 상태는 하나님께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흔들리기까지 한 것처럼 보인다. 더는 기도할 힘도 없이 지쳐버린 아삽은 과거에 자신을 도우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회상하며 다시 소망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절망은 너무나 커서 이런 노력마저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해도 의문만 다가왔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가?’ 절망의 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의문이 그를 계속 괴롭혔다. 아삽은 정직하게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두려운 의심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고 있다.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시 77:6~10)
그렇게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셨던 구원의 역사를 깊이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점을 매우 기뻐하시는 것을 레위기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수시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애굽에서 구출해 주었던 구원 사건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니라’(레 22:33)
우리가 만나는 그 어떤 환난이 과거 이스라엘의 광야생활만 하겠는가? 그들은 홍해 앞에서 절망했고,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쳤다. 또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당했다. 낮에는 무더위에, 밤에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그 모든 환난을 이기게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보장해 주셨다.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 해갈하게 하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 에어컨으로, 밤에는 불기둥 히터로 지켜주셨다. 옷이 헤어지지 않게, 발이 부르트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환난이 닥쳤을 때 이런 주의 행사를 기억하며 용기와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요즘 환난 앞에서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들이 참 많이 늘었다. 전국적으로는 하루 평균 43명꼴이라고 한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자살지수 상위권인 헝가리나 일본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위로 하실 유일한 분이다. 요즘 우리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더딘 응답이나 무응답도 하나님의 기도응답임을 믿어야 한다.
“여두둔의 법칙”을 잊지 마라. 지난날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각종 기적들(행사)을 기억하라! 살려 주신 은혜, 진리와 영감의 길을 주심으로 잘되게 하신 은혜, 철두철미하게 보호와 보존해 주셔서 지금의 내가 있음을 되돌아보며 그 은혜를 기억(記憶)하라는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께서 지금도 그렇게 역사 하시고 은혜를 베푸실 수 있음을 확신하라!! 아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내게 행하셨던지를 묵상할 때 하나님의 큰 위로를 경험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인도해 오셨는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갖도록 힘써야 하겠다.
2.3.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음을 고백하라(13-20)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셀라)(13-15)
 세상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만 생각하라고 한다. 성도 중에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는 참으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하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환경을 성경은 과거를 기억하면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아삽은 문제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해진 것은 자신의 믿음이 연약해진 탓이었다.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께 빨리 응답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해보기로 결심한다(10-12절).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크고 거룩하신 분이시다. 시인은 조상들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같은 신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나님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분은 백성을 구속(救贖)하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추신 분이시다. 아니 능력 그 자체(自體)이시다. 그분의 팔에 내 삶을 겸손하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이다.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무리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시 77:116-20)
아삽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생각한다. 그때 비로소 절망 가운데 찬양이 흘러나왔다. 아삽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셨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의 장엄한 광경을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과 구름과 바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은 홍해 앞에서 절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바다를 가르고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을 건너게 해 주셨다. 아삽은 찬양을 드리면서 과거에 양 떼처럼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무기력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목자처럼 이끌어주신 하나님이라면 현재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아삽은 하나님의 행하신 기적들을 되새기며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비교불허한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는 참으로 신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토착신 재래신들이 많고, 일본의 신도 일본인보다 많다고 한다. 인도의 신은 3억 3천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떤 신도 여호와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신은 다 우상이며 거짓일 뿐이고 오직 여호와만이 참 신임을 믿고 고백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신흥종교, 유사종교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극성이다. 하나님을 자처하고 재림 예수를 사칭하는 사이비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환난 닥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동일(同一)하게 그렇게 대하신다. 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유일하심을 고백하라! 그게 환난을 이기는 여두둔의 제3 법칙이다. 할렐루야!!
3. 자신의 음성으로 부르짖어라! 주의 행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라! 비교불허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라!!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길을 내셨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감사하며 잘 따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현실을 만나더라도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중보기도를 믿고 자신의 음성으로 부르짖는 것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많은 중보 기도를 해 준다 하더라고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음성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하기를 기대하신다.
지금의 환경이 어떤 절망 속에 처했다 하더라도 이전에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역사를 깊이 생각함으로 더욱 찬양에 힘써야 한다. 우리 마음이 기쁘고 상황이 좋을 때 찬양하기는 쉽지만, 반대의 경우에 찬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삽의 고백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뿌리까지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님 같은 신이 전혀 없음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독생자를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확증해 주셨다. 이외에 우리가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 한 분 외에 어떤 신이나 존재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줄 수 있는 존재는 전혀 없다는 사실에 확정을 지어라! 우리 하나님은 비교불허의 하나님이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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