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에서 지혜로운 청지기로

2008.06.15 21:56

윤봉원 조회 수:1990 추천:340

눅 16:1-1382061301아래의 설교 말씀은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 말씀 원고를 올립니다. ----------------------------------------------------

날자: 1982년 6월 13일 주전
제목: 불의한 청지기에서 지혜로운 청지기로
본문: 누가복음 16장 1절~13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 청지기는 중생된 우리
비유는 실상과 같이 그렇게 진실성이나 구체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실을 바로 알릴려고 할 때에 알기 어려운 것은 그와 비슷한 것을 들어서 알게 해 주는 것이 비유인 것입니다. 비유보다는 비유가 나타내고 있는 그 사실은 더 구체적이고 그보다도 더 확실성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자로 비유하신 것은 우리를 구속하신 주 하나님을 비유하고, 또 청지기는 부자의 집에 모든 것을 맡아서 하는, 요새 말로 총무와 같은 사람인데, 이 청지기는 구속 받은 우리 중생된 새사람을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중생된 우리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2.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할 우리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다는 말씀은 우리의 이 모든 마음이나 몸이나 우리의 소유나 지위나 권세나 지혜나 총명이나 이 모든 것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것인데 우리는 잠깐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을 우리가 대리로 맡아 가지고 주인의 뜻대로 이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자기는 주의 것으로 인정이 돼야 됩니다. 또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실상으로 자기 것이 되어 효력을 나타낼려 하면 자기는 주의 것으로 실상이 되어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구속하신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 이 세 가지 공로는 우리가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이 공로는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공로입니다.
사죄는 죄를 멸하고 죄를 앞장세우고 오는 모든 사망을 멸하는 권세가 있는 것이 사죄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사망, 망하고 죽는 사망이 올 때는 반드시 죄를 앞장 세우고 죄의 권세를 의지해서 우리를 사망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망이 인생에게 올 때에 이 사망을 인생의 단독의 힘으로서는 추호도 방어하거나 멸하거나 물리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각오나 어떤 수양을 가지고 하겠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모르는 말입니다.
모든 이종교가들이 수양으로 사망과 죄를 멸하겠다고 하는 그것은 역연 사망의 세력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더 사망에 깊이 빠지고 죄에 깊이 빠지는 것이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지 가까와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종교가 일생을 살았으면 산 것만큼 하나님과 멀어졌고 죄는 더 세력이 강해졌고, 사망은 완전히 짙어져서 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오는 죄를 멸하는 것과 죄의 뒤에 따라오는 사망을 멸하는 것은 사죄의 세력밖에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인간이 그 법도를 지키는 의를 통해서 그 축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인간의 힘으로는 끌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끌고 오는 축복의 앞잡이로 조건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을 이행할 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여게는 다만 주님의 대행의 칭의가 와 가지고 칭의의 능력으로만 우리에게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법도를 완전히 완수한 이 조건을 통해서 오는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의 모든 속성, 하나님의 속성적 그 신성, 하나님의 형상, 이 형상은 인간이 입을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결합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결합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의, 화목의 제물되신 대속으로만 하나님으로 더불어 재결합이 돼서 하나님의 그 본체의 충만한 능력이 인생에게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적으로 믿는 사람은 지식적으로만 이루어져 실상을 아직까지 앞에 두고 있을 것이고, 또 말로만 이렇게 증거 하는 사람은 말로만 되어 있고, 자기가 주님의 대속을 자기 것으로 실상으로 가지는 자는 자기가 실상으로 주님의 것이 될 때에 실상이 가져지고 실상이 이루어질 때에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화친에 대해서,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체의 무한의 그 능력과 그 속성의 능력이 자기에게 건너오는 것, 하나님의 조성하신 온갖 그 축복이 자기에게 건너오는 것, 모든 저주와 죄악을 멸하는 것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되지 그렇지 않고는 되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데는 자기 자체와 자기의 모든 소유가 주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값주고 사서 주님의 공로가, 주님이 모든 부요와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나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대속하신 그 공로를 내 것으로 삼을 때에는 나는 필연적으로 당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공로는 우리에게 두 가지면으로 역사하는 것이니 일면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 이 공로가 역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 편에서 대속의 이 세 가지 공로가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 심판을 우리는 이기고 면제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건설구원에 있어서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가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은 순전히 객관 은혜요, 건설적의 것은 기본적인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우리 자신이 이 기본적인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가 되어져 가지고, 기본적인 은혜의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께서 대속하신 이 공로를 입지 않고는 죄와 사망에 대해서 호리도 방어나 파괴시킬, 격멸시킬 자가 없고, 또 하나님의 축복을 끌어올 만한 법의 완수자도 없고, 또 하나님 자체의 그 능력을 받는 화친을 가질 자도 없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크신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로만 되는 것인데, 이 지극히 큰 대속의 공로가 우리의 현실 현실의 그 생활에 와 가지고 역사하는 데에는 다만 내가 주의 것이 현실에 되었을 때에 이제 이 능력이 와서 역사할 수 있고, 역사하다가 다시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을 다시 내 것으로 도로 찾을 때에 대속의 공로는 이 건설면, 세상살이면에서는 물러가고 맙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대속의 공로를 입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역사하는 이 효력을 입었지만, 이 세상에서 기초 위에 건축하는 것과 같이 구원은 얻어 하늘나라 갔지만 하늘나라의 구원 얻는 자의 그 영광의 차이가 있는 이 영광, 그 나라의 실력 그 나라의 가치, 그 나라의 등용, 그 나라의 환영 이것은 다 건설구원에 속한 것인데 이것은 자기 생애의 현실 현실에 이 세 가지 공로가 지극히 큰 능력으로 와서 역사하는 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지극히 큰 대속의 공로가 와서 역사하는 데에는 자기가 실상으로 주의 것이 되어졌을 때에 실상으로 역사할 수가 있고 말로 할 때는 말로만 되어 있고, 지식으로 할 때는 지식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실제로 자기가 주의 것이 되어졌을 때에 주님의 대속의 공로는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오는 죄를 멸하는 힘을 인간의 결심이나 각오로서 절대 멸하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오는 죄를 멸하는 것은 자기는 주의 피로 값주고 산 것이니 자기는 자기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제 맘대로 사용할 수 없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되는,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대속의 공로를 근거해 가지고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실상으로 믿고 이 실상으로 살려고 할 때에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사람에게 오는 죄와 모든 사망을 박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장자재앙이 내릴 때에 하나님이 이와 같이 선포했고 또 약속을 했고 이 사실을 알고 입술로 아무리 말한다 할지라도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을 때에 비로소 재앙은 넘어갔지 이 피를 바르기 전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에게 왜 죄와 사망의 문제에 자유하지 못하느냐? 왜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법을 완성한 자에게 하나님의 온갖 축복은 자기 것이 돼 있어서 때를 따라서 마음대로 쓸 수가 있는데 왜 이것을 갖다 쓰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무한한 그 능력이 인간을 통해서 때를 따라 얼마든지 나타나서 역사할 수가 있는데 왜 그 능력이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 역사하지를 못하느냐?
못하는 그 이유는 세 가지 공로가 내게 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오는 데는 하나님의 화친의 대속의 공로가 역사해야 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오는 데에는 내가 하나님의 법을 완수한 칭의의 능력이 와서 역사해야 되고, 내게 모든 죄와 사망이 와서 역사하는 이것을 멸하는 데에는 주님이 나를 대행하신 사죄의 이 공로가 와서 역사해야 되는데, 이 공로가 역사하는 데에는 나만 당신의 것이 되면 와서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지식으로 입술로 자기가 아무리 증거를 한다 할지라도 주의 것이 실상이 되기 전에는 그 능력은 실상으로 와 가지고 실제의 그 결과는 맺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3. 허비는 주인의 뜻대로 쓰지 않고 사욕대로 쓴 것
그러기 때문에,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이 비유는 대속하신 주님에게 대속으로 말미암아 주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가 있다 하는 우리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그러면 주님의 대속으로 주의 것이 된 것은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주라면 주고 말라면 말고, 가지라면 가지고 흩으라면 흩고, 감옥에 던지라면 감옥에 던지고 불에 던지라면 불에 던지고, 대속하신 주인이 시키는 대로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이 소유를 활용해야 될 터인데 이것을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활용한 이것이 이제 허비했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허비는 주인의 뜻대로 쓰지 않고 사욕대로 썼다는 말입니다.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말이 어찜이뇨” 네가 대속의 내 공로를 네 공로로 믿어서 이 공로를 네 공로 삼는다면 너는 내 것이 되어져야 할 터인데 어떻게 내 것 된 너를 네 맘대로 사용하느냐? 이 말이 어찜이뇨? 계산을 해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이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이 공로가 변호했기 때문에 거게서는 통과됐지만 우리가 가서 심판받을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다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행한 대로 갚음을 받을 자로 알아라’ 고린도후서 5장에 말씀하신 것은, ‘선악간에’ 선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행한 것이고 악은 자기를 중심해서 행한 것으로서 그대로 다 계산해서 보응을 받을 자로 알고 행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계산 할 때가 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그러기에 대속받은 우리들은 내 소유나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총명이나 실력이나 언변이나 건강이나 몸이나 마음이나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대속으로 벌써 내가 행위구원에서 망령되게 도로 찾았다 할지라도 기본구원인 하나님의 공심판을 면했기 때문에 내가 인정하든지 말든지 이것은 주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의 것으로, 주의 것을 내가 내 것으로 인정하든지 말든지 벌써 공심판의 대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주의 것으로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또 주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실 생활에는 내가 인정하고 실상이 안되면 이 실상으로 역사하는 데는 이 공로가 역사할 수가 없지만 벌써 기본구원이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값으로 피로 값주고 산 당신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다 주인의 뜻대로 썼느냐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썼느냐 하는 것이 우리 앞에는 반드시 계산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는 것을 여기 비유했습니다.
5. 주인의 소유를 활용하지 못할 때가 온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이 말은 주인의 소유를 주인 대리로 사용하는 그 활용하는 일은 이제 끝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계산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계산대는 것인데 세상을 떠나면 내 마음이나 내 몸이나 이것은 내 맘대로 사용하지를 다시는 못하는 것입니다. 사무를 보지 못한다 그 말은 다시는 주인의 대리 노릇을 하지를 못합니다.
내 마음도 내 몸도 내 소유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내 욕심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어떤 인간의 뜻대로 사용할 수도 있는 이 사용권이 지금은 우리에게 있지만 이 권이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끝나면 다시는 못합니다.
자기의 마음이지만 마음의 이 기능을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 기능을, 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마음과 몸의 모든 소유물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인간의, 자기의 어떤 피조물의 어떤 큰 세력에 그것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 권리가 지금은 있지만 세상을 딱 떠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제 사용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저렇게 사용할 수 있지만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다시 사용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기능이, 몸의 기능이, 소유가 영원한 멸망의 것이 되어졌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가지고 무궁한 내세의 것을 바꾸었든지, 내세의 것을 교환했든지 이 두 가지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6. 조만간에 세상을 떠나갈 사람이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았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고민입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았으니” 이제 내 심신 내 소유를 내가 지금은 가지고 사용할 수 있지만 주인이 벌써 나가라 하면 이 세상에서 나가야 하니까,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이것은 사용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이 떠날 선고를 받은 후에, ‘청지기의 사무를 보지 못하고 네가 이제 내 집에서 쫓겨 나가야 된다’ 하는 이 언도를 받고 난 다음에 이 청지기는 고민입니다. ‘이제 나는 쫓겨나가게 되었으니 내가 쫓겨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이것을 고민하는 이것이 기독자가 정신 있는 고민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기독자가 참으로 깨달았다면 나는 조만간에 세상을 떠나갈 사람이요 죽을 사람이니까, 죽을 사람이니 죽기 전에는 이 몸뚱이 가지고 내가 살 수 있고, 죽기 전에는 내 마음과 내 몸의 기능 가지고 살 수 있고 내 소유 가지고 살 수 있지만 내가 일단 죽고 난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죽고 난 다음에는 이것은 이대로는 가지고 가지 못할 것 아니냐?
7. 영원준비는 내세에는 못한다
그러면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죽은 다음에는 인생이 자기를 위해서 노력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는 인생이 자기를 위해서 노력을 못 합니다. “힘이 없고” 라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또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영원무궁 세계에 수치스러운 구원이 있는 것을 여기에 비유합니다.
기독자들이 영원한 내세의 준비는, 준비는 내세에 가 가지고는 하지 못합니다. 죽고 난 다음에 영원 세계의 준비는 못 합니다. 또 영원 세계는 다 같이 하늘나라 갔지만 영광과 행복의 이 차이는 이 세상 인간과 인간 차이와 비교 못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했습니다.
그 나라의 수치는 영원합니다. 그 나라의 무능도 영원합니다. 그 나라의 가난도 영원합니다. 그 나라의 자기의 활동의 자유가 제한된 것은 영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요만한 범위 내에 활동하고 어떤 사람은 요만한 범위 내에 활동하고 어떤 사람은 조만한 범위 내에도 활동하지 못하고 그 자리 서 가지고 있는 고것뿐입니다.
8. 할 일을 발견한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고민하는 가운데 자기가 쫓겨나가기 전에 벌써 쫓겨날 언도를 받은 자기로서 쫓겨나가기 전에 자기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제 발견을 했습니다. ‘내가 할 일을 발견했다. 내가 이렇게 하겠다.’ 이렇게 하겠다 하고 그 일을 했는데 주인이 나중에 그것을 지혜롭게 했다 칭찬했습니다. 이러니까 청지기 발견한 이 발견이 바로 발견한 발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대속과 자기와의 관련성 있는 이것을 알아야 하고, 대속이 지옥갈 것을 대속해서 하늘나라에 가는 이 대속의 공로, 저주받아 영원히 멸망할 심신의 기능을 영원무궁한 기능으로 바꾸어 가질 수 있는 이 대속의 길 이것을 자기를 구원하는 이 공로로 자기 공로로 인정을 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와 자기의 모든 소유는 주의 피로 값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만 할 수 있지 자기대로 하는 것은 주의 것을 도적질한다는 것을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내 맘을 내 마음대로 하지, 내 몸을 내 몸대로 하지, 내 기능을 내 기능대로 하지, 내 소유를 내 소유대로 한다고 할 때에 그는 기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구원해 주시지만 하늘나라의 영광을 마련하는 이 일에 있어서는 그것이 제것이라고 하면 주의 것은 주의 것으로 있어서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돈이 없어도 값을 내고 사라’ 이랬습니다. ‘이 생수를 사라’ 이랬습니다. 이 생명의 구원을 사라 말입니다. 돈이 없어도 사라 말은, 돈 없는데 어떻게 사겠습니까? 이 구원에 대한 대가가 될 만한 그 가치가 비중되는 그런 가치는 너희에게 없지만, 이것을 살 만한 그만한 가치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라. 너는 내놓아야 된다. 너와 네것은 이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는 이것은 주의 대속의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네가 인정해야 이 대속의 공로가 건설적으로는 너희에게 실상적으로 이런 능력이 역사하지 그것을 네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 능력은 역사할 수 없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첫째 알아야 됩니다. 내가 주의 것만 되면 지극히 큰 능력,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대해서, 하나님과 화친에 대해서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지극히 큰 능력, 멸망을 해결짓는 이 사죄, 하나님의 축복을 다 끌어오는 이 칭의,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자기 것이 되는 이 지극히 큰 생명의 능력 이것이 저만 주의 것 되면 이것은 제것이 돼 가지고 자기 현실에서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현실에서 자기가 주의 것이 되지 않으면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이 대속의 공로가 와 가지고 역사하지 않을 때에는 인간이 죄를 이기는 인간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원수됨에 대해서 인간이 해결지어 보겠다고 날뛰는 이종교의 그 모든 논리들은 다 자기를 다 자멸하고 만 것이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인생에 구원얻는 길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종교 창설자는 그런 말 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종교 창설자는 ‘내가 우주와 영계를 다 내가 만들었다. 내가 창조했다.’ 제가 창조주라고 한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도 자기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 안 했습니다. 인도에 있는 한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오시기 전에 당신이 모든 천지를 창조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이것도 생각해야 되고, 주님의 대속, 주님의 대속을 받은 자기이니 자기는 주의 것이 되어 있다는 이것도 생각을 가져야 되고, 그러면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공로가, 주의 구원이 내 것 되었으니 나와 내 소유는 주의 것이 되어졌으니까 이것은 주님의 뜻대로 써야 되지 주님의 뜻대로 쓰지 아니하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계산이 있다는 것, 계산을, 뜻대로 썼느냐 안 썼느냐 하는 계산을 대는 것이 있다는 것도 생각 가져야 합니다.
자기는 언제든지 이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인이 이것을 계산대고 난 다음에는 쫓아내니까 이 세상 문 밖에 나가야 된다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죽어야 된다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세상에 아무리 잘났어도 죽고 난 다음에 내세에 가 가지고는 요만큼도 자기 위해서 준비를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는 부끄러움이 영원한 부끄러움입니다. 세상에서는 요만침만, 하룻밤 요거 수치도 안 당하려고 벌벌 떠는 자가 무궁토록 그 수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룻밤 모욕당하는 것도 못 견디는데 영원무궁토록 모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룻밤도 멸시 천대와 짓밟힘을 당하지 못하는 자가 영원토록 짓밟힘을 어떻게 당할 것인가? 죽고 난 다음에 영원한 수치, 부끄러움, 영원한 수치를 자기도 생각하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죽을 자이니, 이미 죽을 자이니까, 부자의 집 밖에 나가야 할 자이니까 나가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나는 죽을 자이니까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이것도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죽고 난 다음에 유익될 것을 이 세상에서 마련해야 되겠는데, 부자의 집에서 마련해야 되겠는데, 쫓겨나고 난 다음에 유익될 것을 부자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마련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하는 이것을 연구해서 발견한 것이 주인에게 칭찬받은 지혜 있는 청지기라고 지혜 있는 발견을 한 자입니다.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9.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는데 자기의 소유를 다  사용하라
발견하고 보니까 한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무슨 길이 있었습니까? 주인에게 빚진 자를 전부 불러다가, 이것 내 것 아닌데 빚진 자를 불러다가 전부 빚을 탕감해 줘야 되겠다. 빚을 탕감해 주니까 빚진 자에게는 빚이 줄어졌고 주인의 것은 주인의 소유가 줄어졌고 빚진 자에게는 빚이 줄어졌고, 이러니까 주인의 소유가 빚진 자 그들의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주인의 것 가지고, 주인의 것 가지고 빚진 자들 좋은 일 하니까 빚진 자들이 그거 가지고 자기를 쫓겨나가고 난 다음에 대접할 것이라 요거 연구했습니다.
빚진 자는 어떤 것이 빚진 자인가? 인간은, 기름, 밀을 말했는데, 밀은 육체적으로 빚진 것을 말하고 기름은 신령적으로 빚진 것을 말하는 것이니, 신령적인 범죄와 육체적인 범죄, 마음으로 범죄한 것과 몸뚱이로 범죄한 요 두 가지를 비유해서 기름과 밀로 말한 것입니다.
불러다가 ‘얼마 졌느냐?’ ‘기름 백 말, 밀 백 말.’ 이러니까 서랍을 착 빼 가지고 ‘아나, 감해라’ 이러니까, 기름은 오십 말 감하고 밀은 스무 말을 감해 가지고 감해 버렸습니다. 감하니까 부자의 재산은 줄어들어졌지만 그 빚진 자에게는 유익이 되어졌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모든 사람이 다가 아니고, 예를 들면, 내게, 내게 관련돼 있는 그 사람의 신령한 죄빚과 육체적인 죄, 하나님 앞에 신령한 죄 육체의 죄가, 그 사람에게 져 가지고 있는 그 죄가, 그 죄가 내 서랍에 들어 가지고 있는 내게 속한 것이 있습니다. 내게 속한 것이 있으니까 내가 눈물을 흘림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감해지고, 내가 진액을 기울임으로 감해지고, 내가 말을 타이름으로 감해지고, 내가 그에게 교훈을 해서 회개를 시켜서 감해지고, 내게 있는 부자의 것이 있는 이 심신의 정력과 내 소유, 재산, 소유, 내 심신의 기능 건강 이것이, 내게 관련된 그 사람의 죄에서 해방시켜 구원하기 위해서 이것이 녹아지는 것이 무엇이냐? 부자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 이것은 줄어지고 그 사람에게 죄의 세력은 점점 감소되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쫓겨나고 난 다음에 나를 대접할 게 아니냐? 그리 안 하고, 그리 안 하고 나가 봤자 그것은 제것 되지 않지만 그리하면 제것 될 길 있다 그 말입니다. 이 대속한 이것을 자기 것으로 죽고 난 다음에 활용하는 데에는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는 데 여기 투자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그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이제까지는 아주 주인의 것을 허비했는데 허비한 이것이 제 맘대로 쓰다가 허비한 이자가 계산하라고, 너는 쫓겨나간다 이러니까 쫓겨나가고 난 다음에는 주인의 것을 자기를 위해서 완전히 이용을 해 버리기는 해 버렸는데 지혜 있게 이용했다 그 말입니다. 빚진 자를 탕감해 줬으니까 지혜롭게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대속한 대속을 받았으니까 주의 것 된 그것을 제 욕심대로 쓰던 자가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주인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 이 보관한 이것을 전부 다른 사람 탈빚해 주는 데 싹 투자해 버리니까 투자해 버렸으니 주인의 것 보관한 것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바짝 말랐어. 살이 띤띤하이 쪘었는데 빠짝 말랐어. 오래 살 것인데 그만 단명을 해 버렸습니다. 제가 ‘나는, 나는 몇 억대의 재벌이라.’ 이럴 건데 이거 내가 주인의 것인데 이거 가지고 빚진 데에 탕감하느라고 쏵 다 투자해 버리니까 아무것도 없다 그 말입니다. 주인이 보관한 것을 제가 다 투자하고 나니까 주인의 것은 줄었지만 많은 죄인들의 죄빚을 탕감시켰다 말입니다. 내 서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받을 사람이 있고, 나로 말미암아 의인될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10.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러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해석을 했소, 그 다음에는.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이 해석하기를 네가,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은, 재물이라는 말은 우리 마음도 물질입니다. 우리 마음도 물질이요 우리의 몸도 물질이요 소유도 물질입니다. 우리의 영은 영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치 짐승에게 있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짐승은 그것은 순전히 물질의, 물질의 그 신비한 것이 마치 피아노의 옥타브를 탁 치니까 앵 하고 소리 나는 그것이 귀로는 들리지만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도, 소리 그것도 내나 물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라는 것은 신령한 물질인데 이제 이 마음이라는 물질이나 몸이라는 물질이나 네 소유라는 물질이나 이 물질 가지고, 이것은 불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단 죄를 지었던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끝난다. 이것으로 친구를 사귀라. 이것으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하는 이 친구를 사귀라.
친구를 사귀라 말은 죄인을 사귀라 말 아닙니다. 친구를 사귀라 그 말은 누구를 사귀라고 하는 말이냐 하면 예수님을 사귀라 그 말입니다. 죄인의 죄 빚을 벗겨 줘라. 빚을 탕감해 줘라. 빚을 탕감해 주니까 이제 빚진 자를 대접했습니다. 빚진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전부 대신 다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예수님을 죄빚을 벗겨 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행하는 것이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 이렇게 하면 영원한 처소에서 너를 영접하리라. 내가 배고플 때에 먹여 줬고, 벗었을 때 입혀 줬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병들었을 때에 나를 돌봐 줬다.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비유에서 우리 기독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노력할 것은, 노력하는 길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이 한 길밖에는 없고, 또 자기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노력한 것은 아무리 노력해 봤자 헛일이라 그 말입니다.
부자의 것을 그 사람이 훔쳐다 딴 데 갔다 놨으면 다 압수해 가지고 다 가지고 오요. 이러니까 이 청지기가 부자의 것을 쫓겨나가면서 금덩이를 입에 머금고 가도 못 가는 것, 죽을 때 가져 갑니까? 부자의 것을 딴 데, 은챙이 하나라도 딴 데 돌려놔도 못 가. 돌려놔도 안돼. 인간이 죽을 때 어떻게 자기가 이 세상에서 어디로 저축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다만 이 한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가서 생각하고 생각하십시오. 이 길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참 우리에게 묘한 비유로 알려 주셨습니다. 이 길 외에는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심신을 가지고 영원한 문제를, 영원한 대우 문제, 영원한 대우 문제, 영원한 그 수치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뿐인데 지금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아무 방편도 소용없습니다. 다만 친구 사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친구 사귀다니? 예수님 사귀라 말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사귑니까?
예수님 사귀는 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이 길 외에는 예수님을 사귀는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이분을 사귀는 길은,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는 이것은, 왜? 인간의 죄를 예수님이 담당했기 때문에 예수는 죄뭉텅이가 돼 가지고 죄덩어리가 돼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죄인을 하나 구출하면 예수님에게 죄빚을 하나 이제 벗겨 주는 것입니다. 이 외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이분을 사귀는 길이 없습니다. 인간을 멸망에서 구출하는 것 이 외에는 대주재이신 이분을 사귀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 저주받은 내 심신의 이것 가지고 만왕의 왕을 사귀라. 만주의 주를 사귀라. 어떻게 사귑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1.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라
그러고 난 다음에 지혜를 또 가르쳤습니다. 이 일을 그러면 네가 각오하고 이것을 깨닫고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가 이 일을 실상으로 하려고 달려들어서 하려고 하면 하는 방편은 하나뿐이다.
네가 큰 것을 보고 욕심 내 가지고 달려들어서 아무리 해 봤자 안 된다. 그것은 안 된다. 네가 천 미터 산을 올라갈려고 할 때에 네가 세 자욱만 뛰어 올라갈려고 해도 안 된다. 평지 같으면 네가 뛰어오르면 한 세 자욱 걸어갈 것은 뛰어오를 수 있지만 오르막에는 네가 세 자욱 것을 네가 뛰어 가지고 못 올라간다. 첫 자욱부터 걸어라. 첫 자욱을 걸어 첫 자욱 떼 놓고 둘째 자욱부터 네가 걸어갈려고 하면 둘째 자욱에는 네가 도달하지 못한다. 셋째 자욱에 도달하려고 하면 그것도 안된다. 첫 자욱 밟고 둘째 자욱 밟고 셋째 자욱 밟고 이래 올라가라.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라. 지극히 작은 데서 시작하지 않고는 이 일은 절대 안 된다. 네가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큰 병이 들어서 큰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네가 이것은 주의 것으로 살아라.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주의 것으로 살아라. 주의 것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이 주의 것으로 사는 것이냐?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살고 죽은 것이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려는 이것밖에는 주의 일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지극히 작은 데에서 인간을 죄에서, 너와 다른 사람을 죄에서 구출하려는 이 일을 위해서 네가 하되 하기 쉬운 데서 하고 지극히 작은 데서 해라. 이러면 지극히 큰 순교까지도 되고 바울에게까지도 갈 수 있고 주님의 걸어가신 그 걸음을 걸어가고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 이랬습니다.
12. 누구 위해 살았느냐?
또 말씀하시기를 그 다음에 말씀했습니다. 12절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네가 남의 것을 아끼지 아니하면 남이 너의 것을 어떻게 아껴 주겠느냐” 이 말씀은 주님하고 상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네가 내 것을 아끼지 않는데, 네가 내 것에 대해서 힘써 주지 않는데 내가 네게 대해서 힘써 줄 게 뭐 있겠느냐? 무서운 말씀입니다. 네가 내 것을 아끼지 않는데 내가 네것을 아낄 것이 뭐고? 네가 내 것에 대하여 손 하나라도 꼼짝거리지 않는데 내가 네게 대해서 할 것이 무엇이냐? 네가 내게 속한 자를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 기울였으니 나도 너를 위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이겠다.
네가 너만 애써 살았지 내가 피로 인간을 구원하라 하는, 구원하고자 하는 여기에 대해서 손가락 하나 꼬부렸느냐? 네가 재물 지혜 총명 가지고, 지위 권세 가지고, 모든 부요 건강 가지고 너만 위해서 일생 동안 살았지 내 것 위해서 네가 털끝만큼이라도 노력한 것이 있느냐? 그런데 내가 너에게 할 이유가 있겠느냐? 네가 내 것을 아끼면 나도 너 아낄 것이고, 네가 내 것에 대하여 충성하면 나도 충성할 것이고, 네가 내 것에 대해서 전부 다 기울이면 나도 네게 다 기울이겠다 말씀하셨으니 여러분들 어떻게 살았습니까! 오늘까지 산 것이 누구 위해 살았소! 뭘 위해서 살았소?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1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네가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네 심신의, 심신 소유 이것은 다 물질입니다. 네 심신과 소유 이것을 위해서 살든지 너를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중히 여겨서 어느 것보다 어느 것이라는 하나만을 섬기는 그것이지 둘 다 섬길 수는 없다. 둘 다 섬기는 것은 제일 섬기는 그거 위해서 제이 섬기는 것은 네가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 섬기지 둘은 섬기지 못한다.
네 심신을 네가 섬기고 있느냐 대속하신 주님을 섬기느냐? 심신도 섬기고 주님도 섬긴다. 그러나 보다 어느 것이 있을 것이다. ‘하나를 경히 여기고 하나를 중히 여기고 하느니라’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 어느 것이 보다, 보다 어느 것인지? 어느 것이 최종이요 최고인지?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나만 주의 것이 완전히 되면 지극히 크신 하나님은 내 것 완전히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되어 있으나 건설적으로 영광적으로는 지금 돼야 합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꼭 같고 건설구원은 천층 만층 억억만층도 더 됩니다.
2008년 6월 14일, 04, A, bwyu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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