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자기가 처소를 만들려고 하지 말라

2004.02.23 20:34

윤봉원 조회 수:2043 추천:164

창 2:15-172004022901날자: 2004년년 2월 29일 주일 오전
제목: 자기가 처소를 만들려고 하지 말라
본문:창세기 2장 15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 1절∼6절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1. 사람병 낫는 법

1) 병들고 분망한 원인은 악령의 유혹을 받아서 그렇다

우리 사람들이 이렇게 분망한 그 이유는 분망할 만한 그런 무슨 원인이 있어 가지고서 이유가 있어서 가치가 있어서 분망하는 것이 아니고 분망하는 것은 순전히 이것은 악령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분망한 것이지 우리들이 그렇게 분망할 만한 그런 이유가 있어서 분망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휴식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휴식하는 것은 아니고 능숙하고 그것이 헛일을 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간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또, 만유시라 말은 만 존재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만유 안에 계신다 말은 만 존재 안에 계신다는 말입니다.

저 구더기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요. 또 만유라 말은 구더기도 그 하나님이십니다. 이상한 말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것이 생겨졌고 동하고 정합니다. 다만 우리가 거게서 주의할 것은 하나님이 구더기 속에도 계시고 구더기도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개미도 버러지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졌고 하나님은 그 안에 계셔서 역사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그러면 그 무한하신 요소가 분산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요소가 쪼개지고 갈라지고 나는 한 분말된 그 분자가 이제 그런 모든 만물이 된 것이냐 하는 그런 유혹만 막으면 됩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 본체나 모든 계획이나 행동이 이중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로 그렇게 일관되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그 모든 만물과의 그 관계의 비밀은 하나님의 그 불변 완전의 창조로 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가고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가 분리되어서 그런 것들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래서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요것만 언제든지 잊어버리지 말고 잘 심사해 나가면 잘못됨이 없게 됩니다.

2) 자기 할 일만 하고 하나님 할 일은 자기가 하려고 하지 말라

이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평안을 주고 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은 다 영생이오.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은 다 영생이오. 또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줄 아노라 하는 그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은 아버지에게 따라서 움직이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따라 하는 행동은 전부 영생이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옳은 것을 잡는 것은 내가 진리를 잡는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을 잡는 것은 진리에게 내가 붙들리는 것입니다.

진리에게 붙들리는 것, 옳은 것을 잡는 것은 진리에게 붙들리는 것이니 일은 내가 하는 것같이 껍데기는 나타나지만 일은 진리가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전능의 완전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능력 가지시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진리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진리인데 진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 단독 독자적인 그 전능의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진리를 찾아서 진리와 결합이 되면은 진리는 무한한 그 지능을 가지고 완전을 가졌기 때문에 그 진리가 나를 붙들고 일해서 내가 그 진리에게 이용이 바로 되지를 못하고 거기에 다 피동 되지를 못해서 거침이 있지만 그 진리가 우리를 붙들고 일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능하게 많이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구로 둬 두고 제 할 일만 제가 해야 되는데 저 할 일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하는 일을 맡기신 것은 전부 감당할 수 있는 일만 맡겼지 감당하지 못할 일은 맡긴 일이 없습니다.

이래 그 말을 ‘하나님은 우리를 감당할 시험 외에는 주지 안한다.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감당 못 할 시험을 시험만 보고 놀라지 말아라. 그 시험을 당하기 전에 미리 예비할 수도 있고 또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 가지고서 이렇게 하신다.’ 하나님의 하시는 이 섭리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자기 처소를 자기가 만들려고 하지 말라

1) 처소의 종류

자기 그 처소를 마련하는 것은 순전히 주님이 마련하실 때에 이것도 이용하고 저것도 이용하고 어떨 때는 열 가지를 이용할 때도 있고 스무 가지를 이용할 때도 있고 범위 넓게 이용할 때도 있고 범위 좁게 이용할 때도 있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활용해 가지고서 우리의 처소를 마련합니다.

자기 현실은 그 시간으로 말하면 바로 이 시간이 자기 현실이요, 또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 장소가 곧 자기 현실이요, 자기가 모든 존재들과 접촉하여 있는 그 접촉되어 있는 접촉 그것이 자기의 현실이요, 자기와의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 좋은 것 나쁜 것 전체가 현재에 자기와의 관련되어 있는 모든 피조물, 또 관련되어 있는 진리, 하나님 그 전부가 다 자기의 현실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하나님이 만든 처소라 그렇게도 볼 수가 있습니다.

공간적 처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당면한 자기 시간은 그것이 자기 처소입니다. 위치라. 경제적인 처소도 있겠습니다. 경제 처소. 자기가 가난하게 사는 것도 자기 처소요, 부자로 사는 것도 자기 처소요, 빚투성이가 된 것도 자기 처소요, 또 많은 채권자가 되어 있는 것도 자기 처소요. 경제 처소. 또 배가 고파서 못 견디는 그 경제면에 그래 어려운 것도 자기 처소요.

또, 자기의 지위 처소, 사람들이 말하기를 불행한 지위라, 행복스러운 지위라, 영광스러운 지위라, 모두가 다 싫어하는 지위라, 또 자기의 직책 있는 직위라.

또, 자기의 권세 처소,고문과 고형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주 고문과 고형을 당해서 뭐 뚜드려 맞고 오만 고형을 당하는 그것도 자기의 처소입니다. 또 그 사람을 고문 고형 하다가 아주 독약을 먹여 가지고서 자기들의 욕망을 달성할라 하는 그것도 자기 처소입니다. 또 독약을 마시워 가지고 독침을 찔러 가지고서 또 자기들의 욕망을 달성할라는 것도 그런 것도 자기의 다 처소입니다.

2) 다니엘 예증

다니엘은 삼 총리 중에 한 사람의 그 총리 지위를 가졌고 마지막에는 이제 삼 총리가 단일 총리로 될 때에 단일 총리의 위치를 가졌습니다.

특별히 다니엘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 법칙을 가지고든지 그 사람을 아무리 송사할라고 해도 송사거리를 찾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을 꾀를 내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지 안할라면 안 할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드는 그런 좋은 방편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범하게 하는 그것으로나 다니엘을 송사할 빙거를 만들까,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이 만들어서 아주 단일 총리가 된 그것도 그 처소입니다. 그 사람의 처소요. 그 사람의 처소요 그 사람의 처지요 그 사람의 위치요 또 그 사람의 현실입니다.

3) 응용 문제

기독교는 절대 논리의 도입니다. 논리 없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워야 되는데 없는 것을 확정지운다 할지라도 자기가 논리상 과연 이 없는 것이 과연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요 사실이다, 그게 실상이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 현실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서 만들어진다 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다 변증해 가지고서 그 시비에 이기지 못하면 결국 거기에 삼켜지고 맙니다. 이기지 못하면 삼켜지고 말아요. 이기지 못하면 삼켜지고 말아요. 이겨야 삼켜지지 안하지.

어떤 사람이 입신 중에 있다가 자기가 본 것을 내다 써서 말한 것인데 그 말이 맞습니다. 명상 많이 했다 말은 하나님의 도를 자기가 생각하고 생각해서 하나님이 도의 이치를 자기가 지식하고 난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자기가 완전히 알고 있어야 되고, 소원으로 가지고 있어야 되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실행해서 실상으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지 실상으로 가지고 있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의 소원대로 하나님이 이루시지 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좋은 거나 나쁜 거나 자기의 그 현 처소를 마련한 것은 하나님이 단독 마련하시는데 마련하실 때에 내개 혹 본인이 거기에 구비 요소로서 하나 끼여서 들어 가지고서 이용은 됐을지라도 절대로 그거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의 당신의 뜻대로 만드시지 인간에게 뭣이 주권이 있어 가지고 이라면 되고 저라면 되고 될 것이 이라면 됐을까 저라면 안 될까 하는 그것이 다 헛된 말입니다.

그보다도 더 놀랠 말 있습니다. 놀랠 말이 뭐인가? 영원 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절대의 주권 의지로 딱 예정해 놓으신 것을 그것을 주권 능력으로 성취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이리저리 말하는 것이지.

이러니까, 다 알고 나면 마귀란 놈이 손 들고 그 놈이 뭐 굴복 안 할 수가 없고 거기에 복종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워서 자기 처소, 자기 거처할 자기 거처, 자기 거처 자기 처지인데 경제적 처지도 있고 권세 처지도 있고 또 평안의 처지도 있고 영광의 처지도 있고 또 수욕의 처지도 있고 고난의 처지도 있고 여러 가지로 불안의 처지도 있고 억울한 처지도 있고 또 감옥에 투옥되는 처지도 있고 고문과 고형받는 처지도 있고 사형받는 처지도 있고 모든 처지가 있는데 그 처지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믿습니까! 여게는 대답하는데 저 뒤에는 대답도 안 한다. 믿습니까!  

3. 자기 처소는 하나님께 끌려 가라

그러면, 자기가 무슨 순종을 해서 된다 할지라도 자기 순종으로 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순종케 하는 대로 하는데, 우리 할 일을 무엇이냐? 우리 할 일은 다만 거게서 할 일은 뭐 할 일이냐? 우리 할 일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으로 거기 뭐라 했소?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이끌어 두사’ 이러니까 이 자기 있는 처소도 하나님이 만들었고 이 처소에 가게 되는 것도 제가 찾아 갔습니까 하나님이 이끌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 처소도 좋은 처소나 나쁜 처소나 그 처소도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만드셨다는 요것을 우리가 확신을 하고, 하나님이 내 처소를 만들었을 때 그 처소가 내가 조부라운 생각으로 할 때에는 해되는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고 별별 것이 다 있는데 하나님이 로마서 8장에 보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아끼지 안하고 주셨는데 하물며 만물을 너희에게 은혜로 주시지 안하겠느냐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처지로 들어가는 것은 그러면 그것은 우리가 좋은 처지를 찾아야 됩니까 피해야 됩니까? 만드는 것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만든다고 확정을 지웠습니다. 그러면 찾아가는 것은 우리가 찾아가야 됩니까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됩니까?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됩니까 찾아가야 됩니까? 끌려가야 됩니다. 끌려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됩니다.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은 하나님이 오라 하면 가고 있으라 하면 있고 그분 시키시는 대로 그와같이 내가 졸졸 따르는 것이 그분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좋은 처소를 선택하는 일을 아예 이것은 엄금해야 됩니다. 자기 처소에 선택을 좋다 나쁘다 하는 처소의 선택을 아주 자기가 하는 것을 엄금해야 됩니다. 자기 처소 선택은 아예 엄금해서 안 해야 됩니다. 알겠소? 자기 좋은 좀 보다 나은 처소를 자꾸 이거 자기가 택해 갈라 하는 그런 것은 아예 엄금해야 됩니다. 엄금해야 됩니다.

차이가 좋고 나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들 생각으로 그렇지 꼭 동등입니다. 동등이오. 이제 자기가 잘못하면 좋은 처지 하나도 없고 바로 하면 안 됐는 처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끌고 가는 데에 끌려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끌고 가는 데 끌려가는 것입니까? 가자 하는 데 가면 끌려가는 것이지.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키시는 대로 하는 그것이 끌려가는 것이며 그것이 따라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는 것이라 하는 것을 또 확정을 지웁시다. 하나님의 인도받는 것은 하나님의 그 뜻을 자기가 거절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인도를 받는 것.

4. 악령은 약자를 통해서 미혹 시킨다

아담이 그만 거게서 실패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직접 한 것이 아니고 해와로 더불어 이래 가지고서 아담에게 들어왔어. 해와로 더불어. 해와가 선악과 먹고 그 다음에 이차적으로 아담이 선악과 먹었어. 그것은 마귀가 작동한 작동인데 마귀가 작동하는 것은 마귀는 강자부터 달라듭니까 약자로부터 이제 자꾸 점령해 들어갑니까? 약자로부터 점령해 들어가요.

이러니까, 강자 제가 아무리 억세도 약자로부터 점령해 들어가니까 꼼짝 못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해와가 아담 요량하면 약자기 때문에 해와가 점령을 당하고 보니 그 다음에 아담이 차차 점령해 당해.

해와는 누구 때문에 죽었소? 뱀. 뱀인데 그 뱀이 뱀이 동물인 이 뱀입니까 뱀 껍데기를 마귀가 입고 온 마귀의 이용물입니까? 마귀의 이용물입니다. 마귀란 놈이 인류 시조를 미혹시켜서 죽일라고 할 때에 사망을 시킬 때에 그 마귀가 직접 달라들었습니까 물질을 통해서 이렇게 전투를 했습니까? 물질을 통해서 했습니다. 이런 것도 자꾸 하나님이 천하에 둬도 온 천하에 둬도 다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양을 축소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축소해 준 이것을 예사로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 하필 뱀을 통해서 했는가? 뱀이 그게 무슨 동물인데 무슨 권리가 있겠소? 악령이 뱀을 통해서 나타나서 유혹시켰다 하는 요것도 악령은 언제든지 약한 우리의 약점을 통해 가지고서 역사하기 때문에, 또 약자를 통해서 우리를 미혹시키고 또 아주 약자로 더불어, 만만한 아주 친근하고 만만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통해 가지고 자꾸 우리를 유혹시키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5. 선악과 먹게 된 순서

1) 멸망과 구원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

인간의 전 행복이 아담이 에덴 동산에 있을 때에는 참 행복이 있었는데 인간의 총 행복이 그 선악과 먹음으로써 절단이 됐는데, 그 선악과 먹게 된 그 동기나 그 순서가 어떠합니까? 선악과 먹게 된 그 동기 그 순서가 뭐입니까?

그때에 멸망받는 그 멸망을 지금 우리가 다 그 멸망을 받고 있습니까 이제 멸망에서 해방이 돼서 우리는 멸망에서 벗어나 가지고 있습니까? 멸망에서 벗어나 있습니까 지금 멸망 속에 들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완전히 멸망받은 그 멸망 가운데 우리가 들어 있으니 멸망 가운데 들어 있는 사람이니까 이제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앞으로 멸망할 수도 있고 구원될 수도 있고 이제 미래의 미결인 이 멸망에서 일단 벗어나 가지고서 앞으로 내가 지금 멸망을 하나 구원 얻나 이 멸망과 구원이 다시 내게는 미결로 돼 가지고 있고 이미 멸망에서 구원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구원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구원된 이 구원이 이것이 그대로 유지가 되나 안 되나? 이 구원이 그대로 유지 되나 안 되나? 이 구원이 또 멸망이 되나 구원이 되나? 이 구원이 유지 되나 안 되나? 이 구원을 이미 받은 이 구원을 멸망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써 그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멸망 된 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 멸망에서 구출을 받았으니, 구출을 받았으니 이제는 구출 받았는데 구출받은 우리가, 구출받은 우리가 앞으로 지금 내가 멸망할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고 그 양면에 그 기로에 서서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몇 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까? 구원받은 것이 세 가지라 할 수도 있고 또 두 가지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그 멸망하는 멸망에 우리는 빠져서 멸망했던 자입니다. 멸망했던 자인데 멸망했던 자를 예수님의 그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멸망에서 완전히 구출돼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영, 혼, 몸, 영육 둘이면 둘하고 또 서이라 하든지 어쩌든지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서 완전히 구원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완전히 구원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사망 아래 있지 않습니다.

완전히 구원을 받은 우리들인데 우리가 지금 이 앞으로 내가 멸망을 받나 구원을 받나 하는 것은 이것은 미래에 있습니다, 미래에. 내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멸망 받을 수도 있고 하는 것이 미래에 있으니까 미래에 있는데,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멸망을 받을 수도 있는 이 미래에 있는데 미래에 있는 것은 그라면 뭐입니까? 미래에 있는 것은 영입니까 마음입니까 몸입니까? 영입니까 육입니까?

뱀, 요 마귀도, 뱀은 마귀가 이용한 것인데 마귀도 그때 마귀 그 마귀, 죄도 그때 죄 그 죄요. 마귀의 전법이나 그 모든 유혹하는 술법 우리를 사망케 하는 그 법칙이 꼭 같은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법칙을 우리가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구원 얻을라면 그 법칙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다시 멸망하지 안하지만 우리 육은 마치, 에덴 동산과는 다르기는 다릅니다. 다르기는 다르지만 그때 그들이 살아 가지고 있는 그 생명과 자유의 행복을 다 뺏기게 된 그것이 하나님이 먹으면 죽으리라 하는 그 선악과실을 먹어서 죽었는데 오늘도 우리가 선악과 먹으면 죽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죽으리라 하는 것을 성경에 많이 말해 놨는데 죽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이거 행하면 이렇게 하면 죽는다 하는 그 행동을 우리가 하면은 죽게 됩니다.

2)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 버려서 멸망을 받았다

첫째 아담을 죽인 그 마귀가 첫째 아담을 죽인 그 방편을 가지고 오늘도 우리를 꾀워서 죽일라고 지금 쉬지 안하고 분투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마귀가 아담을 죽일 때에 쓰던 그 방편을 오늘도 꼭 같은 방편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어떻게 해서 죽었다 하는 아담이 그 마귀로 말미암아 죽은 그 방편을 오늘 우리가 똑똑히 알면 우리는 그것을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모르면 방지 못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것은 지나간 일이니까 우리가 벌써 많이 알고 연구해 온 일이기 때문에 그 아담이, 이 마귀는 뱀인데, 뱀은 그 마귀인데. 이래서, 마귀가 뱀을 입고 왔기 때문에 그 마귀라요. 마귀에게 유혹받아 가지고서 아담 해와가 그 좋은 처지도 다 저주받은 처지로 쫓겨났고 또 자자 손손이 다 사망했습니다. 망했습니다. 완전히 죽고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유황불구렁텅이 그만 저거들의 그만 영원한 처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방편은 뱀을 입고 와 가지고서 꾀웠는데 그 순서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꾀이게 됐습니까?  사람이 자기 마음에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말씀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게서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하는 그 말 하는 것을 누가 이랬는데. 인간의 멸망의 제일 원인은 무엇이냐? 자기 마음에 하나님 생각하는 것이 없는 그것이 멸망의 제일 시발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 없는 것이 그것이 멸망의 시발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어데서 시작되느냐? 하나님 생각하는 데에서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는 데에서 거게서 구원이 시발됩니다. 이거 알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의 시발은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 생각하는 것, 하나님 사모하고 말씀 사모하는 이것이 구원의 제일 시발이요 멸망은 그 마음에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 생각하는 것 없으니까 그 마음은 어찌 돼 있습니까? 그 마음은 어찌 돼 있소? 퉁퉁 비어 있습니다.

사람은 독립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절대 독립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내가 수십 번 뭐 수백 번 말했을 건데. 사람은 독립 존재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의속하든지 어디에 의속하든지 의속하고 어데든지 속해 가지고 살지 어데도 속하지 안하고 독립은 못 합니다.

또 사람이 능동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에게 능동이 크고 작은 능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에게 크고 작은 능동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에게 능동은 없습니다. 요런 것도 확정을 지워 버려요. 사람은 제가 능동적으로 저 단독이 행동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에게 피동이든지 저것에게 피동이든지 어데든지 피동이지 피동 아닌 행동은 하나도 없습니다. 피동 아닌 행동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이라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그것은 비어 가지고는 있지를 못 하는 것입니다. 비어 가지고는 있지를 못합니다. 그때 그 뱀이 해와를 접촉할 때에 해와의 마음은 비어 있었습니까 그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습니까? 비어 있었습니다. 비어 있었어. 그 해와의 마음은 정상적으로 하면은 해와의 마음은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해와의 마음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인 그 사람의 마음이라.

이래서, 베드로후서에 말씀하시기를 더 나은 이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이 예언의 말씀을 네게서 날이 새며 샛별이 네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가하니라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가하니라. 그러기 때문에 그 아담 해와에게 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각이 없고 하나님 말씀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죽음의 원인입니다. 요것이 여러분들에게 강하게 안 느껴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사는 그 원인, 사는 것이 어데서부터 시발됩니까? 어데서부터 시발됩니까? 더 나은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예언의 말씀을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말하는데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너희 마음 속에 뭐라 했소? 어데? 날이 새며,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랬어.

이러니까,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그 속에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마귀가 절대 침범 못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마귀가 침노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성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자기 생각에서 비웠으면은 그 사람은 그 시로 하나님도 생각 안 하고 말씀도 생각 안 하고 자기 마음은 그대로 텅 비어 있으면은 비워져 가지고서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즉시 마귀 들어옵니다.

하나님 생각 하나님 말씀 생각이 자기 속에 없어, 그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이 자기 생각 속에 있지 안할 때에는 벌써 마귀는 들어와 있습니다. 이거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을 생각하는 것으로만 그 놈이 쫓겨나갑니다. 다른 걸로는 쫓겨나가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나 하나님이라면 우리의 중보자 곧 주님이신데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생명이 육체의 생명을 본다면 육체의 생명하고 신령한 생명하고 한가지인데 그러면 이 생명이 떠나면은 그 육의 생명은 내나 따로 있습니다. 우리의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은 육의 생명이 아니오. 육의 생명이 아니고, 육의 생명이 아니고 그것은 전 인격의 생명인데 육체의 생명에 생명이 떠나면 그 다음에 떠나는 그 즉시로 일어나는 결과는 뭐입니까? 생명이 떠나면은 그 육체에게 생명 떠난 증표가 나타나는 것은 뭐입니까? 썩는 거라. 그만 썩습니다. 시간 안 걸려요. 몰라 그렇지.

아무리 미인이고 미남이라도 생명 딱 떠나면 즉시 그만 뭐뭐 그저 일 분도 안 가서 썩어버려요. 사람이 여간 좀 뭐 약으로 이래 하고 이래 해도 생명 딱 떠나서, 그 마취한다고 생명이 떠납니까? 생명 안 떠나고 자꾸 그 속에 그래도 산소로 불을 때 가지고 그 속에 뭣이 작용이 있어 그렇지 생명이 딱 떠났다고 하면은 즉시 썩습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과 진리를 잊어버리면, 주님과 진리를 만일 일 분을 잊어버렸습니다. 일 분 동안을 잊어버렸습니다. 일 분 동안 잊어버렸으면은 그 심령은 어찌 됩니까? 주님과 진리를 일 분 동안을 잊어 버렸습니다. 잊어 버리고 있었으면, 잊어 버리고 있었으면 잊어 버린 그 동안에는 그 심령은 어찌 됩니까? 마귀의 밥 되기 전에 썩었어. 썩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이 떠나면은 즉시 우리 몸이 썩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그 인격의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떠나서 주님 잊어 버리고 곧 영생하는 이 진리를 잊어 버리면 우리 생각에서 생각이 없으면, 주님과 진리를 생각지 안하고 주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에 없을 때에는 즉시 그때부터 우리는 썩습니다. 우리는 썩는다는 말은 우리는 전부 헛 생활입니다. 그 떠난 일 분이면 일 분 그것은 썩어서 다 죽은 것이고 오 분이면 오 분 썩어 죽은 것이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서 작용하면은 그 다음부터는 마귀의 사망의 역사를 일으키고야 만 것입니다.

이래서, 그것을 한번 가만히 좀 생각해 봐요. 아담 해와가 그때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던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아주 완전히 잊어 버리고 있었던가? 어때요? 생각하고 있었으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으면 하나님이 내주하시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붙잡는 방편을 그때 말했는데 붙잡는 방편이 몇 가지지요? 붙잡는 방편을 몇 가지라고 그때 배웠어요? 다 잊어버렸나? 하나님을 내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방편을 그때 몇 가지로 가르쳤지? 이거 다 잊어 버렸구만? 여기에도 몰라요? 일곱 가지로? 한번 말해 봐요.

믿고 바라보고 맡기고 의지하고, 또? 순종하고 인내하고 또 뭐라 했노? 사모하는 거? 녜, 그것은 감사하고 하는 것은 못 떠나게 하는 거라. 못 떠나요. 당신이 약속을 했는데 자꾸 바라보는 자를 어떻게 냅두고 갈 수가 있어? 그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이 뚝 떠나면은 하나님이 위약자요 계약 이행자요? 위약자라. 바라보라 했는데 바라보는데 그거 소망 해 주지 안하고 떠나면 되겠소? 믿는데 어떻게 떠나겠어? 또 자기를 다 맡겨버렸는데, 맡기는데 자기를 다 맡겼는데 냅두고 어째 떠나겠소? 맡겼는데 당신이 책임져야 안 돼요? 또 그분에게 따라서 그저 그분의 말하는 대로 이래 순종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어찌 떠나겠소? 못 떠나.

6. 멸망의 원인 두 가지를 잊지 말라

그러기에, 오늘 오전에는 이제 요것을 지금 좀 기억합시다. 어쩌든지 아담 해와가 뱀의 유혹을 받은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선포하신 네 가지 말씀을 잊어 버렸습니다. 다스리라 지키라, 먹으라 먹지 말아라 하는 네 가지 이 말씀을 잊어 버려서 그 마음이 비었어.

우리 마음이 비었을 때에는 썩습니다. 우리는 자존자가 아니기 때문에, 독립자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비었을 때에는 썩습니다. 마음이 비었을 때에는 썩고, 썩기 시작하면 뭣 들어옵니까? 마귀 들어와.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공부합시다. 언제든지 자기가 주님과 말씀을 생각하는 이 일을 계속하고 끊지 맙시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합니다.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하지만 그 불건전한 신비주의라고 말하는 그 조롱하는 거기에 참된 신앙이 있습니다. 거기에 참된 신앙이 있습니다.

그저 잘못하면 우리가 자꾸 사모하고 이렇게 하는 신앙에서는 불건전한 신비주의라고 조롱받는 일이 있고 혹 실수되는 것이 있지만 그런 것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딱딱 지키고 요래 나가는 것이 신앙인 줄 알아도 그라면은 그것이 하나의 율법주의가 돼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 보면은 다 실상은 악이 속에 주장되고 속에 악을 어떻게 뽑아버릴 거냐? 악을 뽑아버려야, 악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인데 자기 중심을 뽑아 버려야 뭐 일이 되는데 자기 중심을 무엇으로 뽑아 버리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는 데만 우리 마음은 성전됩니다. 그러면 여기에 자기 중심은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자기 중심이 없어져야 비로소 성공이 거게서 시발이 되고서 움을 트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 인류 시조가 멸망받게 된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인류 시조가 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다가 멸망케 된 그 원인, 마귀로 말미암아 멸망했고 선악과 먹어서 멸망이 완전히 완성되고 말았는데 멸망케 된 그 원인이 인류 시조가 멸망케 된 원인이 몇 가지입니까?

자, 아담 해와가 마귀에게 꾀여 가지고서 선악과 먹어서 멸망받았는데 아담 해와가 멸망받게 된 원인, 마귀에게 유혹받은 원인, 선악과 먹게 된 원인 그 원인 중에 원인이 몇 가지입니까? (두가지!) 뭣뭣입니까? 하나님 잊어버리고 말씀 잊어버린 것. 그래, 말씀과 하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실 때에는 마귀가 못 들어옵니다. 이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88080971 설교 요약}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