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증거

2003.09.02 16:23

윤봉원 조회 수:1303 추천:131

마 9:1-82003090333날자: 2003년 9월 3일 수밤
제목: 믿음의 증거
본문: 마태복음 9장 1절 – 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1. 치료 받은 중풍 병자

성경에는 어떤 사건에 대한 것을 다 기록하지를 못합니다. 다 기록할라면 기록한 책을 온천하에 둘지라도 천하가 모지란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도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자기 양심을 쓰면 성신의 감동이 깨닫게 해 주셔서 구원 얻는 이치를 깨달을 만큼 그렇게 간추려서 하나님이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도 그 환자를 옆에 성한 사람들이 메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에게 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를 사하였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위에 둘러 선 그 사람들 중에 성경을 잘 아는 사람 하나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죄는 하나님 밖에는 사해줄자자 없는데 자기가 죄를 사해준다고 그렇게 참람된 소리를 한다 그렇게 속으로 수근 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네가 어떻게 이런 사사로운 마음을 품느냐 그것이 성신의 감동의 마음이 아니고 네가 가진 네 마음대로 지금 생각하고 말한다 보라 네 생각에는 죄를 사했다는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표가 없으니까 사했는지 안 사했는지 그 소리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네가 생각되지지, 그러나 죄사한다는 것과 또 이 환자가 나아서 걸어가는 것과 어느 것이 쉽고 어렵겠느냐 하시면서 그 환자를 예수님께서 상을 들고 네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니까 그 환자가 즉시 낳아서 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실을 아무런 과학적인 치료를 하지 아니하고 이 환자가 낳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 것인데 이것은 하나의 표적입니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하나 나타내 보여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 것을 하나 흔적으로 표적으로 이렇게 나타내서 우리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2. 믿음의 증거

1) 확신

첫째는 확신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병을 다 치료해주십니다. 치료해주시는데 치료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확신을 가졌으면 가진 증거는 중풍 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믿음과 또 환자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 해 주신 것처럼, 내가 어떤 병에 걸려 있다 하더라도 나도 나의 모든 병을 치료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2) 안심

둘째로는 거리끼는 그것을 찾아서 고치게 됩니다. 고치면 그 다음에는 그 확신이 안심으로 바뀝니다. 안심이 되는 그 확신이 확신이랑 되지 안심이 안되면 확신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이차적으로 안심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중에 화평을 말씀 했는데 전쟁이 다 끝나고 난 이후의 평화로운 상태와 같은 평화와 안심, 안정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비유는 아니지만 마치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은 경찰이나 경찰서, 법원 앞을 지나가더라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이 자기의 죄를 다 고치면 반드시 안심이 되어 집니다.

3) 기쁨

셋째로는 이제 안심되는 그 확신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기쁨이 됩니다. 받지도 안했는데 기뻐요, 벌써 받아 놓은 것 한가지 이기 때문에 받아 놓은 것과 같은 기쁨이 옵니다.

4) 단행

넷째로는 기쁨이 오면은 그 다음에는 단행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게 되버입니다.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뛰라” 하면 뛰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 가라”하니까 걸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라 하면 합니다.

① 다니엘 예증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가는 그것이 어려운 줄 알아도 그런 이런 순서를 거친 확신이기 때문에 사자 구덩이 집어넣을 때에 그는 심한 평안과 기쁨이 솟아 올랐고 기쁨이 솟아 올랐기 때문에 다리오 왕이 말해도 조금도 상관없이 “아 나는 기도를 계속하겠습니다.” 하고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는 그 행동이 필연적으로 안나면 저는 죽는 것 같고 그 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② 베드로 예증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오라 명할 때에 주님이 오라고 하셨으니 오라 하신 주님이 책임 지시고 이를 잘해 주실 것을 확신할 때에 확신할 때에 물도 육지와 같이 자기에게는 복종했습니다. 이용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저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걸어 오라고 명령하신 그분의 그 능력을 가지고서 베드로 안에서 역사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 말씀하셨고 계기를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야 네가 확신할 대에는 물위로 걸어 갔는데 믿음이 흐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너희에게 역사함이 빈약했고 빈약할 때에 너는 물에 들어 갔고 들어 갈 때 너는 의심했고 의심하니까 완전히 빠져들어 가 버렸고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베드로가 물에 빠져들어가면서 이제는 죽겠다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주님께서 다시 손을 내밀며 일으키면서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 하였느냐 하시니까 그때사 새로 확신을 가지니까 주님과 함께 물위로 더벅더벅 걸어서 배에게 까지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3. 신구약 성경의 계약 대상인 우리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뜻이라면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말씀하신 이 계약을 우리는 맺은 계약에 바로 당사자 입니다. 하나님도 당사자 입니다. 이 계약을 해 놓으시고 이 계약 저 계약 어느 계약을 지킬까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께서 요 현실에는 이것 해라 저 현실에는 저것 해라 오늘날 내게 명하는 요것은 그 현실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이대로 할라고 할 때에 아무리 강한 정권자가 대항을 해도 정권자 보다 무한히 크신 분이 내 배후에 계십니다. 나와 함께 하고 계시요. 어떤 혹독하고 맹수가 들 끊고 무엇이 방해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지으신 분이 나와 계약했고 그분이 주권하시고 그의 생명과 모든 활동을 주권하고 계시는 이 분이 책임지고 하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문제는 확신입니다. 확신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혹 거리낌이 없나 이것이 생각이 나집니다. 이래서 다니엘도 ‘나는 나의 무죄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오며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안한 것을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을 말한 것이 순서를 벌써 지내온 것이요. 무슨 거리낌이 없는가 이기 나오고 그것을 깨달아 자기가 고치면 안심이 나옵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안심이 나옵니다. 안심이 나오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어려운 일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작은 내가 했지만 주님이 해주실 것을 생각하니까 기쁩니다. 기쁨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안할래야 앉아 앉아 있질 못해 하고 싶어서 안하고는 못견딘다 말이요 당장 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확신의 믿음을 가지자!

그러기에 우리가 요 확신을 가지지 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져야 되지 여기에 보니까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그만 병이 싹 낳았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고쳐 주실 것을 확신 할 때에 확신하니 그는 마음에 평안했고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옷가라도 만지면 낳으리라 행동 하니까 그 확신 가지고 행동하는 거게는 주님의 능력이 나가지 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은 뭘 가지고 하느냐 하나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걸음은 인간이 몰라 그렇지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 몰라 그렇습니다. 전부 하나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성신 하나님으로만 할 수 있는 그 일을 인도합니다. 우리 보기에 쉽든지 어렵든지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 나기는 데에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라면 우리는 확신만 가지고 행하기만 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무한하심이 이 일을 책임지시고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사업을 해도 이렇게 해야 되고 공부를 해도 이렇게 해야 되고 전도를 해도 이렇게 해야 되고 살림살이를 해도 이렇게 해야 되고 직장 생활을 해도 이렇게 해야 되고 요렇게 확신을 가지고 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확신은 두 마음이 아닙니다. 확신은 한 마음이요 안심이요 기쁨이요 필연성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무한한 능력이 이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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