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지우개가 없다!!

2004.06.05 14:20

윤봉원 조회 수:1762 추천:165

계 22:11~122004.06.06날자: 2004년 6월 6일 주일오전
제목: 인생은 지우개가 없다!!
본문: 요한계시록 22장 11절 – 12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1. 이생이 아닌 일생

노트에 필기를 하다가 잘못 쓰면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일생(一生)이라 하고 이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이생이면 다음 생애에서 다시 한번 잘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인생은 일생이기 때문에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지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잘 살면 잘 산 대로 못 살면 못 산 대로 기록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게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어떤 행함입니까?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인의 행위, 웃시야의 행위, 삼손의 행위, 사울왕의 행위, 유다의 행위, 발람의 행위, 고라의 행위, 아합의 행위, 누가 이들의 더럽고 추한 행위를 지울 수 있습니까? 아무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인생은 지우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사람이란 다 실수를 합니다. 죄를 범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도 의인은 없습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짓고 살아갈지라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곧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축복된 생활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2. 존귀에 처한 성도

1) 존귀의 내용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어떻습니까? 시편 49장 20절 말씀입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그렇습니다. 존귀에 처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귀입니까?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가난에서 부요에 이른 존귀입니다(고후 8: 9). 질병에서 건강에 이른 존귀입니다(벧전 2:24). 멸망에서 영생에 이른 존귀입니다(롬 1 : 1-9) .저주에서 축복에 이른 존귀입니다(갈 3: 13).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보다 못하다는 교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바르고 아름답게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은혜입니다.

2) 모세, 다윗, 바울

모세를 보십시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했습니다(히 11:24-26)

다윗을 보십시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했지만 자신의 허물과 죄를 뉘우치고 침상이 썩도록 회개함으로 성군이 되고 위대한 이스라엘의 등불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후손으로 통하여 메시아가 탄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히브리인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요, 율법로 흠이 없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로마의 시민권까지 갖고 있으면서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지난날의 자신의 모든 행위가 죄악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다메섹도상의 회심 이후 일평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았기에 역사 이래 바울 같은 신앙인도 신학자도 없을 정도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3. 결단을 내려라

1) 거절하는 삶을 살기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오늘을 살아야 합니까? 죄악의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이방여인을 거절하는 결단이 없어 그의 말년을 가슴 아프게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사명을 잘하다가 말년에 들릴라의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을 하지 못해 두 눈을 뽑히고 소처럼 맷돌을 돌리다가 다곤 신상과 함께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생애를 마무리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선지자로서 모압왕의 재물로 범죄케하는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을 하지 못하여 유다서에 기록되는 저주받은 세 사람 중의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웃시야도 왕으로서 훌륭한 통치를 하다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의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을 하지 못해서 그의 말년을 문둥병자로 별궁에 거하면서 비참한 생애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것은 죄의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의 힘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인생은 지우개가 없음을 바르게 인지하고 확신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새 생활을 위한 어제의 누더기적 삶을 벗어버리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이용하기로 결단을 하라

① 바울의 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데 사용하시기 위하여 각자의 형편을 만드시고,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면서 우리를 양육해 오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주와 복음을 위하여 맡은 바 사명을 위하여 감당하는데 이용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역사 하신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하여 어제의 옳지 못한 것들을 벗어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인생을 아름답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그처럼 귀히 여기고 추구했던 온갖 부귀와 학문과 영광과 명예도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에는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害)로 여겼다고 고백한 바울에게서 인생의 지우개 없음을 깨달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 가문과 명예와 학문과 권력과 재물과 같은 모든 것들은 한갓 누더기에 불과한 것으로 깨닫게 된 것은 예수를 알고 난 후입니다. 이제 그 무엇도 예수보다 좋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기에 그는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릴 수 있었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어제의 누더기는 무엇입니까? 보다 더 나은 것을 얻는 일에 방해되는 것은 누더기입니다. 그것을 과감히 벗어버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말이 더 좋은 것이면 거짓말은 분명 누더기입니다. 사랑함이 좋다면 미움은 누더기입니다 성실함이 좋다면 게으름은 누더기입니다. 감사함이 좋다면 불평은 누더기입니다. 효도함이 좋다면 불효는 누더기입니다. 이타적인 것이 좋다면 이기적인 것은 누더기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생활을 하면서 예배 생활을 방해하는 누더기는 무엇입니까? 헌금 생활을 하는 누더기는 무엇입니까? 전도 생활을 방해하는 누더기는 무엇입니까? 봉사 생활을 방해하는 누더기는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을 깨달아 과감히 벗어버리는 삶을 살아갈 때 그의 인생은 아름답게 기록될 것이며 그 아름다운 삶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 또한 없을 것입니다.

섬기는 삶이 인생의 최고의 가치 있는 축복이며 행복된 삶임을 깨닫고 생활하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긴다는 것은 비굴이 아닙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가 섬김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첩경의 삶이 섬기는 삶입니다.

② 예수님의 모범

예수님이 무엇이라 교훈하셨습니까?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도리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막 10:45). 이 한 말씀 안에 예수님의 섬김의 교훈이 가득차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직접 잡히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김의 도를 실천하시고 본을 보이셨습니다.

③ 다미 선교회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인생도 마지막 날이 있음을 깨닫고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은 간 경화로 생명을 잃기 쉽고, 담배를 많이 피운 사람은 폐암에 걸리기 쉽고, 고스톱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돈의 노예가 되고 게으른 자가 되어 멸망하게 되며,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육신도 정신도 병든 자가 됩니다. 그러나 절약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풍요함을 누게 되며,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그만큼의 행복이 있으며, 성실로 음식을 삼은 사람은 행복의 날을 노래합니다. 인간사에는 원인이 있으면 결과 또한 있습니다. 그처럼 세상을 혼란케 했던 다미 선교회는 당연한 결과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원인을 만들어야 합니까? 미국의 법률학자 잉거솔이 말했습니다. "현재는 필연적인 과거의 산물이며, 현재는 필연적인 미래의 원인이다." 그렇습니다. 현재는 필연적인 미래의 원인입니다 내일의 행복한 날을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받는 내일을 위하여 오늘 우리는 어떤 원인을 만들어 가는 삶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남편 다섯을 두었던 원인으로 사람들의 낯을 피하여 정오에 물을 길으러 왔지만,거기서 예수를 만나는 두 번째 원인 때문에 물동이를 던지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면서 복음 전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남은 생애를 당당하고 감사함으로 살았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주먹을 쓰는 원인으로 평양의 깡패가 되었지만 예수를 믿는 제2의 원인 때문에 위대한 한국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고재봉 씨는 도끼로 일가족을 죽인 원인으로 살인마가 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옥중에서 예수를 믿는 제2의 원인으로 옥중에서 전도를 1,800명이나 하는 아름다운 생애를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원인을 만들면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원인을 만들면 슬프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너무 너무 행복한 삶을 살아가 가기를 소원하십니까? 세계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게 되시기를 소원하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남은 생애를 축복과 생명의 길로 만드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죄를 대속한 구주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즉 성령님을 우리의 삶 속에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존귀하게,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삶으로 주님과 같은 온전한 사람으로 성화 되어 가고 자라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의 원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내일의 삶을 축복과 영생으로 결과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인생의 지우개 없음을 깨달아 아름다운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의 내일은 주님 안에서 날마다 감사함으로 기쁨을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왜 살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하루만 살고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백년을 살고도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일생을 마친 사람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생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거니와 F. J. 크로스비 여사는 태어난지 6 주만에 이웃의 잘못으로 자기의 눈을 실명하고 소경이 됩니다. 그리고 95세를 살았습니다. 95년을 살았던 크로스비 여사는 9,000여 편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전세계 기독교회의 찬송가에 그녀의 작사 작품이 기록되지 않은 찬송가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찬송가도 그녀의 작품이 22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446장 같은 경우는 크로스비 자신의 생애를 잘 묘사해 준 내용으로, 시편을 읽다가 무릎을 꿇고 그 가사를 쓴 것이었습니다. 95년 동안 앞을 보진 못한, 진정 앞이 보이지 않아 캄캄한 밤 같은 세월을 살던 크로스비의 그 작시된 노래 모음집을 보면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그녀가 95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칠 때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절대 불행한 환경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 불행한 환경을 행복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 생애를 그렇게 결론지은 그분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찬송가 446장입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95년 동안 사막 같은 삶의 날들을 종일 걸어가도, "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신다는 이런 찬송시가 있기에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어려움 가운데서 힘을 얻고 사는 것입니다.

4.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열매를 맺읍시다!

안개가 짙은 섬은 에메랄드가 형성되기에 참 좋은 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먹장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또 대지 위에 햇빛을 쏟아 붓습니다 겨울에 제비가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제비가 다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겨울 지나 봄이 되면 또 제비는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겨울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있다고 해서 그 나무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봄이 오면 다시 거기서 움이 돋고 싹이 나서 푸른 숲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보다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신앙인으로 살아갑니다. 일생을 마치고 난 후 나의 인생이 더럽고 추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손가락질 받지 않는 보람 있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시민으로서,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로서 무익한 종으로 진리와 영감을 따라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마음과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여 많은 사람들을 올은 데로 인도하고, 만물의 소원대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참여 시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신 26:19)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의 청종의 본능적인 삶을 통하여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는 열매가 맺어지는 나그네 한 토막이 되도록 합시다.

인생은 지우개가 없습니다!

실패하고 후회하는 인생을 살지 맙시다!

기회 지나가고 나서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승리에서 승리하는 행복의 주인공의 멋진 인생을 살다 가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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