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설교] 사활대속의 구원

2003.10.25 19:34

윤봉원 조회 수:1229 추천:144

딤후 3:152003102601날자: 2003년 10월 26일 주일오전
제목: 사활대속의 구원
본문: 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 두 종류의 믿음

1) 사망에 속한 믿음

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고 마귀가 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이는 한없는 보배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성경에 있는 것을 다 자기 것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이 믿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과 영원과 완전과 불변에 속한 것은 전부 다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믿음은 아무리 좋은 믿음이라도 다 사망이 됩니다.

쌀하고 물하고 불하고 이래 셋을 합하면은 무엇이 됩니까? 밥이 되지요. 쌀하고 물하고 또 불하고 이래 셋을 합하면 밥이 됩니다. 쌀하고 물하고 불하고 합하면 밥되는 그거, 그것을 믿어야 됩니까 안 믿어야 됩니까? 믿어야 됩니까 안 믿어야 됩니까? 믿어야 됩니다. 믿어야 되는데 그 믿음은 세상이 주는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입니까? 세상이 주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주는 믿음인데 그것도 죽게 하는 것뿐입니다. 사망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사망하게 하는 것뿐이오.

또 전기를 시설해서 전선에다 이으면은 이 불이 오는 것을 전등이 켜지는 것을 믿어야 됩니까 안 믿어야 됩니까? 믿어야 됩니다. 그것도 사망에 속한 믿음입니다.

2) 생명에 속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다 영생이 된다 하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은 생명에 속한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성경이 능히 너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한다” 하는 이 말씀은 생명에 속한 것입니다.

2. 사활대속의 구원

예수님의 사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죽으심이 죽을 사(死) 자 사요,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심이 살아날 활(活) 자 또 활이라. 예수님의 사활로 우리가 일곱 가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은 두 가지로 죽으셨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값의 죄의 형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하나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을 대신 하시느라고 죽기까지 힘써 가지고 하신 그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우리 형벌 대신 죽으심으로 몇 가지 구원을 이루었는가? 그것은 세 가지 구원 이루었는데 한 가지 구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 자유, 사망에서 해방 자유, 마귀에게서 해방 자유, 한 말로 말하면 자유를 얻었다고 이라고 또 그렇지 않으면 또 그 위에 가서는 사죄받았다 또 이렇게 할 수 있다 말입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 얻은 것이 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인정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의를 얻은 칭의 입니다.

또 화친은 하나님하고 완전히 결합된 화친으로서 완전 생명을 또 얻었습니다. 세 가지인데 다섯 가지가 되겠습니다. 왜? 해방의 자유가 하나라 할 수도 있고 그것을 새겨서 셋으로 할 수 있습니다. 죄에 자유, 사망에 자유, 마귀에 자유 거기에 대해서 자유,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에 보면은 “왕노릇하지 못한다” “사망이 왕노릇하지 못한다, 마귀가 왕노릇하지 못한다, 죄가 왕노릇하지 못한다.” 하는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요 세 가지 세력 속에 갇혀 가지고 영원히 사망하고 영원히 마귀 종되고 영원히 죄에 종되어 있는 거게서 해방시켜 가지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셔서 세 가지 해방 자유가 된 것이라 그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해방도 받고 다 자유도 받고 하나님과 화친도 됐지만 그렇게 실상으로 누리고 살 수가 없다 말이요, 되기는 됐지만. 감옥에서 무죄 석방이 됐지만, 무죄 석방이라 하지만 나와서 살 수가 없습니다. 나와 살 힘이 없다 말입니다.  살 생명이 없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다시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중생을 주셨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하는 중생의 생명을 줬습니다.

그러면 중생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사는 이 생명을,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에게 줬는데, 그러면 중생된 우리들이, 중생된 우리들이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그 생애, 그 생애가 내 것입니까, 내가 중생돼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감대로 살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상대해 산다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만 소망하고 하나님만 상대해 가지고, 다른 모든 피조물을 상대 않고 하나님만 상대하고 하나님만 소망하고 이렇게 하나님만 관계를 상호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을 하나님을 향하여 산다 했는데 그것은 주님의 사신 것이 내 영생 됐습니다. 주님의 사신 것은 완전이지만 내가 사는 것은 그까짓 살아봤자 완전이 안 된다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사신 그것을 믿음으로 내 것 만들고, 그러면 내 것 만든 이것이 이제 주님의 것 돼 가지고, 주님의 것 돼 가지고, 이렇게 주님의 것 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그것은 이것이 산 그것은 주님의 것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흠이 돼 봤자 주님이 처리하시지 나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이 처리하시는데 주님은 그분은 어쨌느냐 하면 실질로 죄 사망 마귀를 완전히 박멸을 했고 또, 했기 때문에 이 영생할라 하는 데에 죄 사망이 와서 해 봤자 마치 옥에, 옥에 똥 묻은 것 한가지 입니다. 옥을 똥구덩이에 넣어 놓으면 똥이 옥 속에 못 들어 가고, 물이 안 듭니다. 예수님 자체는 이것을 박멸하신 그 자체기 때문에 아무리 죄가 와서 덤벼봤자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행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죄가 행했다” 하는 그것은 상관없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내 것 삼고 내 것 삼은 나는, 대속을 입은 나는 주님의 것 삼아 가지고 주님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3. 대속 받은 자의 삶의 법칙

예수님이 내 대신 죽고 사셨다. 대속 받은 나는 주님의 것 되었다. 주님의 것 된 나는 이제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사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곱 가지 대속을 받은 자기는,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진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주님의 것 되어서 사는 이것은 이제는 제 마음대로 사는 것은 하나도 할 수 없고 주님이 자기를 주관해서 살도록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을 자기 것으로 이루는 그 믿음으로 이루는 방편이 있는데 “믿음 안에서 살게 하려 함이라” “자기를 대신하여 죽으신 자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하려 함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 사활의 대속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서 주님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87010400 요약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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