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기갈이 오기 전에

2011.03.02 12:56

윤봉원 조회 수:1648 추천:73

암 8:1-142011022001

날자: 2011년 2월 20일 주일오전
제목: 말씀의 기갈이 오기 전에

본문: 아모스 8장 1절-14절

1. 우리는 말씀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지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독교 방송을 라디오와 TV를 통해서 무한히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많은 설교와 말씀들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말씀의 홍수 시대 속에서 얼마나 말씀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점검해 보자. 얼마나 실제적으로 말씀의 은혜를 실상적으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말씀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대책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찾아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2. 여름 실과 심판의 교훈
2.1. 말씀으로 인도 양육하시는 하나님(1-3)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8:1~3)
아모스와 아마샤의 논쟁으로 끊어졌던 환상(여름 과일 환상)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환상을 앞두고 긴 설교가 이어진다. 여름 과일 한 광주리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심판받아 끝장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신다. 그 끝은 고통과 애통의 날이 될 것이며, 극심한 말씀의 기근을 겪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전혀 예배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돌아오길 기다리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셨지만 결국 돌이키지 않는 그들을 심판하실 때가 있음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여름 과일’ 심판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여름 과일’ ‘여름 과일’의 음역은 ‘카이츠’이고 ‘끝’의 음역은 ‘케츠’이다. 여름 과일은 금방 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발음에서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종말을 상징하는데 절묘한 단어라 할 수 있다..
(1)은 제철에 난 ‘잘 익은 과일’을 뜻한다. 잘 익은 과일이라 맛이 있기는 하지만, 냉장고나 특별한 보관법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금방 상할 수 있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여름 과일’이란 빨리 먹지 않으면 곧 상하게 될 과일을 의미한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종말이 가까웠음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는 맛 좋고 보기 좋은 여름 과일은 한 해 농사의 끝을 보여주는 복의 상징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겉으론 복을 받은 듯 보이지만 결국 쓰디쓴 고통으로 끝날 이스라엘의 운명을 알리는 데 이 환상을 사용하신다. ‘흉한 날’의 경고를 무시한(6:3) 이스라엘을 다시 용서하지 않기로 하신 것이다. 그때는 온갖 곳에서 찬양 대신 통곡과 죽음만이 즐비한 채, 극도의 공포심 속에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용서치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현재 모습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탐스러운 과일이 음식쓰레기가 되듯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교회는 오히려 영광을 가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 무서운 결심의 말씀을 오늘 우리도 결코 가벼이 듣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내 모습을 조명해주실 때 미루지 말고 반응해야 한다. 귀 막지 말고 돌아서야 한다. 핑계하지 말고 인정하고 순종해야 한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양육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 곁길로 도망가는 염소가 되지 말고 순순히 따라가는 선한 양이 되어야 한다.
2.2. 언행(言行)심사를 다 파악하시고 심판하심(4-7)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암 8:4~6)
우리 하나님은 “이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시는 분이다. 누가 들어야 합니까?
5절의 ‘월삭’(5)은 그달의 초하룻날, 즉 월초라는 뜻이다. 매달 월삭에는 나팔을 불며 제사를 드렸다(민 10:10; 28:11-15). 목축과 농업을 생업으로 삼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달의 초하루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로서 안식일처럼 중요한 날이었다. 이날은 노동하지 않고 안식하였다. 포로귀환 후 이날은 신년제와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오랫동안 지켜졌다. 초하루를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골로새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골 2:16-23). 월삭과 안식일은 모두 종교의식이 진행되는 절기들로 노동이 금지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날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날들이 빨리 지나가고 돈 벌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돈을 버는 것이었기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경축하는 날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그날은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이 지나면 쉽게 이웃을 속이고,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까지 팔아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달랐고, 성전과 시장에서 달랐고, 절기와 일상이 달랐고, 겉으로 드러난 종교행위와 속마음이 달랐던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가혹하게 짓밟았고, 거짓 저울로 상도덕을 어지럽혔으며,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헐값에 노예로 샀다. 그러고도 월삭을 챙겼고 안식을 지켰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고 감사해야 할 그날에 이웃을 속이고 착취하려는 불의한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에 참석해서 사업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까? 되는 작게 저울추는 무겁게 만들어 상품의 질과 양을 속이려고 노력하지는 않나요? 남보다 조금 낫다고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는지요? 예배 시간까지 하나님을 왕따 시키고 문자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는 않나요?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축구, 야구, TV 시청, 맛 있는 음식집에 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심각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심판의 메시지를 경각심을 갖고 들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빈곤한 자와 가난한 자를 망하게 하는 자들의 악한 소위를 살피시고, 반드시 그 행한 대로 갚으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 부조리(不條理)에 무관심(無關心)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온갖 눈속임에도 절대 속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암 8:7-8)
하나님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그 눈물을 씻어 주시는 위로의 아버지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소위를 다 보고 계시는 엄위(嚴威)하신 분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분의 이름이 위로입니까, 두려움입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주일을 보낸 후 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예배 시간까지 말씀을 듣는데 집중하고 은혜를 받으려하기보다는 세상 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있는지? 사람이 도구화되고 상품화되어가는 이 시대 소비지향적인 문화에 영합하여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돈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 대하고 있는지?
언행심사를 다 파악하시고 그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신구약 66권에 약속하신 약속의 복을 누리는 복의 대상이 되도록 말이다.
2.3. 계속 듣지 않으면 최고의 징계인 말씀의 기갈을 주심(8-14)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8)
이 말씀은 ‘지진’을 가리킨다. 지진 때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악행으로 쌓은 모든 권력과 부가 무너져 내릴 것을 의미한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9)
이것은 ‘일식(solar eclipse)’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일식으로 말미암아 태양이 빛을 잃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그 영광을 상실하고 멸망할 것을 의미한다.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무릇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암 8:8~14)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수치와 비통함을 안겨 주시는 심판 가운데 가장 무서운 형벌인 말씀의 기근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육의 양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으로  사는 것을 깨닫기를 기대 했다. 말씀의 양식은 바로 생명인 것이다. 따라서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황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이스라엘이 이렇게 최고 불행의 심판 대상이 된 것은, 하나님이 수많은 종을 통해 수없이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고, 들어도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치명적인 재난에 빠지고 말았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의 고갈이 얼마나 심한지 힘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처녀와 총각도 다 쓰러질 정도였음을 본문은 보여 준다.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암 2:12)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암 7:13)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암 7:16)
우리는 신앙적인 면과 물질, 세상적인 면에 대한 이중적(二重的) 기준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우리는 육신의 병을 진단하는 의사가 뼈아픈 소리를 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수긍한다. 생명 포기 각서를 쓰라고 해도 쓰고 수술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는 요소가 우리에게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가? 그들처럼 자시 생각에 맞지 않으면 “됐어요. 나도 알아요.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하면서 더 이상을 올바른 지적을 못하도록 입을 닫도록 만들지 않는가? 그리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죽음과 멸망, 부끄러움, 후회의 길로 다다르면서도..... 이것이 가장 큰 신앙의 암 덩어리이다. 우리는 이것을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날마다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회개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말씀에 귀를 막고 전하는 입을 막은 이스라엘에게 말씀의 기갈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의 기갈을 주실 것이다. 젊은이들도 갈하여 쓰러질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끝나고 이스라엘은 의지할 대상을 잃어버린 채 방치될 거라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말씀을 버리면, 말씀이 나를 버릴 날을 하나님은 반드시 수시겠다는 선포이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닌가?
“날이 이른다.”라고 경고하신 것은 미래에 임하게 될 심판의 경고이지만, 오늘 현재 나에게 주시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면 살 길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아울러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부도덕한 행위를 보고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징계를 선포하셨다. 이 징계는 기존질서를 무너뜨리므로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들은 기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징계의 최고봉(最高峰)은 말씀의 기근(饑饉)이다. 말씀이 고갈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악행을 절대 잊지 않고 심판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면 땅도 떨고(지진) 사람도 떨 것이다. 재앙의 날엔 해도 자취를 감추어 대낮에 흑암이 뒤덮을 것이다.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절기는 곡소리 드높은 상가가 될 것이다. 장자를 잃은 애굽의 통곡과 애곡이 선민 이스라엘 안에서 재현될 것이다. 이러한 심판이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거나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임할 것이다.
작금(昨今)의 한국교회의 부도덕한 현상들은 우리를 이 말씀으로 더욱 철저하게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이것은 물 건너 불구경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된 우리 지체들의 문제요, 우리의 문제이다. 모든 원인은 잘못된 신앙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 이해를 우리가 바로 정립한다면 우리부터 말씀의 기갈이 오기 전에 들은 말씀, 읽고 깨달은 말씀, 성령을 통하여 인도하시는 말씀에 즉시, 온전히 순종하여 심판을 막아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3. 돈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되지 마라!!
아모스 선지자가 본문에서 지적한 이스라엘의 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 정의의 파괴이다(4-6절). 다른 하나는 경제정의를 파괴하도록 하는데 신앙적 정신적 근거가 된 우상숭배이다(14절).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돈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뜻도 무시하고 오직 욕심 성취에 눈이 멀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 익은 여름실과처럼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죄는 오늘 우리 시대가 더욱 심하게 짓는 것으로 보인다. 돈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고, 형제를 사랑하기보다는 이용하고, 악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숭악하다는 비아냥을 듣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이러한 언행심사를 정확히 다 파악하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메시지를 듣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듣고 깨달은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야 할 반응은 명확하다. 오늘 누리고 있는 형통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늘 깨어 있는 자로 살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불신앙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 속에 있는 각종 탐욕과 위선을 버리고 말씀을 향한 갈급함을 회복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말씀대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돈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고 살아가다가 말씀의 기갈을 맞이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의 은혜를 주실 때 즉시 온전히 순종하는 주인공이 되라. 말씀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실천하여 실상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셀모임 나눔 제목
☞ 본문(암 8:1-14)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백성에게 계속적으로 말씀으로 인도 양육하시는 분.
※ 무엇을 중심하며 무엇을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 파악하시고 그에 합당한 심판과 징계를 베푸시는 분.
※ 물질의 징계, 건강의 징계, 일의 징계, 사건 사고의 징계 그 무엇보다도 최고의 징계는 말씀의 기근을 베푸시는 분.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항상 깨어 있는 심령이 되어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는 자가 되라.
☞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돈 때문에 말씀을 듣는 복도, 순종하여 실상의 복도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 말씀의 기근을 주시기 전에 말씀에 합당한 순종과 충성을 보임으로 풍성한 말씀의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라.
모임을 하기 전에 미리 나눌 체험담을 준비하여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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