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이의 죽음

2010.09.12 14:24

윤봉원 조회 수:1638 추천:77

왕상 2:36-462010091201날자: 2010년 9월 12일 주일오전
제목: 시므이의 죽음
본문: 열왕기상 2장 36절-46절
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삼 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혹이 시므이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1. 나는 복의 근원인가? 불행의 근원인가?
모든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일생을 살아간다. 이러한 나그네 인생 동안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根源)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2)
우리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면 복의 근원이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눠 줌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불행의 근원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사람 중에 어떤 자들인가 진단해 보자. 우리는 나그네 인생을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살다 가야 하겠는가? “축복의 통로” 아멘!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살면 복의 근원이 되며, 어떻게 살면 불행의 근원이 되는지를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의 삶에 적용함으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모두 축복의 통로로 살다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2. 시므이의 말년(末年)
2.1. 기회주의자 시므이(36-37).
‘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 2:36-37)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시므이가 다윗 일행을 저주한 것에 근거한다.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로서 사울의 족속으로 다윗 때문에 사울의 집안에 큰 피해를 당하였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 피에 대한 대가를 지금 치르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삼하 16:5~8)
우리도 시므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言及)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개인의 감정(感情)에 매여 일을 처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후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압살롬의 반역이 정리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환궁(還宮)하자 제일 먼저 시므이는 사람 1000명을 데리고 와서 다윗에게 자신의 패역한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하였다(삼하 19:16-20). 이것은 그가 그의 잘못에 대해 온전히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아부를 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죽기 전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죽일 것을 유언한다(왕상 2:9).
 우리는 몇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가? 나는 몇 사람을 동원하기도 어렵다. 이에 비하면 그가 그 당시에 얼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도 시므이처럼 강(强)한 자에게는 약(若)하고 약(弱)한 자에게는 강(强)한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는 아닌가 돌아보자.
다윗은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지혜롭게’ 처리할 것을 당부하였다(2:9).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따라 그대로 처형하지 않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불러올려서 연금하였다. 솔로몬은 그를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고향 바후림에 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반역을 미리 차단하였다. 이것은 시므이에 대한 처분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지혜로운 대책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참 지혜는 솔로몬처럼 때를 스스로 정하지 않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 눈에 가시 같은 사람, 지금 당장이라도 원수를 갚고 싶은 사람과 일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께서 처분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9)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 10:30)
하나님이 하실 일까지 무지무능한 우리가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맡기라! 이제 사람과의 어려운 관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깁시다. 이것이 겨자씨 믿음을 가진 자이다.
2.2. 착각을 자유롭게 한 시므이(38-40)
시므이는 솔로몬 왕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했다.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왕상 2:38)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솔로몬과 약속한지 3년이 지난 후에 시므이를 섬기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친 것이다(39a). 이 소식을 시므이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시므이는 다른 종을 보내도 될 터인데 그 종들을 찾으려고 당장 일어나서 직접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들을 잡아 왔다. 가드로 도망한 종을 잡기 위해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솔로몬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분명히 죽을 것이라는 단서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시므이가 솔로몬과 그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시므이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대평가(過大評價)해서 솔로몬이 자신을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삼하 19:16-17).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시므이는 군사력과 재물, 지지 세력 때문에 자신의 악행과 은혜를 망각하고 왕의 권위를 업신여긴 오만한 사람이 되었다. 큰 악행에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솔로몬의 은혜를 망각(妄覺)한 것이다. 그의 어리석음이 그의 생명을 스스로 단축했다.
착각하는 것은 아무리 자유라고 하지만 시므이와 같은 착각을 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이 생각이 난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자기의 성질, 습관, 버릇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게 된다.
지난주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병원에서 나왔다가 3 시간만에 술 먹고 두 사람을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의 습관과 성질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상시 성전 건축하는 것을 생활화 해야 한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므이의 어리석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솔로몬의 은혜를 망각하고 눈앞에 있는 이익 때문에 하나님과 솔로몬에게 한 맹세와 약속을 어겼다.
시므이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앞의 조그만한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우리는 아닌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강, 물질, 시간, 생명, 신앙 등은 전적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거두어 가시기 전에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교만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한다. 항상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겸손의 마음과 자세를 잃지 말자.
3.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시므이(41-43)
시므이가 솔로몬과의 약속을 어기고 가드에 갔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솔로몬의 귀에 들어갔다(41). 이 소식을 들은 솔로몬은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왕상 2:42-44)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는 “여호와를 두고 맹세”(새번역)로 직역할 수 있다. 솔로몬은 처형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벗어나려고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운 것이다.
솔로몬은 맹세를 어기고 예루살렘을 벗어난 시므이를 처형한다.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벗어난 것은 단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솔로몬은 그가 반역을 도모해서가 아니라 목숨을 건 맹세(43절)보다 재산(두 종)을 더 중요하게 여긴 점을 중시한 것이다. 시므이는 다윗에게 그랬듯이(다윗에게 연속적으로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비루한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하고 저주를 퍼부었었다.) 언제든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하나님과 맺은 맹세나 율법을 무시하고 솔로몬을 등질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죽이기 전 이 점을 분명히 밝힌다. 오래전 다윗에게 행한 악한 일을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것이다. 시므이의 죽음은 분명 하나님의 공의하심과 심판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다 같이 다시 한 번 더 44절을 읽어 보자.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왕상 2:44)
솔로몬은 시므이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보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다시 하나님 대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므이가 하나님께 했던 맹세를 어기고 예루살렘을 벗어나자 솔로몬은 여호와의 이름을 빌어 시므이를 심판한 것이다.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대리자임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대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주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자. 우리는 어떤 경우도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님을 명심하여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8)
그래서 이 사실을 직시(直視)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살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예수님은 평생을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부인하고 전적 아버지의 뜻대로만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를 하며 살았다.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24)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0)
그러므로 우리도 솔로몬처럼,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이 전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가 하나님 대리자로서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도록 하자. 그래서 누가 언제 질문하더라도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이다. 내가 하늘 일은 아버지의 일이다. 내가 하는 이 계획은 아버지의 계획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나라를 견고하게 세운 솔로몬(45-46)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왕상 2:45-46)
본문은 솔로몬의 손안에 나라가 견고해졌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솔로몬이 시므이를 제거한 것이 사적인 감정에 따른 정적 제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른 결과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가 아도니야, 요압, 사독, 시므이에 대한 조치가 사사로운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라 행해진 것임을 인정하는 증표(證票)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조는 견고히 설 것이라고 확신 있게 고백할 수 있었다. 실제 그의 바람대로 나라는 견고해졌다. 참으로 어려운 정치적 결정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한 솔로몬의 지혜에 하나님께서 화답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5. 시므이처럼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솔로몬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욕심과 의지를 따라서 기회주의로, 착각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허무하게 죽은 시므이를 살펴보았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라서 순종함으로 나라를 더욱 견고하게 세운 솔로몬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솔로몬처럼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맡기고 우리가 원수 갚으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 우리는 눈앞의 이익 때문에 시므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아야 한다.
☞ 우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어려움 때문에 시므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착각과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 우리는 솔로몬처럼 세상과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뜻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우리 자신과 주변 환경에 축복을 부어 주실 것이고, 우리는 이 축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될 것이며, 우리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까지 행복해 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할렐루야!!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라!!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축복의 주인공이 되라!!
불행의 근원이 되지 말고 행복의 근원이 되라!!
셀 모임 나눔 제목
☞ 본문(왕상 2:36-46)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솔로몬을 통하여 시므이에 대한 긍휼을 베푸신 분.
‣ 솔로몬을 통하여 시므이가 행한 악을 심판하신 분.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한 솔로몬의 나라를 견고케 한 분.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 순간의 삶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 축복과 은혜의 대상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라.
‣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어리석을 범하는 자가 되지 마라.
* 셀 모임을 하기 전에 미리 나눌 체험담을 준비하여 나눕시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9-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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