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2003.12.22 06:36

윤봉원 조회 수:1648 추천:157

요 15:52003122210날자: 2003년 12월 22일 월새
제목: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본문: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1.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라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 됨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낮은 수준의 체험에 만족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현재 하나님께서 인간을 생존케 하시는 이유와 동일하다. 인간에 대해 하나님께서 최초로 선포하신 말씀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고 선포 하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중요성, 그리고 생존할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육체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육체를 입지 않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 1:18)라고 말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14)라고 선언하셨다. 그분은 우리처럼 몸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귀"나 "팔"을 갖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 성경 구절과 하나님의 "눈"에 대해 언급하는 성경 구적들은 상징적 표현이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물질적인 몸의 한계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길 원해서 사용한 표현은 아니다. 따라서 형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도덕적 속성들 안에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이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인격, 행동 양식, 비전은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비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인간을 하나님이 만드실 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독자적으로 활동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2) 죽었던 인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 이하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영과 육까지 아담 하와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알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어김으로 완적히 죽은 자가 된 것이다.

이 죽음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죄의 삯”이다. 그 삯은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순종이 아닌 불순종을, 즉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독립을 택했을 때 지불되었고, 그 결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고전 15:22)이다. 전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 이후 출생한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 오늘날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죽을 밖에 없는 우리들”이라고 기도하고 말하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한 기도와 말인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거룩한 삶을 살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을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그 형상과 모양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살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옥상에 있는 십자가와 크리스마스 트리에 지난 삼일간 불이 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왜 무단히 오지 않을까 하고 자동 타이머를 점검해보고, 테스터기로 전기를 점검을 해 보니 타이머까지 전기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이래 저래 찾다가 전원 스위치가 내려 간 것이 원인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곧 바로 스위치를 올리니까 전기가 들어가서 불이 와서 아름답게 비추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배선이 되어 있고, 불이 올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스위치가 내려간 것과 같이 전기가 연결이 끊어져 있으면 아무런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하더라도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의 모든 인간의 삶은 바울이 로마서 7장 18절에서 말씀 한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한 것과 같이 죄만 짓고 사망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렇게 희망이 없는 인간에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불빛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2. 완전한 인간

1) 죄 없이 사신 유일한 인간

우리 인간은 이렇게 죄만 짓고 살지만 끊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명중된 삶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묘사 하였다.

또한 예수님이 하신 일들과 하신 말씀들, 그리고 말씀하시는 방식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씀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33년간 인격과 말씀과 행위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즉 죄 없는 삶을 일평생을 사신 것이다.

2) 자신의 육신대로는 한 번도 사시지 않았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치유의 기적들, 오천명을 먹이신 일, 폭풍을 잠잠케 하신 일, 죽은 사람을 살린 일과 같은 모든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과 같은 말씀으로 요약 할 수 있다.

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어 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베드로처럼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눅 5:5)이라고 심하게 자기 주관대로 살고 난 이후의 결과에 대한 좌절감으로 낭패에 처해본 경험이 있는가 말이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 예수님께서도 그분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들이 한 인간으로 예수님보다 더 유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해서 놀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유능하게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을 깊이 생각합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 말씀을 명심합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이 “심령이 가난한” 자임을 직면하고, 타고난 능력이나 힘으로는 자신이 창조된 의도대로의 모습이 되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이다.

3. 회복의 희망 길

그러면 우리도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권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나타내면서 살 수 있을까? 예수께서 자신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구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이 각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는 일의 원동력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 더욱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예수님의 인겨과 행하신 일들을 설명해 주는 것은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데 반드시 필요함을 알고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전구가 빛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전구는 그 목적 때문에 존재하며, 우리도 그 목적 때문에 전구를 구입한다. 그런데 전구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 존재하나 전구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전구는 전류에 연결 될 때만 빛을 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원래 의도된 모습대로 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하며,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야만 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아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께서 한 사람으로 사시면서 “아들이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고 말씀 하신 이유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됨으로써, 즉 사활대속의 공로로 이루어 놓으신 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소망을 이루어 주신 공로를 인간이 믿음으로 자기에게 적용 시킬 때 우리는 전류에 연결된 전구처럼, 창조된 목적을 회복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4. 전지 전능한 삶을 살 수 있는 우리

하나님과 연결이 회복된 우리 성도들은 이제부터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그분이 일을 하시도록 하면 주님을 통하여 전지전능한 역사를 일으키셨듯이 전지 전능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는 전에는 무엇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이제는 못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두 길이 놓여 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시지 못함으로 전적 불가능한 삶을 사는 한 길과 내게 찾아 오신 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순종함으로 그분이 일을 하시도록 맡겨 놓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놓여 있는 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여기서 모든 것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향해 계획하시고 의도하신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9-10)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구원의 선물을 주심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창조의 목적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삶을 일평생 살다가 가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되도록 합시다.

찰스 프라이스의 설교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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