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 말라

2003.12.22 06:34

윤봉원 조회 수:1519 추천:175

삼상 15:222002122100날자: 2003년 12월 21일 주일 새벽
제목: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 말라
본문: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1. 사울의 착각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아각 왕과 살지고 기름진 짐승을 남겨 두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되었던 것 같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 내 중심 생각대로 힘써고 충성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 가 돌아 봅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2. 잘못된 헌신

1) 아브라함의 착각

아브라함은 75세의 고령이고 그의 아내 사라는 그보다 10살 아래인 65세일 때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나.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를 보며 그의 자손이 그만름 많아지리라는 약속을 받은 것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결혼한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자식이 없어서 자식을 보려는 희망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0년이 지났나. 아브라함은 이제 85세이고 사라는 75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여전히 자식이 없었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당황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차세기 16장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그들 부부가 서로 대화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획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대화에서 아브라함은 하갈의 여종을 통해 자식을 보기로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문화권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창세기에는 아내의 여종을 통해 자식을 본 경우가 아브라함 외에도 더 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일을 제재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취하였고 하갈은 임신하여 이스마엘이라는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브라함의 동기는 진지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자식을 보려는 희망을 모두 포기한 상태였나. 그러나 이 제는 지난 10년 동안 귓전에 울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자신을 헌신했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적하여 낳은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에서 낳은 자식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의 출생을 위해 방법을 강구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사라 자신이 임신하여 이삭을 낳은 것은 이스마엘이 태어난지 14년이 지난 후였다. 약속의 말씀이 주어진 지 만 25년이 지난 때였다. 나중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도록 요구하셨을 때 하나님은 이삭을 "네 사랑하는 독자" (창 22:2)라고 표현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을 위한 우리편의 노력이 아무리 진지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스마엘을 인정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이 하시는 일의 대리자가 아니라 통로가 되도록 이끄신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자신의 일이었고 이삭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이스마엘의 출생은 아브라함이 계획하고 일한 결과이고, 이삭의 출생은 오직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로만 설명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직면했을 때 오직 하나님만이 그것을 이루실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가져다 준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판지 수동적인 태도만 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 명령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기초로 한 것이다(빌 2:12-13).

2) 모세의 착각

모세는 그의 나이 40세에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애굽의 노예, 히브리 민족의 자손인 그는 어렸을 때 이후로 왕실의 특권을 누지며 애굽 궁전에서 자랐다. 애굽 왕이 히브리인 남자 아이에게 대해 살육을 자행 할 때, 그 어머니가 그를 갈대로 만든 상자에 숨겼는데 바로의 딸이 그를 발견하여 바로의 궁전으로 데려다 키운 것이다.

4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히브리 민족의 처참한 노예 상태를 보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그 형제들을 구원하여 주신다”(행 7:25)는 생각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헌신하게 된다. 그의 동기는 선한 것이었고, 그가 품은 생각은 참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파괴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한 것을 이루기 원했고 동족들을 구원하기 원했다. 그래서 어떤 애굽 사람이 고역에 시달리는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행동을 결심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본 사람이 있어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 사실을 안 바로는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 2:15) 모세는 달아 났고 미디안 광야에 도착하여 40년을 보내게 된다.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려는 꿈은 산산 조각이 나게 된다. 한 때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그 형제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었는데 말이다.

3) 변화된 모세

모세는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은 옆으로 제쳐두고 자기 열심으로  헌신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애 중 함께 일하기 시작하신 것은 모세의 나이 80세 때였다.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 동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처음에는 이렇게 반응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일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원은 모세가 어떤 사람인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있었다. 그러자 이제 모세가 제대로 질문을 한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즉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물은 것이다.

우리 자신들은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진실히 하고 그분의 대답을 참으로 들은 적이 있는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하나님은 자신을 영원히 현존하는 분으로 묘사하셨다. 그 분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계셨던 분, 혹은 마지막 종착지인 약속의 땅에 계실 분이 아니라. 항상 삶의 현시점에서 역사하시며 능력으로 우리를 돕고 계신 분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이다. 십자가상에 구원을 이루신 그 분은 지금도 우리의 삶의 현 시점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는 그 일을 우리 힘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통해서 일 하실 수 있도록 그 통로가 되라는 것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모세는 이 원리를 배웠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속적인 개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문제를 가지고 열번 바로 왕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고, 마침대 그들은 40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가나안으로 가는 중간에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혔고, 뒤에는 애굽 군병들이 따라와서 진퇴양란에 빠진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혼란스러움에 휩싸이게 되었을 때에 모세는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라고 백성들에게 외쳤던 것이다. 40년 전의 모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걸어서 통과하게 되었고, 애굽 구인들은 수장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행동과 삶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3. 의의 병기로만 쓰임 받읍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과연 우리는 그 분이 “온전케 하시는 이” 혹은 “완성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확고하게 믿읍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우리도 변화 받기 이전의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삶, 즉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내 나름대로의 지혜와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을 다 포기 하고 이제부터는 변화된 이후의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본문 말씀을 명심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 즉 진리와 영감을 따라서 대속의 공로 안에서 청종을 본능적으로 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모든 역사는 온전히 이루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의롭게 쓰임 받는 의의 병기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하루 하루, 한 현실, 한 현실의 승리하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찰스 프라이스의 설교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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