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락의 초청과 발람의 예언

2009.11.10 22:08

윤봉원 조회 수:1574 추천:75

민 22:1-25:182009110802

날자: 2009년 11월 8일 주일오후
제목: 발락의 초청과 발람의 예언
본문: 민수기 22장 1절 -25장 18절
1. 하나님의 뜻인 줄 알지만 돈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인 줄 분명히 알지만 돈, 명예, 세상 각종 유익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돈을 취하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가 잦습니다. 그랬을 때 과연 그 돈을 취할 수 있었나요? 또 취했다면 그것이 얼마만큼 우리에게 유익을 주었나요? 돈과 명예, 세상의 온갖 유혹과 하나님의 뜻이 배치될 때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찾아보고 성경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하도록 합시다.
2. 발락의 발람과 대면(22:2-25:18)
역사적으로 모압은 남쪽의 세렛 강으로부터 북쪽의 얍복 강에 이르는 요단강 동편 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 당시 아모리 족속에게 아르논 강 남쪽 지역을 내어 주게 되었다(21:13). 시혼의 패배로 모압족속은 아르논 강 북부 지역 땅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제 이스라엘과 겨루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모압의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군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물리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을 물리쳐줄 이방의 술사를 고용했다.
고대 이방인들의 예언에는 점과 마술의 두 가지의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 점은 신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려는 것이고, 마술은 의식이나 다른 수단들을 통해 그러한 의도를 지지하거나 훼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 둘 모두에 능란했던 발람은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의도를 전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시도는 매번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23:8, 12, 26, 24:13). 이방 예언자의 뜻과는 달리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축복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발람은 당대 근동에서 가장 유명한 점쟁이로서, 모압에서 북쪽으로 600킬로미터 떨어진 시리아의 브돌에 살고 있었다. 모압 왕 발락이 사해 바로 동쪽에 있는 모압 평지로 몰려드는 것을 보고 발람을 보내,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그들을 진멸시켜 주길 바랐다. 이것은 발락의 고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민 22:4-6)
처음에 발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발락의 감언이설에 굴복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조언을 구하며 발락의 밀사들과 함께 가기를 거부했다(22:7-14). 그러나 더 많은 예물을 제안받자 이방의 예언자는 마음을 바꾸었다. 발락이 발람에게 주려고 준비한 예물은 “복술의 예물”이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한다(22:7). 그리고 여호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락의 음모를 돕기로 결정했다(22:15-34). 하나님은 발람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만 한다면 가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놀랄 만한 주권을 드러내 보이시며 발람이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하시되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시는 말만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2:35-40).
발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 전해야 한다는 이 요구는,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한 발람의 비전이 하나님의 영감과 권위로 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똑같은 강조점이 발람이 당나귀를 타는 아주 코믹한 이야기에도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천사를 볼 수 없던 그의 시대에 최고의 예언자를 보고 있다. 그는 바로 천사를 볼 수 있었던 당나귀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당나귀에게 알릴 수 있고 그를 통해 말씀하실 수 있다면, 돈 욕심에 가득 찬 이방의 예언자를 통해서는 얼마나 더 이스라엘의 미래를 선언하실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은 두 단락마다 도입과 세 장면을 담은 아주 잘 짜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발람 이야기의 구조

22:2-6
도입
22:7-14
발람과 하나님의 첫 대면
22:15-20
발람과 하나님의 두 번째 대면
22:21-35
발람과 하나님의 세 번째 대면
22-23절 당나귀와 천사 1
24-25절 당나귀와 천사 2
26-35절 당나귀와 천사 3
22:36-40
도입
22:41-23:12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첫 번째 축복
23:13-26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두 번째 축복
23:27-24:25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세 번째 축복
3-9절 축복 1
15-19절 축복 2
20-24절 축복 3

이 책 민수기 어디에서도 그 약속이 발람의 예언보다 더 뚜렷이 강조된 곳은 없다(23-24장). 하지만, 이 예언들은 성경에서 가장 우스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한 사건(22장) 다음에 나온다. 이 22장은 발람을 놀리기(send up) 위하여 기록되었지 결코 그의 메시지에 신실성(credibility)을 더해 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단락의 모든 강조점은 발람의 축복에 있다. 내러티브가 계속 강조하고 있듯이, 이 축복들은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하라고 하신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축복들은 본질적으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확장된 형태임을 분명히 볼 수 있다(창세기 12:1-3의 정확한 표현을 떠올려 보라.).
발람의 축복의 메시지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는 4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수많은 자손의 약속이다. 이것은 발람의 첫 신탁의 핵심 사상이다(23:10).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민 23:10)
둘째,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의 약속이다. 이것은 발람의 두 번째 신탁에 반영되어 있다(23:21-23). 발람의 축복이 발락을 불쾌하게 만든 것은 물론이다. 발락은 발람을 다른 산 위로 데려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애를 썼다. 마침내 발람은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았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23:20).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파국적인 좌절이 임하기를 바라는 발락의 책략은 무산되고 말았다. 발람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특별한 백성이라고 말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민 23:21~23)
셋째, 땅의 약속이다. 이것은 세 번째 신탁의 첫 부분의 핵심 주제다(24:5-7).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민 24:5~7)
발람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되풀이해서 말하며(창 12:3)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을 것이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24:9).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3)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민 24:9)

넷째, 열방을 향한 약속이다. 발람이 한 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언은 위대한 승리를 이루게 될 통치자인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이었다(24:16-17, 참조 -창 49:10). 그는 이스라엘과 열방을 모두 위협하는 나라들에 화평을 가져올 것이다(24:18-24). 고대 근동 사회에서 가장 유명했던 마술사조차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바꿀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 24:16-17)
3. 이스라엘의 배신과 그 결과(25:1-18)
발람이 마술사로서는 완수할 수 없었던 일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할 수 있었다 그는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인해 그 지역의 신으로 알려져 있던 바알브올을 섬기게 했다(참조. 벧후 2:15; 유 11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민 25:1~3)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 31:16)
이 바알브올은 특히 미디안족속들이 섬기던 신으로 전형적인 가나안사람들의 다산에 관련된 신화와 의식들과 얽혀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민 25:6~8)
이 노골적인 우상 숭배에 몹시 화가 난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의 두령들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모두 죽이게 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염병과 함께 이때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24,000명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민 25:4-5)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민 25:7~9)
이 사건으로 비느하스와 그의 자손들에게는 영구적인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맡겨지게 되었다(25:10-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민 25:10~13)
4. 멋지신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라도 성공하려는 어리석은 계획과 행동을 완전히 포기하라!!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발락은 많은 돈을 주고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그에게 돌아온 예언은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메시지가 돌아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누가 역사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노략의 재물을 취하려고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한 걸음을 걸었던 발람.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저주를 함으로 더욱 인기를 얻고 영광을 누리기를 바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강권적인 역사로 그러한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발람의 꾀를 쫓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의 죄를 지음으로 죽은 사람이 24000명이나 되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길에 앞장서서는 안되겠습니다. 발람은 이런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칼에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 31:8)
그리하여 그의 생애는 영원토록 물질을 쫓아간 대표 주자, 영원히 부끄러운 인물 중에 한 명이 되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 1:11)
그러므로 우리는 발람의 어리석은 욕심과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라도 세상적인 성공을 하려는 어리석은 계획과 행동을 완전히 버리도록 합시다. 내 한 사람이 거절하더라도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엉뚱한 욕심을 가지고 예언하려고 했던 발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는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고 악한 길을 갈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 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져 갑니다. 이러한 복음 사역에 이방인, 구경꾼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단번에 포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즉시, 죽어도 순종하는 충성된 종들이 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공되세요.
참조. Dyer & Merrill,「구약탐험」, pp. 138-40; Wenham, 「모세오경」, pp. 179-82.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1-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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