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승리의 비결

2006.06.18 22:27

윤봉원 조회 수:1581 추천:163

고전 9:25-272006061802 

날자: 2006년 6월 18일 주일 오후

제목: 전투 승리의 비결

본문 : 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1. 우리는 투사(鬪士)이다

 우리는 전투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투 세상, 싸움터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전투는 사망의 수평선 그 이하에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겨도 사망이요 져도 사망이요  그것은 전부는 다 사망 외에 승리는 못 합니다. 전부 다 사망 아래에서 네가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네가 뒤에 죽나 앞에 죽나 하는 그런 것이지 전부 사망은 결말적으로는 다 하고야 만 것입니다 건강을 다투고 젊음을 다투고 모든 의식주의 선정과 다툼을 하고 있지만 좋아도 나빠도 다 결말은 죽고야 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 없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거게서 초월해서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그 싸움을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면 영생입니다. 지면 둘째 사망의 죄를 받아서 사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싸움은 세상을 점령한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요, 또 죄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요,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이 싸움을 싸울 만한 그런 자체의 자격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해서 이 대적들로 더불어 싸웁니다. 그런데, 우리 대장되신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다 이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면 이길 수는 있는 싸움입니다.

여게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함이라'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저희는 썩을 승리를, 승리해 봤자 다 썩는 것이요 승리해 봤자 다 죽는 것입니다. 썩을 승리를 위해서 싸우지만 우리는 이기면 썩지 않습니다. 썩지 않는 영원한 영생하는 이 승리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장소에나 어느 시간에서나 또 무엇을 상대하든지 나는 지금 전투자라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우리 싸움의 대상은 계속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싸움의 대상을 계속 있는 줄 알고 이 대상으로 더불어 싸워야 되지 싸우지 안하면 우리는 실패 합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우리 생활은 나는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이 전투는 이기면 영생하고 지면 영원히 멸망하는 싸움이다. 세상에서는 어떤 그 강대국으로 더불어 강대국으로 싸우는 그런 무슨 어떤 국제적인 그런 싸움이든지 세계에 뭐 제일 크다는 무슨 경쟁이라든지 투쟁이라든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사망의 수평선 아래에 있기 때문에 가치로 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실은 눈을 뜨고 보면 서양과 동양이 싸움이 붙었다 어떻다 해도 그까짓 싸움이야 가치로 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겨봤자 사망이요 져봤자 사망이요 내나 사망 아래에 있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그것들을 주관하고 있는 그 왕으로 더불어 싸웁니다. 그것들을 완전히 지금 점령해서 죽이고 있는 죄로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 싸움은 큰 싸움입니다. 이 싸움 뭐,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보다 세상에는 더 큰 싸움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싸움을 싸웠습니다. 또 예수님은 죄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을 싸웠습니다. 죄악에 속한 것은 다 대적해 가지고 싸워서 예수님이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사망을 정복했습니다. 우리 싸움은 아주 큰 싸움이요, 또 승리하면 지극히 가치 있는 싸움입니다. 이 가치 있는 싸움인데, 우리가 싸우는 자인 줄을 모르면 그 사람은 뭐 승리라 하는 것은 참 까마득한 사람입니다. 싸우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전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2. 목표(소망)를 굳게 잡아라

가. 목표 없이 달리면 안된다 소망의 투구를 쓰라

경주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어디를 향해서 달려갈까 하는 그것을 확정 지우지 못하고, 그것을 모르고 발자욱만 자주 떼 놓으면 되리라 생각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빨리 걷고 다른 사람보다 특수히 날래면 그 경주에서 일등을 하겠습니까? 향방 없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고 발자욱만 자주 떼놓고 힘 있게 빨리만 달리면 그 사람이 굉장히 탈선되어서 상을 주는 그 자리에서는 가장 먼데로 달아나서 제일 꼼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달음질하는 데에 향방 없는 자와 같이 그렇게 목표없이 달리지 않는다. 무슨 목적을 두고 지금 내가 달리고 어디를 향하여 간다는 그 향방을 정해 놓고 내가 달리지 그거 없이 되나 안 되나 열심만 내면 된다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면 된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했습니다.

그래서 소망을 투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망의 투구라. 사람의 신체면으로 말하면 제일 머리되는 그 두부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주님에게 대한 온갖 관계가 있겠습니다. 의지하는 것, 바라보는 것, 믿는 것, 모든 것, 또 순종하는 것, 주님의 대속하신 것 이 모든 여러 가지 면이 있지만 주님에게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제일 두부와 같이 중요하다 그 말입니다.  소망을 가지는 것이 두부와 같이, 머리와 같이, 신체로 말하면 머리와 같이 제일 중요하다 하는 그것으로써 소망의 투구라, 소망은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라, 제일 중요한 것이라 그 뜻입니다.

이러니까 이 계시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무슨 목적이며 무슨 목표냐? 이것은 어떤 사람은 별별 목표를 다 가집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려고, 어떤 사람은 집사 될려고 일년 내 새벽기도 잘 나오다가 집사 당선에 떨어지니까 그만 그 다음부터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별별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믿음 지키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다 헛된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그물을 깊은 데 가서 던지라’ 이럴 때에 던져진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표적으로 통해 가지고 참 베드로라는 그 사람이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의 증거로 보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는 잡았던 고기와 그물을 다 던져 버리고 깨닫고 난 다음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신 대로 사람 수입으로 자기의 향방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어제 그 말씀에서는 병낫기가 소망한 것이 병낫는 그것은 하나의 표적인데, 신령한 병 인격의 병이 낫는 그 표적으로 그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 같이 병들었는데 병낫기 위해서 믿음 생활 할 때에 병이 낫도록 병을 낫아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그게 필요 있지만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그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병으로 인해서 다른 것을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나. 원수는 자기 몸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그러면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안 하면 너는 누구를 더불어 싸우느냐 그 말입니다. "아니하여 내가"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자기 몸 그것이 자기 원수라 그 말입니다.  자기 몸이 원수라 그 말은 자기의 육이 자기 원수라 그 말입니다. 육이 원수라 말은 자기 마음과 자기 고깃덩어리 그게 자기 원수라 그 말입니다.  자기 원수는 자기 심신이 자기 원수라. 마음 고놈이 들어서 지옥 다 만들고, 자기가 일 년이든지 하루든지 생활하고 나서 뒤에 밤에 계산을 해 보면 마음 고놈이 들어서 전부이 재를 저질고 꾀를 내 가지고 고놈이 들어서 하루 종일 생활을 다 망쳤습니다. 마음 고놈이 다 들어서 다 망쳤소. 마음 요놈이, 안 된 요 마음이 생겼다가 요거 하고, 조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조거 하고, 저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조거 하고 전부 요 욕심 조 욕심, 요 취미 저 취미, 요 소원 조 소원 전부이 마음 고놈이 삐뚤어진 마음을 가져서 우리는 다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고깃덩어리의 본능, 고기 덩어리의 먹고 싶은 욕심, 또 고깃덩어리가 어쩌든지 평안하 고자 하는 욕심, 고깃덩어리 그것은 뭐 명예욕 그런 거는 고깃덩어리에 없는 거요. 고깃덩어리 그게 또 이 짐승 모양으로 정욕, 음욕, 정욕의 욕심, 소용 없는 것 이런 것 가지고 그 놈이 꼬우는데 가만히 계산을 대 보니까 원수가 내 안에 있다. 무엇이냐? 내 속에 요 마음, 고깃덩어리 이것이 참 도구와 같은 것인데 마음과 고깃덩어리를, 중생된 영. 참사람 나, 참사람 내가 마음과 고깃덩어리를 사로잡아 놓으면 이것은 보배로운 도구인데, 굉장히 보배로운 도구인데 이놈을 원수에게 빼앗겨 놓으면, 마구 나는 절단나 버립니다. 

자기 마음을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새사람 자기가 그 마음을 주관하고 몸을 주관할 때는 마구 의의 일만 하고 영광의 일만 하고 어쩌든지 참 오만 영생을 다 만듭니다. 참 보배롭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는 도구입니다, 따라합시다. 마음과 고깃덩어리는 도구다! 이런데 이 도구를 중생된 새사람 내가 붙들면 그것을 가리켜서 무슨 도구라 했습니까? 예? 의의 병기, 따라해. 의의 병기! 의의 병기! 그것이 의의 병기가 안 되면 또 뭐 무슨 병기라 했습니까? 불의의 병기, 죄의 병기, 불의의 병기. 이것이 이 칼과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그 원수를 모르고 공중을 향하여 싸우는 자와같이 싸우지 안하고 내가 원수를 단단히 발견하고 이 원수로 더불어 싸운다. 그 원수가 뭐입니까? 내가 내 마음과 내 고기 덩어리의 자루를 내가 잡아야 되지 자루 뺏기면 안 된다. 자루만 뺏기면 이것이 나를 다 찔러서 죽이게 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내 마음과 내 몸 요놈을 하나님에게 내가 복종해서 하나님이 동하라 하면 마음 요놈을 거머쥐고 동하게 하고 하나님이 정하게 하면 내 마음 정하게 하고, 하나님이 동하게 하면 내 몸을 동하게 하고 하나님이 정하게 하면 내 몸을 정하게 해서 내 심신 요것을 뿔끈 사로잡고 돈 요놈도 내 심신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명예도 주관하지 못하도록, 권세도 주관 하지 못하도록, 안일도 주관하지 못하도록, 더러운 음욕도 내 마음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세상 권세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명예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내 심신 요거는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가 주관하지 다른 것이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요것을 딱 자기의 대적으로 삼고 싸웠습니다.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도리를 말해서 가르쳐 준 후에, 이 사도 바울은 은사 교권의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자기도 남한테 가르치고 지금 나도 여게 단속하지 안하면 도리어 내가 절단 나는 것처럼 남은 가르칠 줄 알고 자기는 가르칠 줄 모르면 이것 헛일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가르치고 난 다음에는 자기를 가르치지 못해 가지고 실패한다.

이러기 때문에,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라'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라'

3. 우리가 가져야 할 목표

가.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

우리가 준비할 것은 참 영원무궁토록 존영하게 살 수 있는, 자기를 온전케 하는 것과 그 행위를 온전케 하는 것 이 두 가지로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곧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것 이것이 제일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목표하고 달릴 때에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걸음이 어떨 때는 보면, 인도하시는 걸음이 자기가 자기의 물질이 절단 나는 그런 인도도 있고, 가정이 파괴되어야 순종할 수 있는 이런 인도도 되고, 땅의 것이 마구 부숴지고 깨어지고 절단나지는 이런 명령과 요구를 주님이 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이 순종이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자기에게 성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순종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의 마음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의 습관병을, 습성, 버릇,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그런 버릇을 해 놓은, 나쁜 짓을 해 놓은 그것이 버릇입니다. 버릇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에게 취미, 재미, 이것은 영광되고 복된 재미는 없고 망하고 절단날 수 있는 그 재미만 그래요. 재미병을 고치기 위해서, 욕심병을 고치기 위해서, 취미병 하나 그거 병들어 놓으면 일생을 망칩니다. 가정도 망치고 저도 망치고 사업도 망치고 다 망쳐 버립니다.

그러기에 이제 이것을 목표하고 내가 순종하면, 순종함으로 내가 목표하는 거는 땅의 것이 아니고 어쨌든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온전한 행위가 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대신으로 대리 노릇 할 수 있는 이 실력있는 이것을 목표하고 내가 순종을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목표하는 그 두 가지만 주면 되는 것이지 땅의 것은 이렇든지 저렇든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두 가지를 줄 때에 당신이 ‘너는 이 두 가지를 주는데 너는 부자가 되면서라야, 부자가 되면서라야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봉사가 되겠고, 너는 거지 거지로 이렇게 순종 생활 해야 다른 사람에게 봉사가 되겠고’ 봉사된다 말은 다른 사람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당신의 복음 운동에 어떨 때에는 내가 세상적으로 쑥 올라가야 복음 운동이 되는 그런 때도 있고, 세상적으로 팍 낮아져야 복음 운동의 도움이 되는 그것도 있다 말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쓸모 있기에 따라서,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어떻게 되는 게 요긴한가 당신의 뜻을 맞추어서, 우리를 줬다가 뺏들었다가 올렸다가 낮추었다가 하는 것은 당신의 쓰기에 알맞게 필요하게 요긴하게 우리를 만드는 것이요 또 그것이 자기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되는 데에 필요있는 모든 과정들이라 그것입니다.1)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셔 가지고 만들고저 하는 것은 당신의 목표가 땅의 것을 줘서, 베드로에게 고기 잡는 것을 줘 가지고 고기를 잡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래서, ‘아! 참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획 하나도 우주보다 더 중량을 가지신 분이신데 나는 이제까지 주님 말씀을 허툴이 듣고 허무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이 죄를 자복합니다. 나는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감히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따라다니고 주님에게 모욕을 주고 주님의 뜻을 가로막는 이런 자이기 때문에 주를 따를 수 없는 자입니다.’ 탁 낙망을 하기까지 됐다 그 말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께서 위로를 하시면서 ‘이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렇게 산 소망을, 높은 소망을 주셨습니다.

나. 하나님과 하나 되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헛된 욕망을 가지지 말고 이 두 가지 욕망을 가지고, 또 그 사람이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은 어디를 향해 걸어갑니까? 하나님 만날려고 걸어갑니다. 성전을 향해서, 나면서 앉은뱅이도 성전을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모두 병나은 사람마다 다 모두 성전을 향해서 걸어갔소. 또 주님이 시키시기를 네가 병을 낫았으니 어디에 가라 했습니까? 어디에 가라 했지요? 제사장에게 가라 했지요. 제사장은, 제사장은 성전이지. 성전에 가는 것이라.

우리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이루는 이것이 가까운 목표요,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과 밀접해 하나님과 하나되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것이 목표라 말입니다.  이것을 목표로 가지고 땅 위에서 순종하는 이 순종을 할 때에 피곤치 아니하고 낙심되지 아니하고 나아갑니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됐다면 돈이 필요합니까? 돈 그까짓 것 전부 그 사람의 것인데 돈이 필요하요 권세가 필요하요? 권세가 필요할 때에는 권세 얼마든지, 필요할 때에는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돈 필요하면 얼마든지, 그러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 기쁘시게 이웃을 구원하는 것

우리가 순종하는 목표를 땅에다 두지 말고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는 여게다가 목표를 두고, 또 그러면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는 그것은 무슨 목표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곧 이웃을 구원하는 일입니다(고전 9:15-23 참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이웃을 구원하는 그것만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다른 것은 기뻐하지 않아요. 우리가 당신에게 어떤 게 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완전자요 창조주시요 주재이신데 당신에게 뭐이 필요합니까? 필요하다면 직접 당신이 만들어 하시지 무슨 복잡하게 우리를 통해서 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실은 보면 당신이 이 피조물들에게 원하고 있는 마음, 당신이 포원되어 있는 마음, 당신이 사람 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신 그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그것만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을 이루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됨으로써 당신이 기뻐하는 것, 또 우리가 잘되는 그것이 나를 위해서, 사욕을 위해서 잘되면 그것도 흉측해서 하나님께 근심거리요. 우리가 잘 될 때에 잘되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잘되는 그 목표가 택한 자를 구원하고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에게 충만시켜 줄 수 있는,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대한 사랑과 포원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은 그 사람과 그 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잘됐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그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향한 욕망이 무엇이냐?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온전한 행위로 이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이것이 참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되고, 이것이 유익 중에는 제일 가치 있는 유익이오. 또 이래 가지고 그러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되어 가지고 뭐 하려고?

이래 가지고 하나씩 둘씩 작은 데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위하는, 봉사하는 이 생활 이것을 차차 차차 길러. 온전한 행위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렇게 길러 가는 이 일을 하는 이것이 제일 가치 있는 일이라 그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무궁세계의 영광스러운 직업입니다. 영광스러운 사업이오. 사업 중에 이보다 더 존귀한 사업이 없습니다.

4. 절제는 조절이다

가. 하나님께 대해여

 그러면, 우리는 투사로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그 비결을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승리를 하고자 하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 절제가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절제라 말은 조절입니다. 조절.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됩니다.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됩니다. 물론 차가 굴러가는 데야 휘발유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차가 굴러가는 데는 기름이 중요하지만 기름이 안 나을 때 나오면 차가 폭발하여 큰 사고 납니다. 모든 게 다 알맞은 것. 절제하라 많은 알맞아야 된다 그 말입니다.  알맞아야 된다. 모든 것을 잘 조절해서 알맞아야 된다. 

그러면 첫째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알맞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제 주관에 맞은 하나님인 줄 알고 제 주관대로 하나님을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해 가지고 비정상인 신앙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거리가 멀며 얼마나 친밀하며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지금은 진노하고 계시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은 저를 제일 유일로 사랑하는 줄로,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봐야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바로 봐야 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거리를 바로 재야됩니다. 사람도 밉상스러운 것이 저 아랫자리에 앉을 것이 제일 상좌에 떡 앉아 있으면 됩니까? 그라면 '저 아래로 내려 가거라. 너 왜 여게 와 있노?' 쫓아 보낼 것 아닙니까?

아무리 부부간이라도, 부부간이라도 좀 잘못한 행위 있어 조금 밉상스레 보이면 그래도 좀 삼가해서 멀리 피해 있든지 해야 되지 밉상스럽게 옆에 들어 붙으면 발길로 채입니다 그런 것 아니겠소? 안 그렇소? 그 힘이 센, 여자는 안 그런 줄 압니까? 여자도 제게 맞지 안하고 서로 틀린 것이 남자가 옆에 붙으면 안 그런 줄 압니까? 여자도 제게 맞지 안하고 서로 틀린 것이 남자가 옆에 붙으면 왈칵 밀어 버리든지 그 뭐뭐 그럴 것입니다. 욕을 하든지 할 겁니다. 

 하나님에게 대해 똑똑히 자기를 알아서 지금은 하나님이 노여워 했기 때문에 아, 이 노를 풀어야 되겠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거 하라 하는데 하라 하는 일은 하지 안하고 엉뚱한 일을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찌 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서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면, 하나님은 노여워하고 있는데 생긋생긋 웃으면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면 그거 참 밉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노하니까 노를 풀어야지, 그럴 때 아, 하나님 내가 이것을 잘못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것을 회개해야 되고, 눈물 흘리며 회개해야 될 것이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날 사랑하신다.' 이러니까 안 된다 그거야.

나. 사람에 대하여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알고 바로 맺는 것이 그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절제해야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 자기가 공연히 사람들이 높여 주면 얼마든지 올라갈 줄 알고, 다른 사람이 높여 주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꼭 높아져야 될,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이유가 있고 꼭 높아져야 된다는 것이 평가적이요 비판적인 때는 자기는 그것을 안 높아질라 하면 그것도 죄가 되기 때문에 높아지지만 그렇지 안하는데 자기를 칭찬하고 높이면 비행기를 태우면 잘탄다 놀려 먹는 건 줄, 알고, 그 모욕당한 것인 줄 알고 숙여져서 자기 자리로 내려가야 되지 그 자리에서 건들거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인인 관계를 아주 주의해야 됩니다. 인인 관계 주의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인인 관계 중에 제일 요긴한 인인 관계가 무엇입니까? 부부 일심이라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인인 관계는 그것은 한 몸이기 때문에, 한 몸이기 때문에 고장나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성 관계에 절제를 해야 됩니다. 그것 절제 못 하면 저는 성공 못 합니다. 또, 더욱이 이것은 부부뿐만 아니라 이성이라 하는 것은 뭐 여자 하나뿐 밖에 아니고 남자 하나뿐 아니니까 많은 여자 속에서 살고 믿은 남자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제 자기는 거기에 대해서, 여게 대해서는 이성 관계가 있어야 되나 없어야 되나 하는 그런 것을 잘 조절해 가지고 절제해야 되지 마구 망라해 놓으면 그 잠깐 찰나의 실수해서 자기 몇십 년이나 거기에 대한 큰 희생과 손상을 당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다.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일에 대해서 너무 많이 해서 치우친 사람, 반대로 너무 적게 해서 치우친 사람, 절제가 잘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그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언행심사와 같은 모든 일에 절제하여야 합니다. 잠잘 시간에 잠자고, 일하고 공부할 시간에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일하고, 하나님께서 안식하라고 하는 주일에는 온전히 안식함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평강 가운데서 순종으로 절제 생활을 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만이 새벽기도, 성경 보는 시간, 기도 시간, 묵상의 시간, 가정 예배 시간, 전도 하는 시간과 같은 시간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토끼와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일에 절제 합시다.

라. 물질 사용에 대하여

그 다음에는 물질의 절제, 경제 절제. 경제에 대해서 나는 돈을 얼마든지, '내가 이러면 이 돈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 돈은 내가 써야 될 돈이니까 얼마 내가 쓰고 얼마 하나님께 바칠 돈이냐?' 경제 절제 경제에 대해 그것을 조절을 잘해야 되지 경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헛일입니다.

5. 자기 역량에 맞게 모든 일에 절제하라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일에 우리는 절제해야 되지 절제 안 하면 안 됩니다. 절제는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입니다.

모든 일을 우리는 예산해 가지고, 네가 망대를 지을 때에 앉아서 그 비용이 족할런지 모자랄런지 네가 앉아서 계산하지 않겠느냐, 만일 계산하지 안하고 그 공사를 사작하면 준공하지 못하고 수치를 당하게 될터이니까 아예 계산이 안 될상바르면 그 탑 쌓기를 시작하지 말아야 된다고 누가복음 14장 28절 이하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지금 모든, 천성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니까 조절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자기 역량에 맞도록, 하나님께서 무리한 것을 원하지 안해요, 두 냥쭝 주신 분이 알아요. 두 냥쭝 받은 자는 두 냥쭝 가지고 하고 또 넉 냥쭝 받은 사람은 넉 냥쭝 가지고 하고 닷 냥쭝 받은 사람은 닷 냥쫑 하고, 자기에게 주신 은혜가 있으니까 고게 맞춰서 이렇게 조절하고 절제해서 하는 것은 누구든지 다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는 전투인이라. 우리는 전투인이기 때문에 전투인에게는 무엇이 제일 중요하냐? 향방을 바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적을 바로 알아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적을 바로 알지 못하면 싸워서 이기지는 못한다. 그적은 누구인가! 적은 자기의 심신이 자기의 적이다. 심신이 적이기 때문에 심신부터 점령해야 되지 심신을 점싱하지 못하면 안 된다. 자기 마음을 점령한 것은 이제 큰 성을 점령하기보다 힘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성을 정렴하는 것보다 힘든다. 자기 마음을 점령한 사람은 천하를 점령한 것보다 큰 것을 점령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수를 바로 알아야 되지 원수도 깨닫지 못하고 공중을 향하여서 칼을 재는 것과 같이 그런 일 하지 말아라. 이래서 내가 내 몸을, 내 심신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서 다른 사람은 가르치고 나는 가르치지 못해 가지고 내가 망할까 두려워서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절제다, 절제다, 절제 못 하면 헛일이다 말씀했습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6-1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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