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성도가 할 일

2004.04.28 17:53

윤봉원 조회 수:1239 추천:125

계 2:8-112004042833날자: 2004년 4월 28일 수밤
제목: 성도가 할 일
본문: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 우리가 할 일

1) 하나님 위하는 일

우리가 할 일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적은 죽은 것 썩은 것 있는데, 썩은 것을 할 수 없고 죽어 있는 것은 살려낼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갓난 아이는 썩은 것은 하나도 없는 죽은 시체입니다. 예수 믿기 시작한 주일학생은 죽은 시체가 아니고 산 시체인데 썩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고 썩은 부분은 예를 들면 일곱 살밖에 없다, 7년이라는 그 부분밖에는 썩지 않았다. 그것은 일곱 살 먹는 아이입니다. 스무 살 먹는 아이는 스무 해 부분은 썩었습니다. 또 70세 먹는 중생된 사람은 70세라는 그 세월을 지나간 것은 썩었습니다.

그런데 썩어야 될 이것을 썩지 아니할 신령한 것으로 치료를 받은 것은 이것은 치료받은, 70년이라면 한 70개로 치든지 700 개로 친다면, 700개로 친다면 700개 치료받은 그 한 개는 썩지 아니하고 있는 생생한 시체 그것 100명 천 명보다 더 낫습니다. 왜? 그것은 다시 치료를 받을런지 받지 못할런지 의문 중에 있는 것이요 받은 것은 그는 하나님처럼 온전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어제도 얘기할 때 그랬습니다.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데,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일인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곧 하나이니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심 같이 형제를 구원하려고 하는 이것 한 가지뿐입니다. 그외 딴것이 없습니다. 실은 성경을 파고 들어가서 보면, 수백 수천 면으로 말했지만 종합을 해서 파고 들어가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것처럼 너희들이 서로 구원하는 여기에 매진하라 그 말입니다.

2) 이웃을 구원하는 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이웃을 구원하는 이것인데 이웃을 구원하는 그 구원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구원하는 구원입니까? 이웃을 구원하는 구원은 첫째가 이웃을 구원할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주님 위하는 일 곧 이웃을 위하는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을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3)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희생하는 일

이웃을 구원하려고 하면 희생을 해야 되는데, 이웃을 구원하려고 하면 희생을 해야 되는데, 어제 그 하나님의 종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제일 중한 것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물으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위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할 일이라 그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 위하는 일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희생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희생이면 뭘 위해서 희생을 해야 됩니까? 이럴 때에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을 해야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좀 순서가 조금 바꿔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우리의 할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이 일이 우리의 할 일인데, 이것만 우리 할 일인데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웃을 구원하는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순서가 그것이 둘째입니다. ‘그러면 이웃을 구원하려고 하면 그 셋째의 우리 할 일은 무엇입니까?’ ‘희생입니다’ 희생. ‘예, 그러면 맞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위하는 일, 하나님을 위하려면 이웃을 구원하는 그 일 외에는 다른 것이 없어요. 하나님을 위할래야, 그러니까 그분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원하는 일,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 그분이 부탁한 일 그것 하는 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이지 그 외에는 당신을 위하는 길이 하나도 없어요. 완전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뭐 생명을 바쳐봤자 당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내나 당신의 것이요, 그것 위함이 되느냐? 위함이 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것이 어떻게 완전한 것을 위할 수가 있습니까?

위하는 것인데 위하는 그 일은 이웃을 구원하는 이 일만이 위하는 일이다, 둘째. 셋째는 이웃을 위하려고 하면 희생하는 것이다. 그 순서만 바꿔졌지 대답을 바로 했습니다. 희생하는 것이다.

4) 자기를 부인하는 희생

그 다음에는, 희생이라니? 희생을 하면 어떻게 희생해야 됩니까 하는 그 순서는 그 다음을 물을 때에 좀 복잡해지니까 좀 벙벙했습니다. 그래 내가 그 대답을 하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물어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희생의 순서를 말했습니다.

희생은 첫째 어떤 희생을 해야 되느냐? 자기를 부인하는 희생을 해야 됩니다. 자기를 희생시켜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를, 옛사람 자기를 죽이는 것이 자기 부인하는 것입니다. 옛사람 자기를 죽이는 것이 부인하는 것이오.

만일 어떤 분발이 나왔습니다. 분발이 나왔는데, 분함이 나왔습니다. 나왔을 때에 ‘이것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판정이 될 때에 지체하지 말고 분발하는 그 자기라는 옛사람 자기를 꺾어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지 모릅니다. 마음에 섭섭합니다. 섭섭해서 참 눈물이 줄줄 나오고 밥맛이 없고 밥을 못 먹을 만큼 섭섭합니다. 이 섭섭할 때에 ‘섭섭한 이놈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이것은 옛사람 내다. 이놈을 희생을 첫째 해야 되겠다.’ 섭섭한 그 놈을 죽여서 이것은 옛사람이니 그 놈을 죽여 새사람은 섭섭할 때에 그것이 정말 감사한 것입니다. 새사람으로서의 감사의 자기로 바꾸고 섭섭한 자기를 죽여 희생시키는 이것이 첫째 희생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기를 꺾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 중심했던 것이 자기를 완전히 주님에게 바치는, 산 제물로 바치는, 이 자기 꺾는 희생, 부인하는 희생, 꺾는 희생이 되면 부인하는 희생이 됩니다. 꺾고 부인하는 희생을 하고 나면 이제 자기 중심이라는 자기 위주라는 그것이 희생이 돼야 됩니다. 그것을 희생을 하면 산 제물이 됩니다.

5) 썩을 것이 생명의 것으로 살아 난다

그러면 이것 가지고 이웃을 구원할 때에 이제는 이것을 조금 희생하면 이웃 구원이 퍽퍽 이루어지고, 이것을 좀 길게 희생하면 이웃 구원이 참 아주 유명하게 높게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이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썩지 아니한 성한 송장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썩느냐 그것이 완전의 것으로 치료를 받느냐? 그것은 현실이라는 그 단계입니다.

성한 송장을 단번에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 성한 송장이 썩으려고 하는 그 썩는 단계에 와 가지고 썩느냐,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죽느냐 썩느냐 그것이 영원 완전한 것으로서 치료를 받아 재생이 되느냐?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원한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다시 치료함을 받아 가지고 살아나느냐 하는 이것입니다.

이러기에 이렇게, 이것이 자기 구원이요 다 남의 구원인데 이렇게 자기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이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탄식하는 것은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죽은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또 갈라디아서 6장에는 보면 “육체로 심는 자는 썩은 것을 거두고” 썩은 수입을 하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으로 거두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죽어 있는 시체는 죽어 있는 시체요. 에베소 2장 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어 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어 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지금 살아 있는 이 심신은 죽은 송장입니다. 죽은 송장이오. 왜?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송장이오.

우리에게는 생기가 돌아와서 산 부분은 뭐입니까? 진리와 성령이 와 가지고 우리의 영을 살려서 영은 살았습니다. 영은 살았지만, 생기는 들어와 살았지만 “이 몸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 로마서 8장 8절로 10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2. 죽도록 충성하라

1) 생명의 면류관

이렇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준다” 그 말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이 승리하게 해 준다 그 말은 이제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 그 말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말은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 죽은 시체가 살아나나,

“생명의 면류관 준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도록 충성을 하면 생명의 면류관 준다. 생명이 승리하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게 된다. 멸망할 것이 멸망하지 않게 된다. 멸망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가? 썩지 아니할 것으로, 강한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신령은, 우리 몸이 신령하게 변화되는 것은, 신령하게 변화됐을 때에는 그것은 이 세상에서 기능을 얼마나 마련했는가 그게 문제지 신령한 몸은 무쇠덩어리 속에도 마음대로 들어갑니다. 또 그 몸뚱이가 이 우주에 충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작아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고,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몸뚱이는 떡을 먹을 수도, 이 물질로 만든, 쌀로 만든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안 먹고 억억만 년도 또 살 수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래 내 놨어.

예수님의 부활한 몸이 그런 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한 몸과 같이 우리도 부활한다 했습니다. 빌립보 3장 끝절에 보면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과 같이 우리도 부활시켜 준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면류관인데,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여기에서는 그것을 모르는데 이 성경을 기록할 때 그 지방에서는 면류관은 어떤 것이 면류관이냐? 경쟁을 하든지, 시비를 하든지, 권투를 하든지, 뭣이든지 시합을 하든지, 무엇이든지 이래 서로 투쟁할 때에는, 경쟁을 할 때에는 경쟁해서 이길 때에는 상급은 뒤에 주고 면류관부터 먼저 줍니다.

면류관을 떡 갖다 놓고 ‘누가 이겼느냐?’ 이기면 이긴 사람에게 면류관을 씌웁니다. 거기에는 이 물질로 풀로 그런 것 만든 그 면류관인데 면류관을 씌워. 면류관은 이긴 자라는 그 표시로 면류관을 줍니다.

2) 충성의 의미

그러기에 생명의 면류관 준다 그 말은 생명이 승리하는 그 승리를 준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뭐 하면? 충성하면. 충성이라? 얼마나 하면? 죽도록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해라 말은 자기의 있는 것 다하면 죽지 않습니까? 있는 것 다하면 죽지 않습니까? 있는 것 다해서 충성하라 그 말입니다.

충성이라 말은 여러분들, 아무리 부부간이 좋아서 아내가 남편에게 잘했다 할지라도 그는 열녀라고 하지 충성이라 말 안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아무리 잘해도 효도라고 하지 충성이라 말 안 합니다. 충성이라 말은 쓰는 데가 따로 있습니다.

전쟁해 가지고 친구끼리 아주 생사를 같이 하는 그런 친구라도 그 친구가 친구에게 충성한다는 그 말, 충성이라는 말 안 씁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어디 쓰느냐? 신하가 임금에게, 자기를 신하로 삼은 그 임금에게 잘하는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또 종이 주인에게 잘하는 것을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부하로 삼은, 부하가 상관에게 잘하는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충성이란 말은 주님의 종노릇 잘했다 말이요, 부하노릇 잘했다 말이요, 신하노릇 잘했다 말입니다. 이 말은 주님이 나를 뭐 하려고 세웠는지 당신이 나를 세우신 그 세움에 서 가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 주님이 명령하신 일 그 일 잘하는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이 뭐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이 뭐입니까?

그 사람이 연보도 많이 하고, 도덕면에 완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도 그 사람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중심이 ‘이것으로 빛을 나타내 가지고 나를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게 하리라’ 하는 이 마음을 가지고 했으면 그것도 귀합니다. 그것 충성입니다. 부분 충성입니다. 그는 그러나 그것이 직접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그와는 다르고 간간접으로 되는 것입니다. 간접이오. 간접이요 간간접이오.

그러나 자기가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충성을 할 때에 자기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하면서 구원받는 그 사람이 ‘이는 과연 예수 믿는 사람이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래 믿어야 된다. 이분은 신임을 하겠다. 이분은 인정을 하겠다. 내가 믿음이 모자라서 교회 나가지 못할지라도 내가 가면 이분의 지도를 받겠다.’ 그분에게 신앙에 본이 되고 감화를 주는 자기가 되어 가지고 충성했으면 그것이 충성에 제일입니다, 제일이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모든 면으로 충성이 있겠지만 인간을 내가 구원하기 위한 이 직접적인, 바로 일선에 나서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기에 제일 용이하고 빠르고 하는 이 면에 서서, 이 위치에 서서 인간을 구원하는 이것이 인간의 직업 중에는 제일 복 있은 직업이고, 자기의 선 위치 중에는 제일 복 있은 위치고, 또 가장 많은 그 효력을 얻는 것도 제일 좋은 위치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이 승리하는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이 길에 나서 가지고 이것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섰다고 하면 넘어집니다. 이제는 됐다 하면 반드시 넘어지요.

그러기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둔다” 했습니다. 피곤치 않은 그것이 정상적으로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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