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은 전능

2006.07.10 20:01

윤봉원 조회 수:1523 추천:110

눅 1:37-382006070901날자: 2006년 7월 9일 주일 오전
제목: 하나님 말씀은 전능
본문 : 누가복음 1장 37절∼38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1. 말씀의 권위를 얼마만큼 인정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얼마만큼 인정하고 있습니까? 말씀과 사람의 의견이 대립이 될 때 어느 것을 인정하고 따르면서 살았습니까? 말씀과 돈이 결부 될 때 어느 것을 인정하며 살았습니까? 말씀과 어떤 사건, 일이 결부 될 때 어느 것을 더 중요시 하고 살았습니까?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만큼은 인정하고 살았습니까? 공부나 과학, 의학, 자연 진리 만큼은 인정하고 살았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정상으로 살았는지 비정상으로 살았는지를 살펴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2. 기독교의 종자와 시발
가. 마리아의 회개와 순종
기독교 그 종자가 예수님이 잉태해서 탄생한 것이 이 예수교의 시발이 그렇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서 마리아에게 '이제 남편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곧 구세주라' 하는 것을 전달했습니다. 그럴 때에 유대나라의 그 법칙은 일찍부터 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메시아가 날 것을 하나님이 예비하시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다가 비할 수 없는 특별히 칠계에 대해서 아주 칠계명에 대해서 엄수한 것이 유대인들입니나. 처녀가 잉태했을 때에는 사형을 시키되 저 빈 들판에 갖다 세워 놓고 그 모든 친족들이 다 모입니다. 친족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가까운데서부터 돌을 한 개씩 들고 그 잉태된 여인을 돌로 칠 때에 그때에 그 여인은 돌 무더기 속에 묻혀 가지고서 사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거게다가 이는 어느 족속의 몇 대손 몇 대손 몇 대손 몇 대손 누구 누구의 그 딸로서 이런 범죄를 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사형을 시킨 것이다 이라기 때문에 그 참 추한 이름이 뭐 그 돌 무더기가 백 년 이백 년에 없어지지 않는 돌 무더기기 때문에 얼마나 참 무서운 형인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사가 와 가지고 마리아에게 '네가 아이를 배어서 남아를 낳으리니 그를 지극히 크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라라. 그의 나라가 영영하다.' 이러니까 이 마리아가 유대 풍속에 천사를 만난 것도 참 영광이고 기쁘고, 또 아들이 그렇게 위대한 아들이 난다 하니까 그것도 기쁘고 즐겁지만 남편 없이 아이가 난다고 하니 그것은. 바로 돌 무더기 속에서 그 투석에 사형을 받으라는 말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놀래서 ‘이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사나이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면서 거부를 했습니다.  그것은 거부 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럴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가를 '네가 아는 대로 대제사장의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지 못한 노인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잉태 된다 하시니까 잉태가 돼 가지고 벌써 여섯 달이 됐다.' -그러먼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그라면서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보다 이런 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 하나님이 당신이 영원전 예정하신 그것을 말씀으로 선포한 그것은 그대로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다 이루어지느니라.' 할 때에 마리아가 자기의 입장으로서는 사형받는 일이요, 또 이치로서는 절대 부정(父精)이 없이 잉태되는 일은 역사에 없는 일이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요, 또 그 일이 된다면 자기는 참혹한 그 멸망을 받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부정했다가 천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이 말씀을 듣고서 즉시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내가 사나이를 몰라도 그렇게 아이를 밸 수 있다'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 아이를 배면 남편 없습니다. 아이 배는 것은 참혹한 사형을 받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 하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이 일에 대해서 방해하지를 못하리라 하는 것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면 믿고 순종하는 것은 인간이 생각할 때는 마리아는 사형을 자취 하는 일이요 그것은 또 천부당 만부당 역사와 이치에 안 맞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복종했고, 또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사를 염려하지 안하고 복종했습니다. 그럼으로서 마리아가 잉태해 가지고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
 잉태했을 때에 마리아가 멀리 어디 가서 숨어서 살면 누가 뭐, 결혼한 처녀인지 안한 처녀인지 나이는 어리다 할지라도 그거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지만 살기를 꼭 자기의 가까운 친척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사니까 조그만한 그 처녀가 잉태됐으니까 배가 이렇게 뭐 참 심히 배가 불러서, 불룩하이 이러니까 누구든지 보면 아이 밴 것을 다 알 수 있게 그렇게 배었고, 또 낳을 때도 다른 마을에 가서 낳았으면 하지만 자기 바로 집안들이 모여서 호적하는 그 가운데서 낳았고, 또 말 구유에서 아기를 낳았고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널리 광고되고 알 수 있는 그런 순서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리아의 잉태돼서 잉모로 있을 때에나 또 해산했을 때나 그럴 때에 유대 나라의 그 법이 거기에 대해서 상관하지를 못했고. 또 인간의 그 부정 모혈이라는 그 이치 그것이 방해하지를 못했고, 그렇게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잉태하셔 가지고 탄생하셔서 우리의 구주가 됐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종자요 시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인간의 이치에 맞도록만 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인간 이치에 맞는 것도 있지만 인간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인간 이치에 맞지 안하고 통계에 맞지 안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비합리적이며 비통계적이며 비역사적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요, 또 이렇게 믿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기와 역사와 모든 통계를 인간의 이치를 부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요. 또 부정하고 자기의 생사를 완전히 다 바쳐 놓고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럴 때에 죽지도 안했고 또 부정 모혈이 아니지만 잉태 안 되지도 안했고 이래서 인간이 아는 그 모든 인간의 지식과 이치를 다 초월한 기독교요, 또 이 피조물들의 세력에 그 방해나 박해 이런 것들을 다 초월한 하나님의 절대의 그 능력의 도인 것이 처음에부터 그렇게 돼 나갔었습니다.
나. 주님과 말씀의 실상을 바로 알아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 물질계의 모든 것 뭐 태평양 바다도, 또 미국도, 소련도, 중공도 뭐 세계의 모든 열국들이 모이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 같고, 또 세계의 모든 강대국들이 날뛰면 그 이상은 없는 지상의 권세같이 이렇게 보이지만, 그 나라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정권자. 모든 백성들, 그 나라에 있는 모든 만물들, 또 지금 20세기에 가 가지고서 뭐 원자니 뭐니 발명했다고 야단을 지기지만 그것이 주님이 다 엿새 동안에 창조한 그 속에 든 것입니다. 이래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에 우리를 대속해서 십자가 못 박아 죽으신 주님이 명령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루어지라고 명령했을 때에 그 명령이 떨어진 그 명령이 무엇이냐? 그 명령이 주님의 말씀이요 그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주님이 선포했을 때에 그 진리가 없는 가운데서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를 실지 시공을 했습니다. 시공을, 실지로 창조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창조를 명령하신 분이요, 그 명령인 진리가 와 가지고서 모든 존재들을 창조했습니다. 진리는 창조했고 주님이신 하나님은 그 진리에게 창조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지금 나타나신 이 말씀은 처음에는 이 말씀이 없는 가운데서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만물을 창조하라고 명령하셨고, 이제 두 번째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대속하신 하나님이 우리 주님으로 나타나셨고 또 이 주님이 영감으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으니 이 말씀은 이차 창조를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일차 창조의 것을 성화 해서 멸망한 것을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나타나서 성화로서 구원 작업을 하시고, 또 하나는 영영히 없어지는 그 완전한 것을 새로 창조해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새로 창조하는 완전 창조를 이루기 위해서 이 말씀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 안에 창조의 능력과 또 완전히 생명으로 완전히 성화시키는 성화의 능력과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는 이 창조의 능력이 이 말씀 안에 내재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우리에게 임하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뗘한 것을 너희들로 알게 하시기를 바란다. 그 능력이 인성 가진 예수님 안에서 오셔 가지고서 그 죽음의 승리, 죽음으로 승리한 그 승리를 여러분들이 또 생각해야지 죽음의 승리, 또 부활의 승리 그 승리를 일으켰는데 그 능력이 이제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완전 승리케 하신 그 능력이 이차적으로 너희들 안에 차 가지고 승리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하는 것을 에베소 1장 17절에 말씀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소망이 우리가 언제든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능력이 이제 우리에게 왔으니 이 능력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게 믿음인데, 이 말씀에 순종할 때에 이 지극히 큰 능력이 그 순종을 통해서 순종하는 자에게 그 순종하는 그 일에 역사하십니다.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내재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큰 능력에 순종 하는 것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순종할 때에 지극히 큰 능력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지극히 큰 능력에 순종하는 이 순종을 방해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방해하면 방해하는 것이 깨어지지 또 방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방해한다는 것이 방해한다는 것이 위해서 이용만 당하고 말지 이 지극히 큰 능력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종에 대해서 방해하는 것은 영원히 없습니다. 방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 순종하는 자에게 이용이 되고 말기 때문에 마지막으로는 위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용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다. 착각하지 말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과 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이 생활을 할 때에, 주님 모실라 하니까 세상에서 핍박이 많고, 또 이 말씀에 순종 할라 하니까 핍박이 많고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주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까 내가 그래도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을 모시야지, 또 주님의 말씀이니까 내가 어려움을 당해도 이 말씀을 포기하지 안하고 지켜야지.' 제가 무슨 힘을 들여 가지고서 주님을 모시고 지키고 주님을 위하는 것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 오해의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킴을 받는 그러 약자가 아닙니다. 네, 그거 알아야 됩니다. 또 주님은 우리에게 위함을 받고 지킴을 받는 그런 약자가 아닙니다.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 했는데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주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그것을 주님이 지었고 이 말씀이 지었습니다. 뭐 할라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도록 지었습니다. 왜? 방해를 해야 우리가 참 주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말씀에게 복종을 힘을 다해서 하는지 안 하는지 그 진가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 연단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그럴 때에 주님을 모시고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지신 이 진리와 이 진리를 호령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신 주님을 내가 모시고 지극히 크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이 분의 슬하에 이 분의 그늘 아래에 이분 슬하에 내가 숨는 것이요 지극히 큰 능력의 나래 안에 내가 피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은 자는. 여호와로 은신처를 삼은 자는 그는 영영히 평강하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주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모시고 그 슬하에 있으면 주님과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에 피조물이 하나도 해하지 못하고 피조물은 우리를 위하는 일 외에는 다른 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니까 그 현저히 유대법에 그러츰 시퍼런 법으로 나왔지만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를 보호했지 마리아를 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를 해하지 못했으면 마리아가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마리아가 그 속에 잉태한 예수님을 지켰습니까 이 속에 잉태되신 예수님의 하나님이 예수님이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 예수님이 마리아를 그 유대인들에게 칠계 범했다고서 죽이지 못하도록 지키고 또 그 친족 가운데서 해산 했지만 아무도 해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지킨 것이 마리아가 주님과 진리를 지켰습니까, 주님과 진리가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누가 지켰어요? 누가 지키고 누가 지킴을 받았습니까? 자, 마리아가 주님과 그 진리를 지키느라고 참 수고 많이 하고 지키느라고 애를 썼고 주님과 진리는 마리아에게 지켜 보호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습니까? 그러면 그 안에 잉태 되어 있는 하나님이신 주님과 진리가 마리아를 지켜서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유대법에 그 엄격한 법이지만 다 말살 되고서 무사히 평안하게 안보했다고 주님과 말씀이 마리아의 그 위험 천만한 태도 요 모든 형편이지만 지켜서 평안하게 다 해산하게 된 주님과 말씀이 마리아를 지켜 주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종자요 시발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들어가야 되고, 또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그런 것을 아끼지 안하고 바쳐 놓고 들어가야 됩니다. 바쳤다고 죽었습니까? 마리아가 더 존귀해졌지. 마리아는 존귀해졌는데, 천주교에서는 그만 마리아는 예수님보다 더 높입니다. 그것은 마귀들이 그와 같이 하는 것이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인 쳐놓고 제일 역사에 복 있는 여인이 누구냐 하면 이렇게 자기를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에게 일차적으로 순종한 마리아가 제일 복되다고 하지 안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가 기도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는데 그러면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죽지 안하고 나왔으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니엘의 덕을 봤습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덕을 봤습니까? 누가 봤습니까? 다니엘이 봤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은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은덕을 봤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자, 어느 겁니까? 다니엘이 은덕을 봤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이 은덕을 봤습니까? 주님이 은덕봤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다니엘이 주님과 주의 말씀에 덕택을 봤고 보호를 봤다고. 사자에서 그와 같이 구출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보호해서 그 은택으로 다니엘이 거기서 승리 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대에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주님을 모시고 배반치 안하고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지키므로 그 모든 역경에서 생명이 끊겨져도 눈도 깜짝거리지 안하고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해도 그까짓 말 듣지 안하고 믿음으로 복종해 나간 그 모든 사람들은 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의 능력의 보호를 입어 가지고 승리의 면류관을 주께 다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오해를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내가 무슨 내 힘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 말씀은 전능의 말씀인데 우리 지체하고 이거 버러지 같은 우리들에게 무슨 혜택을 입고 무슨 보호를 입을 것입니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오해해서 자기가 뭐 무슨 승리하고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느라고 애를 쓴 줄 알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고 애를 썼다, 무슨 큰 공로나 베푼 거같이 이제 우쭐해 가지고 날뛰는 사람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게 지켜 보호함을 입었지 제가 하나님 말씀 지킨 것은 아닌 것입니다.
3. 주님과 말씀의 권능을 확실히 믿으라
그러기 때문에. 어디서나 주님과 주의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만 안하면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아무리 온 천하가 날 미워해도 저거는 꼼짝을 못 합니다. 해하지 못 합니다. 살아서 보호함을 입는 것은 그것은 아직까지 미완성의 미완성의 승리를 한 것이고, 그렇게 주님과 주님을 모시고 거기서 끝을 마친 것은 완성의 승리를 한 것이지, 결단코 추호도 패전이나 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떠한 세력이 어떻게 와도 나로서는 그것을 대항할 수 없지만 나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말씀에 복종하는 이 말씀은 내가 복종하는 이 말씀은 이 말씀은 나와 같은 자가 아니고 없는 것의 모든 것을 만들어서, 공산주의도 이 말씀이 만들었고 모든 인간도 이 말씀이 만들었고 지금도 주관하고 있는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내재해 있음을 깨닫고 이 말씀의 능력에 보호를 입기를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기쁨으로 평안히 입어 어떤 것이라도 눈도 꼼짝하지 안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온 세계의 악의 세력이 다 하나가 돼 가지고서 달라들지라도 내가 복종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당하지 못한다, 내가 모시고 있는 주님의 능력은 당하지 못한다. 주님과 말씀은 그 모든 것들을 없는 것에서 지었고, 또 먹이고, 입히고, 살리고 하는 그 능력의 주재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 지키고 이 말씀 내가 모시고 주님 모시고 이 말씀에 복종하는 데에는 아무도 해할 자 없다 따라 합시다. 주와 말씀은! 나를 돕는 자시니! 세상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믿읍시다.
이 말씀 안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있다, 이 말씀만 내가 모시고 이 말씀만 내가 떠나지 안하면 이 말씀이 나를 지켜 주신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말씀했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가감이 없습니다.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계시는 것을 우리는 믿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날자: 2006년 7월 9일 주일 오전
제목: 하나님 말씀은 전능
본문 : 누가복음 1장 37절∼38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1. 말씀의 권위를 얼마만큼 인정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얼마만큼 인정하고 있습니까? 말씀과 사람의 의견이 대립이 될 때 어느 것을 인정하고 따르면서 살았습니까? 말씀과 돈이 결부 될 때 어느 것을 인정하며 살았습니까? 말씀과 어떤 사건, 일이 결부 될 때 어느 것을 더 중요시 하고 살았습니까?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만큼은 인정하고 살았습니까? 공부나 과학, 의학, 자연 진리 만큼은 인정하고 살았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정상으로 살았는지 비정상으로 살았는지를 살펴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2. 기독교의 종자와 시발
가. 마리아의 회개와 순종
기독교 그 종자가 예수님이 잉태해서 탄생한 것이 이 예수교의 시발이 그렇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서 마리아에게 '이제 남편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곧 구세주라' 하는 것을 전달했습니다. 그럴 때에 유대나라의 그 법칙은 일찍부터 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메시아가 날 것을 하나님이 예비하시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다가 비할 수 없는 특별히 칠계에 대해서 아주 칠계명에 대해서 엄수한 것이 유대인들입니나. 처녀가 잉태했을 때에는 사형을 시키되 저 빈 들판에 갖다 세워 놓고 그 모든 친족들이 다 모입니다. 친족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가까운데서부터 돌을 한 개씩 들고 그 잉태된 여인을 돌로 칠 때에 그때에 그 여인은 돌 무더기 속에 묻혀 가지고서 사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거게다가 이는 어느 족속의 몇 대손 몇 대손 몇 대손 몇 대손 누구 누구의 그 딸로서 이런 범죄를 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사형을 시킨 것이다 이라기 때문에 그 참 추한 이름이 뭐 그 돌 무더기가 백 년 이백 년에 없어지지 않는 돌 무더기기 때문에 얼마나 참 무서운 형인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사가 와 가지고 마리아에게 '네가 아이를 배어서 남아를 낳으리니 그를 지극히 크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라라. 그의 나라가 영영하다.' 이러니까 이 마리아가 유대 풍속에 천사를 만난 것도 참 영광이고 기쁘고, 또 아들이 그렇게 위대한 아들이 난다 하니까 그것도 기쁘고 즐겁지만 남편 없이 아이가 난다고 하니 그것은. 바로 돌 무더기 속에서 그 투석에 사형을 받으라는 말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놀래서 ‘이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사나이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면서 거부를 했습니다.  그것은 거부 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럴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가를 '네가 아는 대로 대제사장의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지 못한 노인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잉태 된다 하시니까 잉태가 돼 가지고 벌써 여섯 달이 됐다.' -그러먼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그라면서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보다 이런 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 하나님이 당신이 영원전 예정하신 그것을 말씀으로 선포한 그것은 그대로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다 이루어지느니라.' 할 때에 마리아가 자기의 입장으로서는 사형받는 일이요, 또 이치로서는 절대 부정(父精)이 없이 잉태되는 일은 역사에 없는 일이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요, 또 그 일이 된다면 자기는 참혹한 그 멸망을 받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부정했다가 천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이 말씀을 듣고서 즉시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내가 사나이를 몰라도 그렇게 아이를 밸 수 있다'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 아이를 배면 남편 없습니다. 아이 배는 것은 참혹한 사형을 받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 하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이 일에 대해서 방해하지를 못하리라 하는 것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면 믿고 순종하는 것은 인간이 생각할 때는 마리아는 사형을 자취 하는 일이요 그것은 또 천부당 만부당 역사와 이치에 안 맞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복종했고, 또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사를 염려하지 안하고 복종했습니다. 그럼으로서 마리아가 잉태해 가지고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
 잉태했을 때에 마리아가 멀리 어디 가서 숨어서 살면 누가 뭐, 결혼한 처녀인지 안한 처녀인지 나이는 어리다 할지라도 그거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지만 살기를 꼭 자기의 가까운 친척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사니까 조그만한 그 처녀가 잉태됐으니까 배가 이렇게 뭐 참 심히 배가 불러서, 불룩하이 이러니까 누구든지 보면 아이 밴 것을 다 알 수 있게 그렇게 배었고, 또 낳을 때도 다른 마을에 가서 낳았으면 하지만 자기 바로 집안들이 모여서 호적하는 그 가운데서 낳았고, 또 말 구유에서 아기를 낳았고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널리 광고되고 알 수 있는 그런 순서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리아의 잉태돼서 잉모로 있을 때에나 또 해산했을 때나 그럴 때에 유대 나라의 그 법이 거기에 대해서 상관하지를 못했고. 또 인간의 그 부정 모혈이라는 그 이치 그것이 방해하지를 못했고, 그렇게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잉태하셔 가지고 탄생하셔서 우리의 구주가 됐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종자요 시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인간의 이치에 맞도록만 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인간 이치에 맞는 것도 있지만 인간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인간 이치에 맞지 안하고 통계에 맞지 안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비합리적이며 비통계적이며 비역사적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요, 또 이렇게 믿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기와 역사와 모든 통계를 인간의 이치를 부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요. 또 부정하고 자기의 생사를 완전히 다 바쳐 놓고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럴 때에 죽지도 안했고 또 부정 모혈이 아니지만 잉태 안 되지도 안했고 이래서 인간이 아는 그 모든 인간의 지식과 이치를 다 초월한 기독교요, 또 이 피조물들의 세력에 그 방해나 박해 이런 것들을 다 초월한 하나님의 절대의 그 능력의 도인 것이 처음에부터 그렇게 돼 나갔었습니다.
나. 주님과 말씀의 실상을 바로 알아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 물질계의 모든 것 뭐 태평양 바다도, 또 미국도, 소련도, 중공도 뭐 세계의 모든 열국들이 모이면 그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 같고, 또 세계의 모든 강대국들이 날뛰면 그 이상은 없는 지상의 권세같이 이렇게 보이지만, 그 나라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정권자. 모든 백성들, 그 나라에 있는 모든 만물들, 또 지금 20세기에 가 가지고서 뭐 원자니 뭐니 발명했다고 야단을 지기지만 그것이 주님이 다 엿새 동안에 창조한 그 속에 든 것입니다. 이래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에 우리를 대속해서 십자가 못 박아 죽으신 주님이 명령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루어지라고 명령했을 때에 그 명령이 떨어진 그 명령이 무엇이냐? 그 명령이 주님의 말씀이요 그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주님이 선포했을 때에 그 진리가 없는 가운데서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를 실지 시공을 했습니다. 시공을, 실지로 창조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창조를 명령하신 분이요, 그 명령인 진리가 와 가지고서 모든 존재들을 창조했습니다. 진리는 창조했고 주님이신 하나님은 그 진리에게 창조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지금 나타나신 이 말씀은 처음에는 이 말씀이 없는 가운데서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만물을 창조하라고 명령하셨고, 이제 두 번째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대속하신 하나님이 우리 주님으로 나타나셨고 또 이 주님이 영감으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으니 이 말씀은 이차 창조를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일차 창조의 것을 성화 해서 멸망한 것을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나타나서 성화로서 구원 작업을 하시고, 또 하나는 영영히 없어지는 그 완전한 것을 새로 창조해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새로 창조하는 완전 창조를 이루기 위해서 이 말씀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 안에 창조의 능력과 또 완전히 생명으로 완전히 성화시키는 성화의 능력과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는 이 창조의 능력이 이 말씀 안에 내재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우리에게 임하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뗘한 것을 너희들로 알게 하시기를 바란다. 그 능력이 인성 가진 예수님 안에서 오셔 가지고서 그 죽음의 승리, 죽음으로 승리한 그 승리를 여러분들이 또 생각해야지 죽음의 승리, 또 부활의 승리 그 승리를 일으켰는데 그 능력이 이제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완전 승리케 하신 그 능력이 이차적으로 너희들 안에 차 가지고 승리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하는 것을 에베소 1장 17절에 말씀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소망이 우리가 언제든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능력이 이제 우리에게 왔으니 이 능력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게 믿음인데, 이 말씀에 순종할 때에 이 지극히 큰 능력이 그 순종을 통해서 순종하는 자에게 그 순종하는 그 일에 역사하십니다.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내재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큰 능력에 순종 하는 것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순종할 때에 지극히 큰 능력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지극히 큰 능력에 순종하는 이 순종을 방해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방해하면 방해하는 것이 깨어지지 또 방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방해한다는 것이 방해한다는 것이 위해서 이용만 당하고 말지 이 지극히 큰 능력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종에 대해서 방해하는 것은 영원히 없습니다. 방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 순종하는 자에게 이용이 되고 말기 때문에 마지막으로는 위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용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다. 착각하지 말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과 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이 생활을 할 때에, 주님 모실라 하니까 세상에서 핍박이 많고, 또 이 말씀에 순종 할라 하니까 핍박이 많고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주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까 내가 그래도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을 모시야지, 또 주님의 말씀이니까 내가 어려움을 당해도 이 말씀을 포기하지 안하고 지켜야지.' 제가 무슨 힘을 들여 가지고서 주님을 모시고 지키고 주님을 위하는 것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 오해의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킴을 받는 그러 약자가 아닙니다. 네, 그거 알아야 됩니다. 또 주님은 우리에게 위함을 받고 지킴을 받는 그런 약자가 아닙니다.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 했는데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주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그것을 주님이 지었고 이 말씀이 지었습니다. 뭐 할라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도록 지었습니다. 왜? 방해를 해야 우리가 참 주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말씀에게 복종을 힘을 다해서 하는지 안 하는지 그 진가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 연단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그럴 때에 주님을 모시고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지신 이 진리와 이 진리를 호령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신 주님을 내가 모시고 지극히 크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이 분의 슬하에 이 분의 그늘 아래에 이분 슬하에 내가 숨는 것이요 지극히 큰 능력의 나래 안에 내가 피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은 자는. 여호와로 은신처를 삼은 자는 그는 영영히 평강하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주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모시고 그 슬하에 있으면 주님과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에 피조물이 하나도 해하지 못하고 피조물은 우리를 위하는 일 외에는 다른 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니까 그 현저히 유대법에 그러츰 시퍼런 법으로 나왔지만 말씀에 순종한 마리아를 보호했지 마리아를 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를 해하지 못했으면 마리아가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마리아가 그 속에 잉태한 예수님을 지켰습니까 이 속에 잉태되신 예수님의 하나님이 예수님이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 예수님이 마리아를 그 유대인들에게 칠계 범했다고서 죽이지 못하도록 지키고 또 그 친족 가운데서 해산 했지만 아무도 해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지킨 것이 마리아가 주님과 진리를 지켰습니까, 주님과 진리가 마리아를 지켰습니까? 누가 지켰어요? 누가 지키고 누가 지킴을 받았습니까? 자, 마리아가 주님과 그 진리를 지키느라고 참 수고 많이 하고 지키느라고 애를 썼고 주님과 진리는 마리아에게 지켜 보호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습니까? 그러면 그 안에 잉태 되어 있는 하나님이신 주님과 진리가 마리아를 지켜서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유대법에 그 엄격한 법이지만 다 말살 되고서 무사히 평안하게 안보했다고 주님과 말씀이 마리아의 그 위험 천만한 태도 요 모든 형편이지만 지켜서 평안하게 다 해산하게 된 주님과 말씀이 마리아를 지켜 주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종자요 시발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들어가야 되고, 또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그런 것을 아끼지 안하고 바쳐 놓고 들어가야 됩니다. 바쳤다고 죽었습니까? 마리아가 더 존귀해졌지. 마리아는 존귀해졌는데, 천주교에서는 그만 마리아는 예수님보다 더 높입니다. 그것은 마귀들이 그와 같이 하는 것이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인 쳐놓고 제일 역사에 복 있는 여인이 누구냐 하면 이렇게 자기를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에게 일차적으로 순종한 마리아가 제일 복되다고 하지 안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가 기도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는데 그러면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죽지 안하고 나왔으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니엘의 덕을 봤습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덕을 봤습니까? 누가 봤습니까? 다니엘이 봤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은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은덕을 봤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자, 어느 겁니까? 다니엘이 은덕을 봤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이 은덕을 봤습니까? 주님이 은덕봤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다니엘이 주님과 주의 말씀에 덕택을 봤고 보호를 봤다고. 사자에서 그와 같이 구출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보호해서 그 은택으로 다니엘이 거기서 승리 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대에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주님을 모시고 배반치 안하고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지키므로 그 모든 역경에서 생명이 끊겨져도 눈도 깜짝거리지 안하고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해도 그까짓 말 듣지 안하고 믿음으로 복종해 나간 그 모든 사람들은 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의 능력의 보호를 입어 가지고 승리의 면류관을 주께 다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오해를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내가 무슨 내 힘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 말씀은 전능의 말씀인데 우리 지체하고 이거 버러지 같은 우리들에게 무슨 혜택을 입고 무슨 보호를 입을 것입니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오해해서 자기가 뭐 무슨 승리하고라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느라고 애를 쓴 줄 알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고 애를 썼다, 무슨 큰 공로나 베푼 거같이 이제 우쭐해 가지고 날뛰는 사람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게 지켜 보호함을 입었지 제가 하나님 말씀 지킨 것은 아닌 것입니다.
3. 주님과 말씀의 권능을 확실히 믿으라
그러기 때문에. 어디서나 주님과 주의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만 안하면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아무리 온 천하가 날 미워해도 저거는 꼼짝을 못 합니다. 해하지 못 합니다. 살아서 보호함을 입는 것은 그것은 아직까지 미완성의 미완성의 승리를 한 것이고, 그렇게 주님과 주님을 모시고 거기서 끝을 마친 것은 완성의 승리를 한 것이지, 결단코 추호도 패전이나 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떠한 세력이 어떻게 와도 나로서는 그것을 대항할 수 없지만 나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말씀에 복종하는 이 말씀은 내가 복종하는 이 말씀은 이 말씀은 나와 같은 자가 아니고 없는 것의 모든 것을 만들어서, 공산주의도 이 말씀이 만들었고 모든 인간도 이 말씀이 만들었고 지금도 주관하고 있는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내재해 있음을 깨닫고 이 말씀의 능력에 보호를 입기를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기쁨으로 평안히 입어 어떤 것이라도 눈도 꼼짝하지 안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온 세계의 악의 세력이 다 하나가 돼 가지고서 달라들지라도 내가 복종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당하지 못한다, 내가 모시고 있는 주님의 능력은 당하지 못한다. 주님과 말씀은 그 모든 것들을 없는 것에서 지었고, 또 먹이고, 입히고, 살리고 하는 그 능력의 주재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 지키고 이 말씀 내가 모시고 주님 모시고 이 말씀에 복종하는 데에는 아무도 해할 자 없다 따라 합시다. 주와 말씀은! 나를 돕는 자시니! 세상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믿읍시다.
이 말씀 안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있다, 이 말씀만 내가 모시고 이 말씀만 내가 떠나지 안하면 이 말씀이 나를 지켜 주신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말씀했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가감이 없습니다. 이 말씀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계시는 것을 우리는 믿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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