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의 라합

2006.01.13 08:15

윤봉원 조회 수:1506 추천:170

수 2:1-242006011023

날자: 2005년 1월 10일 화밤 수련회
제목: 인생역전의 라합
본문: 여호수아 2장 1절 – 24절

1. 인생역전은 가능할까?
혹시 여러분들은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원망과 불평과 좌절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좌절과 낙망과 불평 속에서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을 주님의 형상대로의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가시기에 꼭 합당한 각자의 맞춤의 현실로 주신 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털도 헤아리고 계시며, 심지어는 우리가 춤 삼키는 순간도 우리에 대한 사랑의 눈을 떼지 않고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골에 가 보면 무식하게 생긴 소도 자기 새끼에 대한 관심의 눈을 떼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형편이 나 자신이 볼 때에나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별로 행복하게, 감사하게 안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포기 하지 마세요, 우리의 인생 역전은 가능합니다. 왜냐고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함께 하시기 때문이지요. 그 명확한 답을 믿음의 인생 역전된 기생 라합의 인생을 통하여 찾아 보도록 합시다.
라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별로 인정 받거나 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기생이었습니다. 혹시 여기 자매님들 중에 기생으로 살아가고 싶은 분 계십니까? 그러나 그는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룻기의 주인공 룻의 남편 보아스라는 실력 있는 자를 낳았으며,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기생으로서는 도무지 계산 할 수 없는 영광스런 구원의 가계의 주인공이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왜 이런 인생역전의 역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2. 본문 내용 설명
여호수아는 모세가 건너지 못한 요단강을 건너서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앞에는 많은 대적들과 방해물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치러야 할 전쟁을 앞 두고 1장에서 ‘내가 함께 할 테니 강하고 담대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리라’고 말씀으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여리고로 두 정탐꾼을 선정하여 보냈습니다.  그들은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여리고 왕이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그들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라합은 정탐꾼들을 자기 집 지붕에 숨겼습니다. 그리고는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이미 지나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라합은 왜 자기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환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9절에서 13절까지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음에 이 땅을 점령 할 때에 가족들까지 살려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에게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 내리우고 찾아 온 사람들을 만날 위험이 있으니 산에 가서 사흘을 숨었다가 정탐 임무를 보라고 권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약속의 표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 달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따르는 자들이 그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헛수고 하고 돌아가고 정탐의 임무를 다 마치고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여호수아에게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 2:24)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3. 라합의 믿음
1)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1절에서 7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라합이 하마터면 몸을 팔고, 술을 파는 기생으로 평생을 살다가 영원한 부끄럽고 불쌍한 자로 나그네 인생을 마감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을 자기 집에 모셔 들이고 숨기고, 환대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간과 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다락에 숨겨 놓은 그들을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들통이 났다면 기생인 라합의 목숨은 끝났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인생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는 구원의 기회와 인생 역전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은 라합처럼 사람을 접대하는 일을 통해서 주시든지 아니면 나에게 직접 성령의 음성을 듣도록 해서 주시든지 그 기회를 닫힌 마음이나 바쁘고 분주하고 복잡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놓쳐 버리든지 알고 순종하지 못함으로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코 만만 찮은 현실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현실들만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 10:16) 그러니까 주님 한 분의 음성만 듣고 믿고 따라 오라는 것이지요.
기회를 포착합시다! 음성을 들었을 때에 어떤 대가를 치러더라도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기회를 잡읍시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1)
2) 들었습니다!
① 라합이 들은 것
그러면 어떻게 해서 라합이 목숨을 걸고라도 그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용기 백백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여인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놀라운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심히 두려워 하고 이 땅 백성들의 간담이 녹았으며, 사람들이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면 이렇게 되어지지요. 갑자가 아들의 죽음의 사고 소식을 들었든지, 비행기 사고나 교통 사고, 질병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요.
또 이 상태는 어떤 상태를 말할까요? 이번에 이에 대한 자연 계시가 우리 나라에서도 일어난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 것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처음 MBC에서 방송이 되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다가 일주일 이상을 밥도, 물도 제대로 못 먹어서 그 뺀질 뺀질하게 잘 생긴 얼굴이 완전히 환자의 얼굴로 수척해 진 것을 저는 신문의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도 아마 자기의 사기친 내용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소식을 접하고는 그의 마음이 녹았기 때문이지요.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수 2:10)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 그녀의 귀에도 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듣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녀가 그분의 구원에 대한 것을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서 행하신 놀라운 행위를 전파하여야 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실,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인하여 새로운 존재로 변하고 생명의 길이 열려진 사실을 우리 살고 있는 주변 이웃뿐만 아니라 땅끝까지 찾아가 전하여야 합니다.
② 우리가 들을 것
이 세상에는 들을 것들이 꽉 찼습니다. 제가 차량 운행을 하면서 제일 마음 아플 때가 중고등부 학생들이 휴대폰에다가 유행가 MP3를 입력하여 듣고 따라 할 때 입니다. 또 TV이나, 유행가, 일반 방송을 통한 연속극이나 스포츠 게임을 듣는데 시간을 보낸다면 일평생을 보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우리는 설교 말씀과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들어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아울러 아직까지 이 복음을 듣지 못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지만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한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파해야 합니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겔 2:7)
③ 양심의 채널을 가동하라
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을 주셨다고 했는데 그 채널을 가동하여야 하겠는데, 그러면 그 채널은 무엇일까요? 신앙양심의 채널입니다. 세미한 음성은 반드시 신앙양심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명령하시는 그 음성만 들으면 아무에게도 가르침을 받거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완벽한 채널을 주셨지만 우리가 어두워 그 음성을 온전히 듣지 못함으로 인한 문제이기에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 것이지 실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또 하나 생각을 해 봅시다.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 반드시 진리를 붙들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작업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3절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가보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산으로 인도한 경우,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으로 갔기 때문에 결과는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를 잘 따르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간직하고 순종으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기쁨과 평강과 행복을 누리는 삶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3)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수 2:9)라고 라합은 앞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에 대하여 인정하였습니다. 주님의 능력에 의한 공포가 온 땅에 퍼지고,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자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라합은 믿는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공포에 의한 믿음의 생산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이라 할지라도 이는 사람의 전도를 통한 신앙의 취득만큼이나 동일하게 구원을 받게 합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는 지혜의 시작이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함으로 믿음이 들어가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두려운 주님을 소개하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직접 성령의 음성으로 말씀해 주시든지 아니면 성경을 읽어가는 순서를 통해서 말씀 해 주시든지, 설교 시간을 통해서 말씀 해 주시든지, 때로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내 생각과 경험과 사람들의 썩은 지식은 죽이고 죽이는 반 거짓말의 지식을 부인하고 온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고백하였습니다
"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수 2:11)라고 라합은 정찰병들에게 고백 했습니다. 이것은 실행에 옮긴 것을 의미 합니다.
여기 ‘마음이 녹고 말았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어떤 상태를 말할까요? 지난 번 우리 나라 청년 중 김선일이라는 청년이 이라크 무장괴한에게 납치되어 총을 겨누고 있으면서 호소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 그의 마음은 완전히 녹아서 벌벌 떨면서 외치는 그 음성을 기억할 것입니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사울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듣고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도 길밭, 돌밭,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따로 떼어 놓고 하나님 말씀하시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하고 듣고, 우리 속에 분주하고 산만한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순종으로 마음, 힘, 뜻, 목숨 다하여 협력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음으로 우리 속의 옛사람이 완전히 제거 되어지고, 개간 되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지고, 깨달아지고, 간직되어지고, 실행이 되어짐으로 항상 말씀에 대한 고백이 이어지는 복을 누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셔서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으로 찾아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사랑하는 자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리고 그의 마음이 스스로 통회하게 하여 마침내는 그 마음을 감동시키고야 맙니다. 그녀의 이 순진한 자백은 정직한 고백으로서, 곧 무력과 절망에 대한 자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정당화하여 정당하여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여기에는 전능자의 강한 팔의 도움만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찾았을 때에는 부지런히 입으로 시인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욕을 열심히 말하면 욕쟁이가 되고, 거짓말을 열심히 말하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말하며 시인하는 자는 예수님을 닮은 성품으로 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5) 간청했습니다
① 강력한 간청
"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수 2:12-13)라고 라합은 정찰병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허리멍텅하게 대충 믿은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믿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곧 있을 여호와의 그의 백성을 위한 정복의 진행 과정에서 그녀를 구출할 수 있는 유일의 구조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녀의 이러한 간청은 그녀의 신분이 기생이었음에 비추어 보았을 때 너무도 무리한 간청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구원을 향한 믿음의 열정은 그녀를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기생 라합은 멸망을 면하였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그녀는 또한 그 자신 한 사람만이 구출되는 것 외에도 그녀의 아버지 집과 그 친척들 모두를 구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기를 소원 한 것이지요.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룻기에 보면 룻이 자기의 두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고 동서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고 너와 나만 남았으니 너도 이제 희망이 없으니 돌아가라 할 때에 룻은 시어머니에게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하고 강력하게 간청함으로 시어미를 따라 계속 믿음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위대한 믿음의 반열에 섰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업사오니 강력하게 오늘 저녁에 하나님께 간청의 기도를 올립시다. 간청의 기도가 없어서 응답이 없었으니 이제부터 라합과 같이 룻과 같이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강력한 간청의 기도를 올립시다! 할렐루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② 증표를 구함
동시에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의 간청이 허락되어졌음을 증명하는 보증표를 요구하면서 추가하기를 "믿을 만한 표를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이 믿음의 증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적인 호흡을 함으로써 이것의 증표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믿음에 대한 증표가 되어 주십니다.
이와 같이 확실한 증표를 요구한 경우는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확실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게 간구한 대목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삿 6:36~40)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응답해 주심으로 확실히 그를 통해서 역사하시겠다는 것을 증거 해 보여 주셨고, 실재로 역사는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여 동침하기 전에 약조물로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석 달 후에 유다가 그의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죽이려고 했으나 그가 준 약조물로 인하여 꼼짝 못하고 항복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 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창 38:16~18)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확실한 증거 있는 믿음  생활 하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6) 받아들였습니다
14절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이스라엘의 정찰병들은 "우리의 목숨이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탈출하여 나간다면 우리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신의 친절에 대한 보답을 할 것을 약속 드리겠습니다."라고 라합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제의를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녀가 그 정찰병들의 약속에 안심을 하였다면 확실히 하나님의 약속은 위대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만약에 모세와 선지자들이 행한 사역을 믿지 않는다면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의 사실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진정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란 진정 거짓말쟁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진광교회가 세계에서 견학오는 교회가 되는 비전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허무 맹랑한 약속 같고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저는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 들였으며 그대로 될 줄을 믿습니다.
라합 뿐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도 약속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약속은 성경의 약속이든지 자기 계산이나 다른 사람 계산이나 역사에 없었던 약속이라도 그대로 의심 없이 받아 들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노아도 그 약속을 그대로 받아 들임으로 구원을 받았지 않습니까?
7) 일을 하였습니다
15절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수 2:15)
그녀는 그들을 밧줄에 달아 창문으로 탈출시켰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같은 라합의 행위를 가리켜 말하기를 밧줄을 통한 그녀의 행위로 인하여 그녀는 의로움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
정찰병들 앞에서 행한 그녀의 믿음의 행위에서 사실 그녀는 의롭게 되었고, 이 행위는 그녀가 표현한 가장 고귀한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그녀의 이 행위가 그녀를 안전하게 하였으며, 최선을 다한 신앙의 투자였던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써 의를 믿고 행함으로써 얻게 된 의를 완성시켜 나가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 그것은 죽은 신앙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롭다 함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칭함 받아 얻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사랑과 자비, 인내를 가지고 사람들을 향하여 표현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사랑으로 행하기에 고귀하고 값진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8) 순종하였습니다
정찰병들이 라합에게 말하기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수 2:17~20)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라합은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라고 한 후에 그대로 붉은 밧줄을 창가에 메달아 놓았습니다.
불어오는 순풍이 자기의 배를 가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항해사는 바람에 자신의 항로를 전적으로 맡깁니다. 라합의 열심 있고 진지한 구원에로의 관심은 그녀 자신의 구원만큼이나 그녀의 가족, 즉 아버지, 어머니, 친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구원받게 하는 것에 온 정성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대속의 죄인 붉은 줄을 의지하게 해야 합니다. 경건치 못하고 가증한 것을 약속의 피로 여긴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미신이요, 무지에서 오는 맹종입니다. 라합에게 있어서 붉은 줄은 그가 전의 무지와 맹종의 가증된 거짓 약속에서 벗어나 구원을 갖게 하는 진실된 약속의 표시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그 줄을 즉시 창문에 내다 걸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순종을 즉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할 때에 주저하지 않고 그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번제를 드릴 준비를 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즉시 순종 끝까지 순종, 결실이 맺어질 때까지 인내로 순종할 것을 하나님은 요구 하십시다.
9) 승리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라합을 구해 주었으며, 그녀가 소유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함께 거하였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수 6:17)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수 6:22~25)
또한 그녀는 사실 그녀가 요구하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이스라엘의 왕족을 낳는다는 사실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혈통을 통하여 탄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라합은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었고, 이 보아스는 자비롭고 현명한 여인 롯을 아내로 취한 자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리하여 그분과 한 가족이 되며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라합은 그녀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성화되었고 온 가족이 구원을 얻었고, 승리의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승리하십시요, 면류관의 주인공이 될 때까지 라합과 같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 갑시다.
4. 인간 지식은 이용하고 하나님의 지식인 말씀에 복종합시다! 성령 음성을 듣고 순종합시다!
우리 청년들은 열심히 배우는 입자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워 온 지식이나 경험이 우리 자신들을 지배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주체 지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인간 지식에는 복종하면 안 되고 써 먹어야 되고, 하나님의 지식에게는 복종해야 되고 써 먹어서는 안 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이 지식은 써 먹을라 하다가는 죽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써 먹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식에게는 예 예로만 복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하면 살고 하나님의 지식을 써 먹을라 하면 죽습니다.
선택적 순종이 아니라 마음, 힘, 뜻, 목숨을 다하여 순종으로 따라만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전쟁의 승리의 상을 받게 되고,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거기에 복종하면 삽니다. 왜? 그 말씀이 전능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 말씀에게 복종만 하면 그 전능의 능력이 딱 보호하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하지.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 하나님께서 또 당신 말씀 잘 지킨다고 또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지. 이러니까, 무엇이 해할 수 있어야지요?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할렐루야!! 아멘!!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리라!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지금의 우리의 입장과 처지와 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라합과 같은 믿음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도 라합의 믿음의 본 받아 라합을 인생 역전시켜 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우리 각자 개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말씀 하실 때에 그 음성을 듣는 기회를 포착하고, 인정하고, 믿고, 고백하고, 그대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들이고, 일을 하고, 승리의 면류관을 얻는 주인공이 되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실하게 믿고 복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리라!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할렐루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1-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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