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소원

2004.07.12 18:22

윤봉원 조회 수:1481 추천:134

요 14:272004070840날자: 2004년 7월 8일 목새
제목: 빗나간 소원
본문: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고통에서 구원 해 주는 구원자?

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 끊임 없이 오는 메시지는 단 한 가지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너의 가장 큰 즐거움을 찾으라”

예수님은 그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죽으심으로 모든 것들 중 가장 큰 축복인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는 인생이 에덴의 평안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진리를 분명히 말씀 해 주셨다.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는 내가 축복 받는  더 나은 삶을 추구 하면 모든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자라기보다 고통에서 건져 주는 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분을 거룩하신 주님이라기보다는 응답 하시는 후원자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형통하기를 원하며, 인생이 평탄할 때 즐겁고 그렇지 못할 때 괴롭고 싫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악한 것임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선한 길로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

1) 상상을 뛰어 넘는 가능성

선한 길은 하나님 중심의 길을 말한다. 지금까지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간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의 숫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아멘! 그렇지만 우리의 기도 제목만을 가지고 그에게 나아가면 그를 조금밖에 체험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분을 만나는 것보다 문제에만 몰두하고, 문제 해결에 급급하면 그의 임재가 주는 경외감을 맛 보거나 불평이 멈추어지는 것을 경험 할 수 없다. 그의 임재 대신 우리를 붙잡아 주는 소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다. 성령은 측량 할 수 없는 자비 안에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실재로 채워 주시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길을 비추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하신다.

세례 요한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지만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으로 유배 되어 황량한 섬의 감옥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편히 자지도 못하며, 노동을 해야 했고, 게다가 그의 동역자들은 대부분 순교했으며, 몇몇 지역 교회의 상황은 그를 낙심 시켰다. 만일 그가 더 나은 삶을 즐기려는 소망으로 그리스도를 따랐다면 그의 환상은 깨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는 평안한 침대나 좋은 음식을 가져다 주시지 않았다. 또한 요한을 번쩍 들어서 사데나라오디게아 등지에 설교하도록 풀어 주신 것도 아니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여 주셨다. 만약 그때 요한에게 말을 들었다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삶은 비참했소, 그러나 나는 동정이나 도움이나 심지어는 기적도 구하지 않소.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할 뿐이요.” 바로 그 소원을 성령께서 들어 주신 것이다. 이런 기도는 항상 응답 하신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원망을 실큰하고, 좌절을 실큰하고 난 이후에 내가 소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을 체험한 후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서 감사 해 본 경험은 없는 가?

이제부터는 우리가 가진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 자체를 만나고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됩시다.

2) 하나님께 대한 모독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 넘치지 못하게 방해 하는 중요한 요인은 우리가 그 이상의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악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거보다 삶의 축복받는 것을 더 많이 원하는 것이 악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마치 식탁의 상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억지로 모인 우리가 떨며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불신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이 백성이 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신다. 이것이 에덴 동산 이후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각기 다는 방향으로 가는 즉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내 몫의 재산을 나눠 주세요”라고 말하는 탕자와 같다. 그것이 바로 옛사람의 길이다. 그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악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에게 가까이 오라는 초대를 일축해 버리고 대신 우리가 원하는 축복을 주리라고 생각하는 원칙을 열심히 따르는, 한 마디로 그를 경멸하는 태도를 취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이전에 이미 만났다. 그를 우리 속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그를 만나는 소망은 이 세상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소망을 훨씬 초월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천국을 주셨는데 우리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은 그를 멸시하는 것과 같다.

3) 세상과 다른 평안

어그스틴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만족시킬 수 없는 영혼의 허무함을 알았다. 그 허무함은 그가 절제할 수 없는 성적 쾌락으로 그를 유혹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더 좋은 소망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성적 쾌락보다 더 큰 기쁨을 발견했다. 이 기쁨 외에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어그스틴은 인생 말년에 두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썼다. “한 도시에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도시에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평안의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자기가 선택한 평안을 누리며 산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삶에는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다. 원만한 관계, 건강,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재력, 보람된 직장등을 갖추면 인생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종류의 평안을 주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님이 주는 평안은 이 세상을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보장된 최상의 축복에 의존한다. 즉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할 때에라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나쁜 일이 일어날 때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어떤 부부가 반항하는 아들 때문에 여러가지 고통을 당한 후에 깨달은 간증

“결국 우리는 아이들을 올바로 잡으려는 부모가 되려는 노력을 멈추었지”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 의존하고 그들 더 잘 알아가며,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그의 주권 안에 안식하기로 결심하게 됐어.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 아들을 도울 수 있고 우리는 그를 주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아들은 여전히 우리 마음을 조금씩 상하게 하지만 이제는 그의 반항이나 우리 상한 마음을 바꾸려고 매달리지 않게 됐어. 압박감에서 벗어났다네. 짐을 벗었어. 완력으로 아들을 더 낫게 만들려고 갈등하지 않게 되었지. 정말 지혜로운 부모가 된 것 같아. 우리가 평안 해지니까 아들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진정으로 감사하고 기쁘네. 그러나 이제는 아들을 올바로 고치는 것이 우리 목적이 아니야. 물론 간절한 바람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라고 새로운 길을 발견한 고백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발견하고는 그의 아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더 나은 삶보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더 좋은 소망을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면 마귀와 같다”는 어그스틴의 말처럼 옛 생활의 길은 악하다.

무건운 짐을 벗어 버리라. 새로운 길이 열려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래리 크랩의 ‘하나님을 즐거워하라’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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