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설교] 아는 자에 대한 약속

2003.10.25 04:26

윤봉원 조회 수:1494 추천:131

시 91:14-162003102933날자: 2003년 10월 29일 수밤
제목: 아는 자에 대한 약속
본문:시편 91편 14절∼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1. 주의 이름을 아는 것이란?

1)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것

“저가 내 이름을 안즉” 주의 이름을 안다는 말은 주님이 하시는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 그 말이지요. 그러면 주님이 하는 역사를 아는데 이 하나님은 여기에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인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신구약 성경 계약서를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그 모든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이것이 우리에게 이렇츰 복이 됩니다. 주님의 이름을 그러면 주님의 역사를 안다, 역사를 아는데, 주님의 역사를 아는데 그 역사 아는 것이 어떻게 아는 것이 아는 것인가? 첫째는 신구약 성경의 계약서를 보고 이렇게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이 계약대로 이대로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아는 것이 첫째로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은 참 아는 것의 중매쟁이라. 참 아는 데에 찾아 들어가는 지금 길입니다.

2) 자기 현실에서 아는 것

알고, 그 다음에 이제 그 이름을 아는 것 그 역사를 아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자기 현실에서 아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아는 거.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포해 놓으신 이 법도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믿음으로 산다” 이렇게 말했고 이 법도를 어기는 사람을 가리켜서 “범죄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는 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주신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 처음에 아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보고서 이 현실에서 자기가 범죄하면 하나님 앞에 징계받고 저주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칭찬받고 축복받는다 이것을 성경 보고 아는 것이 처음에 아는 것이고, 그것은 외부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 아는 데에 들어가는 하나의 노정입니다. 하나의 노정이지 외나 알맹이는 아니라.

알맹이는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이 계약을 어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벌을 주시고 이 계약대로 실행하면 내게 축복해 주신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내가 현실에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아무리 유익이 된다 할지라도 그 유익과 또 하나님이 벌 주는 벌과 둘을 따져보니까 유익이 있지만 유익보다 하나님이 벌 주고 징계 주는 것이 작다고 생각하면 그 하나님을 바로 안 사람이요, 아무리 죄를 지어서 무엇을 좋은 것을 많이 얻었다 할지라도 그거와 하나님의 징계와 벌과 비교할 때에 징계와 벌의 중량은 천 근이나 되면은 자기가 죄지어 얻은 것은 한 근도 못 되는 것으로 이렇게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까? 자기 얻은 수입이 하나님이 벌 줘 봤자 벌받는 것보다도 얻은 수입이 더 크다 이렇게 알았으면 여호와의 이름을 바로 안 사람입니까 모르는 사람입니까? 바로 안 사람이요 모른 사람이요? 바로 모른 사람이라.

그러면 인제 문서로 알아 놓고 그 다음에 알맹이로 아는 것은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함께 해 주신다.’ 그러면 이름을 아는 것은 성경 보고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그것은 초보로 아는 것, 그것은 아직까지 외부로 아는 것, 알맹이로 아는 것은, 알맹이로 아는 것은 언제 아는 것이 알맹이로 아는 것입니까? 언제 아는 것이 알맹이로 아는 것이지요? 현실에 아는 것이, 현실에서 아는 것이 알맹이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아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이 계약을 선포해 놨기 때문에 이 계약을 어기면 하나님께서 징계와 저주를 주신다 하는 그것을 현실에서 알고 또 하나님의 계명대로 이렇게 순종 생활, 믿음 생활을 하면은 하나님이 칭찬과 축복을 주신다 하는 그것을 알고, 그것을 아는 것, 그것을 아는 것, 그러면 이것은 알맹이입니까, 또 그 속에 인제 알맹이가 또 있습니까 그게 알맹이입니까? 그게 알맹이입니까 인제 그 속에 또 알맹이 있습니까? 인제 뭐 그 속에 알맹이 뭐 있을까? 현실에서, 현실에서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 계약을 선포해 놓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여호와 이름을 아는 것이라 그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알고 또 그 다음에는 그 현실에서 이렇게 계명 어겨서 행동하면 하나님이 징계와 저주를 주신다 하는 그것을 현실에서 알고 또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신다 하는 것을 그것을 현실에서 알고 요라면 인제 알맹이 알았소 몰랐소? 알맹이 알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다 들어 봅시다. 그러면 알맹이 아직 몰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이거 뭐인지 뭐. 껍데기 또 했는데 또 그 안에 알맹이가 또 있어 그래?

3) 현실에서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

그 현실에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행동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징계와 저주를 주신다 하는 것을 그 현실에서 알고 또 하나님의 계약대로 이와 같이 실행을 하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칭찬하시고 축복을 주신다 하는 것을 그 현실에서 자기가 알면 요라면 알맹이로 안 것이요 또 껍데기입니까?

그러면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얼마나 높이는가? 기도하는 것 다 응답해 준다, 거기에 두 개. 그러면 높여서 하나님과의 그만 전부 언행심사가 하나가 되도록 이렇게 성화시켜 준다. 또 그 말 한 대로 다 이루어지게 한다. 또 환난 때에 그를 건지고 또 영화롭게 한다. 또 영원히 또 그를 만족케 해 가지고 모든 사람이 ‘이는 참 하나님의 도움이다. 이것은 제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움이다.’ 모든 사람이 환하게 볼 수 있도록 이렇게 높여 주시겠다.

그러는데 그게 무엇이냐? 주의 이름을 아는 것이 어떤 것이 아는 것인가? 첫째는 성경 보고 ‘성경에 하나님은 계약을 이렇게 두 권 했구나’ 하나님의 그 계약서가 몇 권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하나님의 계약서 몇 권입니까, 여게는? 하나님의 계약서가 몇 권인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이 점잖은 양반들, 몇 권이요? 손가락으로 좀 가리켜 봐. 하나님의 계약서 몇 권이라? 녜, 두권이라. 신구약 두 권이라 하면 됩니다. 육십육 권이지만 두 권이라 하면 돼요, 두 권, 두 권. 계약서가 두 권이거든.

이 계약서 두 권을 보고 ‘하나님은 요렇게 계약해 놓고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로구나.’ 요렇게 아는 것이 제일 입문으로 아는 것이고, 제일 그 초등으로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 중등으로 아는 것은 어떤 것이냐? 중등으로 아는 것은 현실에서 아는 것, 현실에서. 현실에서 ‘내가 현실 닥쳤는데 요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하신 요 계약대로 내가 당신을 보면서 요 계약대로 실행을 하면 당신이 기뻐하셔서 나에게 축복해 주신다’ 요것을 알고,‘내가 이 시간에 하나님의 계약을 어겨서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나에게 저주와 멸망을 주신다. 징계와 멸망을 주신다.’ 요렇게 아는 것, 요것이 속껍데기라, 요게 속껍데기. 알겠습니까? 그것도 껍데기는 껍데기입니다.

속껍데기.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그것도 껍데기야, 그래 아는 것도 껍데기라.현실에서 모르고 성경 보고 아는 것은 제일 겉껍데기고 또 현실에서 그렇게 그 사건 당할 때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요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축복해 주신다. 요 말씀을 어겨서 요렇게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징계와 멸망을 주신다.’ 요것을 현실에서 다 안다 말입니다. 암만 옆에서 말해도 ‘하나님이 요렇게 하신다’ 요렇게 알면 그것은 속알맹이입니까 속껍데기입니까? 아는 사람?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속껍데기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여게는 왜 손 안 들어? 다, 알면 들지. 손을 뻐뜩 들어 봐요, 모두. 병신이거든 하나님께 기도해요, 풍병 다 모두 신경통병 다 낫구로. 한번 자, 뻐뜩 한번 들어 봐요. 속껍데기, 그거 속껍데기. 속껍데기.

그러면 알맹이는 뭐인가? 그 현실에서 그렇게 알고, 성경에서 ‘성경에 뭐라 했노?’ 한 것 이래 또 보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에 딱 맞게 요래 하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축복하신다. 요 계약을 어겨서 옆에 사람들이 말하고 환경 주위가 말하는 대로 그대로 하면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징계와 패망을 주신다.’ 이것을 알았다 말입니다. 요거 알았습니다.

알맹이는 뭐인고? 그럴 때에, 그럴 때에 ‘하나님의 계약대로 하면은 주님이 기뻐하셔서 주님이 축복해 주신다’ 요것도 알고, 또 ‘하나님의 계약을 어겨서 옆에 환경과 주위와 형편과 사정대로 그렇게 하면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징계와 패망 주신다’ 요것을 알고, 주위 환경에 사람이 시키고 형편 사정이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행하는 그것을 버리는 것이 그거 뭐입니까? 버리는 그게 그 행동을 버리는 것이 그것이 알맹이요 껍데기요? 그거 알맹이입니까 껍데기입니까? 그거 껍데기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틀렸습니다. 알맹이입니다. 그것도 알맹이. 그거 알맹이요, 알맹이. 그것은 화를 막는 알맹이라. 화를 막는 알맹이, 징계를 막는 알맹이, 저주를 막는 알맹이, 멸망을 막는 알맹이, 모든 멸망을 막는 알맹이요, 멸망을 막는 알맹이.

그라고 난 다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딱 단행하는 것, 말씀대로 그대로 현실에서 딱 그대로 행하는 것, 자, 그대로 행하는 요거는 속껍데기입니까 진짜 알맹이입니까? 진짜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진짜 알맹이요. 알맹이라. 진짜 알맹이라. 예수 믿기 쉬워. 요거라, 단지. 요겁니다.

2. 아는 자에 대한 약속

1) 높이심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어떻게 높이는가? 간구하는 대로 다 응답해 주신다. 그러면 기도하는 대로 다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 그것도 크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께 무슨 의견만 내면 그 의견은 다 백프로 하나님이 다 들을 수 있고 하니까 하나님과 의사와 꼭 같은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높이는 것이 더 크게 높이는 것입니다.

2) 기도 응답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그러면 높이시는 것은 그 사람이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신다 그 말입니다. 이거 얼마나 높아지는 것입니까? 그 사람이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신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신다. 그러면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시니까,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시니까 그것이 큽니까, 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큰 겁니까? 어느 것이 큽니까? 기도의 응답이 큽니까 그 기도 한 것이 큽니까?  

후자가 맞았어요, 후자가. 후자가 맞았습니다. 후자는 하나님하고 동거 동행이라. 지식이 같고, 사상이 같고, 소원이 같고, 계획이 같고, 성품이 같고, 그만 하나님하고 하나된 사람이라. 그거 뭐 기도해서 응답 받아 봤자 그거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것도 크지만 하나님과 그 사람하고 하나된 것이 크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뭐 아는 것인지 모르는 건지 이거 도무지. 그것은 그 기도하는 대로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에 합당치 안한 것은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간구하고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성품과 꼭 들어맞으니까 맞은 그것이 기도한 그 응답받는 것보다도, 응답해서 이루어 주시는 것보다도 그게 훨끈 더 큽니다. 이제 크다는 것 인정이 됩니까? 어떻게 인정이 돼요?

그러면 기도해 가지고 기도한 대로 하나님이 들어 주셔서 그 기도한 대로 이루어진 것 그것이 큽니까,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기도하면은 다 들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만 할 수 있는 그런 그 사람된 것이 큽니까 응답받은 것이 큽니까? 무엇이 큽니까? 사람된 것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이게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높여 주시는 거. 높여 주시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사람 된다 그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하는 그 말씀의 속 뜻은 무슨 뜻인고 하니 저는 내게 소원하는 그런 간구하는 것이 내가 들어 주지 안할 수 없는 꼭 내가 소원하는 것과 저가 소원하는 것이 꼭 일치되는 소원을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모든 비판이나 평가나 계획이나 소원이나 사상이나 정신이나 모든 것이 같다 말 아닙니까? 요 맞아요? 해석이 맞아요? 같다는 말이란 말이 해석이 맞습니까? 그러면 첫째는 이렇게 높여 줍니다. 자, 얼마나 그게 높습니까? 비록 피조물이지만, 피조물이지만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과 꼭 같이 움직이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 아닙니까? 그렇게 높여 주시요.

3) 환난 때에 함께 하심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높이는가? 환난 때에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동거 동행합니다.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그러면 환난 때에 하나님이 동거 동행해 주시는 이런 높임을 해 주십니다. 어떻게 높이는가? 환난 때에 동거 동행한다. 환난 때에 동거 동행한다. 이거 얼마나 높인 겁니까? 환난 때에 하나님이 동거 동행하여,

4) 환난에서 건져 주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이 오면은 사람들이 다 박해를 당하고 해를 받고 다 꺾어지는 것인데, 환난을 닥치면 사람들이 꺾어지는 것인데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환난 때에 건진다 그 말은 환난이 그 사람을 파묻지 못한다, 그 사람을 낮추지 못한다, 그 사람을 약하게 하지 못한다. 건진다 하니까 밑으로 안 들어간다 말 아니요? 안 건지면 물 속에 빠질 건데 건지니까 밑에 빠져 들어가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건진다 말은 그 환난이 그 사람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그 사람을 낮추지 못한다, 그 사람을 구덩이에 처박지 못한다, 파묻지 못한다, 그 사람이 묻혀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환난 오면은 박살 나는데 이 건진다 말은 환난이 파묻지 못하게 환난이 올수록 반석 위에 지어놓은 집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고 이 환난이 오니까 도리어 다른 집은 다 떠내려 가버렸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더 우뚝하게 솟은 것 모양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높여 준다 그 말입니다.         

5) 영화롭게 해 줌

“환난 때에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건지고” 또 “영화롭게 하리라”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이 오면은 사람들은 다 전부 수치스럽고 모두 다 험하고 추해지고 이런 건데, 환난 오면 다 추해지지 안해요? 6 .25 때 보니까 6 .25 환난 때 뭐 안 추해지는 사람이 없어요. 또 그 집에 불이 나면은 모두 그 집안 식구들은 새카맣게 모두 추해집니다. 또 그 집에 그 동리에 모두 염병, 전염병이, 독한 전염병이 들어 놓으면 그 동리 사람들이 모두 다 추해지고 모두 천해집니다. 이런데 환난이 오면 영광스러워지고 환난이 오면 더 영화로워지고 환난이 올수록이 자꾸 영광스러워집니다. 이거 뭐 얼마나 좋은지. 뭐 얼마나 그게 높이는 것인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손양원 목사님도 6 .25가 와 가지고 그 환난이 들어서 그분 영화롭게 했습니다. 만일 그때 그만 순교 안 당했으면 뭐 그럴 건데 순교를 당해, 내나 죽기는 죽는데 6 .25 와 가지고서 손 목사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한상동 목사님, 주남선 목사님 영광스럽게 아주 그분들 영광스럽다고 이렇게 다 말하는데 영화롭게 됐는데 그 무엇으로 영화롭게 됐지요? 고려신학교를 세워서 영화롭게 됐어요? 무엇으로 영화롭게 됐어요? 왜정 말년 신사참배 때문에 영화롭게 됐어요. 알겠습니까? 신사참배 때문에 영화롭게 됐습니다. 신사참배 때문에 유명해졌어요.

6) 만족케 해 주심

“저를 영화롭게 하리라” 또 그 다음에 16절에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이 혹 백 년 해 준다 해도 참 좋은데, 이 세상에서 정권은 미국 정권으로 말하면 사 년밖에 더 있습니까? 사 년만 영광스러워도 영광스럽다 하는데 이는 천 년 그런 것도 아니고 만 년 그러지도 안하고 “내가 장수함으로” 하나님이 장수하면 몇 살이나 삽니까? 누가 아십니까? 몇 살 삽니까? 한 백 살 사는가? 영원히 살지요, 영원히. “장수함으로” 그 말은 영원히 살므로 영화롭게 한다, 만족케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높여 주심은 높임을 영원히 높여 준다 그 말입니다. 뭐 백년 천년 만년 억만년이 아니라 자꾸 높여 줘, 영원히 높여 줘.

7) 구원으로 보이심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렇게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구원을 그러면 그 사람에게 보여 준다, 하나님이 이렇게 도와 주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이렇게 여섯 가지로 높여 주시고 이 높여 주신 것을 본인만 알게 아니라 모든 만인간이 만물이 전부가 다 환하게 알도록 이렇게 광고를 해서 다 알려 주니까 그거 높은 거요 높은 것 아닙니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제가 받았고 잡았으니까 제 자신이니까 그것은 말할 것 없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다 소문이 나고 광고가 나고 이렇게 아주 명예스럽고 영광스럽게 된다 그 말입니다.  

3. 진실되게 아는 자가 되자

그런데, 뭐 하면 이렇게 일곱 가지 높여 줍니까?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것뿐입니다. “내 이름을 안즉” 주님의 이름을 아는 것 있는데, 아는 것이 껍데기 껍데기는 이 둘뿐입니다. 껍데기는, 맨 겉껍데기는 하나님이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두 계약, 신구약 이 계약서 보고서 ‘하나님은 이렇게 다 보응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그것이 제일 겉껍데기로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 속껍데기로 아는 것은, 속껍데기로 아는 것은 뭐 책상 위에서 알아야 돼요 어데서 알아야 돼요? 현실에서 알아야 돼요. 현실에서 아는데 현실에 속껍데기로 아는 것이 뭐인고 하니 그 현실에서 세상은 이래라, 또 속의 성신의 감화는 이래라, 양심은 이래라, 자꾸 이래 뭐 이래라 저래라 이래 쌓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의 말씀대로 요대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계약을 어기고 요렇게 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징계와 멸망을 주신다’ 하는 요것을, ‘요거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요대로 된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알맹이입니까 껍데기입니까?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누가 뻐뜩 하나 들었다 만다. 그 틀렸습니다. 알맹이 아니오. 자, 그것은 뭐입니까? 속껍데기라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손을 들어요, 아는 분들은. 안 들면 몰라져 버립니다. 속껍데기라 속껍데기.

그러면 알맹이는 뭐인가? 그 현실에서 그 속껍데기를 딱 벗겨버려야 됩니다. 속껍데기를 딱 벗기고, 그렇게 아는 그 껍데기를 딱 헤치고 들어가서 그 현실에 그대로 행하면 돼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행하면 알맹이라.

{87010253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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