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내용과 역할

2005.12.02 21:23

윤봉원 조회 수:1449 추천:152

시 19:7-112005112333날자: 2005년 11월 23일 수밤
제목: 성경의 내용과 역할
본문: 시편 19편 7절 - 11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 성경은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
성경은 그 자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 자체의 유효성과 권위에 관해 어떻게 주장하는가? 예수님은 유대인 무리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어느 부분이라도 온전히 신뢰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렴풋한 추측 따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를 자신의 두번째 서신에서 확증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그의 서신을 읽는 자들에게 자신이 변화산 위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주님을 개인적으로 보았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베드로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벧후 1 : 16). 그와 같은 놀라운 순간들에, 예수께서 바로 그들의 눈 앞에서 변화하셨습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이제 그것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일생을 통해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 특별한 순간을 떠올릴 때조차, 베드로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고 말한다.
“더 확실한” 예언이라니? 변화산 위에서 그가 겪은 경험보다 더 분명한 어떤 것이 있단 말인가? 여기 말한 “더 확실한 예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거기 덧붙여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벧후 1:21).
 이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들은 성령의 영감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다. 성경 전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가 이와 같이 영감으로 기록된 신령한 활동의 산물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기 원하시는 것을 정확히 기록하였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취하여 그들의 개인적인 성격과 개인적인 은사 및 배경을 사용하신 것이지만, 그들이 사용할 단어 하나하나까지 세심히 지시하시기도 하였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 119'89).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분의 이름에 의해 보증되는 것으로서, 신자의 삶 모든 영역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근거하고 있어야 할 초석입니다. 우리는 감히 그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감히 그것을 모르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기 믿고 실행하기 위하여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듣고 깨달아 아는 대로 현실에서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또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위를 온전히 인정하고 준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2. 성경의 내용과 역할
1)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성경을 제쳐놓으면, 하나님의 계시를 제쳐놓는 것입니다. 다른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글쎄요, 나는 피조물들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지요. 나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서거나, 산등성이를 따라 걸으면서 하나님서 창조하신 것들을 볼 수 있는데요”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일리는 있으나, 그렇게 해서는 여전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개념이 잘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과 그분의 능력이 무한하심을 나타내 줍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분이실까? 도대체 어떤 종류의 하나님이실까? 그런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찾아봐야 한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으며, 그분이 자신과 자신의 목적을 모두 나타시는 것은 바로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제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 마음, 사랑, 은혜, 자비에 관한 조명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것은 놀라운 일 아닌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7)
2) 세상에 대한 처세법을 알려 준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7-8)
지금 우리 나라 전반에 걸쳐서 살펴 보면 도덕적 기초가 파괴된 것을 쉽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멀리하게 되면 무법한 삶을 영위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씀으로 돌아 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형편은 선지자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왕국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녀들에게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내 보이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율법을 주셨다. 그 나라는 말씀의 보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열조의 하나님께 등을 돌릴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에 선지자를 보내고 또 보내셨다. 이 하나님의 대변자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님의 말씀을 홍수처럼 뿌려 주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멸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고하고, 다시 되돌아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돌이키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었고, 악이란 악은 모두 저지르고 돌아다녔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던 바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씀을 배제하면 무법하게 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격과 성품, 그분이 하신 일 등 영적인 실체에 대한 무지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잠 11:15)
3) 우리의 영적인 필요들을 모두 채워 준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 28:2)
하나님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에서 말씀을 사용하신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화신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하여, 그런 사람에 관한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실로 우리 주님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 “복 있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많은 무리 가운데서 분주한 생애를 보내 시는 동안에도 그 일을 할 시간을 내셨던 것이라면, 우리가 말씀 묵상을 게을리 할 하등의 핑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바쁘다. 때때로 우리가 너무 바쁘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까지 너무 바빠서, 말씀에 대해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등한히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시편 19편은 성경이 어떻게 영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는지까지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우리는 창조하심으로 계시되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7절부터 끝절까지에서 자신의 말씀 속에 계시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 말씀은 “완전하고, 확실하며, 정직하고, 순결하며, 정결하고, 확실하여 다 의롭다.” 그러고 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말씀의 탁월한 가치를 다음과 같이 아름답기 그지 없게 묘사하여,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0-11절).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창조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났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그분과 상관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나아오는 때인 것입니다. 말씀은 순결하고 정결하다. 말씀은 우리의 눈을 열고, 우리의 삶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줍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성품을 말해 준다
어떤 불신자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성경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조롱하고 있었다. 마침내 한 그리스도인이 그 조롱을 참다 못해 그 불신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한 번이나 제대로 읽어본 적 있소? 우리가 더 혹평을 하기 전에 먼저, 복음서를 한번 자세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 불신자는 그 그리스도인의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성경을 한 권 빌려 가지고 집에 가서는 마태복음,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내리 읽어 나갔다. 그가 나중에 그 그리스도인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약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그 말씀을 기록한 사람이 하나님일 수밖에 없 겠더군요.” 그 어떤 사람들의 마음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 사람됨을 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5)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다
성경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한 것은 영적인 생명, 영원한 생명, 내주하는 생명, 만족을 주는 생명,부활의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신약에서 사용된 용어들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0장 30절 – 31절에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구주를 영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고” 내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으므로, 나는 영생, 부활의 생명, 썩지 않는 생명을 받는다.
베드로는 이것을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서 확증하는데, 여기서 그는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 전세계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구주께 나아와 생명을 찾는다 이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지적인 어떤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무지한 어떤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공통된 토대를 발견한다. 그들의 문화, 배경, 국적 또는 직업에 상관없이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진정한 생명, 참된 만족, 마음의 평강, 심적 안정을 얻었습니다.
6) 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무법과 부패가 관영한 세상에서, 도덕 기준이 무너지고 기초들이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는 생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모든 것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이와 같은 시대를 나는 어떻게 살 아갈 수 있겠는가?사회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무법, 부패해지고 죄로 물들어 갈 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시편 119편 105절은 격려가 되는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을 통해 함정과 위험, 소란, 슬픔, 그리고 생의 어떤 곤경들 속에서도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난 너무도 많이 실족하는데” 하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의 실패에 대한 대책이 서 있습니다. 성경은 도덕적인 세척제입니다. 존 번연(John Bunyan)은 자기 성경의 면지에다가 “이 책이 날 죄로부터 떼어 놓아 줄 것이지만, 죄는 나를 이 책으로부터 떼어 놓을 것입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시편 119:9-11에서 시편 기자는 선포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다른 어떤 책들과도 달리 우리의 생활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여정을 바꾸어 놓을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를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사용하셔서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선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만 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 말씀의 권위와 능력과 내용과 역할을 바로 깨닫기 위하여 읽고,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들이 이 말씀으로 점점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제자가 되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승리하십시요.
추신: 그리스도인의 기본 훈련의 내용 중 ‘존 미첼’의 말씀 요약하고 필요한 부분을 일부 추가한 것입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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