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진리의 본질, 본성, 역사

2004.11.29 06:12

윤봉원 조회 수:1095 추천:77

딤후 4:14-182004112802

날자: 2004년 11월 28일 주일 오후

 

제목: 영감과 진리의 본질, 본성, 역사

 

본문: 디모데후서 4장 14절 - 18절

 

구리 장색 안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 진리는 행위 성화, 영감은 자체 성화

 

우리가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심신이 영감과 진리를 영접할 수도 있고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버릴 수도 있고,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영접한 그것이 영감화된 것이요 진리화된 것이요 주님을 영접한 것이요 주님으로 더불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결합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심신은 종합체기 때문에 그 일시에 그렇다고 해 가지고 다 남은 것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에, 도리를 인해서 세상과 자기가 싸우다가 자기의 전부가, 자기의 부분적만이 아니고 그 현실에서 자기의 전부가 진리와 영감편이 되려고, 진리와 영감의 것이 되려고, 진리와 영감과 결합을 하려고, 안 떨어지려고 이렇게 하다가 그때에 희생이 한목 다 됐으면, 다 됐으면 그것이 순교요 그것이 완성이요 한꺼번에 몽땅 다 살아난 것이요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화 됐으면, 그 영감과 진리화 됐으면 그 영감과 진리는 완전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면 만족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감화 진리화 것이 완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완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예를 들면 사상면이나 도덕면으로 말하면 영감화된 그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뭣 하러 왔느냐 하면 영감은 우리의 자신을 이렇게 성화시키고 진리는 우리의 자신과 행위를 성화시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는 우리 행위를 그때에 옳고 참된 것으로 고정을 시켜 버렸고 자기의 행동을, 또 영감은 자기 자체를 영감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감과 진리는 무엇을 하는 것인고 하니 그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러 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온 영감은 그 본질이 어떤 것이며 본성이 어떤 것인가? 진리는 본질과 본성이 어떤 것인가? 영감과 진리의 그것의 본질과 본성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목적대로의 그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소원하셔서, 하나님이 소원하셔서 모든 목적을 정했고, 소원하셔서 모든 예정을 하셨고, 모든 창조를 하셨고, 하나님이 모든 섭리를 하시는데 하나님의 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 그것의 뭉텅이로 온 것이 영감이요 진리입니다.   

 

비유컨데 그 덩어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의 심신 안에 있어 심신을 영감화시켰다, 심신을 영감화시켰다 그 말은 그 심신을 하나님만을 제일로 아는 화시켰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것으로 화시켰다, 하나님으로만 능력 삼는 것으로 화시켰다 그렇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 마음이 있는 것은 그것은 영감이 그렇게 우리 안에 와 가지고 그렇게 역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능력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능력이요 영감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진리는 하나님이 역사, 하나님은 영감으로만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곧 영감이요 그 영감이 역사하는, 나타나서, 나타나는 역사를 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서 영감이 나왔고 영감에게서 진리가 나왔고, 그러면 진리는 외부적 행동을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 진리요 영감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우리 자체가 되어지게 하는 것이 영감입니다.

 

이 영감과 진리는 영감 그 자체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 마음. 로마서 8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 자가 아무도 없는데 성령은 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 마음과 하나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인데 하나님의 마음에 거기에 나온 마음이라 말입니다. 그런데 영감은 하나님의 마음인데, 마음의 역사인데 하나님 마음과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 하는 것이 영감이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영감입니다. 또 진리는 하나님이 원하고 일하시는 그 능력화되게 해서 능력으로 변화시켜 능력화되게 하는 그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렇게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시는데 영감과 진리로 살아났다 하는 것을 요 도리를 알면 어떻게 살아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영감이 있다 말한다면 영감이 있다 그 말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이 피조물 인생아, 네가 이 사람이 돼라. 이런 사람이 돼라.’ 이런 사람이 돼라 하는 그것이 당신 같은 자 되라 하는 그 말입니다. 당신같이 되라는, 당신이 소원하는 그 소원, 그 소원 뭉텅이가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소원하신 마음과 같은 그 마음으로 우리 마음이 변화되어지는 그것이 영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 있으면 다입니다. 영감 있으면 전지 전능이 거기 다 있고 완전이 있고 완전한 사랑이 있고 다 있습니다. 진리가 있으면 벌써 그것이 이 피조물들에게 역사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기에 우주와 영계는 진리가 지었습니다. 진리가 지었는데 진리는 어디서 나왔느냐? 영감에서 나왔습니다. 영감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영감화되는 것은 피조물이면서 하나님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피조물이면서 언제나 피조물이나 하나님으로 자기에게 충만해져서 하나님으로 물을 들여서, 하나님으로 물이 들어서 모든 피조물을 상대할 때 피조물이 볼 때는 하나님으로 볼 수 있도록 요렇게 이제 완전히 변색이 됐다 그 말입니다.

 

2. 믿음으로 안다

 

비유컨데 속에 보석은 값이 비싼 것이고 이 그릇을 뭐 은으로 만들었든지 무엇으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가치가 속에 있는 보석과 가치가 크게 차이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좋은 그릇에 속에 있는 보석이 제일 작게 담겼고 제일 나쁜 그릇에 속에 들어 있는 보석이 제일 많이 담겼으면 그때에 그것의 이 그릇 저 그릇 가치를 평가할 때에 어느 것이 제일 비싸겠습니까? 속에 있는 보석 많이 담긴 것이 냄새가 나고 제일 더러운 그릇이라도 보석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담겨 있으면 그것이 가치가 더 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이 영감과 진리로 그 속에 담는 그것이 보석 담는 것과 한가지인데 아무리 선천 후천의 모든 것이 훌륭하고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영감과 진리가 담겨 있지를 하나도 안 했으면 불탈 것 뿐입니다. 아무리 천해도 영감과 진리가 제일 좋은 것보다 조그매라도 영감과 진리가 많이 담겨 있으면 그 사람이 권위 있고 가치가 큽니다.

 

그러므로 영감과 진리는 우리 속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하는 것이 영감이요 또 바로 소원하게 하는 것이 영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영감은 우리에게 껍데기로는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를 우리에게 바로 알게 하고 인정하게 하고 또 속으로는, 문서로 나타낸 그 속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우리에게-하나님 마음에서 진리가 나왔는데-그 마음을 우리와 하나되도록 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마음화되어서 하나님 마음이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해서 이제는,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 말은 영감화되어서 영감이 주장해 가지고 영감과 진리가 주장해 가지고 사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진리는 그 생애 법칙을 다 바로 잡는 것이 진리요 영감은 진리로 이 모든 생애를 바로 하도록 역사하는 것이 그것이 영감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화된 영감은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버리느냐 영접하느냐? 영감과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내 심신의 기능이 영감화가 되고 진리화가 되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벌써 하나님화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조물의 주인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주인의 위치를 가지고 있고 피조물을 통치할 만왕의 왕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그 영감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있고 진리도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으로만, 믿을 때에 되어지는 것이지 안 믿으면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고로 영감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하고 있으며 어떤 존재를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압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으로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인해서 우리가 압니다.

 

3.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자의 권위

 

말씀을 인해서 알면은 말씀을 인해서 속에 있는 내재하신 그 영감을 받아 가지고 영감과 연결되어서, 진리와 연결된 것이 영감과 연결되고 영감과 연결된 것이 하나님의 그 역사와 직접 연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체 연결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모든 생명의 역사와 연결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전지 전능의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감과 진리와만 내가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가 됐으면 피조물에 벌써 대리 주인의 위치를 가지고 있어 말하기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라” 소유권자를 말했습니다. 소유격이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는 통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감과 진리가 와서 화되었을 때에 그것은 거룩한 제사장이요, 성결한 선지자요, 또 권위 있는 왕입니다. 내 밖에 있는 현실을 내가 상대할 때에 영감과 진리와 하나돼 가지고, 그러면 영감과 진리와 중생된 영은 하나가 됐고 하나가 된 것이 이것이, 신인양성일위는 되지만 일체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는 영감과 진리와 영이 하나됐으면 하나됐지만 언제든지 영감은 하나님의 역사요 진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나타남이요 우리가 진리된다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된다 말 아니고 우리가 영감된다 말 아닌데 영감화됐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요렇게 영감화 진리화가 되어 가지고, 그러니까 내 영은 그리 돼 가지고 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몸의 기능이, 기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껍데기는 이것은 예수님의 기본구원에서 다 생명 부활을 받습니다.

 

4. 깨어 살아라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와 내 중생된 영은 하나되어 있고 우리의 심신의 이 기능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모든 내 밖에 있는 그것들을 상대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 다음에 좋은 것은 내가 진리와 영감에 하나돼 가지고 대외의 모든 것을 상대하지 안하고 밖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딱 접촉할 때에 그로 인해서 ‘아이구 주님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서 ‘진리가 필요하다’ 이제 그것에게 피동이 되어 가지고 주님을 찾는 그것이 둘째입니다.

 

그것에게 원인이 되어서 그로 인해서 거기에 피동이 되어 가지고 주님과 진리를 찾는 그것이 이것이 죽은 데서 살아오는 것이요 또 살아 있는 자가 그 죽은 것들을 상대하는 그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이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이것을 가리켜서 “깨어 있으라” 그 말은 깨어 있으라 말은 이것으로 살라 그 말입니다.

 

“깨어 있는 자에게는 도적과 같이 임하지 못한다” 그 말은 깨어 있는 자에게는 털끝만한 것도 도적맞지 않는다, 손해보지 않는다, 현실 현실에 다 수입만 보지 손해는 보지 않는다 하는 그 말입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바울은 자기 자체는 영감과 진리와 중생된 영과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그 밖에 상대하는 그 모든 것을 상대합니다.

 

이러니까 주님과 진리와 영감과 나와 결합이 내 밖에 접촉하는 그것보다 먼저 접촉 연결이 됐습니까 내 밖에 접촉되는 그것으로 인해서 그것이 먼저 접촉 연결이 되고 그 다음에 후연결입니까? 그것은 선연결이오.

 

나중에 영감과 진리는 다 버리고 제 마음대로 이러다가 어떤 일을 턱 닥치니까 ‘아이구 일을 닥쳤으니 이거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면서 그때사 진리를 찾고 그 다음에 많은 기도 명상하고 묵상하는 가운데에서 영감을 찾는 그것은 이제 그것은 뭐입니까? 하나님과 진리와는 연결은 후연결입니까 선연결입니까? 후연결이지요? 세상이 먼저 연결이 됐고 하나님과 연결은 후연결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과 연결은. 먼저는 세상과 연결되어 가지고 있다가 연결돼 가지고 있는 거기에서 튀어나와 가지고 이제 하나님을 찾아 가지고 연결을 하려 하는 것이라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과 접해서 접하기 전 하나님과 접하고 연결하는 것이 먼저 된 이 사람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지 안하고 깨어 있는 자요.

 

자는 자는 아무리 중생됐지만 이것을 잊어버리고 지금 세상으로 잠들었다 말입니다. 세상으로 잠들어 세상으로 곤해서 취해 가지고 그만 죽은 자와 꼭 같다 말입니다. 영감과 진리와 실은 법적으로 잇겨 가지고 있는 것이 끊쳐진 자와 같이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의 현실에 도적 맞기 쉽습니다.

 

5. 곁에 계시는 주님을 발견하라

 

 “주께서 내 곁에 서셔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영감과 진리로 하나되어 있고 하나되어 가지고 대외의 모든 것을 접했지만 대외의 접할 때에는, 접할 때에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신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 주님과, 주님은 자존자시며 또 영감은 자존의 그 전부가 다 내게 온 하나님의 그 역사의 지능의 도덕의 완전인 전부요 또 진리는 그가 또 한 걸음 나타나 가지고 더 알아보기 쉽게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 진리인데,

 

‘내 안에 나와 동행하는 영감과 진리가 크시다’ 이렇게 자기가 접촉을 하면서 “내 곁에 섰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이제는 자기와 영감 진리가 하나되어 있지만 자기가 상대하는 이 모든 인간이나 모든 피조물 상대하는 이 피조물과 어떤 박해나 무엇을 상대할지라도 그것과 내가 이제 내편이 되어 있는 내 대장이 되어 있는 주님과 비교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그때에 “주께서 내 곁에 서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자기가 선연결을 되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현실을 당했을 때에는 언제나 주님과 그 현실과 비교하고 대조해 보는 요것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요것이 있어야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대조해 보니까 그것은 피조물이요 내 곁에 서신 주님은 그것의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내 곁에 내편에 서 가지고 서신 분은 주권자시요 창조주시요 주재자시요 또 영원 자존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그것은 이분에게 다 지배를 받아 가지고 움직이지게 된다는, 내 곁에 서신, 나와 함께하시는 내 곁에 서신 주님을 발견하고 이 주님과 그거와 비교를 하고 비중을 하고 이래 가지고 보다 주님이라는 것을 결정 지울 때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와서 일하실 수 있고 그때에 결정이 되지 안할 때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비교하고 비중을 달 때에 그것이 결정될 때에 그때에 이제 자기는 견고해졌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견고케 하셨다” 주님과 그거와 비교 비중을 자기가 할 때에 자기와 함께하신 주님이 크시고 어떻다는, 자기 안에 계시는 주님이지만 역사적으로 자기 곁에 계시는 것으로 한번 이렇게 비중을 보고 살피어 보는 것을 말합니다. ‘내 곁에 서신 주님은 이것을 지었다’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와도 ‘내 곁에 서신 이 주님이 이것을 지었다. 이 주님이 이것을 다 경영했다. 주님이 이것을 살게 하셨다. 주님이 이것을 지금 일으켜서 이것을 만드셨다. 주님이 지금 나에게 독침으로 이와 같이 지금 하고 계신다. 이것은 분명히 내 구원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서 당신이 아시기 때문에 이것을 예정도 하셨고 창조도 하셨고 섭리도 하셨고 나타나셨다. 이것은 주님이 하셨다.’

 

보기에는 우리의 육안으로 볼 때에는 독침이나 그 배후에는 진리를 요구하는 진리 요구가 있고, 그 배후에는 나로 하여금 영감대로 사는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게 될 때에 자기는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빌립보 옥중에서 바울이 자기가 견고한 것도 자기 곁에 서신 그 주님을 발견하고서, 자기 안에 물론 주님으로 산다 했습니다. 주님으로 살지만 자기와 함께하셔, 곁에 섰다 말은 자기와 함께한다 말입니다. 자기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어떤 주님이라는 것을 자기가 거게서 비판하고 평가하고 인정될 때에 그때에 바울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기쁨의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터져 나오는 그것이 기쁨의 찬송이 터져 나오도록 바울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바울의 심신의 기능을 변화시킨 그 변화의 능력이 내나 지동도 하게 할 수 있고, 변화의 능력이 우주를 불로 태울 수도 있고, 없는 가운데 만들 수도 있고 하는 그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곁에 선 주님을 발견해서 그분이 누구신 것을 내가 비판하고 평가하고 묵상해서 인정이 되는 것만큼 자기는 강해지고 담대해지고 진리화되고 영감화되기 때문에, 곧 진리화되고 영감화됐다 말은 전능화되고 전지화됐다 말이요, 주재화됐다 말이요, 주권화됐다 말이요,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의 형상화됐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자기는 견고해지고 모든 악의 세력에서 구출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사자의 입에서 건지운 그것은 그 사자는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을 가리켜 말함인데 그 악의 세력에서 어떻게 해서 건지워졌습니까? 내 곁에 서신 그분이 건져 주셨다 말입니다. 내 곁에 서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건지워졌습니다.

 

이러니까 내 곁에 서신 그분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강해졌고 또 그분을 자기가 보고 알 때에 자기에게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은 오히려 그게 입이 봉해졌고, 악의 세력 그것이 자기에게 지배를 받고, 자기의 것이 됐고, 완전히 왕권이고 왕위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을 통치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니 그때 순교하는 것이 그것을 영원한 통치자로 자기 것을 만드는 것이 결정되는 시기라 그것입니다.

 

6. 영감 충만한 삶을 살아라

 

그러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는 사람이 아무리 병신이요 등신이라. 등신이라도 영감만 충만하면 그것이 아무 등신이고 병신이고 불학 무식이고 해도 그 사람이 영감이 충만하면 그 사람이 무엇으로 충만합니까? 전지로 충만하고, 전능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소원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소욕으로 충만하고, 그만 하나님 본체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움직이는 움직임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그보다 더 능한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모르고서 이것은 무시하고서 땅에 인간들의 모든 복술, 모든 끝이 없는 모든 역사 이야기, 모든 이런 것, 모든 그것이 다 궤휼이요, 그것이 다 속이고 속이는 말이요, 사탄의 깊은 것인데,

 

사탄의 깊은 것인데 그것을 사탄의 깊은 것을 깊은 것 인제 얼마나 깊은가 해서 이것을 뽑아 버리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해야 되겠고 사탄의 깊은 그것을 깊은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가 이용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져야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도와 비교되는 평가를 같이 보고서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가 작아도 이게 많으면 된다 하는 그 말은 그릇이 좋으면은, 그릇이 좋으면은 속에 알맹이야 보석이야 있든지 없든지 그릇 좋으면 제일 값이 비싸다 하는 그런 것과 같다는 것을 비교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린도후서에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의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 하는 그 말이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영감과 진리가 충만하다 하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충만하다 하는 그 말과 같은 말입니다. 또 주만 바라보고 주만 좋아하고 주만 사랑하고 주의 욕심으로만 가득 찼다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가 와 가지고 영감화 진리화 되면 완성이요 다 입니다. 그 외에 찾을 것이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곁에 서신 분을 발견해 가지고 나와 함께하는 분과 이것과 언제든지 비중을 같이 비교를 해 봐요. 비교해 봐 가지고 보다 내 곁에 서신 분이 어떻다는, 보다 크시다는 것을 발견이 될 때에 그때에 자기는 견고해지고 모든 자기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은 자기에게 정복을 당하고 그것은 완전히 점령하고 그것도 구출하고 그것의 왕이 되고 그것의 주인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1983년 10월 29일 토새 일부 요약}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1-29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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