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

2004.11.10 10:48

윤봉원 조회 수:1083 추천:119

데살로니가전서 1:2~82004-11-07 주일오전날자: 2004년 11월 7일 주일 오전

제목: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 8절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상적 교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소망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한 자가 되는 것이다. 즉 이상적인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고, 그러한 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이상적인 교회를 원하시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데살로니가교회처럼(“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진광교회가 되기를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귀한 교회다. 믿는 자의 본이 되었고 각처에 아름다운 덕이 퍼져서 바울이 말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아무 말할 것이 없노라 한 무흠적 교회이다. 어떻게 하여 주님이 이렇게 기뻐하실 수 있는 교회가 되었는지 우리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성도들과 교회의 모습을 보면 한 두 가지는 잘 하는데 다른 쪽이 부족하여 온전히 구비하지 못한 그릇된 교훈과 신자들이 많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온전하다고 칭찬 받기까지 우리의 믿음을 구비하는 개인, 가정,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2. 칭찬 받은 이유

1) 믿음의 역사

본문 말씀 8절에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는 교회가 데살로니가교회였고, 그에 따라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고 말씀하신대로 소문이 각처에 퍼지게 된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찾고 그 찾은 영감을 따라서 어떤 명령의 인도라도 자기가 인정이 되든지 안되든지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그 뜻을 따라서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과 행함은 하나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우리는 종종 잘 믿는다고 하는 말은 들으면서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교인이나 교회들을 볼 수 있다. 그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이 시간에 우리는 내 신앙이 아주 거짓되고 허무한 점들을 발견하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점들을 발견합시다. 인정이 되면 순종하고, 인정이 안되면 순종하지 않았던 고집을 찾아서 회개 합시다.

그리고 나에게 믿음의 역사가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살펴 봅시다. 세계에서 견학 오는 교회가 되기까지 우리 자신들을 통하여, 우리교회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되도록 죽도록 순종하는 자들이 됩시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하나님이 붙드시고 역사하시면 천지를 창조하신 그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면 우리 앞에 불가능이라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들이, 가정이, 교회가 믿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역사하시기만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겨자씨 믿음과 같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2) 사랑의 수고

“사랑의 수고와” 이 말씀은 수고의 행동이 있는 사랑, 다시 말하면 이 사랑은 생명 있는 산 사랑이라는 말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6절) 모든 문제를 능히 할 수 있는 사랑을 가졌으니 “너희가 마게도니아, 아가야에 믿는 자의 본 되었는지라” 곧 모범적 교회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이것이 사랑이다 말씀하셨다. 이는 창조주가 만물을 찾는 운동이요 저주 아래 머물러 있는 만물을 회복하시는 운동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 주심이 사랑의 역사라고 하신 것과 같이 사랑은 구원하는 것이요, 그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의 유익을 구하는 그것이 사랑의 성질이다. 깨끗지 아니하면 사랑이 아니다. 주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랑의 기준도 잘못 된 것이 너무나 많고, 설사 기준이 바로 되었더라고 사랑의 수로를 하는 것은 너무나 찾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창조주의 영광 권세 다 내어 놓고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듯이 우리도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받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인생 역전 된 자들의 삶을 온전히 살다 가도록 합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 사랑의 수고 있는 곳에 아버지와 주님이 계시고 아버지와 주님 계신 곳에 생명과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 없는 곳은 아버지도 주님도 생명도 평강도 없는 쓸쓸한 광야와 사망뿐이다. 사랑 있는 곳에 생명이 자라고 사랑 있는 곳에 용서도 있고 사랑 있는 곳에 희망도 장점도 있습니다. 곧 바로 천국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고” 주기도문의 기도가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라고 말씀하신대로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진광교회도 자기의 목숨을 다 하기까지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세계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쁨으로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는 교회가 되기까지 자라가도록 합시다. 이러한 역사의 소문이 세계에 퍼지도록 말입니다. 얼마나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지요.

3) 소망의 인내

① 소망이 인생을 끌고 간다

소망은 반드시 배경이 되는 터 위에 서서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바라보는 소망의 배경이 무너지면 소망도 소망 준비한 것도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무너지고 만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소망 중에 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소망을 바라보면서 그 소망 잡기까지 목적하고 있는 것이 모든 사람의 생활들이다. 금메달을 위해서, 학위를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 등과 같이 각각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노력하여 그것을 성취한 인물들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인생을 끌거 갔던 것이지요.

② 자신의 소망을 평가 해 봐라

여러분들의 소망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있지는 않는지요. 호흡에 모든 것이 달린 사람에게 소망을 다 두고 있지는 않는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 8:24)

③ 값을 치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소망은 준비와 노력을 반드시 겸비할 때 이루어 진다. 소망은 준비의 결과라 말이다. 그러면 준비와 소망은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보이는 외형적으로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소망이 좋으면 준비가 나쁘고 소망이 귀하면 준비가 천하게 보이고 소망이 강하면 준비는 약한 것으로 보이고 소망이 확실하고 든든할수록 실력이 있을수록 준비에는 헛되고 헛되고 허무하게 보여진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실력 차이가 난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소망이 좋더라도 그 준비와 값을 치러지 않으면 결과는 오지 않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소망과 준비는 외형적으로 정반대의 모양으로 나타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진광교회에 ‘세계에서 견학 오는 교회’라는 비젼을 주셨는데 이것이 성취 되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수고를 하는 교회, 하다가 중단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3. 힘의 근원

그러면 어떻게 하여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흠이 없다고 인정 받기까지 이 세가지 장점을 갖춘 교회로 성장하였을까요? 그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찾아서 우리도 그 힘을 의지하여 역사를 써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해답을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의 능력, 전지 전능의 능력과 성령의 함께 하심의 역사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떠나지 않고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되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지요.

4. 에스라와 같은 심정으로 출발합시다!

우리 교회가 이제 여기에서부터 출발을 하여야 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 1:5~8)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에스라와 같이 쉬지 않고 끊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함으로 성령 충만의 역사가 쉬지 않도록 하며, 이웃들에게 가르치기를 계속함으로 이웃들이 변화를 받고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나도록까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계속하는 진광교회가 되도록 충성합시다. 무익한 종으로 죽도록 충성합시다.

진해에서 한국 전역으로! 세계 전역으로 아름다운 소문이 퍼지기까지! 성령의 역사하심과 능력을 의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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