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소중한 당신

2005.01.25 09:43

윤봉원 조회 수:1072 추천:125

고전 12:21-252005012301

날자: 2005년 1월 23일 주일 오전

 

제목: 너무너무 소중한 당신

 

본문: 고린도전서 12장 21절- 25절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1. 착각 속에 살아가는 우리

 

우리는 엄청난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 뭔가 모자라는 것 같고, 만족이 안되고, 걱정이 되고, 잘되는 것을 마음 편하게 바라봐 주지 못하고, 잘되면 배가 아프고, 나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잘 하는 짓이고, 잘났고, 실수를 하더라도 잘 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옆에 있는 당신 때문에 그렇지 내  탓은 전혀 아니라고 하는 공주병, 왕자병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아닌지요?

 

또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관계 맺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에 차라리 없어졌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내 나름대로 정해 놓고 있는 사람은 혹시 없는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이 볼 때는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붙여 주셨다는 사실을 믿도록 합시다. 인정하도록 합시다. 말씀대로 받아 들입시다. 그렇지 않게 생각하고 살아 왔던 죄를 회개 합시다!

 

문제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안 주실 뿐만 아니라 감당치 못한 사람은 붙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2. 본문 연구

 

1) 분쟁의 원인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지체들과 분쟁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 5:14)라고 말씀하셔도 현실을 당하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식으로 앞으로 영원히 안 볼 것처럼 치고 박고 싸우는 경우를 우리는 어렵사리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성경 말씀과 모순된 삶을 인생들은 살아갈까요?

 

고린도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고전 11:18)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피흘려 구속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서로 돌아 봄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며 하나님을 기뻐하며, 영화롭게 존귀하게 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다 상속 받을 수 있는 실력자로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뜻을 이루어 가는 원리는 사활대속의 공로로 테두리 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소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 진리와 한 영감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이루어가도록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이 되지 않아서 분쟁을 한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분쟁이 일어나는 것도 보면 한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한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찌끄덕 째그덕 달구지 소리가 납니다. 분열이 일어납니다.

 

2) 무지한 인간

 

① 신체 부위

 

사람들은 좀 실력이 있고, 배우고, 가지고, 얼굴이 잘 생기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인정을 하고 살아 갑니다. 그러나 못 생기고, 못 배우고, 못 나고, 가진 것이 없으면 무시하고 무시 당하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까지 나돌겠습니까?

 

사람의 신체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오늘의 말씀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고전 12:22-23), 우리의 신체는 손과 팔, 다리와 같이 강하게 보이고 힘있게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뇌, 눈, 귀, 심장, 목, 각종 내장 기관등과 같이 약하게 보이는 지체의 부분들도 있습니다.

 

뇌 같은 경우는 핏줄 하나만 터져도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피로누적이나, 교통사고나 넘어짐 등으로 뇌출혈이 일어나면 가장 위험하지요.

 

우리의 심장을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총을 맞거나 칼에 찔림을 당할 때 팔 다리등 다른 부위는 다쳐도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심장에 찔림을 받거나 총격을 받으면 피가 과다하게 흘러서 즉사를 하게 되지요.

 

그 외에도 눈 같은 경우도 상처를 입으면 실명을 하여 보지 못하고 일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치유불가능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지체들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뼈나 가슴, 눈꺼풀로 안전하게 싸서 보호를 해 주셨습니다.

 

② 성도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 값, 가치, 영예, 존경}를 더하사” (고전 12:22~2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나 가정이나 교회 내에서도 약하고 보이고, 덜 귀히 여겨지는 지체들,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들 생각에, 사람의 기준으로 보고 사람을 상대하는 평가와 기준과 대우 일뿐임을 우리는 확정을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내에서 연약한 성도들이 때로는 교회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살펴 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핵심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체가 더 요긴하다는 것,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지체들이 오히려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일치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이제부터 사람들을 성경적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3. 성경의 사례

 

1) 부모에게도 버림 받은 다윗

 

더 약하고, 덜 귀히 여김을 받는 지체들,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지체들이 도리어 요긴하고 존귀히 여김을 하나님께는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라도 그렇게 보지 않았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이 말씀은 다윗이 자기 부모에 대해서 한 말입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의 후계자 왕을 세우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이새 보고 당신의 아들들을 불러 오너라, 왕을 세우겠다고 할 때에 이새는 자기의 아들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를 차례대로 세웠지만 말째 다윗을 세우려고 사무엘 앞에 세우려고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그들에게 이새의 생각과는 정반대임을 천명하시고, 다윗을 불러오기전까지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불러오기 싫지만 다윗을 불러왔을 때 “이가 느거 기름을 부으라”는 합격점을 받았던 것입니다.

 

부모에게도 인정과 사랑과 아름답게 여김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사랑하시고, 귀중히 여기시고, 아름답게 보셔서 왕으로 세워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2) 나아만 대장 집의 계집 아이

 

열왕기하 5장 1절에서 19절이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에서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집으로 잡혀간 계집 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집 아이로 종살이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존경을 하거나 부러워 하거나, 나도 저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그런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람의 집에 종으로 일평생을 살고 싶다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진 분 계십니까?

 

그런데 그 계집종을 통해서 어떤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요약을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왕하 5:1~19)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던 나아만이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그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도록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데에는 누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까? 바로 그 역사의 핵심 역할을 나아만의 집에 잡혀온 계집이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왕까지도 나아만을 보고 벌벌 떨었는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왕하 5:7)

 

3) 제자들에게까지 버림 받은 예수님

 

버림 받고 인정을 받지 못하기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막 14:27)고 예언하신대로 자기가 삼년 간이나 먹고 자고 같이 어울리면서 온갖 기적을 보여주고 양육한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구원 역사를 완성하러 간 순간에는 자기들이 예수님의 일당으로 몰려서 죽을까 싶어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50)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52)

 

진짜 중요한 것은 목숨을 버리면 버렸지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까지 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4. 생각을 완전히 바꾸자!

 

1) 이해가 되더라도 믿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읍시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이렇게 정리하고 싶은 깨달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우리가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말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를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이 잘못되었거나 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무지하고 수준이 어려서 깨닫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같이 한 번 따라 합시다.

 

이해가 되더라도 믿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읍시다!

 

이해가 되더라도 믿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읍시다!

 

믿고 순종해 보면 시간이 지나면 결국 깨닫게 되어지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이제 확정을 지읍시다. 다윗과 계집종, 거지 나사로, 예수님처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하고, 버림 받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귀하고 아름답게 붙들어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옆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인정하도록 합시다.

 

2) 서로 돌아보고 사랑을 나눕시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우리 주변에 약하게 보이는 사람, 덜 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 별로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을 존재케 하시고 같이 생활하도록 하신 목적이 분쟁이 없이 한 성령을 따라 한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한 마음 한 뜻을 품고 서로 돌아보고 사랑함으로 선행을 격려하여 점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사실을 명심 합시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주리고, 목마르고, 벗었을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돌아 본 것을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고,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 말씀하신대로 주님이 우리를 차별 없이 사랑하시고, 대우하시고, 은혜 베풀어 주신 것처럼 우리 주변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몸 같이 분쟁이 없이 ‘꿍’하는 마음이 없이 진심으로 전심으로 사랑해 주고 ‘너무너무 소중한 당신으로’ 돌아 봐 주는 신앙 생활을 함으로 자타의 구원의 온전의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합시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살기를 우리 하나님은 진심으로 원하시고 계십니다.

 

생각을 바꿉시다!

 

이해가 되더라도 믿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읍시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을 나눕시다!

 

당신은 너무너무 소중합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1-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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