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나엘의 믿음

2005.04.26 00:14

윤봉원 조회 수:1107 추천:61

요 1:43-512005042401

날자: 2005년 4월 24 주일 오전

 

제목: 나다나엘의 믿음

 

본문: 요한복음 1 43절 – 51

 

1. 나의 신앙 상태는?

 

아이가 어머니 배 속에서 태어나면 그 태어날 때는 몸무게와 키가 차이가 많이 나봐야 얼마 안 납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는 정도는 너무나 천차 만별로 차이가 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먹느냐 못 먹느냐? 질병을 앓느냐 안 않느냐? 주변 환경이 좋으냐 안 좋으냐? 부모의 뒷 바라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외형의 실력도 내부의 실력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점점 나게 된다.

 

더욱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영접한 이후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꼭 같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말씀을 배우며, 어떻게 성령님과의 관계를 가지며, 어떤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무럭무럭 자라느냐 아니면 갓난아이, 신생아와 같이 약하고, 어리고, 병에 심하게 노출 되어 있고,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항상 환경에 피동이 되어 신앙이 자꾸 넘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아브라함, 요셉 같이 어떤 환경에도 피동 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환경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여 더욱 하나님의 은총을 독차지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으로 신앙 생활하기를 원하실까요? 후자 입니다!

 

2. 본문의 내용

 

빌립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나다나엘은 처음 직접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1: 46)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참 사람이요, 간사한 것이 없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이 때에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어떻게 자기를 알고 칭찬을 하시는가 의아해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사 비로소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1: 50)고 말씀하셨습니다.

 

3. 본문의 교훈

 

1)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사람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 47)

 

나다나엘은 주님이 찾고 기다리던 거짓, 교활, 기만, 계략, 술책이 없는 진실하고,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2:2)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 22-24)

 

우리도 지식, 행위, 사람 자체까지 나다나엘과 같이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2) 기독교는 과학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도()

 

① 일반인들의 생각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눈에 보이고, 과학적으로 증명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 그렇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이나 좀 배운 사람들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 온 천지를 만드시고 홀로 주권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살아 계시며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 눈 앞에 두고도 눈으로 그의 창자욱을 보고야 믿겠다고 하는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 25)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면 바보나 뭔가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0: 29)

 

② 사람의 눈

 

그러면 사람들은 얼마나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을까요? 종이 한 장만 가리워 놓아도 그 뒤를 보지 못하는 인간, 일 분 후에 어떻게 되어 질지를 보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 손 바닥에 세균이 득실득실하여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인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겉 모습과 속 마음을 정확하게 연결 시켜 보지 못하는 인간, 그렇기 때문에 사기꾼에게 보고도 당하는 것이 인간이요, 그런 둔한 인간의 눈을 가진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자기 몸 속에 지금 암 세포가 자라고 있지만 그 암 세포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요, 우리 옆에 걸어가는 강도와 쓰리꾼, 도둑인지 착한 사람인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며, 사람 속에 들어와서 지식과 사고의 틀을 사망과 실패와 부끄러움으로 끌고 가는 마귀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눈에 보고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우리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③ 믿음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도()

 

그러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어떤가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자존하시며, 영원히 죄와 사망과 마귀에 종된 우리,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처한 우리를 값 없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분이 보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순종으로 따라가는 믿음의 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못 죽고 못 산다고 연애를 하며 따라 다니다가 결혼을 하여 얼마 안 살다가는 또 다시 고무신 거꾸로 신고 돌아서는 사람은 하나님 보다 더 믿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님은 믿지 아니하니 이것이 제일 한탄스러운 일입니다. 때로는 친구 보다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니 이 얼마나 기가 차는 일인지요?

 

이 분보다 더 안전하게, 현재 미래를 맡기도 따라 갈 존재는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 32)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끼는 것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지혜, 지식, 능력적으로 사랑 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습니다! 선하심과 인자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지식, 재물, 재능등과 같은 외모를 보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전적 우리의 믿음과 충성을 보시고 신구약 성경 말씀의 약속대로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온전히 모든 것을 믿고 따라 갈 수 있는 유일한 분인 것입니다.

 

믿고 순종으로 나아 갈 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십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 한 분을 온전히 믿고 아들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 롯에게 소돔을 양보하고 가나안으로 향한 아브라함, 그의 결과는 어떤 결과가 왔습니까? 바다의 모래, 하늘의 별보다 많은 후손을 두게 되었으며, 동서남북 아브라함이 보는 모든 것을 다 차지 하게 되었으며 종만 318명을 거느린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그의 믿음을 무시하지 않고 그에게 신실하심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이분을 온전히 믿읍시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11: 8)

 

3) 전지 전능한 하나님(삼위일체 하나님)

 

① 차원이 다른 인간 예수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흔히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 삼대 성인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본 장 요한복음 1장의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 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 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18)

 

②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이 있는 상태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그 자신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아서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자신의 고정관념과 삐뚫어진 자아는 완전히 깨어지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산 속에서 홀로 열심히 양치던 다윗, 부모와 형들에게도 온전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를 아신 하나님께서는 외모적으로 잘나고 똑똑한 형들을 왕으로 세우시지 않으시고, 막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었습니다.

 

요셉의 갈길을 온전히 인도하시고 함께 하심으로 형들에게 믿음 받고 애굽으로 팔려 갔으며 오늘 현대의 말로 하면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지요, 또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여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였지만 그를 13년만에 애굽의 총리로 우뚝 세워 주신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이십니까?

 

나아만에게 주인 엘리사도 받지 아니한 물건을 받아서 감추었다가 문둥병이 들게 하신 하나님!

 

소유를 팔아서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숨기고 거짓말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문지방에 거꾸러져 죽게 하신 하나님!

 

이분은 아지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한 것도, 악한 일을 한 것도 하나도 빠짐 없이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인줄로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가집시다!

 

4. 회개하고 온전히 믿읍시다!

 

왜 온전히 못 믿습니까? 사람만큼도 신뢰의 대상이 못됩니까? 자신 만큼도 신뢰의 대상이 못됩니까? 형편 좋으면 믿고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등한시 하다가 어려움 닥치면 한 번 다시 찾고 도움을 청하는 그런 무당과 같은 존재입니가?

 

회개 합시다. 무식하고 무지한 하나님으로 상대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절대로 당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6: 7)

 

이제부터는 내 마음 비춰 다른 사람과 하나님을 그렇게 짐작하고 넘겨 집기로 생각하여 믿었던 과거의 간사하고 치사하고 비열한 신앙을 완전히 청산 합시다!

 

보고 믿는 자가 아니라 보지 않고도 성경에 약속을 따라서 믿는 사람, 우리의 현실 현실에 찾아 오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사람, 우리에게 입혀 주신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 만큼도, 자기 자신만큼도 믿지 못했던 과거를 온전히 회개하고, 전지 전능하신 분으로 나의 마음 먹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행한대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으며,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가 믿고 따르기기만 하면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데 우리 자신에게나, 가정에나, 교회에나 국가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시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축복의 하나님으로 믿고 진리와 영감을 따라서 순종으로만 한 순간 한 순간, 하루, 일 평생을 살아가는 정상적이고, 복 있는 성도들이 됩시다.

 

의심쩍은 믿음에서,

 

깨닫고 인정하고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아 갑시다!!

 

승리하세요.

 

 

 

 

 

 

날자: 2005년 4월 24 주일 오전

 

제목: 나다나엘의 믿음

 

본문: 요한복음 1 43절 – 51

 

1. 나의 신앙 상태는?

 

아이가 어머니 배 속에서 태어나면 그 태어날 때는 몸무게와 키가 차이가 많이 나봐야 얼마 안 납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는 정도는 너무나 천차 만별로 차이가 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먹느냐 못 먹느냐? 질병을 앓느냐 안 않느냐? 주변 환경이 좋으냐 안 좋으냐? 부모의 뒷 바라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외형의 실력도 내부의 실력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점점 나게 된다.

 

더욱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영접한 이후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꼭 같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말씀을 배우며, 어떻게 성령님과의 관계를 가지며, 어떤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무럭무럭 자라느냐 아니면 갓난아이, 신생아와 같이 약하고, 어리고, 병에 심하게 노출 되어 있고,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항상 환경에 피동이 되어 신앙이 자꾸 넘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아브라함, 요셉 같이 어떤 환경에도 피동 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환경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여 더욱 하나님의 은총을 독차지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으로 신앙 생활하기를 원하실까요? 후자 입니다!

 

2. 본문의 내용

 

빌립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나다나엘은 처음 직접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1: 46)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참 사람이요, 간사한 것이 없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이 때에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어떻게 자기를 알고 칭찬을 하시는가 의아해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사 비로소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1: 50)고 말씀하셨습니다.

 

3. 본문의 교훈

 

1)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사람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 47)

 

나다나엘은 주님이 찾고 기다리던 거짓, 교활, 기만, 계략, 술책이 없는 진실하고,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2:2)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 22-24)

 

우리도 지식, 행위, 사람 자체까지 나다나엘과 같이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2) 기독교는 과학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도()

 

① 일반인들의 생각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눈에 보이고, 과학적으로 증명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 그렇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이나 좀 배운 사람들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 온 천지를 만드시고 홀로 주권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살아 계시며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 눈 앞에 두고도 눈으로 그의 창자욱을 보고야 믿겠다고 하는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 25)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면 바보나 뭔가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0: 29)

 

② 사람의 눈

 

그러면 사람들은 얼마나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을까요? 종이 한 장만 가리워 놓아도 그 뒤를 보지 못하는 인간, 일 분 후에 어떻게 되어 질지를 보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 손 바닥에 세균이 득실득실하여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인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겉 모습과 속 마음을 정확하게 연결 시켜 보지 못하는 인간, 그렇기 때문에 사기꾼에게 보고도 당하는 것이 인간이요, 그런 둔한 인간의 눈을 가진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자기 몸 속에 지금 암 세포가 자라고 있지만 그 암 세포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요, 우리 옆에 걸어가는 강도와 쓰리꾼, 도둑인지 착한 사람인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며, 사람 속에 들어와서 지식과 사고의 틀을 사망과 실패와 부끄러움으로 끌고 가는 마귀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눈에 보고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우리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③ 믿음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도()

 

그러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어떤가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자존하시며, 영원히 죄와 사망과 마귀에 종된 우리,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처한 우리를 값 없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분이 보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순종으로 따라가는 믿음의 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못 죽고 못 산다고 연애를 하며 따라 다니다가 결혼을 하여 얼마 안 살다가는 또 다시 고무신 거꾸로 신고 돌아서는 사람은 하나님 보다 더 믿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님은 믿지 아니하니 이것이 제일 한탄스러운 일입니다. 때로는 친구 보다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니 이 얼마나 기가 차는 일인지요?

 

이 분보다 더 안전하게, 현재 미래를 맡기도 따라 갈 존재는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 32)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끼는 것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지혜, 지식, 능력적으로 사랑 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습니다! 선하심과 인자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지식, 재물, 재능등과 같은 외모를 보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전적 우리의 믿음과 충성을 보시고 신구약 성경 말씀의 약속대로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온전히 모든 것을 믿고 따라 갈 수 있는 유일한 분인 것입니다.

 

믿고 순종으로 나아 갈 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십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 한 분을 온전히 믿고 아들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 롯에게 소돔을 양보하고 가나안으로 향한 아브라함, 그의 결과는 어떤 결과가 왔습니까? 바다의 모래, 하늘의 별보다 많은 후손을 두게 되었으며, 동서남북 아브라함이 보는 모든 것을 다 차지 하게 되었으며 종만 318명을 거느린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그의 믿음을 무시하지 않고 그에게 신실하심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이분을 온전히 믿읍시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11: 8)

 

3) 전지 전능한 하나님(삼위일체 하나님)

 

① 차원이 다른 인간 예수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흔히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 삼대 성인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본 장 요한복음 1장의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 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 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18)

 

②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이 있는 상태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그 자신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아서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자신의 고정관념과 삐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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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두려워 하지 말라 윤봉원 2005.02.14 1060
190 계산 없는 다니엘 윤봉원 2005.02.07 1150
189 야곱의 기도 윤봉원 2005.02.07 984
188 사람이 할 일 하나님이 할 일 [1] 윤봉원 2005.01.31 1015
187 바울의 부탁 윤봉원 2005.01.31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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