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기인가 지체인가

2005.03.02 10:30

윤봉원 조회 수:1019 추천:90

고전 6:12-202005022873

날자: 2005년 2월 28일 부산지방청년부흥회

 

제목: 창기인가 지체인가

 

본문: 고린도전서 6장 12절 - 20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 후회하심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모든 계획과 섭리에 있어서 후회하심이 없으신 전지 전능하시며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2. 당신의 삶의 주인은?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의 주인이 정해 져 있습니다. 불신자 전부는 마귀가 그들의 주인이요, 택함 받고 예수 믿어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주인이 주님이 십니다. 창조적으로 주님이시요, 피 값으로 사셔서 주님의 것된 자들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이 중생함의 은혜를 입은 그 순간부터 영원히 거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저는 예수님짜리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번 같이 해 봅시다. '당신은 예수님짜리 이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그런데 문제는 육 즉 마음과 몸 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아직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주인이 항상 바뀔 수 있습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도 있고 마귀와 세상, 즉 피조물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지체로 사는 삶과 창기로 사는 삶이라고 구별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돈, 공부, 인터넷, 각종 취미, 애인, 잠, 성공이 당신의 삶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고 당신의 삶을 끌고 가고 있는지요? 한 번 우리 자신들을 엄격하게 판단해 봅시다.

 

그런데 저의 삶은 엄청난 많은 세월들을 창기로서의 삶을 살아온 자 입니다. (예, 10억 벌어서 편안하게 목회 하려고 장사한 경험)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삶에 있어서 창기로서 살아온 부분이 깨달아지면 우리는 단호하게 수술을 하고 돌아 가도록 합시다. 회개를 하고 돌아 가도록 합시다. 수술은 빨리 할수록 상처도 적고 건강회복이 빠르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좀과 같은 세월과 마귀에게 다 헌납하지 맙시다. 도적에게 배불리지 맙시다. 하나님의 성전된 자들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의 본분을 잘 감당하는 자들이 됩시다.

 

3. 자신을 진단 해 보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삶이 창기의 삶을 살고 있는지 지체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 진단해 볼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지체로서의 삶을 정상적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약속하신 복들을 실상적으로 누리는 표가 여러분들의 삶에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 구절이 갈라디아서 5장 말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의 열매가 자기의 삶에 항상 잘 맺어지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역사로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능력의 역사가 그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서 역사의 주인공으로의 삶을 살다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오늘 이 본문을 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신명기 28장 9절에서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신 28:9-10)

 

요셉, 다윗, 엘리사, 모세, 바울, 엘리야 같은 사람들이 우리와 꼭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인데 그렇게 엄청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지체로 쓰임 받는 삶을 충성되이 잘 살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들의 삶이 형통하였고, 온갖 능력과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고, 사람들에게 존귀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그러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원하고 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 마다 실패하고 자기의 삶의 의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여 자살을 택하고(이은주 이야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짓 밟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자기의 삶이 감사와 기쁨과 불안, 염려, 걱정, 슬픔, 조급, 게을음, 절제가 되지 않는 삶, 성경을 보아도 검은 것을 글이요 흰 것은 종이로만 보이는 성경 읽기, 성경책만 펴면 잠이 쏟아지는 최고의 수면제로 다가 오는 삶, 기도를 해도 5분 하고 나면 기도 할 것이 없어서 졸리는 사람, 전도의 열매가 없는 삶 등은 지체로서의 기능이 마비되었거나 되어 가고 있는 중이거나 상실되고 이미 창기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함께 하심의 역사는 중단 되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결단코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강아지가 다른 사람에게 침 뱉음을 당하거나 뺨을 맞아도 기분 나쁜 일인데 주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지체, 신부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온갖 고생을 당하며, 천대를 받으며, 비실비실, 좌충 우돌로 방향 감각 없이 살아가는 것을 우리 주님은 원치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이러한 문제가 온전히 다 정리되고 돌아가는 역사가 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함께 하여 주시 옵소서.

 

지금 여러분의 상태는 어떤 상태 입니까?

 

4.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우리 인생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제한적인 자유이지만 자유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었고, 가인처럼 살인죄를 짓는 이도, 다윗처럼 간음과 가정 파괴죄를 짓는 이도 있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사는 이들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전 6:12)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인생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1절에서 죽 이어오는 말씀에서 결론을 끌어내신 말씀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어떤 문제로 인하여 세상 법정에 갈 수도 있으나 그것은 세상을 판단하고 그들에게 빛으로서 가르쳐야 할 성도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음란,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술취함, 후욕, 토색하는 것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지만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결론적으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로의 이기는 삶이 아닌 삶,  창기로서 실패하는 삶은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믿는 자가 창기로 살면 천국 갈 사람이 지옥 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한 번 구원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다 영생은 얻어서 하늘 나라를 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하늘 나라의 유업, 기업을 상속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상급과 실력과 영광이 적거나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인생 실패자, 부끄러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들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5. 두 종류의 삶

 

1) 창기로서의 삶

 

① 자기 중심적인 삶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 6:15)

 

그러면 창기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이 창기로 사는 것일까요? 창기는 자기의 삶의 목적, 행동의 출발이 자기에게서 출발을 합니다. 자기의 신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잊어 버리고 자기가 주인인양 착각하여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가기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아 보겠다고 사랑의 대상을 주님에게서 이 남자 저 남자 구별하지 않고 그에게 몸을 내 주고 사랑을 내어 주고 돈을 받고 파는 인생을 말 합니다. 이 사람의 삶의 출발점은 자기 중심, 악인 것 입니다. 악! 악! 상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면 언제든지 자기의 정조를 파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 한 분을 두려워 하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삶을 포기하고 세상의 돈, 명예, 기술, 공부, 취미, 성공, 애인, 잠, 노는 것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바치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전적 무능한 삶, 짓 밟히는 삶,

 

이러한 삶의 결과는 어떤 결과가 올까요?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고전 6:13)고 말씀하셨습니다. 창기로서의 삶은 그의 삶의 목표와 가치가 순전히 배에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땅에 속한 것이며, 잠시 후면 두고 갈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결과는 다 하나님게서 "폐하시리라" "폐하시리라" 이것이 창기로서의 삶의 결정체 입니다. 여러분들 이 삶을 계속 사실랍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7)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눅 12:25-26)

 

그렇습니다. 인생이 주님의 지체로서 살지 않고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해 보려고 하는 창기로서의 삶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면 할수록 둘 때 아들처럼 가난과 굶주림과 돈 떨어지니 친구들은 다 떠나 가고, 죽음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단정을 하셨습니다. 우리 이제부터 지식을 바꿉시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꿉시다. 창기의 삶을 청산합시다. 실패의 반복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맙시다.

 

2) 지체로서의 삶

 

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

 

정상적인 지체는 삶과 행동의 출발이 항상 머리에서 시작 됩니다. 머리가 어떤 것을 계획하고 그것을 신경을 통해서 전달하고 그 전달 받은 지체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지요, 그것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은 지체는 하반신 불수 이거나 마비된 지체이겠지요?

 

또 백혈병 걸린 사람의 골수를 이식 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검사는 것이 혈액형과 골수의 성분이 같은가 다른가 하는 것을 검사를 하여 딱 맞을 때 골수 이식 수술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한 지체는 그의 구성 성분도, 영양분도, 생각도 계획도, 행동도, 삶의 목표도, 희로 애락도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지체인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 13절 후반절에서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주를 위하며" 이것이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되며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체로서의 정상적인 삶입니다. 한 번 같이 합시다.

 

오직 주를 위하며!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즉 지체의 삶의 방편은 오직 주만 위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오직 주만 위한 삶일까요? 그것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옛사람의 구습을 다 벗어 버리고, 땅에 것을 소망하지 않고, 창기로서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베드로처럼 고기 잡으러 갔던 거물을 던져 버리고,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삶에서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의 지령, 명령이지요, 그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인도 입니다. 우리의 양심 문 밖에서 24시간 365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에게 "이기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그런데 이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은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걸어 가신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② 전지 전능한 삶, 대접 받는 삶

 

창기로서의 삶은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누구 일까요? 자기 자신입니다. 잠 올 때 눈꺼풀 하나 위로 못 올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뭘 그렇게 신뢰 할 만하다고 자기를 믿고 의뢰하는지요?

 

지체로 사는 자는 자기 한 몸으로 오직 주만 위하는데 돌아 오는 것은 창조주이시며,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요, 지금도 영계와 물질계를 주관하시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주시고 그의 대접을 받는 삶인 것입니다. 그 결과는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하나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되며 사람들에게까지 칭찬을 받는 삶이 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 14:18)

 

요셉과 다윗의 삶을 보십시요, 형제들과 부모들에게까지 미움 받고 버림 받고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들이 하나님 한 분 위하고 그분 중심으로 살았을 때에 모든 주변의 해로운 악의 세력들을 선으로 바꾸시고, 그들을 총리와 왕으로 세워서 온 백성들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존귀히 여겼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이 성령에 이끌려서 살았을 때에 나면서 앉은 뱅이된자를 고쳐 주고 각종 이적을 행하며 능력 있는 사역을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라고 놀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지르면서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행 14:15)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누구에게 붙들린 삶을 살았으며 누구를 위하여 살았습니까?

 

따라서 지체로서의 삶은 주님이 전지 전능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지 전능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요 사람들에게까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선물로 은혜를 덧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이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된 자, 지체된 자로서 우리의 삶의 동기도, 목적도 방편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만 살다가 가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창기와 같이 참 정조 없이 간도 크게 구별 없이 허무하게 무능하게 어리석게 방향 감각 없이 살다가 무능하고 비참하게 살아 왔던 삶을 완전히 청산 하도록 합시다. 회개 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는 말씀처럼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된 자인 것을 명심합시다.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지음을 받았고, 전쟁을 위해서 군인이 존재하듯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지금까지 구원해 주시고 보존해 주셨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영광돌리는 삶일까요?

 

저는 계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는 삶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각각의 독특한 은사를 주시고, 사명을 감당시키셔서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의 뜻 대로, 그의 목적대로 온전히 입혀 주신 대속의 옷을 벗지 않고, 처음 사랑을 버리는 창기 같은 생활을 하지 않고, 순종하는 삶, 성령을 따라서 진리를 따라서 순종하는 지체로서의 삶을 잘 살아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삶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가 반짝반짝 빛이 날 것이며,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항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것 붙들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영감의 인도를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오직 주님만 우리는 위하고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동행 하여 주시고, 우리를 책임 져 주시고, 우리에게 약속대로 복을 주셔서 예수 믿는 학생은 저렇게 다르구나, 저렇게 똑똑하구나, 효도를 잘 하는 구나! 저 사람은 우리 교회에서, 우리 학교에서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되어서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남은 일평생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승리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3-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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