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2009.12.21 19:38

윤봉원 조회 수:1293 추천:69

민 35:1-342009122002

날자: 2009년 12월 20일 주일오후
제목: 우리의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본문: 민수기 35장 1절 - 34절
1. 죄책감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힘들어하지는 않나요?
우리는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살면서 마음, 지식, 말, 생각, 행동으로 수많은 종류의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은 죄 때문에 “나는 이런 죄를 지은 죄인인데 나 같은 사람이....”라고 죄책감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이들은 자살도 하고, 술을 먹기도 하고, 저 외진 곳이나 외국으로 도피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경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답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2. 도피성
2.1. 주신 목적은 무고한 죽임을 막도록
하나님께서는 살인자들을 위하여 도피성을 만들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 35:6, 11). 도피성은 히브리어로 “이르 미클트”로서 “받아들이는 성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피성은 문자 그대로 살인한 사람을 받아들여 그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는 성읍입니다(민 35:12).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민 35:11-12)
이 성읍에는 아무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고의적인 살인자, 즉, 과실치사(過失致死)자의 경우만 받아들여 그의 생명을 지켜 주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이나 성읍의 장로들이 판단하기에 고의적이거나 악랄한 살인자는 비록 도피성에 피신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공개처형시킴으로써 심판의 준엄함을 나타내도록 했습니다(민 35:16-21).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고살하였음이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니라 (민 35:16-21)
본문에서 하나님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규모는 사면 2,000규빗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읍에는 6개의 살인자를 위한 성읍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 전 지역에 설친 42 성읍을 레위인들을 위해서 더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이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형제나 친척으로부터 피의 보복(報復)을 피해 생명을 건지도록 도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 준 성읍입니다(민 35:12). 따라서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민족이 요청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출애굽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배려로 주신 제도입니다(참조. 수 20:1-3).
이것은 살인자 중에서도 고의성 여부를 가려 형벌을 내리거나 애매한 죽음을 방지하려고 주신 제도입니다. 따라서 일단 이곳에 피신한 사람은 생명의 안전과 함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도록 했던 것입니다.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민 35:22-25)
그러나 살인자가 도피성 밖으로 나갔다가 피의 보복자가 그를 만나 죽일지라도 그 보복자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보호의 테두리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민 35:26~28)
그러므로 고의적이 아닐지라도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도피성 안에 머물 때 보호를 받도록 엄격하게 규정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도피성 제도가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인에 대해서 가볍게 취급하시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9-34절 사이에서 하나님은 의도적인 살인에 대해서 단호하십니다. 살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을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살인함으로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피를 보수하는 자’가 피해자는 물론 그의 가족과 전 회중을 대신해 그 살인자를 죽일 수 있었고, 죽여야 했습니다(35:16-21). 이 경우 역시 적절한 법적 절차를 분명히 따라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적인 보복 행위가 생활의 기본 사회질서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신 19:15-21).
특별히 살인데 대한 보복 행위가 불러올 수 있는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를 보여 주는 규정이 29-3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적절한 증거 없이는 그 어떤 보복도 정당화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피해자의 피가 흘러진 그 땅이 더럽혀졌으며 그 땅의 오염은 살인자의 피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은 모세 율법의 원리일 뿐 아니라 노아 당시의 고대 사회에서도 적용되었습니다(참조. 창 9:6).
2.2. 위치는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도피성”이라고 쓴 팻말이 눈에 띄기 쉽도록 길목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길은 폭이 14m나 될 정도로 곧고 넓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도피성에는 모든 생필품(生必品)을 비치하여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였습니다. 만약 도피성으로 가는 길이 좁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죄책감을 가지고 도피성으로 가면서 얼마나 불안해했겠습니까? 그러나 14m나 되는 넓은 길을 걸으며 도피성으로 들어갈 때의 평강 상상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도피성의 위치는 팔레스타인 어느 지역에서도 하루 만에 도피성에 도착할 수 있도록(대략 48Km 이내, 각 성읍 사이의 거리가 거의 균형을 이룰 정도로 동일한 거리에 있었다고 함) 요단강 동편과 서편, 그리고 북부, 중부, 남부, 이렇게 해서 여섯 지역으로 구분하여 여섯 개의 도피성은 마련하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셨습니다.
이 성읍의 위치는 요단 강 서쪽으로는 납달리 지파 내 갈릴리 산지의 게데스(수 12:22; 19:32),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세겜(수 20:7), 유다 지파에 속한 헤브론(수 20:7; 21:11), 요단 동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에 속한 베셀(수 20:8; 21:36), 갓 지파 내 길르앗 지역의 길르앗 라못(수 21:38), 므낫세 지파 내 바산 지역의 골란(수 20:8; 21:27)이 있었습니다.
2.3. 예수님을 예표(豫表)하는 것
도피성은 제사장들이 있는 곳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곳에 있었으므로 도피성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도피성)이시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도피성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창조주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예표(豫表)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구속자로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영원한 구주시오 안전한 피난처이십니다.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우리를 위한 전적인 긍휼과 자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참조. 히 7:23-28).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20).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활대속의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 형벌로부터 영원히, 완전히 해방과 자유를 시켜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완전한 도피성이 되셨습니다. 다시는 우리 성도가 죽음이나, 죄의 형벌, 지옥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영원히, 완전히 해방과 자유를 시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3.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순종하여 주님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라!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도피성 제도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을 위한 긍휼과 자비, 사랑의 제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의 위치와 넓이를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공평하게 하나님 긍휼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심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 대해서 하후하박(何厚何薄)이 없이 동일(同一)하게 사랑하시고 계심을 확정(確定) 지읍시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은혜로운 정보는 예전에는 죄를 범했을 때 도피성을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그가 우리의 온전한 도피성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피성 되신 주님께로 피할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열어 놓으심에 무한(無限) 감사(感謝)를 하도록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죄를 마음껏 더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히 말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5)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도피성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이미 죄사함 받고, 긍휼과 자비의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한 온전한 감사, 무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는 죄짓지 않으려고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며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참조. 히 12:4). 더 나아가서는 도피성 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살든지 죽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 뜻과 인도를 따라서 순종만 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도피성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삶이 됩니다. 이러한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참조. 가스펠서브,「라이프성경사전」, pp. 216, 1121.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12-2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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