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빚쟁이

2007.06.16 21:43

윤봉원 조회 수:1191 추천:104

롬 1:14-152006061701날자: 2007년 6월 17일 주일오전
제목: 나는 빚쟁이
본문: 로마서 1장 14절-15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 사망과 눈물의 주인공
창조 이후의 모든 인간은 아담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사망과 눈물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었고,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으로 영원토록 살게 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사랑과 행복과 기쁨과 소망이 없는 상태로 영원무궁토록 살던 우리들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5~58) - 눈물의 권사 취임식 예. 장례식장의 울음, 병원에서의 고통, 가난의 고통, 절망의 고통으로 인한 자살, 시기, 질투, 살인, 도둑질 등.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의 은혜는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역전시켜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회복, 영생의 소유자,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후계자로서의 지위와 영광을 누리면 살게 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전적 은혜로 되었기 때문에는 우리는 무궁토록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일평생의 삶이요, 영원무궁토록 해야 할 삶인 것입니다.
2. 빚진 자 바울의 삶
사도 바울이 자기에게 주신 주님의 그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 것과 또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어떻게 주님이 당하신 그 일을 자기가 생각하고 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요구라면 요구요 명령이라면 명령이요 내가 네게 준 법칙이라면 법칙이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부탁이요 명령이라 하신 것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신 대속의 구원(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소망)을 자기가 잘 보수하고 또 이 구원 얻은 자로 구원하신 주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그 일에 참 깨달은 행위를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그는 인해서 이렇게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수없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끝까지 항상 부채의 빚을 짊어진 이 부채감을 한 번도 벗고 활기를 펴고 지내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참 주님이 자기에게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그 무한한 온갖 존귀를 이 구원을 자기에게 주시기 위해서 내어놓으신 그 내어놓으심을 늘 잃지 않고 생각하고, 또 하나님으로서의 그 무한하신 부요를 자기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그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가난하게 되신 이 구속을 늘 생각하고 잃지 아니했고, 또 당신이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피조물처럼 낮아지신 것이나 우리가 높아지려고 함으로써 멸망받은 이 모든 것을 대속하시느라고 그 값이 다 될 만큼 대신 낮아지신 그런 낮아지심을 그 고난 받으심을 당하신 그것을 바울은 심각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이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애쓴 데 대해서 하나도 마음에 만족되지를 안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정신없는 말 한다 말은 부득이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부득이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당신을 당신이 증거를 하면서 주님 앞에서 주님이 이렇게 자기 위해서 당하신 그 모든 어려움을 통해서 구원 얻은 자기가 이 구원을 위해서 무엇 한 것을 말할 수도 없고 부끄러워서 항상 빚진 자로 무거운 그 마음에 눌림밖에 없는데 이런 말을 할 수 없지만 너희들이 아주 모르기 때문에 너희들 때문에 말을 한다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3. 바울을 사로잡은 말씀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그런 고생은 생각나지 안하고 지금 마음에 짐이 되고 눌리는 일이 있으니“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제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어떻게 어떻게 하셔 가지고서 이렇게 구원을 주셨는데 자기가 형제의 구원을 위하여 했다는 것이 참 주님이 자기에게 한 데 비해서 너무도 외식이요 너무도 경솔하고 너무도 미약하고 이런 것을 자기가 생각하니 교회가 그 믿음에 굳게 서 있지 안하는 그것을 아직까지 자기의 희생될 것이, 자기의 바칠 것이, 자기의 받을 고난이 양이 차지 안해서 그들에게 충분한 구원을 이루어 주지 못했다는 그것이 마음 가운데 늘 눌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표현해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 앞에 꼭 잡혀 죽을 양같이, 무슨 큰 죄나 지은 것같이, 말 한마디도 못 하는 자같이, 하고 싶은 대로 말 한마디, 하고 싶은 대로 성 한번, 하고 싶은 대로 안색 한번 변하면 형제의 구원에 거리껴서 그것이 구원을 가로막는 일이 될까 해서 모든 사람 중에 제일 약한 사람으로 못난 사람으로, 조그만한 사람에게라도 거리낄까 해서 자기는 참 약한 자 중에 가장 약한 자로 내가 지내지 안했느냐?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더냐?” 그 형제가 하나가 실족하면 마음에 아파서 견디지 못하고 애타하지 않더냐? 바울은 이게 바울의 일생의 생애입니다. 일생의 생애가 그는 참 가시밭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자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고난당하신 주님의 대속의 사랑의 그 고난을 생각하고, 주님이 마지막으로 “내가 너 위해서 한 것같이 너도 형제를 위해서 하라”는 이 한 말씀에 눌려서 그는 일생의 생애가 다 가시밭을 밟아 걸어간 것 같은 이렇게 한 번도 숨을 쉬고 안심하고 평안할 수 없는 이런 복음의 사역자로 걸으면 늘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아직까지 내가 전해 줄 것을 다 전해주지 못했고, 아직까지 내가 희생할 것을 다 희생하지 못했고, 아직까지 내가 낮아질 바를 다 낮아지지 못했고, 천대받을 것을 다 천대받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내가 남아 있어 구원에 거리낀 그면을 생각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디모데후서 4장 3절에 보면, 이때는 네로 황제 때에 로마에 옥에 갇혀서 사형 언도를 받고,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복음 전한다고 전하지 말아라 말아라 해도 안 듣고 기어코 복음을 끝까지 전하니까 네로 황제가 이제 잡아서 고문 고형 하다가 이제는 사형을 시킬 수밖에 없다 하고서 사형 언도를 받은 때입니다. 사형 언도를 받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사형 언도를 받고서 디모데에게, 다른 이에게는 권면할 수 없으니까 그때 디모데는 같이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한 그 권면이 우리에게 전해 온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이야기는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모든 말을 가리켜서 여기에 이야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 허탄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내가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관제라 말은 제주 말입니다. 제주를 붓는, 하나님 앞에 제주로 지금, 제주로 이제 부음이 됐다.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마지막이 로마에서 순교의 제물로 사형 선고가 결정되고 언도가 내리는 거게서 비로소 자기는 이 빚진 빚을 다 벗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무리 고난 받아도 그의 생명이 복음을 위하여 바쳐지기 전에 그는 아직까지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다 바칠 바를 다 바치지 못한 빚진 자로 늘 마음먹고 있다가 이제 순교하면서 “이제는 내가 믿음의 싸움을 다 싸웠고 믿음을 지켰고 내 달음질 할 것을 다 달렸으니 이제 후로는 남은 것은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당신이 내 모든 행사를 낱낱이 심사해 가지고서 나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그것만 내가 남았다. 나만이 아니라 주를 바라보는 모든 자들이 다 이 면류관 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그는 순교를 하는 것으로써, 오만 고생 오만 충성 다했지만 순교하는 그것으로써 자기의 받은 사명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 감당된 걸로 계산을 했던 것입니다.
4. 빚쟁이 내가 할 일
4.1. 대속의 희생의 크기를 계속 연구하라
그런고로 우리도 다 같은 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어려움에서라도 주님이 나를 어떻게 해서 구원하신 것을 우리가 항상 연구하고 새기고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땅위에서 아무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이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참 부모의 은혜 이웃의 은혜가 많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이런 중한 일을 해 주신 이가 없고 또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이 있지만 주님이 우리 위해서 희생함 같은 이런 희생을 해 줄 이가 없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늘 만날 때마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학습 세례 문답을 할 때도 ‘주님은 아무도 우리에게 해 줄 수 없는 일을 해 주셨습니다. 아무도 우리 위해서 당한 이도 없고 당할 수 없는 그런 일을 당하셔서 달게 자원해서 당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참 깨달은 자의 교훈입니다.
4.2. 자신에게 질문 해 봐라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 구원이 뭐 이 우주를 차지하고 천하를 차지할 수 없지만 차지하는 그런 것으로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런 큰 구원을 주시느라고 주님이 큰 어려움을 당해 가지고 주신 것을 우리가 이 구원을 간직하면서 그 구원을 그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겪어 그 어려움 가운데서라도 우리는 이 구원을 보수해야 되겠고 또 주님이 부탁하신 그 부탁을 우리는 명심해서 그런 어려움이 가로막을지라도 우리가 전할 이 구원을 중단하지 안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충성되게 구원을 전하면서 바울같이 복음 전하다가 바다에서 파선돼 가지고 밤낮 바다 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물 가운데 빠져서 텀벙거리면서 이렇게 일주야씩 그런 일이 한번이나 있었습니까? 또 우리를 꼭 죽일라고 때리는 그런 매를 맞은 일이 한 번이나 있었습니까? 또 우리가 감옥에 가 가지고서 뭐 고생한 그런 일이 혹 있는 사람 있겠지만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가난해지고 헐벗고 굶주리고 그렇게 여러 가지, 힘이 있으면 말이 하고 싶어도 죽은 자같이 벙어리처럼 말도 못 하고, 발로 지끈지끈 밟아도 아프다 소리도 못 하고, 꼼짝도 못 하고 하였다 할지라도 우리가 바울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이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고 마지막 우리의 생명을 복음 위해서 바치기 전에는 마음 가운데 머리를 들 수 없고, 주님의 부탁하신 그 부탁의 책임의 그 무거운 그 빚진 감을 우리는 벗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누가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일하고 ‘내가 할 만큼 했다’ 하면은 그는 참 정신없는 소리입니다.
4.3. 빚진 자로 죽도록 충성하라
그런고로 앞으로 우리가 이 바울같이 이 복음 전도의 자취를 따라서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어려움을 자취하는 고행주의는 아니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은 그런 애로들이 다 있습니다. 양은 다르지만 아마 종류는 여러분들도 다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말해 가지고, 또 성질 쓰고 싶은 대로 써 가지고, 행동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지고 복음이 영광스럽지는 안했고 내가 받은 복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주기 위해서 양은 다르지만 다 그렇게 안 죽었으면서 죽은 것과 같이, 못나지 안했으면서 못난 자같이, 등신이 아니지만 등신같이, 오기가 팔팔 살아 있지만 오기 없는 창자 없는 사람같이 그렇게 우리들이 이 종류의 것을 했을 때에 조그마치라도 이 복음이 전달된 줄 압니다. 우리는 망령되지 말고 만족하지 말고 죽는 날까지 그 일에 그저 항상 빚진 이 부족감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합시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1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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