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야할 생각! 가져야할 생각!

2007.04.24 19:30

윤봉원 조회 수:1227 추천:135

마 6:31-332007042201날자: 2007년 4월 22일 주일오전
제목: 포기해야할 생각! 가져야할 생각!
본문:  마태복음 6장 31절 - 33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리라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1. 확신, 확정, 단행의 신앙생활
우리 믿음 생활은 모든 면을 확신하고 단행하여야 합니다. 이런 가 저런 가 의심하는 것 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는 미정의 것 또 실행을 할까 또 뒤로 미룰까 하는 이런 것은 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잘못된 것들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이 있는 한 신앙생활은 안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일하는 데에도 확신과 확정과 단행에서 자기의 실력대로의 그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요즘의 천재는 한가지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확신이 바로 되고 확정이 바로 되고 단행이 바로될 때에는 사람의 실력과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에 초인간적 역사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농사짓는 사람이 하나도 매듭짓지 안하고 이것 하다가 해서 농비만 들고 하나의 성공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나무를 심는 사람이 캐다가 두고 옮기다 두고 심다 두고 나무 한 주도 똑똑히 옮겨 심어 완성한 것은 없는 그런 사람의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2. 의식주 염려하지 말라
가.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중요성은 동일하다
먹는 것 입는 것 거처하는 것 이것 위해서 살지 말아라 하는 말씀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삽니다. 이 세 가지가 인간의 사는 목적과 소원의 첫째 가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불택자들 안 믿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런 것은 사는 목적으로 소망으로 삼지를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의식주가 그렇게 중대하지 안해서 그러한가? 안 믿는 사람이나 우리나 꼭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의복보다 거처보다 다 명에 보다 지위보다 행락보다 가정보다 쾌락보다 뭐 먹는 것이 제일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고프면 그런 것 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데 의식주가 안 믿는 사람들과 꼭같이 다 중한 그런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의식주를 전력을 기울여서 이것 마련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는데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은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인데 믿는 사람들은 의식주를 중점으로 삼아서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까 그것은 이 의식주가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우리에게는 중요성이 없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나 우리나 꼭 같은 중요성을 가졌습니다.
나.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
왜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가? 그것은 택자들에게 한해서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계시니까 이점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책임을 지지 말라는 것으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에게도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이 이것이 없어서는 안될 이 중요성과 필요성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아버지께서 이것은 일부만 당신이 담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전부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담당하시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하나도 부담하지 말아라 똑똑히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굶어 죽어도 죽는 것이 먹는 것 먹고 안 죽는 것보다 유익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먹일 것이 없어서 먹어야 될 것을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몰라서 먹여 주시기로 책임진 것을 책임진 것을 책임 회피를 해서 그런 능력이 없어서 하시지 아니하는 것이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확신을 해야 되고, 확정을 하고, 단행을 해야 됩니다. 의식주에 대해서는 자기가 염려하지도 계획하지도 노력하지도 않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요 단행을 해야 됩니다. 요대로 실행하는 것이 요것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주 쉽고 어렵습니다. 우리가 염려 한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
3. 우리가 할 일
가. 계약을 확신하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 하는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일을 책임지실 대로 모든 면에 하나도 모자람이 없이 다  책임지시고 이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겠다.’ 더 하신다는 것은 깊은 뜻을 가졌으니 이것은 이 의식주는 우리의 목적인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이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의식주입니다. 그러기에 이 필요한 이 양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그것을 조절하지 안하면 안되는데 더욱더 세밀한 조절을 하나님이 하셔서 가장 적절하게 해 주신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더 하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많아야 좋고, 높아야 좋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살은 많이 쪄야 좋습니까? 돈은 많이 가져야 좋습니까? 싸움은 잘해야만 좋습니까? 얼굴은 예뻐야만 좋습니까? 잘난척하다가는 이번의 버지니아 공대의 사건과 같은 문제의 희생이 될 수 있습니다(조승희는 왕따와 배신과 증오를 그런 사고로 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식주나 지위나 권세나 이런 모든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이것을 조절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무조건 많이만 주신다면 안 망할 사람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계약을 믿지 않는 데에서 우리가 귀한 세월을 다 남용 했고 공연히 필요없는 염려해도 안될 염려 이것을 해서 항상 모순 가운데에서 고통만 느꼈습니다. 모순투성이의 헛된 일이 우리에게 많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 아마 반뿐 아니라 십분한 육칠의 일은 다 제제가 됩니다. 십분지 육칠은 우리의 분주한 일이 다 삭제 돼 버립니다.
나. 하나님의 통치 받아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를 한 것
우리가 부담하고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 나라를 구하라 그 말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의를 구하라 그 말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되 그것이 완성이 되야 의가 되니까 끝까지 전적으로 통치 받는 일이 되도록 노력해라 하는 말입니다. 데모대후서 3장 16절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된 우리들로 하여금 온전한 사람이 되고 온전한 행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은 온전한 행위입니다. 온전한 행위이것을 가리켜서 온전한 행위입니다.
이 사람만 되면 하나님께서 우주를 우리에게 준다는 것도 어렵지 않고 우리를 세계 제일 갑부를 준다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뭐냐 우리를 기계처럼 하지 않으시고 자유성 주셔서 하나님에게 배우고 감화를 받아가지고 감동이 되어서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인정하고 모든 것을 확정짓고 모든 것을 단행하는 사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요 단행 요 단행 외에는 확정이 있어야 되고 확정 외에는 확신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일하기 힘드는 것입니다.
4. 현실에 대해서 확정을 지으라
가. 현실은 우리가 마련 할 것이 아니다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참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요 현실은 우리가 마련할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이것을 또 구별해야 됩니다.지금까지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고, 앞으로 만들어질 현실도 당신 혼자 만드십니다. 확정을 지읍시다.
나.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하라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현실이든지 하나님이 맞춤 현실로 주신 줄 믿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 믿음 지키는 것, 현실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만 순종함으로 온전한 행위,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4-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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