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있는 사람

2009.09.21 20:21

윤봉원 조회 수:882 추천:71

삿 12:8-152009092001

날자: 2009년 9월 20일 주일오전
제목: 할 말이 있는 사람
본문: 사사기 12장 8절 -15절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 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1. 나의 현재의 이력서를 기록한다면?
우리는 종종 장례식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때 빠짐없이 장례 순서에 들어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태어난 날과 죽음의 날입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공부를 했으며, 결혼하여 얼마의 자식을 낳고, 어떤 일을 하다가 일생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습니다. 많은 훌륭한 이력을 가진 사람도 있고, 별로 드러낼 만한 이력이 없어서 소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주님이 불러가셔서 오늘로 우리의 생을 마감하고 우리의 삶의 이력서를 쓴다면 어떤 이력서를 남기고 간다고 보십니까? 특별히 세상적인 이력들은 제외하고 신앙적으로 어떤 이력들을 남길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펴보고 그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하고자 합니다.
2. 할 말이 별로 없는 사사들
2.1. 입산
본문에 등장하는 소(小)사사는 ‘그 후에…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라는 동일한 공식으로 시작합니다. 입산의 기사(8-10)는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다는 점과 딸들을 타국으로 시집보내고 아들들을 위해 여자 삼십을 데려왔다는 점을 주목하게 합니다. 삼십이라는 숫자는 베들레헴 사람 입산의 세력을 은근히 드러내며 아울러 그의 아들들과 딸들의 결혼에 관한 정보는 입산이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자식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 때 당시에는 왕족들간에 성행하는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는 입다와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맡은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였다기보다는 정략결혼을 통해 지지 기반을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이것은 분명히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라는 언약을 파기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입산을 통해서는 구원의 유익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단점인 모든 은사와 좋은 것들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자기 자식들의 결혼을 이용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기의 지지 기반을 유지하려는 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들도 장점을 말할 것이 하나도 없고, 기록하고 말할 것이라고는 단점만 열거할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요? 입산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 자신들을 성경을 통하여 철저하게 돌아봅시다.
2.2. 엘론
스불론 사람 엘론의 기사(11-12)는 특별한 언급 없이 10년 동안 사사로 있다가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론은 장점도 단점도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으로 산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는 밥만 축내고 세월만 보낸 별 볼일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처해 있는 가정, 학교, 사회, 직장에서 엘론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의 존재(存在)감을 찾을 수 있나요?
2.3. 압돈
압돈은 힐렐의 아들로 소개(紹介)되고 있습니다. 힐렐은 이미 지파  신분을 잃어버렸으며 단지 비라돈 사람으로만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혈연 연대감보다는 정치적, 지역적 연대감이 더 중시(重視)되고 있는 것입니다.
압돈의 기사(13-15)는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어린 나귀 칠십을 탔다.’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은 그가 불과 8년간의 사사활동을 하였음에도 사사기 10:4의 야일처럼 그의 부와 평안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사사들의 기사는 그들이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이방인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권력과 부를 소유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세 사사들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사사기 초반의 이야기는 지파들로 이루어진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개념(槪念)을 강조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영적 보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로 올수록 사사기를 세속적이 가시인 가치(價値)를 더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소사사들의 문제점은 안정과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이방인들과 정략결혼을 단행하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세움 받은 사사라면 그들이 책임진 공동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책임과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부와 권력에만 집착하는 옳지 못한 지도자들이었음을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 대해서 옳은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기에 한마디 칭찬의 메시지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교훈은 이스라엘의 미래(未來)가 갑자기 암울해 보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지 않은지요?
3. 분명한 사명을 발견하고, 죽도록 충성하여 할 말이 있는 사람이 되라!
오늘 세 소(小)사사의 기사를 통하여 세 사사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을 마감했을 때 하나님께서 칭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칭찬할 것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앙에 대한 것을 기록할 것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거역한 것, 책망받을 것만 기록할 것을 마련하며 살아가서도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작정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시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진해에 살게 한 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를 데려가시지 않고 살려 놓으신 것도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가 감당해 해야 할 사명(使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을 분명히 찾으신 분도 있을 것이고, 아직 분명히 못 찾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하나님께 물어봅시다. “하나님? 내가 진해에서, 진광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면 우리는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도록 죽도록 힘씁시다. 세 사사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나의 유익을 위하여, 또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힘쓰다가 세월을 다 보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는 행동이요 삶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삶의 방향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사명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성령과 진리를 통하여 매순간 순간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을 알려 주시면 즉시 순종, 온 맘과 힘 다해 충성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 하신 일들이 자꾸 생겨나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생을 마감했을 때 우리의 이력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는 자, 즉 할 말이 있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 진광교회 ⃝⃝⃝ 성도는 이러 이렇게 놀랍게 하나님께 주인공으로 쓰임 받는 멋진 인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도 ⃝⃝⃝ 성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의 남은 생애를 ⃝⃝⃝ 성도처럼 하나님께 주인공으로 쓰임 받는 생애가 되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요, 이러한 삶을 살았을 때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스런 삶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주인공이 됩니다. 부끄럽고 책망받을 일은 기록할 것이 없고, 칭찬과 존귀와 존경과 흠모의 내용으로 가득한 이력서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조. 강규성,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사사기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p. 64. 김지찬,「엔샬롬 교향곡」, pp. 346-47.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9-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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