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대속으로 받은 선물

2009.04.12 18:34

윤봉원 조회 수:900 추천:53



벧전 1:3-72009041201날자: 2009년 4월 12일 주전
제목: 사활대속으로 받은 선물
본문: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1. 예수님의 부활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활절하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계란 장사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알지 못하더라도 계란 팔아서 돈이 되니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성탄절 되면 성탄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불신자들이 장사 잘되는 것이 좋아서 기다려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예수님 부활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확실히 받아 가도록 합시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기에 대한 답을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얻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은 선물
2.1. 산 소망 
전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 사망, 마귀의 종되었던 자들이다. 한 마디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하고 희망이 없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심으로 독생자 예구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사활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죽었던 우리를 다시 중생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중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3). 사활대속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짐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의 은혜(사죄, 칭의, 화친, 하늘에 대한 소망)를 입히신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되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부요자요. 자유자이신 하나님이 한 번도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가난하게 된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대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에 우리를 대속하신 구원을 믿어야 하고 믿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깨달으면 그 이상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된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공심판에서 심판받아 지옥을 가서 영원한 사망을 받는 그 모든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것을 생각하면 끝이 없고, 그 한없는 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땅위에 무슨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들어서 이 구원 받은 자의 감사나 기쁨이 요동치 않습니다.
또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에 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창조주가 피조물을 영원히 입고 살아나신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내가 완전히 실상으로 입게 됐습니다. 예수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게 된 것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살렸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중생(born again: “새로 태어남”은 거듭남과 동일한 의미이다. 참조. 벧전 1:23)된 새사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활대속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 예수님 믿기 전에 가졌던 소망은 다 죽은 소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소망은 다 산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공부를 해 가지고 어떻게 되겠다, 또 자기가 재산을 모아서 어떻게 되겠다, 자기는 도덕을 닦아서 어떻게 되겠다, 자기는 이런 종교 저런 종교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런 종교들을 믿어서 어떤 그 소망을 이루어 보겠다 하는 그런 것이 전부 다 죽은 소망입니다. 다 원죄의 정죄 아래에 있고 영원한 사형을 받아서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입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이 생명에 속한 산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서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그 사람에게 해당된 것이지 그 밖에 사람은 하나도 산 소망을 가지지 못합니다.
산 소망을 가지려면 큰 난제인 죄의 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하나님의 율법 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친교를 맺는 이 화친의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 해결을 지우셨습니다. 이러한 대속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다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이 새생명, 하나님을 향한 우리 대신 살아나서 완전한 살아남으로 모든 것을 구비하게 갖춰서 하나님의 공심판에 흠 없는, 마귀란 놈이 그렇게 송사를 잘하고 고소를 잘하는 마귀지만 아무리 마귀가 고소할래야 고소할 수 없도록 완전 준비를 해서 완전 생명을 얻은 이 생명을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입니다.
산 소망은 다가올 삶에 대한 우리의 확신에 찬 기대를 가리킵니다. 이 소망은 외적인 환경들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역동적이며 활력적입니다. 소망은 강력한 기대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간절히 고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산 소망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참조. 1:13, 21; 3:5, 15).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2.2. 산 기업(유업)
2.2.1. 기업의 두 유래
2.2.1.1. 구약의 가나안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영원한 산 소망을 주신 예수님은 사활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기업”을 주셨습니다(4).
기업의 유래에 대해서는 먼저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업(유업, 유산, 분깃으로도 번역함)은 구약의 경우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얻게 될 것을 학수 고대했던 유업을 기술하는데 사용된 단어입니다(참조. 민 32:19; 신 2:12; 19:8-10).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그의 백성에게 유업으로 주셨습니다(출 15:17; 수 22:19; 시 79:1).
2.2.1.2.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두 번째로 우리는 신약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기업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받으신 기업을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하늘은 영계를 말하고 땅은 이 우주를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것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사활대속으로 우리에게 주신 산 기업은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하신 그것을 우리도 다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기업은 무엇인가? 이 기업은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는 것을 가리켜서 기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를 든다면 이 세상에 그 부모의 모든 재산은 부모가 죽게 될 때 그 자녀들이 다 상속받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은 하나님 자체 외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종류가 천도, 만도, 억만도 넘는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아서 자기 것으로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가지시고 하나님 노릇 한 것과 꼭 같이 우리도 받은 유업 가지고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이면서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직책을 할 수 있는 자로 인생역전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습니다! 사활대속의 은혜로 우리는 인생역전된 자들입니다!
2.2.2. 기업의 성격
베드로 사도는 유업을 설명하기 위해서 세 개의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단어는 동일한 글자로  시작하고 동일한 음절로 끝을 맺습니다.
첫째, 유업은 썩지 않습니다(a;fqartoj, ‘아프타르토스’). 이 말은 유업이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혹은 대적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멸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유업은 손상되지 않습니다(avmi,antoj, ‘아미란토스’). 이 말은 유업은 결코 우리에게 부적합하게 되거나 혹은 죄에 의해서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유업은 쇠하지 안습니다(avma,rantoj, ‘아마란토스’). 이 말은 그 영광이나 신선함을 결코 잃지 않으며 사라져 버리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세 단어들은 여기서 말하는 유업을 모든 땅에 속한 인간의  소유들과 대비시킵니다. 자연 질서 속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즉 재난이나 죄악이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나 악한 것도 이 유업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유업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셔서 영원토록 존재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받은 완벽한 유업은 믿는 성도가 취소할 수도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천국에 대한 선약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유업을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하십니다(4). ‘간직하신다’(thre,w, ‘테레오’, kept)란 단어는 헬라어로 완료형을 취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간직하는 행위는 과거의 일이며 그 일의 결과가 현재에도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유업을 천국에 간직해 두셨고,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간직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지금 우리로 하여금 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3.  정금보다 더 보배로운 구원 수입만 보라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베드로는 산 소망과 산 기업이 확고히 보호되고, 보장된 것처럼 이것을 받도록 예정된 자들도 잘 보호 받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호되다로 번역된 ‘프루루메누스’(frouroume,nouj)는 한 도시 안에 진지를 둔 요새 혹은 주둔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군사 용어입니다(참조. 살후 3:3; 유 24절). 이 요새는 성 안에 있는 내부 방어 지역으로서 성벽을 빼앗긴다 해도 이 요새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에 세상이 신자들을 어떤 극심한 핍박과 시련, 심지어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을 책임지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을 통하여 택한자들의 구원을 보장하신 것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낸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지 말을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돈 의지하면 돈을 박살 내시고, 명예 의지하면 명예 그 놈을 박살 내시고, 자기의 지혜 총명을 의지하면 지혜 총명을 절단 내시고, 언변 의지하면 언변을 절단 내셔서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 하나님께만 달라붙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사람의 믿음을 정화 시키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믿음의 확실성을 그 당시 가장 소중하고 내구성이 강한 존재인 ‘금보다 더 귀한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불에 타서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마치 금을 연단하면 잡것은 다 타고 아주 소중한 순금만 남습니다. 그러나 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처럼 금 역시 종국에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은 그것보다도 더 태우고 태워서 이제는 아무래도 타지 안할 수 있는 영원히 어떤 것이 와도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이 완전한 우리가 되는 것, 요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삶의 용광로 속에서 대장장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부정한 것들을 걸러 내십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자기의존성과 자기 섬김의 태도들을 태워 버리십니다. 그 결과 우리의 진정성이 하나님을 드러내며, 그분에게 찬양을 돌리게 하시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사활대속의 공로를 통해서 받은 “산 소망”과 “산 기업”에 대한 감사함을 항상 간직하도록 합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에게 약속된 유업으로 말미암아 쉼과 안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도록 합시다.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우리는 구별하는 거룩을 통하여 진리와 영감을 따라서 순종함으로 정금 보다 더 보배로운 믿음의 구원 수입만 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 때와 심판 때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자라는 인정을 받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참조. 86071040}
☞ 본문(베드로전서 1:3-7)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⑴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과 산 기업을 주신 분.
⑵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한 보호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
⑶ 금보다 더 귀한 칭찬과 영광의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분.
☞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사활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받은 선물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항상 간직하라.
☞ 임마누엘 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함으로 순금보다 더 귀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주인공이 되라.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4-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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