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용서

2007.11.12 13:35

윤봉원 조회 수:1183 추천:83

마 18:21-352007111102

날자: 2007년 11월 11일 주일 오후
제목: 감사와 용서
본문: 마태복음 18장 21절-35절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그 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
1. 성도의 최고의 가치는 예수님 제자가 되는 것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삼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본 단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본 단락은 15-17절에 언급한 죄지은 형제에 대한 관심은 그 형제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형제 자신의 제자도를 회복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목회적 관심에 자칫 개인적인 반감이나 보복 심리가 개입된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감정이 제자들에게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분명히 하셨습니다(마 5:38-42). 따라서 제자도의 길을 걸어 가는 사람들은 죄를 범한 형제와의 관계에서 최우선적으로 용서의 원리를 실천해야 합니다(마 6:12, 14-15). 그리고 이 용서의 원리를 실천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가 ‘하늘 나라’의 비유임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공동체 안에서 한 없는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의 당연한 현상임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 그리고 그 결과 제자들에게 기대되는 용서의 능력은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3-4),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이 말씀은 용서를 횟수에 상관없이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용서가 우리는 잘 되고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용서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까?

2. 예수님께 거저 받은 은혜
2.1. 대형의 사죄
우리는 우리의 조상 아담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한없는 비참한 가운데에 빠져 있던 우리들입니다. 그 비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약 한 말씀을 어긴 값으로 하나님과 관계는 끊어졌고 또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도 다 끊어졌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의 저주만 우리들에게 오게 되어 그것이 영원히 계속하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이 여기에서 구원하시려고 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 때문에, 당신도 당신이 입법해 놓은 것을 어기지 못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법에 죽는다고 하는 이 법을 범했으니 영원히 죽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요 또 하나님은 영원히 죽여야만 당신이 당신의 법을 이행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하나님 법 어긴 값은 망하고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망을 하나님이 대신 받으시는 이 대형이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우리를 그 죄에서 구출할 수가 없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의 죽음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2.2. 대행의 칭의
대형으로 우리는 벌 받는 데서는 구출하셨지만 하나님 앞에는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의가 있는 자라야 서지 의가 있지 안하면 설 수 없는 고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대신 우리의 몫을 다 행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관계된 이 모든 행동을 다 예수님이 대신 행하셔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지성 지공 전지의 그 법을 다 이행한 사람으로 대신하셨습니다. 율법대로 살 수 없는 우리들인데 예수님께서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완전히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1~4)
2.3. 대화친의 새생명
사람만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인 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형을 대신함으로 우리를 해방을 시켰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무한하신 능력과 무한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진실과 무한하신 거룩과 무한하신 지식과 지혜와 무한하신 그 의와 권능이 우리와 연결돼 가지고 그 무한함이 우리를 통해서 마치 나타나기를 내 말이 이 마이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를 통해서 모든 택자들과 모든 만물들에게 이렇게 나타나 가지고 하나님이 피조물을 살리는 그 모든 은혜가 우리를 통해서 영원히 모든 만물들에게 이렇게 발휘할 수 있는, 전달될 수 있는 이런 일이 화친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큰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요 은혜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잡수실 때에 ‘내 살을 기념하라 내 피를 기념하라’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3. 빚 갚는 일
3.1. 하나님에 대하여 복종 생활의 계속
우리는 지금 남은 생활이 어떤 생활을 우리가 할 것인가? 예수님이 대형을 했기 때문에 대형의 원인이 되는 다시는 죄를 범치 않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예수님이 대형을 하셨으니 대형을 기념하므로 다시는 영감에 복종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하는 영감 복종이 계속해야 되겠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살아야만 할 우리들입니다.
3.2. 하나님 상대하는 일을 사람 상대함으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께 대해서 하려고 해도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마음으로만 그렇게 해야 될까? 어떤 상대를 대해서 진리를 어기지 안해야 되겠고 또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아야 되겠고 또 하나님과 이와같이 지금 화친해 하나님의 모형으로 형상으로 살아야 되겠고 이래야 되겠는데, ‘너희들이 보이지 않는 나와의 관계된 것을 너희들이 기념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나를 생각함으로 보이는 사람을 상대해서 하라’ 요렇게 하나님께서 규정을 지워 주셨습니다. 주님에게 하는 일을 사람에게 상대해서 해라 그렇게 우리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3.3. 무익한 종으로
비유에 등장하는 종이 진 빚의 액수는 ‘만 달란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입니다. ‘달란트’는 예수님 당시 가장 높은 화폐 단위였습니다.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서 대략 성인 남자의 20년간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그러니까 ‘만 달란트’는 20만년 동안 벌어서 갚아야 할 액수 인 것입니다. ‘만’은 수를 세는 데 가장 큰 단위로서 ‘헤아릴 수 없는’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왕에게 빚진 종의 빚의 액수는 갚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용서받은 빚의 양이 이와 같다면, 제자가 자신의 형제에게 보여 주어야 할 용서의 한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왕에게 용서 받은 종이 동료 종에게 탕감해 주지 않은 빚의 양 100데나리온은 자신이 탕감 받은 양 1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그 종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혜택을 입혔고, 어떤 용서를 했고, 또 어떤 봉사를 했고, 어떤 희생을 했고, 그이의 잘못을 내가 얼마나 부담을 했고, 그이가 할 것을 내가 얼마나 부담을 해서 대신 행했다 하더라도 사람과 너와의 계산을 따질 때에는 주님과 너와의 계산 댄 일이 있기 때문에 그 계산을 원형으로 해 가지고서 그렇게 계산을 대라. 그러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라는 그 마지막에 결산이 나올 것이고, 또 네가 아무리 사람에게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주님이 ‘내게 대해 한 그것을 이제 사람에게 해라’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결국은 나는 빚졌다, 나는 사람에게 대해서 행할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결국은 나는 사람에게 할 것을 다 하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다’ 이런 마지막의 결산이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4. 주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하는데 보이는 사람에게 주님이 내게 하신 것과 같이 내가 할 때에 고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것을 내가 사람들에게 행하지 안할 때에 옥에 가둔다 했습니다(34-35절). 행하지 아니한 그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옥에 갇혀서 영원히 나오지 못합니다. 영원히 옥에 가둡니다.
4. 평생 용서하며 살아라! 계속해서 용서하며 살아라!
우리 조상의 잘못과 우리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의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쥐시고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관하여 우리는 영원무궁토록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 은혜에 합당한 생활은 내가 보이지 않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현실에서 내가 사람 상대하는 데에서 이루어지고, 내가 주님을 노엽게 하는 것도 사람 상대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언제든지 명심해야 됩니다. 내가 주님에게 잘못한 것을 말하면 억억억억만 배(무한)도 더 잘못했는데, 주님에게 큰 은혜 받은 거는 잊어버린 그자를 주님이 노여워하십니다. 이 은혜를 기억함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을 상대해서 평생, 어떤 경우라도 용서하는 삶을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시작은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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