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의 이방 선교 파송

2007.10.06 22:08

윤봉원 조회 수:932 추천:63

행 13:1-32007100553날자: 2007년 10월 5일 금밤
제목: 안디옥 교회의 이방 선교 파송
본문: 사도행전 13장 1절 3절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 다양한 일꾼들로 구성된 교회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사도행전 13장은 그 동안의 예루살렘 중심의 사역이 안디옥 중심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제국의 3대 도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안디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때 안디옥은 예루살렘을 능가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도시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으시고, 사역자들을 세워 안디옥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준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안디옥에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다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 교회의 구성원들 그리고 실로 그곳에 거주한 다섯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로 구성된 지도자들을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는 그가 이 선지자와 교사들의 사역을 어떻게 구별해서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도, 또한 이 다섯 사람 모두가 이 두 역할을 다 수행했는지, 아니면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처음 세 명은 선지자였고 나머지 두 명은 교사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그들의 이름뿐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바나바로서, 이전에 누가는 그를 ‘구브로 태생으로 레위 사람’(행 4:36-37; 9:27; 11:22-30)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행 11:24)였습니다. 직접 예루살렘 회중으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이 확실합니다.
두 번째로 니게르(‘검은’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빌려온 말)라 하는 시므온(히브리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흑인이었을 것입니다. 추측컨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으며(눅 23:26) 신자가 되었음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들인 알랙산더와 루포가 기독교 공동체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막 15:21, 롬16;13). 그 구레네의 시몬이 아닌가 합니다.
세 번째 지도자인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누가가 자기 자신을 언급하고 있었다고 하는 몇몇 초대 교회 교부들의 추측은 매우 그럴듯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자신의 익명성을 주의 깊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마나엔이었는데 그는 헬라어로 분봉왕 헤롯, 즉 헤롯 대제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의 젖동생으로 불렸다. 이 단어는 마나엔이 일반적으로 그와 함께 자랐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더욱 상세히 말해 그가 헤롯의 젖형제 흑은 '친밀한 친구'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누가가 헤롯의 왕실과 가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마나엔이 자료 제공자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의 교회 지도자는 사울로서 그는 물론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그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다섯 사람은 안디옥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상징했다. 이런 지도자들의 면모만 보아도 안디옥 교회가 이방선교를 위하여 주님께서 준비시킨 교회요, 복음의 전초기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주를 섬겨 기도한 교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2절)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경우이므로, 이애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첫째로, 성령님은 누구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는가? 성령님이 말씀하셨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었던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을 다섯 명의 지도자들이라는 좁은 집단으로 제한시켜야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총 세 명이 나머지 두 명에 대한 명령을 받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 전체가 그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합니다.
1절을 보면 그들과 지도자들이 둘 다 언급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 지역 교회 교인들이 참여해서 일곱 사람을 뽑았던 경우(행 6:2-6)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바울과 바나바가 돌아왔을 때, 그들은 ‘교우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의해 파송 받았기 때문에 교회에 선교 보고를 했다(행 14:26-27). 더 나아가 성령께서 교회에 자신의 목적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면, 바나바와 사울 자신을 제외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행하게’ 하도록 그들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님의 명령은 그 분이 교회에 알리기 전에 이미 그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둘째로 성령님이 교회에 계시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매우 막연했다. 그 분이 바나바와 사울에게 하도록 명하신 일의 본질은 구체적으로 상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다를 바 업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하나님은 ‘너희는 나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행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경우 모두에 가라는 명령은 분명했으나 반면에 가야 할 땅과 해야 할 일은 분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경우 모두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담대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요구했다.
셋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여기에는 그것에 대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가장 그럴 듯한 추측은 하나님은 선지자 중 한 사람을 통해 교회에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부르심은 외적인 것이기보다는 내적인 것이었을 것입니다. 즉 그들의 마음과 정신 가운데 느껴진 성령님의 증거였을 것입니다. 그 명령이 어떻게 그들에게 이르렀든 간에,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은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기 위해, 또 부분적으로는 보냄 받을 두 사람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금식에 대한 두 번의 언급이 어느 것도 따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2절에서는 예배와, 3절에서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금식 그 자제가 목적인 경우는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행동(예배를 드리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위한 소극적인 행동(음식과,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다른 것을 삼가는 일)입니다.
3.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교회
넷째로, 누가 선교사들을 파송했는가? 4절에 따르면, 바나바와 사울은 앞서 교회에게 그들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셨던(2절)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절에 따르면 그들에게 손을 얹은 후에 떠나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 동사를 ‘내주다’(let them go, NEB)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곧 그들이 더욱 광범위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는 책임을 면하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참조. 행 3:13; 5:40; 16:35-36). 왜냐하면 누가는 동사를 때때로 ‘면제하다’(release)라는 의미로 사용한다(예를 들면 행 15:30, 33; 19:40). 하지만 그는 또한 그 단어를 ‘가게 하다’(dismiss)라는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이 주도권을 쥐셨다는 것을 정당하게 다루려고 노심초사한 나머지 교회의 역할을 전적으로 수동적인 것으로 묘사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이 교회에게 그들을 보내라고 명하심으로 그들을 보내셨으며, 또한 교회가 성령님으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들을 보냈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바나바와 사울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행 13:4)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세워진 지 일 년밖에 안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그것에 순종할 준비가 된 다음에 주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여 두 사람에게 안수 하여 보냈다(3절).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결단이요, 희생이었습니다. 오늘날 비록 안디옥 교회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전세계는 복음의 빛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진광 교회는 주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있는가? 혹시 인간의 뜻과 생각, 몇몇 성도들의 뜻과 생각이 난무하는 교회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지역 교회(특별히 교회 지도자들)는 성령님이 누구에게 은사를 주시고 있으며 또 누구를 부르시고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그 분께 민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진광교회도 앞으로 어떤 다양한 인격을 지닌 성도들이 모이더라도 차별이나 구별을 두지 말고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셔서 주님이 보낸 식구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 확장의 비전을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 입어 이루갈 수 있도록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앞으로 우리 교회에 어떠한 명령을 하시더라고 감사와 기쁨과 소망으로 즉시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진다면 안디옥 교회가 세게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를 통해서 진해, 대한민국, 세계로 복음 전파가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0-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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