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삶의 속도를 늦춰라

2007.09.12 18:00

윤봉원 조회 수:1079 추천:92

시 131:1-32007090753날자:2007년 9월 7일 금밤
제목: 기도를 위하여 삶의 속도를 늦춰라
본문: 시편 131편 1절 -3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 당신의 삶은 시속 몇 Km인가요?
빌하이벨스 목사님은 시간 활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관계가 매일 새로워진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이러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참된 영성의 가장 큰 적은 분주함이다. 분주함은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 사회의 일정, 목적, 활동들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과 더불어 행하는 것을 멸시하거나 소홀히 여긴다. 하여간 참된 기독교의 핵심 요소는 시간이다. 자투리 시간이나 그냥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시간 말이다. 그 시간은 묵상하고 연구하며 성찰하는 시간이다. 또한 서두르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다. 당신의 활동이 모두 교회와 관련된 것이라 해도, 계속 활동만 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당신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능력은 주님과의 은밀한 만남의 시간에서 나온다.”
당신의 삶은 시속 몇 Km인가요?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내야 합니다. 육신은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면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즉 하나님과의 연결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2. 시편 기자의 작정과 노력
2.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유명한 불가지론자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제인 와일드 호킹은 1988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의 역할은 '단지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그에게 말하는 것" 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mind-지성)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며(막 12:30), 사소한 일보다 인생의 좀 더 큰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교만과 오만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유물론과 뉴 에이지 신비주의는 둘 다 인간이 계몽을 통해 모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들은 어디서나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허영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실제 자기 모습보다 훨씬 높은 능력을 과시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시도하려는 야망이나 탐심의 노예가 되어 긴장, 불안, 염려에 파묻혀 지낸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라고 작정한다. 성전을 향해서 올라가는 자가 즉 하나님을 찾는 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겸손의 자세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사 57:15),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벧전 5:5). 여기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과거에는 교만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교만하지 않게 되었고 교만하지 않기를 결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의 가치와 하나님의 뜻을 부인하려고 하는 교만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큰 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렘 45:5)
2.2. 눈이 높지 아니하면
시편 기자는 과거에는 눈이 높았고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거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자기의 눈이 높지 아니하다고 고백했다.
‘교만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눈으로 그 본성을 드러낸다’고 헝취텐베르크는 말한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시 18:27)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시 101:5)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잠 5:16-17)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의 비유에서 바리새인이 세리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그의 이웃을 경멸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당연히 바리새인은 정신적 교만의 한 실례로, 그리고 세리는 거짓 없는 겸손의 한 실례로 간주 될 것이다.
2.3.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기자는 자기 분수에 지나친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겠다고 고백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다. 안식은 대담하고 분에 넘치는 야망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만 참 안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진정한 겸손은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 경외에서 비롯한다.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기도 생활을 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찾을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3. 시편 기자의 마음 상태
 진정한 회개와 겸손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의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교만과 자기 신뢰는 불안과 초조와 원망과 불평을 가져 오고 회개와 겸손과 하나님 신뢰는 고요함과 평온함과 감사를 가져 온다.
 여기 시인은 심령에 고요함과 평온함을 품되 마치 젖 뗀 아이가 그 어미의 품에 안긴 것과 같은 고요함과 평온함을 품게 했다고 고백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요 행복한 간증이다. 마치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하나로 만족과 행복을 삼는 것처럼(어머니의 젖을 마음껏 먹고 어머니를 신뢰하며 따스한 어머니의 품에서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아기) 이 시인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과 행복을 삼는다. "평온케 하기를 .... 같게 하였나니." 고요함과 평온함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인 동시에 자기가 품도록 노력해서 얻는 것이기도 하다.
4. 시편 기자의 권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 8:24)
우리 성도가 가져야할 소망은 어떤 것일까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것은 신적인 것이다. 기독교의 소망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혹은 유한한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불변적이며 무한하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있다. 그분께 둔 진정한 소망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아…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것은 공유적이다. 그것은 시인과 제사장, 예언자, 아니면 어떤 한 계층의 배타적인 특권이 아니었다. 온 국가가 그것을 얻기 위해 여기에 부름을 받았으며,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적인 고무적이고 영광스런 소망을 함께 가질 것이다.
“지금부터” 그것은 현재적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소망을 소중히 생각하고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은 모든 시대와 모든 상황 하에서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것은 영속적이다. 신앙과 자비와 마찬가지로 소망은 영속적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교만함을 버리고 경건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묵상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에 가까이 있으라!
자신의 허물과 죄를 자주 재고하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자신의 마땅한 의무를 생각하라!
심판의 날을 예기하라!
우리가 이 시간 이후에 평생 동안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결심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9-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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