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2007.08.24 06:03

윤봉원 조회 수:1012 추천:105

벧전 2:92007081901 

날자: 2007년 8월 19일 주일오전

제목: 당신은 누구십니까?

본문: 베드로전서 2장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 당신은 누구십니까?

우리 옆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질문을 던져 봅시다. 어떤 성도는 "나는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어떤 성도는 "나는 직장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어떤 성도는 "나는 백수예요"라고 대답할 것이고, 또 어떤 성도는 "나는 사장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성도는 "나는 전업주부예요"라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우리의 직업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직업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가 우리의 제사장 직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가 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일하든지 손으로 일하든지 아니면 등으로 일하든지 간에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이 근본적인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직업을 옮기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은 우리에게서 평생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직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 것이며, 항상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2.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기독교는 이제 거의 구경거리가 많은 스포츠가 되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한 래리 리의 말이 맞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의 틀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먹고 살 만큼 벌고 있고 교회에 다니며 십입조도 낸다. 저 강단 위에 있는 친구들이 제사장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가 행하도록 소명받고 있는 것을 직업적인 목사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도자들, 목사들과 교사들을 임명하시고 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분의 백성들이 복음을 퍼뜨리며 서로서로에게 봉사하도록 그들을 충분히 준비시키셨습니다. 성도들이 그 직분을 잘 감당하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움을 입으며 영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 4:11-13을 준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이러한 인과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께서는 전임 목사들만 세상 끝까지 전파하러 가도록 의도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는 것은 분명히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자격이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여 그에게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권위를 부여해서 준비하게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교회들은 그런 사람이 세상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전체 혹은 일부라도 덜어 주어서 그의 모든 시간을 교회에 바칠 수 있게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발견했습니다(고전 9: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목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평신도들을 부르셨습니다. 목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은 교회와 그 외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평신도들은 직장, 이웃, 다양한 모임 등을 통해서 제사장의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영을 통하여 양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연구해 보면 기독교는 평신도 운동으로써 크게 부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평신도들이 예배 봉사도 참여 했으며(고전 14:16, 26), 교회의 권징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약 5:16; 고전 5장; 마 18:15-20). 브리스길라와 그녀의 남편인 아굴라는 그들의 집에 교회가 있었고(고전 16:19), 사도 바울을 도왔으며(행 18:18), 아볼로의 신학적 교훈을 돕고 있었습니다(26절). 초대 교회 1세기 동안에는 병 고침이나 마귀를 쫓아내는 일, 영적 은사가 나타나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앞으로 될 일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환상들을 보거나 예언적인 표현들을 했습니다. 또 병든 자들에게 손을 얹어 고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 그의 교회는 어떠한 속임도 없이 어떤 보상도 받지 않으면서 이방인들의 유익을 위해 날마다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값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3세기 동안에 선교적 전도에 관한 역사적 자료에는 이웃이방인들 가운데 의료 선교가 매우 효과적이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종교의 엑소시스트(귀신 쫓아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고쳤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그들의 직분에서 점차 물러났고 교회는 목사의 교권 제도의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3세기 말경에는 교회가 더 이상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들이며 제사장들인 카리스마적(영적으로 은사를 받은) 공동체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성도들은 목사와 평신도, 거룩한 자와 속된 자,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을 모두 포함하는 제사장 나라의 개념은 사실상 거의 무의미해졌습니다.

4세기경에는 어떤 평신도도 성례를 주관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 평신도들이 쓴 시(詩)는 교회에서 노래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평신도들은 예배 시간 내내 수동적으로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5세기경에는 평신도 사역자들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과부들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더라도 남자들에게 세례를 주거나 가르칠 수 없었으며, 평신도들은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안수를 받고자 하는 평신도는 장로 직분을 받기 전에 교회 직무의 복잡한 일들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마틴 루터에 의해 주도된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성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원리와 실천의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많은 변화들 가운데서 루터가 일으킨 운동은 성도들이 모이는 소그룹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가정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1703-1791)는 이 가정 교회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의 모임을 가졌는데, 그것은 설교하는 모임과 가르치는 모임,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주님이 역사하신 일들을 나누는 모임이었습니다. 루터, 웨슬리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 사람들이 원래의 교회의 모습인 성도들의 교제와 모든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직분을 감당하는 교회를 회복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평신도들은 또다시 구경꾼의 자세를 취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어느 덧 몇몇 전문적인 목사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내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고 약속하신 약속의 복이 곧 우리에게 한 복인데 이것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발길로 차 버리는 격인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병자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정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는 어느 자매가 또다시 나자빠져 있다고 목사에게 말하고서 그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전문적인 교역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평신도들이 하도록 부르심받은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목사에게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이나 병자를 방문하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결혼시켜 주고, 죽은 사람을 장사해 주는 것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상담자, 행정가, 교사, 자금 조달자, 건축가, 교회 관리인, 예배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목사들에게 기도하거나 연구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조종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동기를 부여하는 자가 되기를 기대하며, 영감적인 메시지를 준비하고 그리스도께 점수 많이 따기를 바랍니다.

3. 세상을 뒤집어 놓는 믿음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 식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예배 참석 보다는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제사장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종교적인 게임을 하며 놀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일 우리가 초대 교회의 모습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뒤집어 놓으려면' 신약의 세 가지 중요한 원리들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 모든 성도들은 부르심을 입었다(벧전 2:9).

* 모든 성도들은 영적인 은사를 받았다(고전 12:4, 11; 롬 12:4-8).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 12:4)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4-8)

* 모든 성도들은 직분자들이다(벧전 4:10-11; 고전 12:5; 행 11:29).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고전 12:5)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행 11:29)

4. 생명의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라

이러한 원리들을 잘 이해하여 오늘부터 주님 불러 가시는 그 시간까지 우리 자신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평생 잘 감당하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했다. 생명의 면류관 이것 너의 것이다 인정받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8-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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