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의 법칙

2008.01.20 22:44

윤봉원 조회 수:1200 추천:66

신 28:1-352008012002날자: 2008년 1월 20일 주일오후
제목: 성도의 삶의 법칙
본문 : 신명기 28장 1절∼35절
1. 중생된 성도의 삶의 법칙은 따로 있다
우리는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택한 사람도 있고 또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고, 택함을 받은 사람 중에도 아직까지 구속의 중생을 입지 못한 사람도 있고 중생 입은 사람-‘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도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벌써 그 사람은 택함을 받은 증거요, 또 구속을 받은 증거요, 중생된 증거입니다. 그 사람이 믿다가 낙심하고 어떻게 일시로 믿었을지라도 참 믿었으면 그 사람은 중생된 사람입니다. 중생된 사람도 그렇게 중복적으로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서 중생된 사람이 있고 구속을 받지 못 하여 중생을 입지 못하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대로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어서 그 사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일 년 살았으면 그만큼 생명은 짧아졌고, 또 오십 년 살았으면 그만큼 생명은 짧아져서 그 향방이 완전히 죽는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은 중생된 어린 생명이 점점 자라서 하루 이틀 일 년 십 년 이렇게 살아가는 데에서 중생된 생명이 자라갑니다. 자라가다가 영생을 가졌기 때문에 영생 가진 사람이 이 피와 살로 되어 있는 이 몸을 입고는 영생을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이것은 아무리 위생을 잘 관리한다 할지라도 만일 천 년을 산다고 하면 뭐 뭉텅뭉텅하이 썩어서 반송장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가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는다’ 이랬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는 것이 사망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 완전히 저주의 것이 되고 사망의 것이 되어서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된 사람들은 잘 믿었든지 못 믿었든지 그가 믿은 대로 구원은 이루어졌고 구원 이룬 대로 세상을 떠날 때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는 그 육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이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몸으로 변화함을 받기 위해서 그것을 벗고 낙원으로 가는 것입니다.
 두 종류가 있는데, 중생함을 입지 아니한 사람과 중생함을 입은 사람의 생활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 모든 동물이나 곤충들 가운데 부화하는 그 작용이 있습니다. 곤충들도 벌레로 있다가 그것이 부화를 합니다. 동물 가운데도 부화하는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뱀 같은 것도 부화합니다. 닭이니 이런 모든 금수 같은 것들도 다 부화를 합니다. 부화하기 전에는 알 속에 들어서 살다가 그것이 변화가 되면 알 밖에 나와서 살게 됩니다. 부화되기 전에 살던 그 자리에 부화하고 난 다음에 살면 그는 죽습니다. 부화하고 난 다음에는 부화한 자가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곳에 가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물벌레 같은 그 물벌레도 물벌레가 물 속에서 순전히 자랐지만 그것이 부화가 되면 나비가 되고 잠자리도 됩니다. 그러면 잠자리가 그 부화되고 난 다음에는 옛날 살던 물벌레로 살던 그 물속에 들어가면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부화하고 난 다음에는 이 공중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 하나님께서 중생된 자와 중생하지 않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의 생의 법칙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중생되기 전에는 전에 살던 법칙과 중생 후에 사는 법칙이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중생 전에 살던 법칙은 사람의 생각대로 사람의 욕심대로 사람의 힘으로 사는 것이 중생 전에 사는 사람의 법칙입니다. 중생 후에는 사람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고, 사람의 욕심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살고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 능력을 힘입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명기 28장에 말씀하시기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것이나 자기가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이 다 인간을 초월한. 인간의 그 방편을 초월한, 인간의 힘을 초월한, 자연을 초월한 그 초월한 능력으로 성공과 존영을 가지게 되는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사람들은 땅위에서 세상살이를 하든지 영원한 하늘나라의 준비를 하는 믿음 생활을 하든지 할 때에 자기 지혜와 자기 힘 그것으로 하는 것은 다 멸망입니다. 그것으로서는 하지 안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것으로 하기 때문에 다 실패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라.’말씀하셨습니다. 부인하라는 말은 자기의 지혜만 부인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지혜와 지식과 능력과 욕심과 소원과 성질과 모든 것을 부인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네게 명하는 것을 네게 말씀하신 이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네게 명하는 요것을 지켜 행하라’ 것만 하면 다 됩니다. 그것만 하면 전쟁이 와도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책임질 것이고, 직장에 어떤 산벼락 같은 일이 있어도 당신이 책임지실 것이고, 정치도 당신이 지실 것이고 사업도 당신이 책임지실 것이고, 어떤 뭐 농업이나 공업이나 상업이나 어떻게 위험한 때나 평온한 때나 대적이 강하든지 크든지 적든지 어려운 문제나 쉬운 문제나 할 것 없이 전부를 다 주님이 책임지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믿어야 됩니다.
2. 성도의 삶의 법칙
2.1. 모든 현실마다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 영접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나 읽을 때에 조심해서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읽고 듣고 해야 되는 것은 이 말씀 잘못 들으면 헛일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만날 때에는 어떤 현실을 만났든지, 내가 바다에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파선되어서 바다 가운데 지금 익사하게 됐습니다. 바다 가운데 빠지게 됐습니다. 그때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는 찾아왔습니다. 창조주는 거기에 와서 계십니다. 또 내가 아무리 답답한 일이라도 거기에 주님은 오셨습니다. '내가' 하시는 이 하나님이 왔습니다. 어떤 그 원수 앞에서 큰 환난을 만났을 때에도 그때도 내가 네게 말하는 그 '내가' 하신 그 하나님이 직접 찾아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든지 창조주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하나님이시요 대주재시요 주재자시요 개별 섭리자로서 생명계를 주권하고 활동계를 주권하고 심리계를 주권하고 바다 속을 주권하고 육지를 주권하고 공간을 주권하고 모든 것을 홀로 주권하시는 그분이 '내가 오늘날' 하신 그분입니다.
우리 현실에는 언제든지 이렇게 지극히 크시고 우리를 하나님처럼 온전케 만들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만들고, 하늘과 땅 영계와 물질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상속 받아서 소유하게 하시는 분이 와 계신 것입니다.
그분을 내가 만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분을 만나느냐? 내 현실에서 당신이 이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 명하는가? 명하시는 그 명령을 찾을라고 하는 것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지금 만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바로 찾은 것이 자기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찾은 그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려고 하는 것이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 명령을 찾은 대로 내가 행하려고 할 때에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 명령대로 내가 지키어 행할 때에 지키어 행할 때에 전지전능의 지극히 큰 능력의 주님을 내가 영접해서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요런 경우를 만났을 때에 주님을 배반하고 난 다음에 비참해졌지 주님을 배반치 안하고 주님을 영접해 가지고 동하는 자에게는 불구덩이 집어넣어도 비참치 안했고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비참치 안했습니다. 궁내 대신이 그 사람을 오십 척 나무에 달아 죽일라고 한다고 해도 비참치 안했습니다. 모든 세력보다도 큰 세력이 우리를 찾아와서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소용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열 처녀 비유에도 밤중에 신랑이 찾아왔다 하는 그것은 내나 그것도 현실입니다. 그것은 현실에다가 어려운 절정의 현실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네가 문을 열면' 하는 그것도 현실입니다. 그 현실에 주님이 찾아오셨는데 문을 여는 것은 당신을 영접하는 것이니 당신이 내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당신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너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씀은 너는 나를 통하여서 네 목적과 소원과 네게 대한 사명과 책임을 구원을 완성하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너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내 지극히 큰 뜻을 너를 통해서, 다 이루겠다 한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만 힘을 써야 됩니다. 왜 믿는 사람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뭐 어떻게 하면 사나 어떻게 하면 안 죽나 그런 것 염려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 뭐 하라고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 나라 구하는 것이 뭐입니까? 주님의 명령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하는 것이 그 나라 구하는 것이요 그 의를 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 모든 것 다 더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2.2. {명령을 찾는 법} 어떻게 받았으며,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그러므로 요것을 굳게 잡으면 현실에 당신이 찾아오시는 것은 틀림없고, 당신을 대면하고 동거 동행하는 것은 그 현실에 당신이 말씀하신 고게 해당되는 당신의 명령을 지키면 동거 동행하는 것이니까 고것은 틀림없는데 그 명령을 찾는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요한계시 3장 3절 이하의 사데 교회에 대해서 한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나니''(계 3:2) 행위의 온전한 것은 당신의 명령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지 안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다 말은 주님이 어떻게 해서 나에게 사죄의 공로를 베풀어 주셨으며 어떻게 해서 칭의의 공로를 베풀어 주셨으며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이렇게 친목한 부자(父子)의 관계를 베풀어 만들어 주셨는가, 또 당신이 어떻게 해서 나를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날 살려 주셨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어서 들었든지 설교 말씀을 들어서 들었든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둘은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면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 대속 3가지를 생각하고, '나는 영생으로 중생 됐다. 나는 죽는 자가 아니다. 영생으로 중생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자기가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생각하면 두려울 것이 뭣 있습니까? 중생된 자는 못 죽입니다. 안 죽습니다. 영원히 안 죽습니다. 중생된 영은 안 죽습니다. 우리의 주격은 안 죽습니다.
 '생각하고 지키어' 받은 것 생각하고 들은 것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킬 것이 나옵니다. ‘내가 영생으로 중생했으니 중생된 나로 살아야 된다. 내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죽은 자로 살지 안하고 나는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아야 된다.’ 이게 나온다 그 말입니다. 이게 지킬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과거에 대해서 이거 잘못됐다. 나는 과거에 이 받은 것을 버렸다. '아, 내가 과거에 요래 잘못되었다.' 회개할 것이 나옵니다. 회개합니다. 그라면 요 현실에 주님이 내게 명령 하시요 명령을 착 찾습니다. 주님 만납니다. 이것이 주님 만나는 비결이라 그 말입니다. 요렇게 회개하면 그 현실에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해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 가지신 주님과 나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요렇게 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전인류 위에, 천상 천하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자가 됩니다. 그는 많든지 적든지 뛰어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고. '만일 네가 일깨지 아니하면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임할런지 알지 못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에 이 심신의 기능은 무궁한 기능이요 무한의 기능이요 만물을 통치할 기능이요 하나님 다음에 존영할 기능인데 영광된 구원이 되는데 이것 다 도적 다 맞고, 다 뺏겨 버립니다. 그러고 나중에 가서 보면 부활은 했지만 무능자로 부활하니까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데 초점을 맞추라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주님 만나서 주님과 동행하면 지극히 큰 능력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초자연의 능력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그 초자연의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맛 잃은 소금과 같이 천해지고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만민이 너를 보고 두려워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동행하는 것은 자기 현실에 주님이 명하시는 그 명령 지켜 행하면 주님과 동행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고. 고것만 하면 고것만 하면 전쟁에도 승리하고, 손으로 하는 것도 복 받고 들어가도 복 받고 나가도 복 받고 성읍에 복 받고 들에 복 받고 모든 자기의 소생도 복 받고 모든 만물의 모든 생산도 복 받고 떡반죽도 복 받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어디다가 힘을 쓸 것이냐? 우리는 내 현실에서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는 그 뜻을 이루는 데에 우리는 전심전력 기울여야 됩니다. 다른 데로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 현실에서 물건 만드는 데 기울이지 말고, 사람을 구원하는 데 기울이지 말고, 당신의 뜻을 복종하는 거기에 기울입시다. 당신의 뜻을 복종하는 것으로서 하면 모든 것은 당신이 해 주십니다. 확정합시다! 여기에서 그만 초점이 안 맞고 틀려 버리면 헛일입니다. 죽어도 요 초점을 옮기면 안 됩니다.
(참조. 85011302)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1-2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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