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예수는?

2008.03.31 21:47

윤봉원 조회 수:1020 추천:113

2008033001날자:2008년 3월 30일 주전
제목: 내가 아는 예수는?
본문: 막 4:35-41
1. 순교자 폴리캅이 안 예수
우리 자신들에게 ‘내가 아는 예수는?’ 하고 질문을 던져 봅시다. 세계 삼대 성인 중에 한 사람, 아기 예수, 목수의 아들, 십자가에 죽은 예수, 부활한 예수 등등 다양하게 인식을 하고 있겠지요? 예수가 우리 자신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따라 장가는 것처럼 남이 예수를 믿으니 나도 믿는 예수인지? 또 아니면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하니 해결사로 생각하여 도움을 구하는 도우미 예수인지?
R.H. Bainton(「세계교회사」, p. 71)은 폴리캅의 순교 현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스리르나)를 통과할 때 그곳 회중의 감독 폴리캅에게 존경어린 영접을 받았다. 그 뒤로부터 40년이 채 못 되어 폴리캅도 처형을 바라는 군중의 외침 속에서 똑같이 순교의 운명을 맞이했다. 그 사건 기사가 그가 처형된 직후에 그의 회중이 쓴 편지로 남아 있다. 검투장에서 폴리캅에게 신앙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 되었다. 총독은 플리니우스가 정리한 절차대로 폴리캅에게 “무신론자들은 떠나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떠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폴리캅은 경기장에 모인 이교도들을 향해 “무신론자들을 떠나시오” 하고 외쳤다. 이것으로 더 이상의 절차가 필요 없게 되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총독은 다시 한 번 “그리스도를 저주하라”고 말했다. 폴리캅은 “나는 여든 여덟 해 동안 그분을 섬겼지만 그분은 내게 아무런 잘못도 하시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나를 구원하신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하고 대답했다. 총독은 한 번 더 “수호신 가이사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했다. 폴리캅은 “나는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대답했다. 총독이 그를 맹수들에게 던지겠다고 위협하자, 폴리캅은 “맹수들을 이리 데리고 오시오”라고 했다. 총독이 불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으나, 폴리캅은 한 시간 사를 불은 영원한 형벌의 불과 비교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그리고는 화형을 당해 죽었다. 주후 156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 긴 일생 동안 폴리캅은 사도 시대와 2세기 기독교 대 저자들의 시대를 잇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했다.’
그렇습니다. 폴리캅은 예수와 자기와의 관계에서 목숨을 내어 놓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 할 수 없는 예수, 배반할 수 없는 예수, 섭섭하게 할 수 없는 예수로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성도로서의 최고 아름다운 죽음인 순교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2. 제자들이 안 예수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배의 꼬리부분)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 4:35~41)
폭풍에게 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마가의 상세 묘사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세 묘사는 마가복음의 출처가 베드로인 것을 보여 준다. 마가는 목격자만이 알 수 있는 상세한 일신상의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았습니다. 또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해결사로만 인식을 했습니다. 막 4:39에서 폭풍을 잠잠케 하는 것은 자연을 다스리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재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로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께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실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 중에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기는커녕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원수들에게 팔아 먹었고, 베드로는 세 번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였고,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장면에서 자기들도 죽을까 걱정이 되어 다 도망가고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선생이나, 도우미,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면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로만 안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부활 이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가서야 그의 구주로, 그들의 삶의 주인으로, 그들의 삶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8)
3. 기도의 사람이 되라! 순종의 사람이 되라!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문제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제자들에겐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들은 무시무시한 폭풍을 만나고 말았다. 성도의 삶에는 잔잔한 바다보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가 더 많을 수 있으며, 삶을 위협하는 도전들이 생길 수 있다. 결코 평탄한 항해나 승리의 삶만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는 반드시 닥쳐올 폭풍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스트레스에 굴복해서는 안되며, 고요함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패배를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신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광풍이 다가온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폭풍 속에서도 누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삶의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신회를 고백하면서도 정작 그 폭풍이 닥치면 그 신뢰를 증명하는데 이르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성도인양 행세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신론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님이 돌봐주시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 불평을 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분께 우리의 필요를 알리고(빌 4:6), 그분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약 1:5).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고 계시고,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계시지만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의 새벽기도, 금요기도, 매 순간마다 하는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부탁을 듣고 예수님은 그의 권능으로 폭풍을 잠잠하게 한 것처럼 우리가 현재 만난 폭풍우나, 앞으로 당할 폭풍우에 대해서도 그가 도와주시면 문제는 다 해결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기꺼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극심한 시련이 닥친다 해도 결코 그의 권능을 도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꼭 하나 명심할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고 믿는다는 고백은 우리가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면 예수님은 해결책으로 우리에게 진리와 영감을 주십니다. 그 때에는 우리는 우리가 만난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는 순종을 통해서만 그의 역사하심을 체험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적은 것부터 순종, 죽을 때까지 순종, 주님 오실 때까지 순종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베드로가 이것을 증명해 주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8-29)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순종의 사람이 되어 지식적으로 아는 예수가 아니라 나의 구원자시오, 삶의 주인이시오, 삶의 이유요, 나의 전부가 되시는 주님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승리하세요.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3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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