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하리로다

2008.03.27 06:18

윤봉원 조회 수:1098 추천:106

벧전 1:3-72008032153날자: 2008년 3월 21일 금밤
제목: 찬송하리로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1. 찬송하리로다
여기에 찬송하리로다 하는 이 말씀은 찬송하라 찬송해야 된다 하는 그런 권고의 말씀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찬송하게 된다. 찬송하라 해서 찬송하는 것이 아니고 권해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가 찬송을 안 할라 해도 안 할 수 없는 필연적 찬송이 나오게 된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을 자기가 깨닫게 되면 깨달은 만큼 필연적인 찬송이 나오게 된다 하는 그런 뜻을 여기에 말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죄, 칭의, 화친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 주라고 말하는 것은 내 개인의 주님이 아니고 우리라는 그 복수가 돼 있는데 ‘우리 주’ 그라면 우리 주라 말은 내가 복수가 돼야 주님이 우리 주님이 되지 복수가 안 되면 주님이 안 됩니다.
복수는 예수님과 나와의 하나가 되는 때로부터 비로소 주님은 우리 주님이 되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예수님은 우리 주님이 될 수 없고 주님으로 부를 수 없고 또 하나님 아버지도 그러합니다. 여기에 복수로 말한 것은 주님과 나와 둘이 합해져야 비로소 내가 주님으로 부를 수 있고 주님이 우리 주님이 됩니다. 복수 안 되면 우리 주님이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든지 아버지를 만난다든지 성령님을 만난다든지 만나게 되면 즉시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주님을 만날라 해도 못 만나는 그 이유가 뭐입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우리가 안 되면 못 만납니다. 우리가 안 되면 아무리 만날라 해도 주님 못 만납니다. 이러니까 주님 못 만나면 누구 만납니까? 자기만 자꾸 생각하지. 자기 주관만 나오지. 마귀하고 같이 있는 데에는 우리가 안 된 사람은 전부 마귀하고 같이 돼요.
기도가 안 돼는 이유는 주님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이라면 내나 하나님이요 아버지도 주님이요 주님도 주님이요 꼭 하나라. 사죄, 칭의, 화친을 우리가 벗어 버렸기 때문에 만나지 못합니다.
3. 사죄, 칭의, 화친을 입는 방편
3.1. 우리를 사랑함으로 구원하기 위해 고생 받은 것을 연구하라
그러면 사죄, 칭의, 화친을 우리가 입는 것은 요새 세 가지로 말해 줬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어떻게 어떤 그 수고를 하셨는가? 수고 했다 말은 고생받았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서 어떤 고생을 받았는가? 사랑하심으로 고생받은 것도 우리가 한번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서 어떤 고생을 했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고생하신 그 고생을 연구를 하면은 어떤 고생했다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내가 하나님이 어떤 수고를 한 고생이냐? 하나님이 날 위해서 어떤 고생한 사랑이냐 또 그렇게 거꾸로 붙여서 또 우리가 생각해 본다 말입니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심으로서 어떤 고생을 하셨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연구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은 다 예수님이 무엇으로써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죽으심으로 줬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그런 것 가지고서 이래 만들어 준 게 아니고 돈 주고 사 준 게 아니고 친히 당신이 사죄, 칭의, 화친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희생하심으로써 주셨습니다.  죄를 없애는 죄의 형벌을 없애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케 하기 위해서 고생 받은 것을 자꾸 생각한다 말입니다. 
또 나에게 칭의를 주시기 위해서 영원히 피조물 사람이 되어서 영원히 사람을 벗지 안하고 우리 때문에 항상 사람의 그 피조물을 입고 있게 된 그것도 사랑도 이렇게 자꾸 생각한다 말입니다.
이래서, 주님의 이 사랑의 고생을 우리가, 내게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나를 어떤 사랑으로 어떤 고생을 어떤 고난을 받아가면서 나에게 이 구원을 주셨는가 하는 것을 자꾸 자기가 연구한다 말입니다. 고생이라면 죽으신 것도 고생이고 부활하신 것도 고생이라.
이렇게 자꾸 자기가 이렇게 주님의 고난을 자꾸 자기가 알라고 노력합니다. 주님의 이 구원에 대해서 주님이 어떤 자본을 들였는가, 이 구원에 대해서 주님이 어떤 자본을 들였는가?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가? 어떤 고난을 받았는가? 구원 위해서 고난받으신 것을 자꾸 자기가 좀 성경이 가르친 대로 깨달아 봐요. 자꾸 생각해 봐요.
3.2. 구원을 누려 보라
둘째로는 이 구원이 얼마나 큰가, 이 구원을 자기가 누려봐요. 누려본다는 말은 자기가 이 구원을 받아 가지고 지금 그 혜택을 보는 것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만 천부께서 허락지 안하면 떨어지지 안하는데 너는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너를 누가 해할까 염려하지 말아라 하는 이 말씀을 하신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입니다. 누린다 말은 효력을 본다 말입니다.
다니엘은 그 효력을 언제 봤어요? ‘기도하는 자는 다 사자구덩이에 잡아 넣어서 죽인다’ 할 때에 다니엘이 기뻐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그때부터 자꾸 입을라고 애를 쓰고 누렸다 말입니다.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그렇게 신강해도 그 왕 앞에 ‘아이고, 내가 그것은 못 합니다. 나는 기도는 내가 끊치지 못합니다. 기도는 계속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조아도 그래 한 것이 그 무슨 효력입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노력이라 말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라’ 할 때에 주님이 처음에 말할 때에는 ‘주님이 하라 하시면 그대로는 다 된다’ 믿고 그만 그 배에서 푹 뛰어내렸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약과 효력을 믿을 때 물 위를 걸었습니다. 걸어갔는데 나중에 의심할 때는 효력을 입고 있습니까 효력을 뺏겼습니까? 효력을 뺏겼습니다. 안 믿기 때문에 뺏겼지.
3.3.  기념하는 연습을 하라
셋째로는 기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기념이라 하는 것은 그때에 과거 어떤 한 때에 되어진 그런 것을 그 후 세대에 그때 된 그거와 같은 것을 다시 되풀이 해 가지고 꼭 그때와 같이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념관이 있다 말은 주기철 목사님이 왜정말년에 주님의 명령을 위해서 고생받은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그 후대에도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때 주기철 목사님이 신앙 지키느라고 신사참배 때에 고생한 그 고생과 같은 고생을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그와같이 지금 그런 고생을 자기가 받아 가지도록 하는 그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에 대한 고생을 기념하고 또 그 효력을 자기가 기념해서 자기도 현재에 ‘주님이 내게 사죄 주신 것을’ 사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 사죄 주신 그 일을 나도 한번 해 본다 그 말입니다. 주님이 사죄 주신, 사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면 죄가 와서 죄를 범하라고 할 때에 자기가 ‘주님이 나에게 죄를 없애기 위해서 이렇게 큰 고생까지 하셔 가지고서 죄를 없애 주셨으니까’ 하고서 ‘내가 다시 어찌 내가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사죄 주신 것을 내가 다시 더럽혀서 죄를 지을 수가 있느냐?’ 죄를 안 지을라고 하기 위해서 고생당하면 고생당하는 것 그것이 주님이 사죄 주시기 위해서 고난 받으신 그 고난에 대해서, 사죄에 대해서 기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 떡을 먹을 때마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그 말은 우리가 주님이 지금 사죄, 칭의, 화친을 주시기 위해서 피와 살을 찢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가 고생을 기념하는 것이라. 주님이 나에게 이 구원 주시기 위해서 고생당한 그것을 나도 이 구원을 인해서 고생을 내가 한번 겪어 보는 그것이 기념이라.
그러면 죽기까지 하셨으니까 내가 기념을 완전한 기념을 할라면은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그래 했기 때문에 나도 죽어도 죽었으면 죽었지 죄짓지 안하는 그것이 주님의 사죄를 기념하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기념하는 것.
기념하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 어떤 그 사랑으로, 어떤 사랑으로 어떤 고난으로 나를 구원하신 것을 나도 이 죄에 대해서 한번 죄를 없애기 위해서 이런 경험을 내가 고난을 한번 당하고, 또 의롭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배반치 안하고 살기 위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실지로 자기가 겪어 보고 느껴 보는 것이 그것이 기념하는 것이라.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것이라.
4. 의심 말고 믿고 순종하라
주님이 주신 구원에 대해서 첫째 우리가 노력할 것은 사랑의 고난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둘째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 주신 그 구원을 실지로 내가 그 구원을 받아 가지고 누려야 되는데 이것을 자꾸 연습해야 됩니다. 누리는 노력을 해야 되고. 셋째로는 실질적으로 이제 기념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생명이 나오고 여기에서 능력이 나오고 여기에서 하나님과 접선이 되어지고 심령도 밝아지는데 이거 없이 자꾸 말로만 중얼중얼해 가지고 생전 신앙에 한 번도 실지로 살아보지 안했기 때문에 실험과 경험과 체험이 없는 신앙,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실상은 하나입니다. 믿고 행하면 말씀이 실상이요 실상이 말씀입니다. 의심말고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참조. 88101230} * 윤봉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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